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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지은이 김현아는 내과의사다. 남편은 신경외과 의사로 모두 교수로 병원에서 일한다. 부모가 여느 사람들보다 뇌와 신체 구조와 약리작용 등에 관해서 더 잘 알기에 자기 자식들(큰딸과 둘째 딸) 치료가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이들 가족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현재진행형 고통의 기록이다.
이 책은 현대 의학의 발전 속에서도 아직 만족스러운 치유책이 없는 그래서 편견과 낙인으로 괴로움을 겪는 정신질환자와 그의 가족들, 더욱이 힘든 청춘시대를 보내는 젊은이들 가운데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학력 중심사회에서 펼쳐지는 성적 우선주의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굳은 사회적 믿음은 애더럴(공부 잘하게 해주는 약)열풍까지 일어날 정도면 병증이다. 진짜 치료를 받아야 할 병 그 자체다. 아픈 사회에서 건강한 삶, 건강한 생활을 해나간다는 게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보다 몇 곱절 힘들다. 정신질환도 괴롭지만, 주위의 편견과 낙인, 차별과 혐오가 더 고통스럽다.
딸에게 찾아온 불안증세, 자살충동
갑작스레 찾아온 지은이의 둘째 딸 안나의 양극성 스펙트럼 사회적 평가와 국가의 접근 태도가 비인권적임을, 장애에 관한 이해, 그러기에 차별임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고 마냥 정신질환을 주위에 숨겨야 하는 천형인 것처럼, 어쩌다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하고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에게 지은이의 경험을 공유하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을 주제로 한 이슈들, 소설, 영화, TV 드라마를 끌고 와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함께 하는 세상은 요원한가, 가족이 극복해야 할 보이지 않는 산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자살 충동을 어찌할 수 없어 손목을 긋고, 환청이 들리고, 정신건강과 전문의들도 AHDH인지, 양극성 스펙트럼인지 헷갈리기도, 아니면 이 둘이 중첩도니 것인지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밤을 새우며 전문서적을 읽고, 딸의 자취방을 찾으면서, 정신병동에 입원시키면서 지은이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보게 된다. 치료 7년 차,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는 게 자연의 이치라면 이치다. 이후에 변변한 자산도 없이 홀로 남겨질 자식을 생각하면, 국가의 책무를 생각하게 된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사회적 지위, 계층의 사람인데도, 동행정복지센터에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이었다. 다시 전문의의 소견과 미국의 학술논문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찾아가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불승인”,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자에 관한 분류기준이라도 제대로 마련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참으로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이 책은 에세이집이기도 하면서 주위에 정신질환자가 있는, 함께 생활하는 이들에게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하다(지은이에게 결례가 되지 않을 듯하지만, 그만큼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뜻, 이렇게밖에 더 이상의 것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고 할 수밖에) 부모 서바이벌 가이드(224쪽 이하), 읽어볼 소설, 봐야 할 영화, TV 드라마 등이 넘쳐난다. 처칠도 양극성 장애?,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 사회자 크리스 록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월 스미스 아내의 탈모에 대한 농담을 하자, 열받은 스미스가 무대 위에 올라가 그의 뺨을 쳤는데, 록은 여전히 웃고 있다. 분위가 파악을 못하는 비언어적 습득 능력장애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문제갇 되면 병이지만, 이 역시 정도가 있어, 다들 그냥 넘어간다.
우리는 모두 정신질환자다. 신경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세상
신경 다양성은 인간 발달 과정에서 비전형적인 행동·심리적 특성을 의미한다. 즉, 자폐, ADHD, 사회 의사소통 장애 등의 신경 특성을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장애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장애인이란 말의 출현은 산업혁명과 함께, 노동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이후, 점차로 차별과 혐오, 정상인이 아닌 것은 쓸모없음으로, 사람마다 제각각의 특성이 있음을. 몰상식한 정치인들의 혐오 발언 또한, 우리 사회의 눈이 어디쯤 멈춰 선 것인지를 보여주는 잣대다. 우울 증상을 한 번도 안 겪어 본 사람이 있나? 모든 동물, 인간도 예외는 아니지, 우울을 겪지 않는다면.
아무튼, 이 책은 그저 흔하디흔한 눈물 빼기 수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을 어떻게 봐야 할지, 정신질환이라는 실체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정책 방향은 어디로 무엇을 눈여겨 봐야 할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때로는 사회평론을 읽는 듯, 소설을 읽는 듯, 정신질환자의 권리백서를 읽는 듯한 느낌은 그만큼 지은이가 온 힘을 다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정신질환이란 이런 거라고, 그리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은 이런 것이라고 목이 쉬도록 외친다. 그 메아리가 널리 멀리 퍼져 나아가기를 기원하면서, 우리의 천박한 상식의 벽을 깨뜨려 주는 이 책, 꼭 일독을 권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