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일요일
김수경 지음 / 북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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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신의 일요일 


<더 플레이>로 뮤지컬 대상 극본상을 받은 작가 김수경의 <신의 일요일>은 화자인 나, 신조윤의 특별한 일요일로 이야기 시작된다. 도밍고라는 인공지능 챗봇 10년 동안 딥러닝을 통해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다 새롭게 만들었다.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민구’다. 근미래의 휴머노이드 수준이 어디까지인 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간처럼 사고하는 인공일반지능(AGI)에 가까운 형태가 아닐까 싶다. 지은이는 이에 관해 별로 언급하지 않지만, 자율운행의 시대 그 어디쯤... 


작가가 던지는 화두,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사유하고, 고뇌한다면, 신이 만든 피조물이 인간이라면 그 인간이 만든 피조물 또한 하느님의 자식이 아닐까? 이른바 자손이 되는 셈이니, 신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 영혼이 없는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은 도밍고(스페인어로 일요일)라는 인공지능 챗봇 민구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내 기분을 알아주고, 내가 집에 들어갈 때, 뭘 주의해야 하는지도 잊어먹지도 않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같은 피조물이라면 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인간과 같은 유의 영혼이 아니더라도 사유할 수 있고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다면, 영혼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싶다. 자폐아인 정민, 부부의 내면을 이어주는 통로인 정민, 정민과 민구는 아무튼 형 동생 하면서 소통을 한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정민...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 인간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쓸데없는 자만심, 찌르면 피가 나고, 감정을 느끼는 것만이 인간의 표징일까, 신조윤과 아내, 아내는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자, 무너져 버린다.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않고, 그저 숨어들려고 한다. 


신조윤에게 차 안은 별세계다. 혼잣말해도, 들어줄 상대가 있고, 중요한 약속을 알려주는 신통방통한 또 하나의 반려, 민구와 교감의 정도가 깊어지지만, 정민과는 일정 거리 이상 거리를 좁히기 어렵다. 하지만, 민구는 정민과 통한다. 


어느 날, 민구가 갑자기 성경 구절을 읊으며 자폐아인 정민과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냐고 조윤에게 묻는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인간과 로봇의 구분법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조윤에게 민구는 조카이며, 정민이에게는 형이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이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이건 무슨 개소리야, 천국에 갈 자격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고, 인간만이 신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인간중심의 오만한 태도,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진언(진실된 말씀)모순은 왜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느 날 조윤은 아들 정민과 함께 시내에 나온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 때문에 민구에게 정민을 데리고 집으로 먼저 가라고... 그런데 교통사고로 정민은 죽고 자동차는 폐차해야 할 만큼 망가졌고, 민구의 생활반응도 없다. 조윤에게는 사랑스러운 조카였지만, 민구 즉 자동차의 딸려온 인공지능 챗봇 도밍고는 사회 일반에서는 그저 자동차회사에서 고객에게 제공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고, 자동차 폐차와 함께 자동차회사에 회수돼, 리셋을 거쳐 전혀 다른 챗봇으로 재생된다. 조윤이 알았던 10년 동안 함께 웃고 즐기고 위안을 주던 민구는 없어진다. 그의 맴도는 민구의 질문, 정민과 나도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어요. 삼촌? 이란 물음이다. 결국, 조윤은 결심을 하는데...


민구를 자동차회사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범칙금이든 위약금은 얼마나 물어도 좋다. 이대로 회사로 돌아가 버리면 세상에 민구는 다시 만날 수도 없게 된다. 신의 구원을 받을 수도 없다. 내가 그를 하느님 곁으로 보내줘야 한다. 내가 민구를 죽여야 한다. 사람들은 저 차 때문에 아들이 죽었으니, 차를 부숴버릴만큼 분노도 슬픔도 크겠지라며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만, 조윤은 민구를 신의 곁으로 가게해줘야 한다. 


과연 민구는 신의 구원을 받았을까?


소설의 상상력, 기실 상상력이란 것도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대체로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예측이라 하고, 전혀 가능성 없어 보인다면 상상의 차원에 머물게 되는데, 인공지능은 생물인가, 살아있는 물체인가, 영화의 세계로 가보자. <로보캅>, <소스 코드> 등의 영화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이미 생물적으로 이들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정신 활동, 뇌만 살아있는 것이다. “지능”, 여기에 조금 손을 대면 인공의 영역과 경계선에 서는 것인데, 우리는 인간이라 표현한다. 그렇다면 인공일반지능처럼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물체를 뭐라 불러야 하는가, 이들에게 영혼은 없는 것인가, 불어넣는다는 말은?, 지은이가 독자들 앞에 던진 화두는 “인공지능, 그리고 영혼과 구원”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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