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진료 공장의 세계 - 대형 병원 진료실은 어쩌다 불평불만의 공간이 되었을까?
김선영 지음 / 두리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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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진료 공장의 세계, 그 역설

 

한국은 최고의 의료가성비를 자랑한다. 1인당 의료비는 미국의 30%, 독일의 50%, 영국의 70%밖에 쓰지 않으면서 기대수명은 매우 긴 장수국가에 속한다. 암, 심장질환, 영아 각 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저 수준이다. 암, 심장, 장기이식 또한 세계적인 수준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이 신화는 진짜일까?, 그렇다면 언제적 일일까,

 

한동안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가성비’ 신화를 더는 지켜내기 어렵다. 인구 수는 제자리이나 지출 의료비는 2015년 58조에서 2023년 94조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에게 들어간 의료비는 21조에서 40조로 늘어, 고령화의 충격이 크다. 의료가성비를 지탱해 온 3분 진료 공장의 세계에서 가능했던 일인데, 국공립이든 민간이든 병원은 의사들에게 진료가능한 수준까지 환자를 보라고한다. 의료수가체계와도 연동되니, 병원이 적자나면 의료 서비스 질에도 문제가 있으니... 아무튼 이제는 3분 진료만으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

 

3분 진료의 현실, 3분 진료 공장에서의 셀프 인터뷰

 

지은이 김선영은 종양내과 의사로 대장암치료를 주로 한다. 같은 종양내과 안에서도 암에 따라 이를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있다고, 엄청나게 분업화된 체계다. 그는 이미,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즉, 환자(보호자)측의 심정이 돼 본 적이 있다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3분 진료 메커니즘은, 왜 3분 진료라고 부르는지, 대형병원(뭐 시쳇말로 유명한 대학병원, 혹은 일류, 선진병원)은 왜 환자들의 불평불만이 넘쳐나는지, 1시간을 대기하고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진료, 게다가 의사는 환자와 눈도 맞추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을 보면서 기계적으로 환자에게 증상만 묻고, 앞으로 치료계획은 이러저러하다고 통보하면 진료가 끝난 게 제조 공장의 컨베이어시스템과 닮았다고 말한다. 이에 관하여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84~100).

 

의료가성비를 높이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현명한 선택”을 위한 의사와 환자의 노력

 

지은이는 3분 진료체계를 바꿀 수 없다면, 환자는 이 3분 동안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이 책 2장을 잘 읽어보자), 즉, 대형병원에서 똑똑하게 진료받는 법을 알려둔다. 언제까지 시스템 탓만 하고 수동적으로 움직일 것인가, 궁하면 통하는 법도 배워두면 좋을 듯하다. 의사는 3분 진료시간 동안에 무슨 생각과 마음으로 환자를 대할까?, 이 대목에서 필요한 것은 갑을 관계가 아닌 상호이해다. 이른바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의료가성비를 높이려면 우선 과잉진료를 줄여야 한다. 과잉진료의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환자가 의사를 만날 때, 정확한 아니 최소한 상황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제공해야 한다. 의사들은 환자 측의 결과론적인 책임추궁을 피하려 한다(리스크 회피, 수동적 대응), 그러기에 해볼 검사는 다 해봤고, 거기서 이런 것이 발견됐고, 만약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당시 검사에서는 현재 이런 증상의 기미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마련을 위해서다. 그다음의 영역은 현대의학발전 수준의 넘어선 어찌 보면 신의 영역이니.

 

한편으로는 환자의 대형병원신화에 기인하는 바도 무시할 수 없다. 1차 진료를 받았던, 의원급이나 지방 중소병원의 의사진단을 불신(아니 불신이라기보다는 불안감 때문에, 큰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거나, 의사의 오진이라 믿고 싶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하여 큰 병원을 찾는다.

 

의사, 환자 어느 한쪽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는 과잉진료는 선진국에서도 일어나는 문제다. 이의 해결을 위해 미국에서는 2012년 미국 내과의사재단이 시작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이다. 근거가 불명확한 검사나 치료를 줄여서 의료비용을 억제하고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 의료 한림원에서도 ‘현명한 선택’ 캠페인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확산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의료수가 문제도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지은이는 과잉진료의 가장 큰 원인을 시간의 문제라고 본다. 이 치료가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는지를 환자에게 자세하게 설명할, 그리고 검사를 결정하기 전에 충분히 환자에게 증상을 물어보고 진찰할, 각각의 시간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이 두 과정을 거쳐, 의사가 환자와 충분히 소통했다고 여기면, 환자는 의사가 검사나 치료를 더 하지 않고 지켜보자는 의견을 이해할 수 있다고. 이렇게 중요한런 과정이 없었기에 과잉진료 현상으로 나타난다.

 

상담이 길어지면 의료의 가성비를 높일 수 있어, 전체 치료비 저감으로

 

지은이는 의사가 환자와 충분히 상담함으로써 불필요한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미국의 연구 논문(만성 콩팥병 환자의 사례)을 소개하고 상담을 강화하면 89억 원 정도의 응급투석비용을 28억 원의 상담으로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한다. 이에 덧붙여 암 진료에서도 환자 상담이 가성비가 좋은 서비스라는 연구결과, 즉, 과잉진료를 줄여, 전체 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정보에 관해서 건강보험공단은 "상담이 비용 효과적인지 의문"이라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의사 부족” 진짜? 의사가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환자 수의 적정기준부터 생각해봐야!

 

의사증원과 반대의 논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않다. 다만, 특정 진료과목에 편중되거나, 지역 편중이 문제일 뿐이다. 이런 논의의 전제는 현재 의사 수가 적정한지, 적절한지를 따지기 보다는 의사 한명이 하루에 몇 명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게, 현실적인 태도다.

 

지은이는 한국 의료계 전반에 걸친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하여 합리적인 대안과 해결 방안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아주 부드럽고 이성적으로, 아울러 인간으로서의 의사가 겪는 병원 세계에 관한 이야기도, 자동차를 타고 긴 터널을 오랫동안 달리다 보면 어느새 주변이 보이지 않고 터널 끝의 밝은 빛만 보이는 터널 현상에 빠진다. 지은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주위를 살피며, 터널 현상(매너리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은이를 향한 신뢰의 바탕은 바로 이런 글 속에 녹아있는 자기 고백 같은 게 아닐까, 제목은 조금 살벌하지만, 내용은 더없이 좋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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