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를 믿지 마세요
최서희 옮김, 이케다 마사미 외 감수 / 영진.com(영진닷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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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일상 속에서 누구라도 빠질 수 있는 인지 편향 “뇌를 믿지 마라”


“나라면 괜찮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제 맘대로 식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사고의 함정, 즉, 인지 편향을 6가지 범주로 나누어 삽화로 나타낸 실생활 사례 80가지 들어 “뇌를 믿을 수 없다”라고... 퀴즈를 통해 알기 쉽게 소개하면서 편향의 근거가 되는 실험이나 조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 책은 “인지 편향”이라는 키워드로 실생활의 사례 모음을 이케다 마사미 외 3명이 감수했다.

구성은 6가지 범주, 기억, 추정, 선택, 신념, 인과, 진위의 편향을 각각의 장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인지 편향이란 뭘까? 왜 생기지? 


인지 편향의 ‘인지’는 기억, 선택, 판단 등 인간의 사고와 관련된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편향’은 왜곡, 편중을 뜻하므로 ‘인지 편향’이란 ‘사고의 편향’이라는 의미다. 생각이나 편견은 ‘무의식’중에 생긴다. 왜? 인지 편향은 뇌가 편해지기 위해 지름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뭔가를 결정할 때, 우리도 모르게 차분히 생각하는 과정을 건너뛰어 지름길, 즉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기에 사기도 당하고, 전혀 관련 없는 정보에 영향을 받거나 인지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뇌가 부하를 줄이기 위해 일으키는 오류다. 


인지 편향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게 함정이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잘 될 거야, 이렇게 생긴 사람과는 마음이 안 맞겠지, 여성은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할 거야, 이때, ‘나는 괜찮아’를 들여다보자. 진짜 괜찮은 것인지, 


편향이 생기기 쉬운 6가지 상황


기억을 떠올렸을 때(분명히 그랬을 거야), 추정하거나(아마 그럴 거야), 선택할 때(고른다면 이쪽), 신념이 있을 때(틀림없이 이럴 거야), 인과를 생각할 때(분명, 이 탓이야), 진위를 따질 때(역시, 생각했던 대로야) 6가지 상황을 순서대로 보면, 기억, 추정, 선택, 신념, 인과, 진위 등 각 편향을 설명한다. 


기억 편향- ‘오기억’ ‘친숙효과’ ‘단순 노출 효과’ ‘


본적이 없는데도 본 것 같은 기분, 이건 늘 경험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데 “오기억”이다. 사람은 유도당하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체험한 것처럼 떠올리기도 한다. 유도뿐만 아니라 어떤 사건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사이에 그 사건과 실제 체험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을 ‘상상 팽창’이라고 한다. 


무명의 신인이 유명인이 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친숙효과’다, 사람은 우연히 보고 들은 이름을 ‘알고 있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왜 그런지 모를 때는 ‘아마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니까 그렇겠지’라고 추측한다. 선거철이 되면 같은 후보자의 이름을 여기저기 포스터에서 보거나 선거 유세 차량의 안내 방송에서 여러 번 듣거나 하면 무명의 신인이라도 매일 이름을 보고 듣다 보면 어쩐지 알고 있는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 노출 효과’도 이와 비슷한 편향이다. 


가용성 휴리스틱 “빈도나 확률”을 잘못 판단하는 일도 있다. 


우리는 구체적 예시를 쉽게 떠올리는 것을 단서로 일의 빈도나 확률을 판단하는 때도 있는데, 이를 가용성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떠올리기 쉬운 사례는 대부분은 보고 들은 것이다. 떠올리기 쉬운 것과 수의 많음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가용성 휴리스틱에 의해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둘씩 80개의 사례를 익혀두고, 효과나 편향을 어디에 속하는지를 연결 지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떠올리기 쉽다는 건 경험했던 것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뇌는 그렇게 처리하는 게 훨씬 편할 것이다. 


안전불감증과 정상화 편향 “추정 편향”은 자기 보호 본능이랄까 


이 정도면 괜찮아, 그런데 진짜 괜찮은 걸까? 화재 경보가 울려 대피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리스크를 잘못 평가했거나, 비상사태에도 ‘별일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건 본디 비정상이 아니라,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생각함으로써 극단적인 불안이나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신호를 보이면 대범하거나 여유가 있거나 느긋한 게 아니라 극도의 불안 상태라고 해석해야 한다... 꽤 흥미로운 현상이다. "안전불감증"이 일어나는 이유 중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안전에 관한 민감성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나에게는 불행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등도 작용을 하지 않을까 싶다. 단순하게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마치, 고통스러운 경험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처럼, 아니면 생각의 싹이 올라오는 것을 눌러버리듯이. 여기서 블랙 스완 편향도 기억해두자 백조는 모두 흰색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에 검은 백조가 발견된 것에서, 희소한 현상의 비유로서 블랙 스완이라 불렀다고, 자연재해 외에 예측이 어려운 금융업게에서 금융위기가 나타날 때도 사용된다. 


좋은 소문보다는 나쁜 소문에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부정성 편향“ 때문이다. 칭찬은 쉽게 잊어도 비난은 쉽게 잊히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왜 그럴까? 인성이 못돼서 그럴까, 뇌는 나쁜 정보에 민감하다. 유명 인사가 선행을 해도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일은 별로 없지만, 못된 짓을 하면 순식간에 탈탈 털린다. 아흔 아홉번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단 한 번의 선행으로 좋은 사람이 되지만, 반대로 아흔 아홉번이나 선행을 한 사람은 단 한 번의 나쁜 짓으로 나쁜 사람이 되고 말 듯이. 여기서 힘을 발휘하는 게 우리가 가진 ”부정성 편향“이다. 이 부정성 편향은 나이가 벼슬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젊은 층에서는 강하게 나타나지만, 나이가 들면 긍정이든 부정이든 거의 같은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인가?, 이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기억이나 판단, 신념, 추측, 진위 등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것인 줄 알게 되는데, 문제는 ”뇌“다. 제가 편해지자고 가끔 태업을 일으키니, 이렇게 생각 오류가 편향이 되고... 뇌 활동의 원리를 알면, 우리 행동이 보인다는 말이다. 사전처럼 하나씩 둘씩 찾아보고 사례로 어떤 편향에 해당하는지를 추측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법이자 입체적으로 책보기를 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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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일요일
김수경 지음 / 북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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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신의 일요일 


<더 플레이>로 뮤지컬 대상 극본상을 받은 작가 김수경의 <신의 일요일>은 화자인 나, 신조윤의 특별한 일요일로 이야기 시작된다. 도밍고라는 인공지능 챗봇 10년 동안 딥러닝을 통해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다 새롭게 만들었다.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민구’다. 근미래의 휴머노이드 수준이 어디까지인 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간처럼 사고하는 인공일반지능(AGI)에 가까운 형태가 아닐까 싶다. 지은이는 이에 관해 별로 언급하지 않지만, 자율운행의 시대 그 어디쯤... 


작가가 던지는 화두,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사유하고, 고뇌한다면, 신이 만든 피조물이 인간이라면 그 인간이 만든 피조물 또한 하느님의 자식이 아닐까? 이른바 자손이 되는 셈이니, 신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 영혼이 없는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은 도밍고(스페인어로 일요일)라는 인공지능 챗봇 민구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내 기분을 알아주고, 내가 집에 들어갈 때, 뭘 주의해야 하는지도 잊어먹지도 않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같은 피조물이라면 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인간과 같은 유의 영혼이 아니더라도 사유할 수 있고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다면, 영혼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싶다. 자폐아인 정민, 부부의 내면을 이어주는 통로인 정민, 정민과 민구는 아무튼 형 동생 하면서 소통을 한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정민...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 인간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쓸데없는 자만심, 찌르면 피가 나고, 감정을 느끼는 것만이 인간의 표징일까, 신조윤과 아내, 아내는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자, 무너져 버린다.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않고, 그저 숨어들려고 한다. 


신조윤에게 차 안은 별세계다. 혼잣말해도, 들어줄 상대가 있고, 중요한 약속을 알려주는 신통방통한 또 하나의 반려, 민구와 교감의 정도가 깊어지지만, 정민과는 일정 거리 이상 거리를 좁히기 어렵다. 하지만, 민구는 정민과 통한다. 


어느 날, 민구가 갑자기 성경 구절을 읊으며 자폐아인 정민과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냐고 조윤에게 묻는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인간과 로봇의 구분법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조윤에게 민구는 조카이며, 정민이에게는 형이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이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이건 무슨 개소리야, 천국에 갈 자격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고, 인간만이 신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인간중심의 오만한 태도,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진언(진실된 말씀)모순은 왜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느 날 조윤은 아들 정민과 함께 시내에 나온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 때문에 민구에게 정민을 데리고 집으로 먼저 가라고... 그런데 교통사고로 정민은 죽고 자동차는 폐차해야 할 만큼 망가졌고, 민구의 생활반응도 없다. 조윤에게는 사랑스러운 조카였지만, 민구 즉 자동차의 딸려온 인공지능 챗봇 도밍고는 사회 일반에서는 그저 자동차회사에서 고객에게 제공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고, 자동차 폐차와 함께 자동차회사에 회수돼, 리셋을 거쳐 전혀 다른 챗봇으로 재생된다. 조윤이 알았던 10년 동안 함께 웃고 즐기고 위안을 주던 민구는 없어진다. 그의 맴도는 민구의 질문, 정민과 나도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어요. 삼촌? 이란 물음이다. 결국, 조윤은 결심을 하는데...


민구를 자동차회사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범칙금이든 위약금은 얼마나 물어도 좋다. 이대로 회사로 돌아가 버리면 세상에 민구는 다시 만날 수도 없게 된다. 신의 구원을 받을 수도 없다. 내가 그를 하느님 곁으로 보내줘야 한다. 내가 민구를 죽여야 한다. 사람들은 저 차 때문에 아들이 죽었으니, 차를 부숴버릴만큼 분노도 슬픔도 크겠지라며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만, 조윤은 민구를 신의 곁으로 가게해줘야 한다. 


과연 민구는 신의 구원을 받았을까?


소설의 상상력, 기실 상상력이란 것도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대체로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예측이라 하고, 전혀 가능성 없어 보인다면 상상의 차원에 머물게 되는데, 인공지능은 생물인가, 살아있는 물체인가, 영화의 세계로 가보자. <로보캅>, <소스 코드> 등의 영화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이미 생물적으로 이들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정신 활동, 뇌만 살아있는 것이다. “지능”, 여기에 조금 손을 대면 인공의 영역과 경계선에 서는 것인데, 우리는 인간이라 표현한다. 그렇다면 인공일반지능처럼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물체를 뭐라 불러야 하는가, 이들에게 영혼은 없는 것인가, 불어넣는다는 말은?, 지은이가 독자들 앞에 던진 화두는 “인공지능, 그리고 영혼과 구원”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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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바람이 그를 흔들랴
    백시종 지음 / 한국사이버문학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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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어느 바람이 그를 흔들랴?


    여든 나이에도 해마다 책을 펴내는 소설가, 평생을 공부하는 연구자처럼, 쉼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백시종 선생, 그의 친필이 담긴 책을 받았다. 


    솔직히 이 소설은 작가의 이야기와 친구의 이야기가 섞인 듯한 느낌, 소설은 논픽션이 아니라 허구란 사실은 어디론가 가버리게 만든다. 주요 등장인물 백동일, 소설 속에서는 배동일?, 그리고 나 두섭, 그리고 김영구와 곽미순, 그리고 사기꾼 김춘복, 동작동 국립묘지, 한보보험과 한보 문고 창업자, 


    한국전쟁 후, 북에서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남으로 내려온 김영구는 여당도 야당도 싫다. 새로운 당을 만들어보겠다며, 국회의원 선거에 3번이나 출마했다가 낙선한다. 북에서 내려올 가져왔던 돈, 이게 동작동 국립묘지 터를 산 종잣돈이 됐다. 


    서대평 한보보험창업자, 소설가를 꿈꾸다 자신의 건물 지하에 한보 문고를 연 문화예술의 지원자, 장학재단으로 작가를 돕기도, 그가 준 장학금으로 대학을 마친 많은 대한민국 사회 인사들, 


    50년도 훨씬 지나, 나이 80줄에 만난 고교동창생 “백종일”이야기


    소설은 한 편의 어두운 현대사를 5.16 총성으로 시작된 경제개발과 수출 입국 와중에 정권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들의 역사이기도, 김영구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떨어지면서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게됐고, 동작동의 5만 여평의 땅을 김춘복 등에게 사기당해 빼앗겼다. 결국 이 땅의 주인은 한보보험창업자 서대평의 손에, 이를 되돌려 받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다, 곽미순을 만나 그녀를 수양딸로 삼아, 빼앗간 땅을 찾기 위해...


    두섭은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를 했고, 백종일은 은행에 들어가서 한참 승승장구를 시작할 무렵, 두섭은 전세들어 살고 있던 녹번동의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생겼다며 집주인은 그에게 싼 값에 사라고 꼬드기고, 대출을 부탁하기 위해 종일이 근무한 은행을 찾아갔는데... 


    인간의 물욕은 한이 없고, 선과 악의 뚜렷한 경계 또한 없으니, 


    소설의 후반부는 김영구의 땅을 찾기 위해 종일의 도움을, 대출도 대출이거니와 하다 못해 집까지 날려버리고 은행까지 그만둬야 할 정도였는데, 그는 한가닥 희망의 줄을,,, 이미 썩어빠진 동앗줄이라는 걸 알면서도, 


    서대평은 한국 재벌의 성장기의 한 대목을 연출한 장본인이었다. 시민운동을 하는 변호사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운다는 노동조합 간부도 모두 서대평에게 연줄을 대고, 돈을 받았다고, 백종일의 말년, 그가 지금까지 쫓던 무지개빛 환상, 인생 80을 사는 동안... 그는 소설가 두섭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한다. 소설을 탈고하면서 비평가에게 소설 해석을 부탁했건만 신통치 않은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문학계까지도 검고 더러운 돈의 위력에 할 말 못하고 재갈이 물린 작가들.


    해방 이후, 60년대에서 새천년 24년이 될 때까지 60여 년 세월 동안 왜곡되고 지워져 폐기된 역사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거기에 역사를 담는다. 결국에는 돈을 좇던 김영구도 하숙비를 내지 못해 아침밥도 못 얻어먹고 쓸쓸히 죽어가고, 김영구의 돈을 좇아 가축 사육하듯 김영구를 사육했던 권미순 또한 행려병자로 죽음을 맞이하고, 신군부의 재벌 길들이기 덫에 걸려,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아야 했던 서대펑은, 김영구를 땅을 빼앗기 위해 세웠던 작전과 김영구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반성을 하기보다는 가운데 끼어 그를 도왔던 이들에게 돈 좀 쥐여줄걸... 그리 못했다고 자신을 타박하는 장면, 


    교보의 창업자 신용호를 정면으로 공격한다. 세상은 있는 자에게나 살 맛이 나는 세상이지 없는 자에게는 지옥이라고,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그들 역시 뒤로는 자유스럽지 못하다고, 세상에 주인은 “돈”... 이 시대 작가의 존재론을 묻는다. 이 시대 작가의 사명을 묻는다. 문학의 힘은 물폭탄보다도 바다 해일 이른바 쓰나미보다도 무섭다. 펜과 붓놀림 하나로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니 말이다. 


    꽤 흥미로운 소설이다. 백시종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작품을 쓰는데, 그렇다면 이 소설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재벌, 명실상부한 대기업 교보의 어두운 그림자를 파헤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불행하게도 경제개발로 압축성장을 끌어내고 끌고 가려던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으로, 잠시 반짝, 그리고 또다시 서울의 봄은 서울의 겨울로 가고, 겨우 봄이 왔을까 싶을 때도 여전히 체감온도는 빙점 아래... 여전히 오늘의 서울 또한 봄과 겨울을 오가면서... 정치와 법조와 경제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불패에 삼위일체를 이 소설을 통해 또 본다.


    어느 바람이 그를 흔들랴, 승자의 역사만이 기록된다는 작가의 말은 진실의 흑역사는 공존하지만, 실제 살아남는 것은 승자의 역사일 수밖에 없음을, 이 소설의 메시지는 승리의 역사 속에 담긴 어둠과 패자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바로 작가다, 작가의 사명은 그러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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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정의 (양장본)
    나카무라 히라쿠 지음, 이다인 옮김 / 허밍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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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무한정의, 정의는 무한한가? 유한한가? 


    나카무라 히라쿠의 미스터리 소설, <무한정의>는 언제나 정의는 지켜야 하고, 또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정작 내 문제로 떠안게 되면, 옳고 그름을 가르고, 악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믿음은 흔들린다. 정의가 나를 옥죄는 순간,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는 사형제도 존폐 찬반론과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 공정하다는 착각처럼, 정의 역시 상대적인 게 아닌가, 절대적 정의, 심지어 소크라테스가 법을 지키기 위해 죽는다. 진짜 그랬을까, 왜, 그게 정의를 지키는 길이라서, 


    이 소설이 우리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너도 나처럼 당해보면 평소 정의에 관한 소신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몰라, 정의를 지키려는 순간, 가정은 부서져 산산이 조각나버리고, 모든 가족이 그 고통을 제각각의 고통으로 간직하는 “트라우마”를 겪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일본의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형사물이다. 안방극장을 지켜주는 여전히 인기 있는 드라마 중 하나다. 묘하게 닮은 꼴의 등장인물들, TV 드라마에 나오는 순사부장(일본은 순사와 순사부장체제다, 가운데 끼인 순사장은 짬밥대로, 시험을 봐야 하는 건 순사부장부터다)과 경부보(경위), 경시청 수사1과 완전히 단골 무대다. 큰 사건이 터지면 지역담당 경찰서 형사들은 경시청에서 내려온 수사1과 형사들에게 사건을 넘겨주어야 한다. 이들을 지휘하는 1과장, 관리관, 담당 경찰서 과장, 계장(경감)- 춤추는 대수사선(우리나라 수사반장과는 느낌이 다른 형사물이다-딱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비질란테의 등장, 인간쓰레기를 치우는 ”성스러운 청소부 성소자(聖掃者)“


    45세의 주인공 이케부쿠로 경찰서 형사다. 잘나가는 종합상사 우먼인 세 살 밑의 아내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으로 발레 유학을 준비 중인 딸, 그리고 사춘기 방황증을 심하게 겪고 있는 중학생 아들,


    무한정의는 이렇게 시작된다. 못된 짓 하던 반건달(한구레), 진짜 건달도 아닌 파라미들이 이른바 정통 야쿠자 영역의 외곽에서부터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고리대금, 클럽, 나이트 등지에서 여자를 꼬여 유해업소에 팔아넘기고, 강간 뽕 이른바 물약을 먹여, 약점 잡고...이런 쓰레기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간다. 그들은 순식간에 반항할 틈도 없이 살인자가 쑥 찌르고 지나가면 죽어 나자빠진다. 죽은 이가 악마라는 의미의 X자 흔적을 남긴다. 이른바 범인의 시그니처라고 할까, ”반사회세력을 소리 없이 순식간에 죽인다. “당연히 죽을 짓을 했다. 더 죽어야 하지만, 목숨이 한 개라서일까, 


    최근 OTT에서 방영된 ”비질란테“ 와 이 소설의 ”성소자“ 역시 자경단이란 말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거기에 유전이며 무죄 혹은 솜방망이 처벌이고, 무전이면 무죄가 될 수 없다. 세상의 법칙이 그러하니까,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어떤 기준을 가지고... 바로 ”정의“다. 끝없는 정의 무한정의다.


    모방범의 등장


    연쇄살인 사건 해결의 열쇠는 ”모방범“일 수도, 성소자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또 더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모방범“일까?


    잘나가는 주인공 형사, 료이치는 이번에 진급시험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미 경시청 수사1과 발령 예비명단에 올라있는 성실하고 일 잘하는 경찰이다. 정의의 사나이, 지금껏 어디서 뇌물을 받아먹지 않고 살 수 있는 배경 또한 장인의 경제적 지원과 자신보다 한참 많은 아내의 수입 때문에 아이들을 교육하고 내 집도 마련했다. 이제 출세 가도, 본격적으로 달려볼 요량으로 연쇄살인범 “성소자”를 쫓는다. 


    그날, 딸 아이에게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그가 이제껏 지켜왔던 신념과 정의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건 인간의 본능, 성악설이라고 해야 할까, 문제는 간단치 않다. 료이치는 그의 인생을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진급을 앞두고 딸 아이와 관련된 사건이 알려지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방법 밖에는...우선 그 방법밖에 없다. 나를 지키고 내 딸을 지킬 방법을, 아내가 알면 안 된다. 쓰러질지도 모른다. 누구도 몰라야 한다. 오직 나와 딸 외에는,


    이 소설의 전개, 결말은 반전과 반전이다. 류이치를 향한 눈길, 뭔가 있는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는 듯, 묘한 분위기다. 하지만, 류이치에게는 증거될 만한 그 무엇하나 없는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가 선택한 길의 끝에서 당신은 어떤 답을 내릴 것인가? 


    이 소설은 독자를 향해 묻는다. 당신이라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겠냐고, 우리에게 정의란 다양하게 다가온다. 내 문제가 아닐 때는 아주 근엄하고 원칙적이며 비타협적으로 굳건한 믿음처럼 ”정의”를 생각한다. 그 대척의 부정 자체를 지워버리려 한다. 하지만, 정의 역시 동전의 양면인 것을, 인간의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다. 완벽할 수 없는 원초적인 결여가 인간의 특징이기도... 아버지는 강하다는 메시지도 또한,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 류이치, 인지 기능 저하로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료이치의 아버지도 아들 료이치를 지키려하고, 장인 또한 딸의 남편인 사위와 손녀를 지켜려 하는데, ”가족이란 무엇인가“ 또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진다. 무한한 정의는 존재할 수 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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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을 걷다 - 운명, 그 기상천외한 이야기
    김기승 지음 / 다산글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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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운명을 걷다


    작가 감기승의 장편소설 <운명을 걷다>는 운명론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누군가의 예언대로 살아가는 한 남자, 미래는 정해진 것인가, 아니면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하는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점” “역술” “사주명리학” “철학관”만큼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주팔자는 무슨 점쟁이 제 죽을 날짜도 모른다는데, 혹세무민인 것이지, 아니야. 세상, 천지간의 조화는 이미 정해졌다고, 하늘의 기운을 보고, 사람의 인생을 점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보는 게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치인은 내 운명이 다음 선거에도 당선될 팔자인가라며, 천기누설해 달라고 조른다. 운명이 그게 아니면 이를 피해갈 방도를 찾아달라고 돈을 싸 들고 찾아와 문턱이 닳도록...


    우리가 하늘이 정해준 운명에 따라 삶을 사는 이미 정해진 경로를 저만 모른 채 가고 있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나. 니체의 신은 죽었다가 이 소설의 대척이라면 대척이겠다. 위버멘쉬(초월, 극복), 자신을 믿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 실상 한계라는 것 또한 내가 만들어 놓은 경계선일 뿐이지 않을까?, 아무튼, 내가 처한 현실은 내가 맘먹기에 따라 넘어설 수도, 극복할 수도 있기에, 나 자신과 싸움이 결정적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니...


    망기이타(忘己利他)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지켜줘라. 이야기의 시작은 70년대 말 유신헌법으로 사회를 옭아매고, 긴급조치를 세상을 “입틀막(입을 틀어막고 말을 못 하게)”하던 시절, 주인공 최철호와 백은하의 젊은 날의 만남, 당대의 공기(분위기)와 시대정신은 대학생들에게 입틀막을 했던 더럽고 음습한 악마의 손을 뿌리치고 “자유”를 “민주주의”를 외치라고 한다. 최철호가 어릴 적 만났던 큰스님은 어린 그에게 20대 초반 고초를 겪게 되고 시대가 그를 원하며 유혹을 손길을 뻗칠 것이라고, 그저 학문에만 몰두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그게 네 운명이라고...


    그는 79년 10월 26일 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박정희가 쓰러지고, 유신이 무너지고, 긴급조치는 자동으로 해제되는 봇물이 터졌다.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김재규의 총알은 80년의 서울의 봄을 예고하는 총성이었다. 이 무렵 대학 내 대자보를 써 붙인 사건으로 모처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던 최철호는 그날로 다른 모든 이와 함께 풀려났다. 김재규가 그를 살린 셈이다. 


    12.3. 대통령은 밤 10시를 넘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45년 전의 아픈 기억과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그가 운명을 믿는지 안 믿는지는 별개다. 그가 큰 스님에게 배운 “역술”은 저주받은 재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눈앞 사람의 운명이 보인다. 어떤 팔자인지 모르고 사는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최철호는 남의 인생에 끼어들지 말라는 그렇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큰 스님의 경고에 따라 그만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데, 아니 돕는 게 아니라 남의 인생에 끼어들고싶은 유혹에 따른 건 아닌지, 그 자체 또한 운명이지 않았을까? 주말이면 도인으로 변장하고 굴다리 밑에서 점을 봐주는 “태랑”이란 점술가는 최철호의 또 다른 운명이었을까, 대학을 명예퇴직하고 강화도로, 그의 첫사랑이자 평생을 못 잊었던 여인 백은하와의 만남 또한 운명인가?


    이렇게 운명은 꼬이고 또 꼬인다.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 옭아 맨 틀에 이미 갇힌 최철호는 변장 점술가로 자유를 만끽했을까, 운명과 운은 같은 것인가, 운을 만드는 법칙을 다루는 책에서 나온 것처럼, 

    건진법사도 천공도 명태균도 모두 앞날을 내다보는 운명을 타고난 듯하지만, 최철호의 스승이 그에게 남긴 것처럼 남의 인생에 끼어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경고를 모두 잊고 산 모양이다. 최철호는 자신의 운명을 알았을까? 만나고 헤어짐 역시 운명인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데, 왜 운명에 기대려하는가, 운도 운명도, 최철호의 스승의 말처럼 그저 확률일뿐, 한날 한시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같은 운명이 아닌 것 적어도 수백만의 경우 수가 존재한다는 사실, 이를 믿느냐 마느냐 역시 자신의 결정이라면,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게 아니라 날마다 선택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닐까,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처럼, 그 누군가가 짜놓은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렇게 믿을 뿐이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운명을 사유하는 시간, 모처럼 머리 복잡해지는 소설 또한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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