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마르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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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과 장례식이 한날한시에

 

“이게 하느님 때문에 생긴 일이니? 날을 이렇게 고른 건 우리 아빠야. 그 누구도 아니고 아빠 자신이 이날을 골랐어”

“설마 너희 아빠가 네 결혼식을 망치려는 목적 하나 때문에 어제저녁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겠다고 결심을 했을까?”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린데, 날 짜증나게 하는 일이면 뭐든지 할 사람이 우리 아빠야!" 줄리아, 친구 스탠리와의 대화

 

약혼자 아담과 결혼식을 며칠 앞둔 줄리아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그녀의 아버지 안토니 왈슈의 비서로부터였다. 일이 바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전화이겠거니라고 지레짐작하는 줄리아에게 비서는 아버지가 죽었다고. 아버지를 탓하는 줄리아에게 이미 부녀관계를 암시하면서, 한편의 영화처럼 기막히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쩌겠나, 아무리 제멋대로인 아버지이지만 그가 죽었다는데, 장례를 치러야지, 뒤로 밀쳐진 결혼식, 아버지 시신은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오고, 세관 공무원이 줄리아에게 넘겨준 봉투 속에는 공문서 몇 장과 손목시계, 여권, 여권 안에는 아버지 안토니의 마지막 몇 달을 기억하는 비자가 붙어있다. 홍콩, 봄베이, 사이공, 시드니,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고 싶었던 수많은 나라들...

 

장례식 뒷날 줄리아 앞으로 배달된 특대형 소포, 아버지를 닮은 밀랍인형이다. 상자에 들어있는 리모컨을 켜라는 메모, 줄리아가 리모컨을 켜자 아버지처럼 말하는 인형, 줄리아는 인형에게 묻는다. 왜 이런 거 만들었냐고, 아버지를 쏙 빼닮은 인형은 아버지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운 사람과 며칠을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 영원으로부터 잠깐 시간을 빌려와서 말이야. 너와 내가 차마 나누지 못한 말들을 함께 얘기하고 들어보기 위하여. 죽음을 예견한 것인지, 죽기 전에 미리 준비한 것인가,

 

밀랍인형에 자신의 기억하는 모든 것을 담아, 사후에 그의 딸 줄리아에게 보낸 안토니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딸에게 차마 못 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을까, 엿새 후면 안드로이드 배터리가 다 되어, 기억이 지워진다. 그리고 영원히 죽음으로. 이 기발한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엿새 동안의 여행?, 뉴욕에서 몬트리올로 줄리아가 영세를 받았던 성당을 찾고, 그녀가 여덟 살 때 일, 토마스가 등장하고. 한때 잊혔던 모든 기억을 하나하나씩, 여행은 베를린으로 계속되는데,

 

줄리아는 꿈처럼, 이곳저곳으로 아버지와 함께한 여행,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다가와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안토니는 딸 에게 편지를 남겼다. 난 최선을 다했단다. 네가 원하는 만큼 너와 함께 있어 주질 못했지. 너와 비밀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난 네 아버지일 뿐이야,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야. 딱 한 가지만 부탁할 께 “제발 행복하겠다고 약속해 주렴”이라고 적혀있었다.

 

인형으로 나타난 아버지, 마치, 1990년 영화 데미 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의 <사랑과 영혼>'과 겹쳐지는 이 소설, 줄리아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약혼자 아담에게 그녀가 진실을 말하도록 도왔다는 안토니,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가는 이 소설, 누군가를 잃고 그제야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너무 늦기 전에 일깨워주는 따뜻한 손길….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음을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겠지 하면서 흘려보낸 시간, 그때 이야기했더라면, 그렇게 아쉽지도 후회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들을 지금 바로 여기서 해보면 어떨까, 마지막까지 남는 여운...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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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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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지은이 김현아는 내과의사다. 남편은 신경외과 의사로 모두 교수로 병원에서 일한다. 부모가 여느 사람들보다 뇌와 신체 구조와 약리작용 등에 관해서 더 잘 알기에 자기 자식들(큰딸과 둘째 딸) 치료가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이들 가족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현재진행형 고통의 기록이다.

 

이 책은 현대 의학의 발전 속에서도 아직 만족스러운 치유책이 없는 그래서 편견과 낙인으로 괴로움을 겪는 정신질환자와 그의 가족들, 더욱이 힘든 청춘시대를 보내는 젊은이들 가운데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학력 중심사회에서 펼쳐지는 성적 우선주의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굳은 사회적 믿음은 애더럴(공부 잘하게 해주는 약)열풍까지 일어날 정도면 병증이다. 진짜 치료를 받아야 할 병 그 자체다. 아픈 사회에서 건강한 삶, 건강한 생활을 해나간다는 게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보다 몇 곱절 힘들다. 정신질환도 괴롭지만, 주위의 편견과 낙인, 차별과 혐오가 더 고통스럽다.

 

딸에게 찾아온 불안증세, 자살충동

 

갑작스레 찾아온 지은이의 둘째 딸 안나의 양극성 스펙트럼 사회적 평가와 국가의 접근 태도가 비인권적임을, 장애에 관한 이해, 그러기에 차별임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고 마냥 정신질환을 주위에 숨겨야 하는 천형인 것처럼, 어쩌다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하고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에게 지은이의 경험을 공유하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을 주제로 한 이슈들, 소설, 영화, TV 드라마를 끌고 와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함께 하는 세상은 요원한가, 가족이 극복해야 할 보이지 않는 산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자살 충동을 어찌할 수 없어 손목을 긋고, 환청이 들리고, 정신건강과 전문의들도 AHDH인지, 양극성 스펙트럼인지 헷갈리기도, 아니면 이 둘이 중첩도니 것인지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밤을 새우며 전문서적을 읽고, 딸의 자취방을 찾으면서, 정신병동에 입원시키면서 지은이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보게 된다. 치료 7년 차,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는 게 자연의 이치라면 이치다. 이후에 변변한 자산도 없이 홀로 남겨질 자식을 생각하면, 국가의 책무를 생각하게 된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사회적 지위, 계층의 사람인데도, 동행정복지센터에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이었다. 다시 전문의의 소견과 미국의 학술논문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찾아가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불승인”,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자에 관한 분류기준이라도 제대로 마련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참으로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이 책은 에세이집이기도 하면서 주위에 정신질환자가 있는, 함께 생활하는 이들에게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하다(지은이에게 결례가 되지 않을 듯하지만, 그만큼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뜻, 이렇게밖에 더 이상의 것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고 할 수밖에) 부모 서바이벌 가이드(224쪽 이하), 읽어볼 소설, 봐야 할 영화, TV 드라마 등이 넘쳐난다. 처칠도 양극성 장애?,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 사회자 크리스 록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월 스미스 아내의 탈모에 대한 농담을 하자, 열받은 스미스가 무대 위에 올라가 그의 뺨을 쳤는데, 록은 여전히 웃고 있다. 분위가 파악을 못하는 비언어적 습득 능력장애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문제갇 되면 병이지만, 이 역시 정도가 있어, 다들 그냥 넘어간다.

 

우리는 모두 정신질환자다. 신경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세상

 

신경 다양성은 인간 발달 과정에서 비전형적인 행동·심리적 특성을 의미한다. 즉, 자폐, ADHD, 사회 의사소통 장애 등의 신경 특성을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장애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장애인이란 말의 출현은 산업혁명과 함께, 노동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이후, 점차로 차별과 혐오, 정상인이 아닌 것은 쓸모없음으로, 사람마다 제각각의 특성이 있음을. 몰상식한 정치인들의 혐오 발언 또한, 우리 사회의 눈이 어디쯤 멈춰 선 것인지를 보여주는 잣대다. 우울 증상을 한 번도 안 겪어 본 사람이 있나? 모든 동물, 인간도 예외는 아니지, 우울을 겪지 않는다면.

 

아무튼, 이 책은 그저 흔하디흔한 눈물 빼기 수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을 어떻게 봐야 할지, 정신질환이라는 실체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정책 방향은 어디로 무엇을 눈여겨 봐야 할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때로는 사회평론을 읽는 듯, 소설을 읽는 듯, 정신질환자의 권리백서를 읽는 듯한 느낌은 그만큼 지은이가 온 힘을 다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정신질환이란 이런 거라고, 그리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은 이런 것이라고 목이 쉬도록 외친다. 그 메아리가 널리 멀리 퍼져 나아가기를 기원하면서, 우리의 천박한 상식의 벽을 깨뜨려 주는 이 책, 꼭 일독을 권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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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강대국을 만드는가
문석기 지음 / 탐나는책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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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원동력, 필수요소 "도덕성" 과 "자유"

 

지은이는 이 책<무엇이 강대국을 만드는가>에서 강대국의 필수요소로 ‘도덕심’과 ‘자유’를 들고 있다. 실제 강대국이란 아직 정확한 정의도 합의된 개념도 없다. 국어사전에는 “병력이 강하고 영토가 넓어 힘이 센 나라”로, 영어사전에는 powerful nation, 혹은 World power로 나와 있다.

 

강대국(强大)은 강(强)하고 큰(大) 나라를 만드는 동력은 자연조건을 하드파워로 보고, 정신문화와 경제, 소득수준 등을 소프트파워(본래 의미와는 조금 다르지만)로 기준으로 볼 수도 있고, 강대국으로 보는 지표(국토, 경제, 군사, 국민소득 등의 요소)를 기준 삼아 강대국, 약소국으로 강대국은 초강대국, 준 강대국 등의 구분할 수도, 하지만 이 또한 모호하다. 대체로 강대국의 기준을 이탈리아로 보고, 미, 영, 프, 독, 러, 중국을 강대국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경제, 군사 등을 판단요소로 들면서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할 것이다.

 

여기서는 강대국의 기준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논하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가 생각하는 강대국이란 국민 또는 사회의 높은 도덕성(현대적 의미로는 인권존중, 관용, 배려, 포용, 평등, 공평 등)과 자유를 포함한 정신문화가 판단기준인 듯하다. 강대국이란 무엇인가를 보는 하나의 기준일 수도 있겠다.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개념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지은이의 탐구심에 경의를 표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차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힘 있는 자는 그 힘을 모두를 위해 써야!

 

지은이는 사회의 높은 도덕성만으로는 강대국이 되지 못하며, 반드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이래 수많은 강대국이 등장했는데, 지은이는 강대국의 구별기준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예를 들었다. 영국은 전성기 시대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 귀족도 세금을 냈다. 전쟁 시에는 더 많은 세금을 내, 평민들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냈다. 프랑스는 귀족이 토지의 1/4을 소유하고 있지만, 세금 한 푼도 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영국은 강대국이 되었고 프랑스는 약탈과 광기가 넘치는 혁명을 발생했다. 작은 섬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의 도덕성과 자유보장이라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은 의무를 진다'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처음으로 이 표현을 썼던 사람은 정치가인 레비 공작 피에르 가스통 마르크였다. 그의 책 <격률과 교훈>에서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주로 사회 지도층 혹은 상류층이 사회적 위치에 걸맞은 모범을 보이는 행위를 표현할 때, 혹은 그것에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이 책에서는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 대영제국, 청나라, 미국이 어떻게 강대국의 지위를 누렸을까, 그 핵심을 파악하려 한다. 군사, 경제, 정치, 기술, 지리적 환경, 문화, 외교 등 다양한 요소를 살펴본다.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

 

메소포타미아 왕국을 통일한 바빌로니아는 최초의 법치국가였다. 법치란 결국 도덕의 최소한 임을 명확히 한 함무라비 법전, 유명한 눈에 눈, 이에는 이라는 본래 의미가 왜곡됐는데, 이는 한계를 설정하는 상징이었을 뿐,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며, 이렇게 도덕률 즉, 사회질서의 규칙을 정함으로써 이후 서구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가 됐다는 본다.

 

페르시아는 인류 최초의 제국, 건설의 밑바탕에는 ‘포용성’ 피정복민의 종교, 문화를 존중, 세금만 낸다면, 그들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제국의 기반이 된 듯하다. 서양 최대제국인 로마는 법치와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정치체제를 들고 있다. 최소한의 도덕과 의무(납세와 병역의무?)만 지켜라. 그러면 자유를 허하노라?, 이렇게 해석될 여지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

 

청나라의 발기

 

청나라를 강대국으로 보는 이유는 탁월한 공동체 정신이라고, 도덕심과 자유와의 관계는 어떤 맥락이었을까, 청의 유연한 동화능력을 강대국의 요소로 본 듯하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 아무튼 중국문화 속에 녹아들어 간 게 아니라 주변국(이른바 오랑캐 등의 문화수용으로)과의 융합이라는 표현을 쓰더라도, 한족 문화로 편입된 것만큼은 사실인 듯, 마치 어느 국가 혹은 민족을 억압하는 국가나 집단의 수장, 수괴를 죽인 행위는 피억압자 쪽에서 보면 영웅이고, 억압자 쪽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일 수밖에.

 

아마도 이 책은 한국이 강대국이 되려면 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 듯, 여기서도 도덕성과 자유를 열쇳말로 삼는다. 정치적 역할은 축소되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 정치 제도 아래에서 만들어진 법안들이 도덕성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가기 쉽다는 점이라고 하면서 공동체의 도덕성 향상보다는 무질서를 높이는 방향, 대의민주주의 엔트로피 법칙, 무슨 말을 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지 않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이렇게 모호한 구석이 많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한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높은 도덕성과 자유의 보장이라는 필수요소가 어떤 식으로든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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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진료 공장의 세계 - 대형 병원 진료실은 어쩌다 불평불만의 공간이 되었을까?
김선영 지음 / 두리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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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진료 공장의 세계, 그 역설

 

한국은 최고의 의료가성비를 자랑한다. 1인당 의료비는 미국의 30%, 독일의 50%, 영국의 70%밖에 쓰지 않으면서 기대수명은 매우 긴 장수국가에 속한다. 암, 심장질환, 영아 각 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저 수준이다. 암, 심장, 장기이식 또한 세계적인 수준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이 신화는 진짜일까?, 그렇다면 언제적 일일까,

 

한동안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가성비’ 신화를 더는 지켜내기 어렵다. 인구 수는 제자리이나 지출 의료비는 2015년 58조에서 2023년 94조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에게 들어간 의료비는 21조에서 40조로 늘어, 고령화의 충격이 크다. 의료가성비를 지탱해 온 3분 진료 공장의 세계에서 가능했던 일인데, 국공립이든 민간이든 병원은 의사들에게 진료가능한 수준까지 환자를 보라고한다. 의료수가체계와도 연동되니, 병원이 적자나면 의료 서비스 질에도 문제가 있으니... 아무튼 이제는 3분 진료만으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

 

3분 진료의 현실, 3분 진료 공장에서의 셀프 인터뷰

 

지은이 김선영은 종양내과 의사로 대장암치료를 주로 한다. 같은 종양내과 안에서도 암에 따라 이를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있다고, 엄청나게 분업화된 체계다. 그는 이미,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즉, 환자(보호자)측의 심정이 돼 본 적이 있다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3분 진료 메커니즘은, 왜 3분 진료라고 부르는지, 대형병원(뭐 시쳇말로 유명한 대학병원, 혹은 일류, 선진병원)은 왜 환자들의 불평불만이 넘쳐나는지, 1시간을 대기하고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진료, 게다가 의사는 환자와 눈도 맞추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을 보면서 기계적으로 환자에게 증상만 묻고, 앞으로 치료계획은 이러저러하다고 통보하면 진료가 끝난 게 제조 공장의 컨베이어시스템과 닮았다고 말한다. 이에 관하여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84~100).

 

의료가성비를 높이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현명한 선택”을 위한 의사와 환자의 노력

 

지은이는 3분 진료체계를 바꿀 수 없다면, 환자는 이 3분 동안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이 책 2장을 잘 읽어보자), 즉, 대형병원에서 똑똑하게 진료받는 법을 알려둔다. 언제까지 시스템 탓만 하고 수동적으로 움직일 것인가, 궁하면 통하는 법도 배워두면 좋을 듯하다. 의사는 3분 진료시간 동안에 무슨 생각과 마음으로 환자를 대할까?, 이 대목에서 필요한 것은 갑을 관계가 아닌 상호이해다. 이른바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의료가성비를 높이려면 우선 과잉진료를 줄여야 한다. 과잉진료의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환자가 의사를 만날 때, 정확한 아니 최소한 상황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제공해야 한다. 의사들은 환자 측의 결과론적인 책임추궁을 피하려 한다(리스크 회피, 수동적 대응), 그러기에 해볼 검사는 다 해봤고, 거기서 이런 것이 발견됐고, 만약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당시 검사에서는 현재 이런 증상의 기미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마련을 위해서다. 그다음의 영역은 현대의학발전 수준의 넘어선 어찌 보면 신의 영역이니.

 

한편으로는 환자의 대형병원신화에 기인하는 바도 무시할 수 없다. 1차 진료를 받았던, 의원급이나 지방 중소병원의 의사진단을 불신(아니 불신이라기보다는 불안감 때문에, 큰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거나, 의사의 오진이라 믿고 싶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하여 큰 병원을 찾는다.

 

의사, 환자 어느 한쪽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는 과잉진료는 선진국에서도 일어나는 문제다. 이의 해결을 위해 미국에서는 2012년 미국 내과의사재단이 시작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이다. 근거가 불명확한 검사나 치료를 줄여서 의료비용을 억제하고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 의료 한림원에서도 ‘현명한 선택’ 캠페인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확산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의료수가 문제도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지은이는 과잉진료의 가장 큰 원인을 시간의 문제라고 본다. 이 치료가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는지를 환자에게 자세하게 설명할, 그리고 검사를 결정하기 전에 충분히 환자에게 증상을 물어보고 진찰할, 각각의 시간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이 두 과정을 거쳐, 의사가 환자와 충분히 소통했다고 여기면, 환자는 의사가 검사나 치료를 더 하지 않고 지켜보자는 의견을 이해할 수 있다고. 이렇게 중요한런 과정이 없었기에 과잉진료 현상으로 나타난다.

 

상담이 길어지면 의료의 가성비를 높일 수 있어, 전체 치료비 저감으로

 

지은이는 의사가 환자와 충분히 상담함으로써 불필요한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미국의 연구 논문(만성 콩팥병 환자의 사례)을 소개하고 상담을 강화하면 89억 원 정도의 응급투석비용을 28억 원의 상담으로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한다. 이에 덧붙여 암 진료에서도 환자 상담이 가성비가 좋은 서비스라는 연구결과, 즉, 과잉진료를 줄여, 전체 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정보에 관해서 건강보험공단은 "상담이 비용 효과적인지 의문"이라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의사 부족” 진짜? 의사가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환자 수의 적정기준부터 생각해봐야!

 

의사증원과 반대의 논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않다. 다만, 특정 진료과목에 편중되거나, 지역 편중이 문제일 뿐이다. 이런 논의의 전제는 현재 의사 수가 적정한지, 적절한지를 따지기 보다는 의사 한명이 하루에 몇 명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게, 현실적인 태도다.

 

지은이는 한국 의료계 전반에 걸친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하여 합리적인 대안과 해결 방안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아주 부드럽고 이성적으로, 아울러 인간으로서의 의사가 겪는 병원 세계에 관한 이야기도, 자동차를 타고 긴 터널을 오랫동안 달리다 보면 어느새 주변이 보이지 않고 터널 끝의 밝은 빛만 보이는 터널 현상에 빠진다. 지은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주위를 살피며, 터널 현상(매너리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은이를 향한 신뢰의 바탕은 바로 이런 글 속에 녹아있는 자기 고백 같은 게 아닐까, 제목은 조금 살벌하지만, 내용은 더없이 좋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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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인, 중국상인, 일본상인
이영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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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삼국 한중일상인정신과 현장 비즈니스를 이해하기 위한 참고서, 패션산업부문에서의 경험이다. 무턱대고 덤비면 그 만큼 수업료를 내야하니, 중국, 일본의 장사꾼이 어쩌고 저쩌고가 말하기 전에 우선 정보를 모으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책, 현장경험이 녹아있는 가이드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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