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관우에게 말하다 1 - 의리를 무기로 천하를 제압하다 현대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 열전
천위안 지음, 유연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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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읽는 관우

 

지은이 천 위안은 심리학자, 작가로서 활동하는데, 현대 심리학 이론을 매개로 역사 속 인물, 사건을 분석하는 심리설사의 길을 열었다.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 열전 시리즈의 인물로 조조, 제갈량, 관우, 유비, 손권, 사마의를 선택했다. 


충의를 무기로 천하를 제압하다.

 

그런데, 왜 인물 열전 중 이 여섯 명으로 선택했을까, 그리고 맨 먼저 관우 편을 쓴 이유는?, 아마도 무신(武神)이라는 중국 국내의 상징 때문일까? 아니면 의리라는 덕목 때문이었을까, 중국 국내 정치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엉뚱한 상상이 꼬꼬무처럼, 지은이는 삼국 역사에 대해 민간에서의 영향력은 관우, 제갈량, 조조 순이라고, 관우가 죽자 역대 제왕들로부터 여러 차례 봉작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건륭제 때는 “관성대제”라는 칭호까지, 왜일까?, 이유는 왕조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충의다. 즉, 주군에 대한 충성과 의리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관우의 탄생설화,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관우를 발탁한 이유

 

나관중이 소설<삼국지연의>을 완성하기 전, 작품인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에서 관우는 장비에 못 미치는 조연에 불과했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좌충우돌하는 장비의 앞에 춘추좌씨전을 읽는 과묵한 관우를 배치함으로써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독서층을 겨냥, 관우를 주연으로 발탁했다는 뒷이야기까지. 꽤 흥미롭다.

 

염라대왕의 분노를 산 용이 죽자 관우가 태어났다고. 관우는 용의 환생인가, 대춧빛과 2자가 넘는 긴 수염, 관우는 한족의 우월주의를 상징하는가, 이런저런 내용을 고려해볼 때, 관우는 단지 점집의 모셔진 신, 서울 시내에 있는 동묘, 단순히 신인가, 아니면 중국 한족의 바람의 응집체인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아무튼, 충의의 표상 관우를 현대 심리학으로 들여다본다면, 어떤 인간형이었을까,

 

1권에서는 4부로, 1부에서 관우, 한나라에 투항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잘못된 신념도 신념이다. 2부 관우,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다. 3부 홀로 말을 타고 천 리를 달리다. 4부. 다섯 관문에서 여섯 장수를 베다까지를 본다.

 

천 위안은 관우를 천하의 불의 불충스러움을 충의로 바꿔버린 사람이라고, 나관중은 장비보다 앞에 관우를 두고 그를 <춘추>를 읽는 문무를 겸비한 데다 당대의 가치체계의 정점이었던 '충의'까지 갖춘 관우, 조조에게 의탁했던 동안에 그에게는 알게 모르게 그의 운명을 결정지을 못된 버릇이 생기는데, 이게 바로 "오만"이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이제 조조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관우를 파격적으로 대우하면서, 지금까지 충성을 다해 그를 섬겼던 부하들이 관우를 시기하고 질투할 것을 알면서, 짐짓 모른 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후일, 관우를 대하는 조조의 태도는 영웅에게는 깍듯이 대접한다는, 크게 중용한다는 이미지로 남게 된다. 물론 이 당시에 조조가 거기까지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오, 촉의 장수들이 조조 진영을 찾아갔던 것은 그만큼 기대가 컸지 않았을까, 관우 또한 이때 조조로부터 배운 게 있다. 위에서 말한 '오만'이다. 결국, 병 주고 약 주고 한 셈이니. 물론 나관중이 그것까지 계산에 넣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현대 심리학이 관우에게 말한다. 관우 장군은 참, 복잡한 사람이구려라고, 자기합리화와 설득의 기술, 이목 집중의 효과 등을 적절하게 쓰지만, 충직한 관우의 내면 갈등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심리학이란 돋보기로 관우를 톺아보면, 적절한 심리이론을 지은이는 설명한다. 과연 관우는 이 시대에 멘토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이 시대를 살기에 부적합한 것일까?

 

여기서 유비는 설득의 고수로, 원소를 가지고 노는 폼이, 전쟁에서는 매번 패하지만, 언변술은 만만치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전의 고수처럼, 불리한 처지를 자신의 판으로 뒤바꾸는 재주, 누구에게나 한 가지 뛰어난 점은 있기 마련이란 점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압권은 "도원결의"의 의미가 내집단의 끈끈한 연대를 흔드는 그 무엇에 어떤 식으로 관우가 대응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결정했는지, 조조는 그를 진심으로 곁에 두려 하는데, 이를 애써 외면하는 관우, 그러면서도 조조의 베풂을 감사히 여긴다. 훗날, 조조를 놓아주는 관우. 이 순간 하늘은 촉을 외면한다. 아니, 그렇게 정해진 것인가, 바로 이런 의리 때문에 관우는 역사에 길이 남는다. 듬직하고 믿음직한 장수로 충의의 화신으로 무신으로. 중국인들에게 관우는 그런 존재다. 행동이 신념을 바꾼 것인가, 신념이 행동을 바꾼 것인가, 참으로 복잡하다. 관우가 조조를 놓아준 행위는 의리인가 충의인가, 자기만족을 위함인가….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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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화, 붉은 치마폭에 붉은 매화 향을 담다 (표지 2종 중 ‘빨강’ 버전)
서은경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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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명화 감상법?

 

작가 서은경이 2011년에 출간했던 이 책으로 2012년에 콘텐츠대상 문체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새롭게 다듬어 내놓은 <조선의 명화, 붉은 치마폭에 짙은 매화 향을 담다>, 부제 붉은 치마폭에 짙은 매화향을 담다, 제목은 읽기에 따라서는 다소 오해도. 오독의 가능성도 있을 듯하다. 제목은 여성과 관련 있는 그림인가, 왜 붉은 치마폭이지, 또 짙은 매화향을 무슨 의미인가를 한 참 생각했는데. 책이 오고 나서 거기에 씐 지은이의 이야기, “만화가 가진 서정성과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과 교감하며 옛 그림의 향기 속에 붉게 물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였다는 걸 알게 됐다. 아무튼, 흥미를 유발하는 제목이다.

 

이 책 속에 담긴 조선 시대의 걸작들의 배경과 인물과 관련된 내용을 만화로. 12개의 작품이 실려있다. 유명한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청풍계도, 영화<인사동 스캔들>에서 나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정약용, 김홍도, 김정희의 세한도 등, 문인화, 화조도에서 진경산수까지 그림에 담긴 사연을 만화 등장인물 차주봉과 묘묘, 오사장과 꼬경, 미양이 함께 풀어낸다. 지은이는 그가 감동을 받았던 옛 그림의 회화적 요소를 넣어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붉은 치마폭에 깃든 짙은 매화 향기

 

정약용의 <매화병제도>는 정약용의 아내가 보내준 새색시 시절에 입던 다홍치마, 남편을 바라보듯 아내가 아끼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색이 바랄 대로 바란 치마, 정약용은 추억이라도 함께하자 치마를 보내준 아내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강진에 유배 중이던 정약용은 하나뿐인 딸의 혼사를 보지 못한 미안함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그를 찾아온 신혼의 딸 부부에게 아내의 치마를 잘라 작은 그림을 그려 주었다.

 

“저 새들은 우리 집 뜰에 날아와, 매화나무 가지에서 쉬고 있네, 매화향 짙게 풍기니 그 향기 사랑스러워 여기 날아왔구나, 이제 여기 머물며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아라.”

 

딸에게 못내 미안한 마음을 서화로 남겼다. 이런 의미를 누가 알랴…. 이렇게 만화로 알려주지 않았다면.

정약용, 실학자로 서학 때문에 정조 사후, 18년에 걸친 귀향을 살면서, 이런 사연이 있었음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꿈꾸듯 날아가듯, 오색나비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남계우의 <화접도>

 

남계우의 화접도, 병약한 어린 여동생의 눈에 들어온 나비, 동생은 한겨울에 죽었다. 동생은 죽으면 나비가 되겠노라고, 그러니까 봄이 되면 나를 꼭 찾아줘요.라는 남긴다.

 

 

그림 속 나비의 다양한 뜻,

 

봄을 알리는 나비, 삼국시대에는 나비 장식품을 무덤에 넣기도 했는데, 이는 나비가 죽은 사람이 가는 길을 편하게 도와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고려시대 불교가 성했을 때, 나비는 부처의 말씀 향기를 맡고 불법을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징했다. 조선 전기와 중기에 나비는 독립된 주체라기 보다는 초충도의 일부로. 민화에서는 나비와 꽃이 행복과 부귀 등 좋은 것을 의미하는 현세적 욕구를 표현하기도.

 

김홍도의 <좌수도해도>

 

갈댓잎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꼬마 달마, 군대가 쫓아오는 위급한 상황인데도 그림 속 달마가 주는 법력의 평온함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마음속에 한 길을 정하고 그 길에서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간다면 인생에 즐거운 미소가 떠나지 않을 터인데. 이런 그림을 단원이 그렸다, 역시 단원에 대한 고정관념이 보고 싶은 것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차디찬 세월 속에서도 스승을 향한 마음 변치 않네. 김정희의 <세한도>

 

제주도 유배 5년째 되던 해인 1844년 김정희는 늘 한결같은 제자 이상적에게 그의 지조와 고마움을 전하고자 세한도를 전했다. 공자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한결같음을….

이상적은 스승 김정희에게 <만학집>과 <대운산방문고> , <황조경세문편>120권을... 보내주었는데, 이는 천만리 밖 북경에서 산 것이고, 여러 해를 걸쳐 얻은 것이니 한 번에 이룬 일도 아님을 그의 스승 또한 알았다. 세한도를 꼭 봐야하는 이들이 요즘은 길거리에 넘쳐난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한 입에 두말하는 이들, 의리와 약속은 늘 단순하다. 지키라고 있는 것이기에... 세한도의 사연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잔상들,

 

곧은 절개와 꿋꿋한 생명력, 이정의 <묵적도>

 

눈과 서리에도 마디를 굽히지 않고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의연함을 지닌 대나무는 곧고 빼어난 모습 때문에 운치를 아는 이와 절개를 지키고자 하는 선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선비"들이 그립다. 지성인이 그럽다.

 

 

 

자, 조선의 명화에는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철학과 감사, 세상을 보는 눈과 지키고자 하는 다짐이, 담겨있음을. 그저, 옛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누군가에게 그려 주는 그림이 아니라, 마음을 담고, 그곳에 사연을 담고, 자신의 의지와 결심,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다짐을, 그림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한 장으로 전하는 심오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저, 잘 그렸노라. 당대의 위대한 사람이나, 재주가 출중하여 이름을 날린 사람이 그린 것이기에,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연과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림을 이해하면 그림은, 그 안에 것들이 살아서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말을 건넬 것이다. 보는 사람 또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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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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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작가의 사고, 공상과학소설, 투명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보이지 않는데서 오는 고립, 단절, 소외, 이는 19세기나 현대나 인간에 관한 주제다. 영국 오지니널판에 새로운 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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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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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7년에 발표한 이 책 <투명인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투명인간,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과학소설이다. 꽤 오래전에 영화나 미국 TV 드라마로 나오기도 했다. 130년 전에 그의 작품은 당대와 그리고 당시의 미래였을 현재까지도 사회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사고와 작품들이 시대를 초월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1984, 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은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세계와 사상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의 중요성이랄까, 핵심은 투명인간이라는 존재를 통해 웰스가 그려낸 ‘보이지 않는 존재’에 사람들의 막연한 공포감과 두려움, 그리고 혐오, 우리와 같은 않은 그 무엇에 대한 경계와 혐오를 그리고 투명인간 그리핀의 ‘보이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한 미묘한 적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아주 탁월하게. 당대의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특히, 국내에 소개됐던 <투명인간>은 미국판이다. 같은 영어를 쓴다지만, 지역과 문화의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미묘한 뉘앙스는 번역과정에서, 미국적 사고로 윤색된다. 이 소설은 영국 오리지널 판의 번역본이다.

 

이 소설은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오를 만큼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지만, 놀랍게도 투명인간이란 작품에 대한 이해는 부족, 아니 왜곡된 듯하다. 번역자 이정서는 번역이란 무엇인가라고 할 정도로 철학적이다. 마치, 영남대에서 노동법을 가르치는 한편으로는 수많은 좋은 책을 끊임없이 우리말로 번역해서 알렸던 박홍규 선생처럼, 선생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번역본 서두에 80쪽가량을 할애해,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은이의 생각과 표현의 의도에 이르기까지, 숙고하라고, 이 책의 번역자 이정서 역시,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이 책 끝에 쓴 글은 꼭 보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단어 하나를 빼고, 넣고 하는 데서 생기는 느낌의 차이는 꽤 크고, 아예 책의 내용을 뒤바꿔놓을 수도 있기에.

 

아무튼, 투명인간 그리핀 시대에도 과학의 세계에서 횡행하는 것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황우석의 실험이 그러했듯이, 과학과 사기는 종이 한 장의 두께만큼 얇다. 통제되지 않은 과학적 진보의 위험성과 그에 따르는 윤리적 책임에 관한 경고라 할까,

 

 

 

 

그리핀은 그가 왜 투명인간이 됐는지를 이 책의 또 다른 등장인물 캠벨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내 지도교수는 천박한 과학자로, 본능적인 저널리스트에, 아이디어 도둑놈이었소. 그자를 항상 나를 염탐했소. 또 당신도 과학 세계의 그 악랄한 시스템을 잘 알지 않소. 나는 정말이지. 발표하지 않으려 했소. 내 공적을 그가 나눠 갖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오.” 그러다 갑자기 의도치 않게 우연히 생물학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거요. 불가시성의 원리를…. 그는 결국 투명인간이 됐지만, 되돌릴 방안을 찾지 못했고, 끝내는 광기에,

 

소설의 시작은 긴 코트와 선글라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붕대를 감은 수수께끼의 사나이가 웨스트서식스의 아이핑이라는 영국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면서부터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데. 이야기의 전개는 그리핀이 의대생 시절부터 투명인간이 되는 방법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과 자신을 대상으로 한 실험, 그리고 비참한 결과,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그리핀은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 그 비밀을 알고 있고, 그가 죽기 전까지는 그 비밀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무한을 향한 욕망, 투명인간, 주변 사람들을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고 말한다. 불가시성. 사람들은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그 존재 자체를 존재로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핀은 투명인간이 자유와 힘을 줄 것으로 여겼지만, 투명인간은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미치광이로 몰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소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말이다.

우리 사회에 투명인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주민 노동자, 미등록노동자는 유령이다. 우리 사회에 아무런 흔적이 없으니, 살아있다는 그것마저도 증명할 그 무엇이 없으니, 살아도 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고, 없어져도 없어진 게 아니니, 고립, 권력, 도덕성, 인간 조건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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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했던 동맹 성공한 동행 - 한미동맹 70년을 돌아보다
최형두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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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의 궁금증과 현주소

 

지은이 최형두는 정치입문 전 한미수교 60년인 2011년에 쓴 <아메리카 트라우마>(위즈덤하우스)에 실린 글을 손질하고 새로운 내용을 더해, 한미수교 70주년에 펴냈다. 문화일보 기자로 워싱턴 특파원과 학업 등으로 4년간 미국에서 지내면서 한미관계 연구자들을 인터뷰했다. 그의 결론은 뜻밖에 싱겁다. 대(對)한국 관계는 미국의 치밀한 사전 계획과 의도적인 대응이라기보다는 임기응변적, 우연이었다고, 그마저도 일본과 중국의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한다. 한마디로 한국 따위는 미국의 안중에 없었다는 말인 셈이다. 진짜 그랬을까?, 여전히 의문이다.

 

아무튼, 그가 학창 시절부터 의문을 가졌던 한미관계, 20년간의 그의 취재와 연구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물론 담을 수 없는 내용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우려도 있지만(신문활자화하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없지 않았을수도), 이 책은 4장 체재다. 1장, 준비 안 된 만남, 뜻밖의 동맹에서는 6·25전쟁의 진실, 누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미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맥아더는 영웅이었나, 한국은 미국 계획 속에 없었다. 2장, 한국은 버림받을 것을 걱정했고, 미국은 잘못 엮일 것을 염려했다. 완전히 동상이몽이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원하지 않았다, 5.16쿠데타에 미국은 당황했고, 북한은 착각했다. 전두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 3장 민족인가 동맹인가, 미 국무부에서 가장 큰 과는 한국과, 제네바협상, 북미 중 누가 배신했나, 4장 숙명적 선린과 전략적 동맹, 글로벌 코리아와 한미관계의 미래

 

반쪽짜리 역사, 우리 현대사에서 미국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나

 

진보진영은 대한민국사를 식민지 잔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반쪽짜리 역사로 파악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사시로 보는 자학 사관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진짜로 그러한가?, 지은이는 세계질서를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는 스스로 386세대라 칭한다. 586세대, 87이라고도... 국민의 힘이건 더불어민주당이건 이미 기득권세력이 된 이들의 눈에 역사란 어떻게 보일까?, 미래의 공기를 마시며,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젊은날의 그들은 아닌 듯하다.

 

6·25 이전에 미군의 한국에 대한 평가는 ‘가치 없음’이었다. 1950년 6월 23일 미군 합참은 한국이 미국에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점을 확인, 이런 나라에 추가 상호군사지원계획 자금을 배정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힘들 것(116쪽)이라고.

 

지은이는 스칼라피노 교수와의 인터뷰를 문화일보 2006.8.16.일자에 실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관점에서 한 갈래는 해방 전후사 인식으로 진보진영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쳤고, 다른 갈래는 한국 정통성 토대를 부인한다고 우려, 해방전후사를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의 쟁점은 김일성은 항일운동의 전설을 바탕으로 북한 정권의 자주적 기초를, 한국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은 이승만, 일본 육사 출신의 박정희가 친미정권을 이어 왔다는 것이다. 스칼라피노는 이에 관해 "매우 낭만적이지만 유효하지 않은 인식이라고", 북한 정권도 미국과 소련 간 대립의 산물로 봤고, 박정희는 정치적으로 권위적이고 민주주의적이지도 않았지만, 경제정책 면에서는 옳았다고, 김일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민족주의자이고 독립적이고 통일된 한국을 건설하려 했지만, 그의 정책은 훌륭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뭔 말인고...

 

전두환의 쿠데타, 5.18, 미국은 몰랐을까?, 엄청난 의혹, 보잘것없는 영향력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고 숱한 음모론이 나왔지만, 79년과 12월과 80년 5월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다고?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2007년 2월 22일 자 문화일보에 실린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과 지은이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미국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전두환 노태우 세력이 한국군을 동원하면서 생긴 안보 공백으로 인해 북한의 도발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일이었다고,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북한의 오판을 막는 일이었다고. 당시 주한 미국대사 글라이스턴은 당시 전두환이 언론을 조작하며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선전했다고, 대사는 신문사 고위 간부들과 직접 만나고 친서도 보내면서 전두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대목은 전혀 수긍이 되지 않는 대목인데, 주한 미국대사가 왜 한국 언론에 해명을 해야 하는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뒤집어 버릴 때 쓰던 작전은 한국에서는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것인데, 차라리,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가 더 근심스러웠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한국은 미국의 관심이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북한과 중국의 태도가 더 중요했으니.

 

민족인가 동맹인가: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실

 

북한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컸던 한국과 미국, 한국은 통일을 전제로 평화적 대화, 핵 문제건 뭐던, 미국은 경제적 제재를 당한 북한이 다른 테러단체에 핵무기를 팔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이었다는 말이다. 결국에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모두, 미국과의 틈을 넓히고 말았다. 인식의 차이가 컸다는 말이다.

대북정책의 간극, 남북 상호불가침 조약, 6.15선언도 미국은 검증 가능한 핵 포기 이후에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이라는 논리도 이제는 소용없는 듯하다. 국제질서와 관계가 우리 맘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다.

이승만은 불가능했던 한미동맹을 현실로 만들었고, 박정희는 그 한미동맹을 발판으로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은 우리는 한미동맹 뒤에 웅크리고 있는가, 아니면 한미동맹을 혁신하고 있는가,

 

지은이가 말미에 소개한 버지니아 대학 문리학부 우정은 학장의 말이 걸린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 많은 시민적 자유를 누리고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강력히 융합시키고 생기 넘치는 대중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이런 인식이 가능한가?

 

이 책은 미국의 대(對)한반도 전략, 남북문제를 살피고 있는데, 일부분은 수긍할 수 있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삐딱하게 보지 않으려 하지만, 삐딱하게 보이는 건 왜일까?.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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