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마르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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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과 장례식이 한날한시에

 

“이게 하느님 때문에 생긴 일이니? 날을 이렇게 고른 건 우리 아빠야. 그 누구도 아니고 아빠 자신이 이날을 골랐어”

“설마 너희 아빠가 네 결혼식을 망치려는 목적 하나 때문에 어제저녁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겠다고 결심을 했을까?”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린데, 날 짜증나게 하는 일이면 뭐든지 할 사람이 우리 아빠야!" 줄리아, 친구 스탠리와의 대화

 

약혼자 아담과 결혼식을 며칠 앞둔 줄리아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그녀의 아버지 안토니 왈슈의 비서로부터였다. 일이 바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전화이겠거니라고 지레짐작하는 줄리아에게 비서는 아버지가 죽었다고. 아버지를 탓하는 줄리아에게 이미 부녀관계를 암시하면서, 한편의 영화처럼 기막히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쩌겠나, 아무리 제멋대로인 아버지이지만 그가 죽었다는데, 장례를 치러야지, 뒤로 밀쳐진 결혼식, 아버지 시신은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오고, 세관 공무원이 줄리아에게 넘겨준 봉투 속에는 공문서 몇 장과 손목시계, 여권, 여권 안에는 아버지 안토니의 마지막 몇 달을 기억하는 비자가 붙어있다. 홍콩, 봄베이, 사이공, 시드니,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고 싶었던 수많은 나라들...

 

장례식 뒷날 줄리아 앞으로 배달된 특대형 소포, 아버지를 닮은 밀랍인형이다. 상자에 들어있는 리모컨을 켜라는 메모, 줄리아가 리모컨을 켜자 아버지처럼 말하는 인형, 줄리아는 인형에게 묻는다. 왜 이런 거 만들었냐고, 아버지를 쏙 빼닮은 인형은 아버지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운 사람과 며칠을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 영원으로부터 잠깐 시간을 빌려와서 말이야. 너와 내가 차마 나누지 못한 말들을 함께 얘기하고 들어보기 위하여. 죽음을 예견한 것인지, 죽기 전에 미리 준비한 것인가,

 

밀랍인형에 자신의 기억하는 모든 것을 담아, 사후에 그의 딸 줄리아에게 보낸 안토니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딸에게 차마 못 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을까, 엿새 후면 안드로이드 배터리가 다 되어, 기억이 지워진다. 그리고 영원히 죽음으로. 이 기발한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엿새 동안의 여행?, 뉴욕에서 몬트리올로 줄리아가 영세를 받았던 성당을 찾고, 그녀가 여덟 살 때 일, 토마스가 등장하고. 한때 잊혔던 모든 기억을 하나하나씩, 여행은 베를린으로 계속되는데,

 

줄리아는 꿈처럼, 이곳저곳으로 아버지와 함께한 여행,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다가와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안토니는 딸 에게 편지를 남겼다. 난 최선을 다했단다. 네가 원하는 만큼 너와 함께 있어 주질 못했지. 너와 비밀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난 네 아버지일 뿐이야,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야. 딱 한 가지만 부탁할 께 “제발 행복하겠다고 약속해 주렴”이라고 적혀있었다.

 

인형으로 나타난 아버지, 마치, 1990년 영화 데미 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의 <사랑과 영혼>'과 겹쳐지는 이 소설, 줄리아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약혼자 아담에게 그녀가 진실을 말하도록 도왔다는 안토니,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가는 이 소설, 누군가를 잃고 그제야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너무 늦기 전에 일깨워주는 따뜻한 손길….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음을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겠지 하면서 흘려보낸 시간, 그때 이야기했더라면, 그렇게 아쉽지도 후회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들을 지금 바로 여기서 해보면 어떨까, 마지막까지 남는 여운...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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