<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스토아 철학의 대표적 고전, “명상록” 황제의 철학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이 책 명상록은 “그대가 평소 담고 있는 생각이 결국 그대 자신이 된다.” 참으로 명쾌한 아포리즘이다. 자기 생각이 자신이 되다는 뜻이니, 나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질 수도 없는 존재, 오직 나만이 나를 만들 수 있어, 내가 어떤 모습의 내가 되느냐, 혹은 될 수 있느냐는 결국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이다. 사람의 행동은 내면에 채워진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한 말이다. 내가 한 모든 것은 오롯이 나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하기에...행위라는 것은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통찰을, 영혼도 올바른 방법을 훈육돼야 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준비된 영혼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책 구성은 명상록 자체가 심오한 철학을 논하는 것이 아닌 아우렐리우스의 자신의 진실한 고백,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되묻고 글로 남긴 것이다. 진실한 고백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본질을 통찰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행동은 내면에 채워진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것은 선한 영혼과 선한 욕망과 선한 행위다. 끝내는 로마를 칠칠치 못한 아들 코모두스에게 넘긴, 아우렐리우스, 그는 과연 행복한 사람이었던가, 나이 40에 황제에 올라, 20년을 전장에서 지낸 그는 군영의 기나긴 밤을 명상으로 콰디족과 대치하던 전장에서 <명상록>을 쓰기 시작해 12권까지 실렸다.
명상록 1권의 “나는 배웠다, 누구로부터, 무엇인가를”
명상록 읽기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1권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다는 대목이다. 황제가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이요. 인간의 됨됨이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니 말이다. 1권의 1~17까지, 이어지는 배움 이야기는 곧, 책을 통한 옛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것들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같이 적용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아우렐리우스는 할아버지 베루스에게서 따뜻하고 온화한 마음과 분노와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에게서 겸손과 명예를, 어머니에게서 신을 공경하고 사람에게 베푸는 법과 잘못된 일은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소박한 식사, 과소비를 피하고, 증조부에게서 유능한 스승을 모시는 일을, 가족에게서 배움은 곧 철학의 토대가 되었으리라.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내 일을 스스로 하고,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중상모략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이 대목까지를 읽는 동안에 적어도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순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볼 것이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동 혹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우렐리우스가 “왜”라고, 유학의 도, 왕도 철학 혹은 사상에서 나온 왕재가 갖추어야 할 대목이 다 망라돼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의 보편적 이치가 그러하다.
디오그네토스에게서 나는 불필요한 일에 관여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기적을 행하거나 마법을 부린다는 이들에게 현혹되지도 않는 사람이 됐다. 타인의 자유로운 주장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무엇보다도 철학에 관심을 끌게 됐다. 어려서부터 대화편을 기록한 일과, 철학자들의 작은 침대나 가죽 이불 등을 사용한 일, 또, 에픽테토스의 어록을 접하게 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대목은 에픽테토스의 제자 아리아노스가 정리해<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페이지2북스, 2024)에서 황제의 스승이란 표현의 황제가 바로 아우렐리우스다.
루스티쿠스는 내 삶에 반성과 치유가 필요함을 깨닫게 하셨다. 내가 소피스트들처럼 허상을 좇지 않게 된 것도 그 덕분이라고, 아폴로니우스에게서 진정한 자유와 굴하지 않는 결의를 배웠고, 작은 일이라도 올바른 것이 아니라면 마음에 두지 않는 법을 배웠다. 수신을 했다는 말이다. 이렇듯, 자기 성찰과 자중자애의 노력을 통해, 사람을 보는 법, 스승을 찾는 법을 배웠다. 겸손하게 모르는 것을 배우려는 태도, 이 밖에도 섹스토스에게서 온화함과 부성애를, 공동체화 화합하는 법을, 문법학자 알렉산더의 가르침을 통해 남의 흠을 들추지 않는 사람이 됐고, 문장과 문법과 발음의 오류를 지적하며 타인을 비판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에 세련되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품위 있고 정중하게 오류를 바로잡는 법을 배웠다. 프론토에게서 폭군이란 거대한 질투와 협잡과 위선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플라톤 학파 철학자 알렉산더 덕분에 ‘시간이 없다’라는 말은 자주 하지 말아야 하고, 불필요하게 편지에 써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형제 세베루스, 막시무스에게서도 배웠다. 배웠으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당신의 마음이 산만해지고 요동치지 않도록 해두어라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설명하든 그것은 육신이거나 생명이거나, 혹은 그 무엇이거나, “이성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욕망과 충동 때문에 끌려다니도록 두지 말라, 더는 현재를 불평하지 말고, 운명이 네게 맡긴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마라.” 이것이 1권의 핵심이다.
올바른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적 허영과 갈망에서 비롯된 명예나 신뢰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인간이 어떤 부분을 통해 신과 연결되는지, 그리고 신에게서 유출됐다고 말할 때 어떤 부분이 유출됐는지를, 중요한 것은 신들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그 가치와 선함 때문에 존중받아야 하며, 사람에게서 나온 모든 것은 그것이 우리 동족의 것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위무를 받아야 한다. 때로 정말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알지 못하지만, 이는 흑백을 구분하지 못한 맹목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동정과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3천 년을 살든, 만년을 살든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은 지금 사는 삶의 순간 외에 다른 때를 살 수 없으며, 지금 사는 삶조차도 매 순간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 가장 긴 시간과 짧은 시간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현재 존재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다.
명상록에 담긴 많은 이야기 속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언제나 곧고 바르게 살아온 이처럼 행동하라. 교정된 사람이 아니라 처음부터 바른길을 걸어온 사람처럼 살아라.”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