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걷다 - 운명, 그 기상천외한 이야기
김기승 지음 / 다산글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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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운명을 걷다


작가 감기승의 장편소설 <운명을 걷다>는 운명론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누군가의 예언대로 살아가는 한 남자, 미래는 정해진 것인가, 아니면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하는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점” “역술” “사주명리학” “철학관”만큼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주팔자는 무슨 점쟁이 제 죽을 날짜도 모른다는데, 혹세무민인 것이지, 아니야. 세상, 천지간의 조화는 이미 정해졌다고, 하늘의 기운을 보고, 사람의 인생을 점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보는 게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치인은 내 운명이 다음 선거에도 당선될 팔자인가라며, 천기누설해 달라고 조른다. 운명이 그게 아니면 이를 피해갈 방도를 찾아달라고 돈을 싸 들고 찾아와 문턱이 닳도록...


우리가 하늘이 정해준 운명에 따라 삶을 사는 이미 정해진 경로를 저만 모른 채 가고 있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나. 니체의 신은 죽었다가 이 소설의 대척이라면 대척이겠다. 위버멘쉬(초월, 극복), 자신을 믿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 실상 한계라는 것 또한 내가 만들어 놓은 경계선일 뿐이지 않을까?, 아무튼, 내가 처한 현실은 내가 맘먹기에 따라 넘어설 수도, 극복할 수도 있기에, 나 자신과 싸움이 결정적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니...


망기이타(忘己利他)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지켜줘라. 이야기의 시작은 70년대 말 유신헌법으로 사회를 옭아매고, 긴급조치를 세상을 “입틀막(입을 틀어막고 말을 못 하게)”하던 시절, 주인공 최철호와 백은하의 젊은 날의 만남, 당대의 공기(분위기)와 시대정신은 대학생들에게 입틀막을 했던 더럽고 음습한 악마의 손을 뿌리치고 “자유”를 “민주주의”를 외치라고 한다. 최철호가 어릴 적 만났던 큰스님은 어린 그에게 20대 초반 고초를 겪게 되고 시대가 그를 원하며 유혹을 손길을 뻗칠 것이라고, 그저 학문에만 몰두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그게 네 운명이라고...


그는 79년 10월 26일 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박정희가 쓰러지고, 유신이 무너지고, 긴급조치는 자동으로 해제되는 봇물이 터졌다.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김재규의 총알은 80년의 서울의 봄을 예고하는 총성이었다. 이 무렵 대학 내 대자보를 써 붙인 사건으로 모처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던 최철호는 그날로 다른 모든 이와 함께 풀려났다. 김재규가 그를 살린 셈이다. 


12.3. 대통령은 밤 10시를 넘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45년 전의 아픈 기억과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그가 운명을 믿는지 안 믿는지는 별개다. 그가 큰 스님에게 배운 “역술”은 저주받은 재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눈앞 사람의 운명이 보인다. 어떤 팔자인지 모르고 사는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최철호는 남의 인생에 끼어들지 말라는 그렇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큰 스님의 경고에 따라 그만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데, 아니 돕는 게 아니라 남의 인생에 끼어들고싶은 유혹에 따른 건 아닌지, 그 자체 또한 운명이지 않았을까? 주말이면 도인으로 변장하고 굴다리 밑에서 점을 봐주는 “태랑”이란 점술가는 최철호의 또 다른 운명이었을까, 대학을 명예퇴직하고 강화도로, 그의 첫사랑이자 평생을 못 잊었던 여인 백은하와의 만남 또한 운명인가?


이렇게 운명은 꼬이고 또 꼬인다.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 옭아 맨 틀에 이미 갇힌 최철호는 변장 점술가로 자유를 만끽했을까, 운명과 운은 같은 것인가, 운을 만드는 법칙을 다루는 책에서 나온 것처럼, 

건진법사도 천공도 명태균도 모두 앞날을 내다보는 운명을 타고난 듯하지만, 최철호의 스승이 그에게 남긴 것처럼 남의 인생에 끼어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경고를 모두 잊고 산 모양이다. 최철호는 자신의 운명을 알았을까? 만나고 헤어짐 역시 운명인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데, 왜 운명에 기대려하는가, 운도 운명도, 최철호의 스승의 말처럼 그저 확률일뿐, 한날 한시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같은 운명이 아닌 것 적어도 수백만의 경우 수가 존재한다는 사실, 이를 믿느냐 마느냐 역시 자신의 결정이라면,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게 아니라 날마다 선택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닐까,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처럼, 그 누군가가 짜놓은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렇게 믿을 뿐이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운명을 사유하는 시간, 모처럼 머리 복잡해지는 소설 또한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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