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했던 동맹 성공한 동행 - 한미동맹 70년을 돌아보다
최형두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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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의 궁금증과 현주소

 

지은이 최형두는 정치입문 전 한미수교 60년인 2011년에 쓴 <아메리카 트라우마>(위즈덤하우스)에 실린 글을 손질하고 새로운 내용을 더해, 한미수교 70주년에 펴냈다. 문화일보 기자로 워싱턴 특파원과 학업 등으로 4년간 미국에서 지내면서 한미관계 연구자들을 인터뷰했다. 그의 결론은 뜻밖에 싱겁다. 대(對)한국 관계는 미국의 치밀한 사전 계획과 의도적인 대응이라기보다는 임기응변적, 우연이었다고, 그마저도 일본과 중국의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한다. 한마디로 한국 따위는 미국의 안중에 없었다는 말인 셈이다. 진짜 그랬을까?, 여전히 의문이다.

 

아무튼, 그가 학창 시절부터 의문을 가졌던 한미관계, 20년간의 그의 취재와 연구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물론 담을 수 없는 내용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우려도 있지만(신문활자화하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없지 않았을수도), 이 책은 4장 체재다. 1장, 준비 안 된 만남, 뜻밖의 동맹에서는 6·25전쟁의 진실, 누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미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맥아더는 영웅이었나, 한국은 미국 계획 속에 없었다. 2장, 한국은 버림받을 것을 걱정했고, 미국은 잘못 엮일 것을 염려했다. 완전히 동상이몽이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원하지 않았다, 5.16쿠데타에 미국은 당황했고, 북한은 착각했다. 전두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 3장 민족인가 동맹인가, 미 국무부에서 가장 큰 과는 한국과, 제네바협상, 북미 중 누가 배신했나, 4장 숙명적 선린과 전략적 동맹, 글로벌 코리아와 한미관계의 미래

 

반쪽짜리 역사, 우리 현대사에서 미국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나

 

진보진영은 대한민국사를 식민지 잔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반쪽짜리 역사로 파악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사시로 보는 자학 사관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진짜로 그러한가?, 지은이는 세계질서를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는 스스로 386세대라 칭한다. 586세대, 87이라고도... 국민의 힘이건 더불어민주당이건 이미 기득권세력이 된 이들의 눈에 역사란 어떻게 보일까?, 미래의 공기를 마시며,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젊은날의 그들은 아닌 듯하다.

 

6·25 이전에 미군의 한국에 대한 평가는 ‘가치 없음’이었다. 1950년 6월 23일 미군 합참은 한국이 미국에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점을 확인, 이런 나라에 추가 상호군사지원계획 자금을 배정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힘들 것(116쪽)이라고.

 

지은이는 스칼라피노 교수와의 인터뷰를 문화일보 2006.8.16.일자에 실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관점에서 한 갈래는 해방 전후사 인식으로 진보진영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쳤고, 다른 갈래는 한국 정통성 토대를 부인한다고 우려, 해방전후사를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의 쟁점은 김일성은 항일운동의 전설을 바탕으로 북한 정권의 자주적 기초를, 한국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은 이승만, 일본 육사 출신의 박정희가 친미정권을 이어 왔다는 것이다. 스칼라피노는 이에 관해 "매우 낭만적이지만 유효하지 않은 인식이라고", 북한 정권도 미국과 소련 간 대립의 산물로 봤고, 박정희는 정치적으로 권위적이고 민주주의적이지도 않았지만, 경제정책 면에서는 옳았다고, 김일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민족주의자이고 독립적이고 통일된 한국을 건설하려 했지만, 그의 정책은 훌륭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뭔 말인고...

 

전두환의 쿠데타, 5.18, 미국은 몰랐을까?, 엄청난 의혹, 보잘것없는 영향력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고 숱한 음모론이 나왔지만, 79년과 12월과 80년 5월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다고?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2007년 2월 22일 자 문화일보에 실린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과 지은이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미국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전두환 노태우 세력이 한국군을 동원하면서 생긴 안보 공백으로 인해 북한의 도발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일이었다고,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북한의 오판을 막는 일이었다고. 당시 주한 미국대사 글라이스턴은 당시 전두환이 언론을 조작하며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선전했다고, 대사는 신문사 고위 간부들과 직접 만나고 친서도 보내면서 전두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대목은 전혀 수긍이 되지 않는 대목인데, 주한 미국대사가 왜 한국 언론에 해명을 해야 하는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뒤집어 버릴 때 쓰던 작전은 한국에서는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것인데, 차라리,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가 더 근심스러웠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한국은 미국의 관심이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북한과 중국의 태도가 더 중요했으니.

 

민족인가 동맹인가: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실

 

북한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컸던 한국과 미국, 한국은 통일을 전제로 평화적 대화, 핵 문제건 뭐던, 미국은 경제적 제재를 당한 북한이 다른 테러단체에 핵무기를 팔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이었다는 말이다. 결국에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모두, 미국과의 틈을 넓히고 말았다. 인식의 차이가 컸다는 말이다.

대북정책의 간극, 남북 상호불가침 조약, 6.15선언도 미국은 검증 가능한 핵 포기 이후에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이라는 논리도 이제는 소용없는 듯하다. 국제질서와 관계가 우리 맘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다.

이승만은 불가능했던 한미동맹을 현실로 만들었고, 박정희는 그 한미동맹을 발판으로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은 우리는 한미동맹 뒤에 웅크리고 있는가, 아니면 한미동맹을 혁신하고 있는가,

 

지은이가 말미에 소개한 버지니아 대학 문리학부 우정은 학장의 말이 걸린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 많은 시민적 자유를 누리고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강력히 융합시키고 생기 넘치는 대중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이런 인식이 가능한가?

 

이 책은 미국의 대(對)한반도 전략, 남북문제를 살피고 있는데, 일부분은 수긍할 수 있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삐딱하게 보지 않으려 하지만, 삐딱하게 보이는 건 왜일까?.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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