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Memory of Sentences Series 1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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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버지니아 울프는 우울함이 깊어지면서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정하고 따뜻한 봄날 물이 불어난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자유의 의지로 선택한 존엄한 죽음의 길, 적어도 정신이 맑았을 때.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그렇게 죽음을 택했다. 아니 영원한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우리는 책에 담긴 문장을 읽으면서 그의 삶과 죽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엮은이 박예진은 울프의 13개 작품 속에서 영혼의 울림을 주는 문장을 퍼 올려 깊고 톺아보면서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생애를 아우를 수 있는 문장의 아름다움은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물에 솟는 시원한 물을 퍼 올리듯 그렇게 엮었다. 그는 울프의 글이 때로는 난해하게 읽히기도, 또 문장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울프는 자신만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쓴 모더니즘 작가로 그가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을 그저 글로 옮겨낸 것이어서라고, 울프의 삶을 통달하는 인문학적 해석을 더 하여, 새롭게 문장의 기억으로 문학을 소유하기를….

 

13개 작품에 담긴 문장의 기억을 4부로 엮었다. 1부에 실린 세 작품은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 개선하기 위한 자기만의 목소리를 담았다, 2부의 세 작품은 불완전한 기억을 일상의 조각들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의식의 흐름에 몰입하다”, 3부의 세 작품에서는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넘어, 울프 자신의 정체성을, “초월적 존재를 사랑하게 되다”, 그리고 4부의 세 작품에서는 전통적 서사를 넘어 실험적 글쓰기를,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에 담았다. “세상의 편견을 넘어, 의식의 흐름에 몰입”을 보려한다.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

 

“남성은 정복과 지배를 사명으로 삼습니다. 이때 인류의 나머지 절반인 여성이 자신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은, 그들이 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 되죠”(27쪽)[자기만의 방]

 

“ 여성들이 수백만 년 동안 방 안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제 벽에 여성들의 창조력이 모두 스며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 안의 벽돌과 시멘트가 여성들의 창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계에 다다를 정도이므로, 이제 여성들은 펜과 붓을 사업과 정치에 써야 할 것입니다.”(28쪽)

 

이 두 문장 속에 버지니아 울프의 인류애가 녹아있다. 시몬느 드 보부와르의 <제2의 성>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성이 되는 것이라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는 나에게 여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했는가라며 실존주의 철학 관점에서 여성의 상황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당대의 여성의 지위는 그들의 창의성은 펜과 붓에 한정됐던 시대, 울프는 여성들을 향해 펜과 붓 대신에 사업과 정치에 쓰라고 말한다. 경제적 정치적 진출을 하라, 시대의 편견을 넘어서라고,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 있어요. 우리는 알아내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한 사람의 의견보다 더 터무니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나요? 사람들은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합니다.”(62쪽) [출항]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곧 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계기이자 동기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동굴 벽에 비친 세상은 실제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안다고 착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의식의 흐름에 몰입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을 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거울처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모호함과 유리 같은 광택이 보입니다.”(73쪽)[벽에 난 자국]

 

거울처럼 바라보는 서로의 눈에는 모호함과 유리 같은 광택이라는 무관심과 감정의 결여가 보인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표식은 인식 가능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으로 보이며, 만약 그 벽의 줄기를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간다면 어느 지점에서는 작은 흙더미를 올라탔다가 내려갈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에 대한 관찰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한 순간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간다.

 

울프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다

 

엮은이 손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울프의 문장, 그저 작품 속에서 숨겨진 문장이었다면 그렇게 그렇게 흐름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엮은이는 울프의 작품을 섬세하게 구분 지어가면서 그의 작품세계 변화를 따라간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항의,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흐름, 인문학적 해석, 사람의 무늬, 울프의 무늬를 도드라지게 한 이 책은 아주 귀중한 문장의 기억이자 문학의 소유, 그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고나 할까,

 

사람은 저마다의 무늬를 갖는다. 그 무늬를 어떻게 그려냈는지를 통찰하는 것, 인문학적 해석도 흥미진진한 작업일 것이다. 읽는 이들이 그리는 울프의 무늬는 어떤 색깔일까,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이 이런 계기를 가져다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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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을 변화시키는 해설
샘 햄 지음, 이진형 옮김 / 바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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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을 변화시키는 해설

 

이 책은 <환경해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작은 예산을 가진 해설사들을 위한 실무 지침서>를 쓴 샘 햄이 “테마 중심 해설의 원리”, 즉 주제가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최고의 해설 방법이라고 주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해설사, 문화관광해설사, 숲 해설사, 역사해설사 등 OO 해설사라는 명칭에 꽤 반감이랄까, 아무튼 거부감을 느낀다. 국어사전에 실린 해설사는 문제나 사건의 내용 따위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왜 관광통역안내사는 관광통역 해설사라고 부르지 않는지. 아무튼 용어 자체가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탓인가 싶기도 하지만,

 

영어의 표현 또한 다양하다 (interpretation, guide, presenter) 역시 해설사로 번역을 하기에.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인데 그 내용을 두고 해설사라고 칭하는가 싶기도 하다. 해설(解說)은 그 분야에 전문 식견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물 혹은 현상을 정확히 혹은 적확히 포착하여 그 현상에 이르는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그런 의미로 이해하기에 그렇다. 가이드란 단지 안내할 뿐이다. 물론 통설적 견해를 같이 가는 일행에게 알려주는 정도일 수도 있고 더 깊은 지식을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려되는 게, 바로 정확하게 알고 있나, 이른바 짜인 스토리텔링을 해설이라 할 수 있을까?, 같은 사물 혹은 현상을 두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 경험의 정도와 배경지식에 따라 사뭇 표현 양태가 다를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 해설사라는 표현보다는 “길라잡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 영어로 표기해도 가이드이니. 하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해설사의 기본교육교재로써 의미가 더 크기에 이에 따라가 보려 한다.

 

이 책은 해설을 통해 청중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이러한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3장) 다루고 있다. 아울러 모든 해설이 청중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가?, 모든 해설이 청중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임을 알 것이다(4장). 해설을 통해 청중을 변화시킬 가능성 높일 수 있는 경험적 증거를(5장) 고찰, 테마와 테마 중심 해설의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6장), 테마 중심의 해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설사에게 있어 테마의 가치를 이해,

 

해설과 강의의 차이, 성공적인 해설을 위한 네 가지 요소(TORE)

 

강의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지만, 해설은 특별한 임무가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서, 그 목표는 탐방객들이 개인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사물과 장소, 개념들에 대해 개인적 연관을 짓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내가 생각하는 해설과도 맞닿아있다. 누구를 어떤 틀을 기준 삼아 꿰맞추려는 것은 해설도 가이드도 그 아무것도 아닌 강의다. 현장에서 뭘 느끼게 할 것인가, 여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안내해주는 이가 길라잡이(여기서 말하는 해설사다), 아무튼 이 책을 따라 꼭 익혀두어야 할 것을 보자. 청중을 변화시키는 해설은 TORE에 달렸다. T(주제), O(짜임새), R(눈높이), E(재미), 주제와 그 내용의 짜임, 수준을 어디에 맞출 것인가, 그리고 재미, 흥미를 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는 아니라는 말이다. 해설의 궁극적인 목표를 뭐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해설의 방식이 달라진다.

 

해설사의 유형, 동기부여형, 교사형, 엔터테인먼트형

 

여기에 세 개의 유형을 보자. 강의가 아닌 동기부여(121쪽)라고 프리먼 달튼은 <우리 유산의 해설>에서 랄프 왈도 에멀슨의 말을 인용했다. 명확하게 해설의 최종목표를 설파했다(143쪽에 주요전문해설사 협회의 관점에서 본 해설의 목표들이 실려있다). 이런 유형의 해설사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 부른다. 또 하나의 타입으로 교사처럼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하며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해설사가 있고, 청중의 관심을 끄는 것만 집중하게 되면 해설과 엔터테인먼트의 구별은 어렵게 된다. 하지만, 이런 유형도 있으니, 엔터테인먼트로서 해설도 존재한다.

 

모든 해설이 청중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강한 테마 즉, 이해하기 쉽고 청중의 눈높이에 아주 잘 맞는 테마여야하고, 짜임새가 훌륭한 해설은 청중들이 특별한 노력 없이도 해설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경우다. 그렇다면 TORE를 갖춘 해설은 어떻게 청중을 변화시키는가, 우선은 청중이 경험하는 질을 높인다. 특정 장소와 사물 또는 개념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역사적 이해든, 환경이든 이를 보호하려는 태도를 촉진).

 

해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상태를 말한다. 이 책 자체가 이른바 해설사라는 직역 혹은 직종과 관련된 것이라서,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해설을 듣는 청중 쪽에서는 훌륭한 해설이란 어떤 것인지를 구분하는 데는 도움이 될 듯하다. 아마도 관광지나 역사유적지에 상주하거나 담당하는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있노라면, 잘 짜여진 뭔가를 설명하는 듯한, 정보를 제공의 과정으로 느껴지는 건, 아마도 눈높이와 재미, 그리고 강한 테마의 부족에서 오는 게 아닌가싶기도 하다.

 

여전히 해설사라는 이름보다는 갈라잡이, 안내사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설은 계절에 따라, 청중의 구성(또래집단인지, 가족단위인지, 동호회인지, 한데 섞여있는 집단인지)에 따라, 운을 떼는 것도, 설명하는 기법도, 이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도, 그래야 함께하는 합동행위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해설사가 되려면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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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정석 - 교육·인구·노동·연금·조세·정부개혁의 성공 공식
전주성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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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개혁에 관한 생각

 

지은이 전주성은 주로 재정정책에 힘을 쏟는 경제학자다. 그는 한국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교육이면 교육, 경제면 경제, 정치, 문화, 인구, 노동, 조세 모두가 이른바 만신창이 상태이니, 어디서부터 손을 데야 할지, 난감 그 자체다.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고, 조석개변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정책들, 대중영합주의도 이 정도는 아닐 듯싶은데, 국민연금, 사회보험이지만 일반 국민이 느끼는 건 온도 차가 있다. 국민연금 납부금은 덜 내고 연금은 많이 받고 싶고 이게 보편적 심리요 기대다. 국민연금으로 내는 내 돈이 6천여 명이 넘는 이른바 공사급 직원의 월급으로 빠져나가고, 연기금 운용이라고 해서 삼성물산에 퍼부은 돈, 그 손실액은 8년 누적 약 2천 5백억이면, 게다가 국민연금자원이 고갈되면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해준다는 구절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 국민연금은 회피하고 싶고, 연금은 받고 싶은 이상한 심리가 사회에 퍼지는 게 아닌가,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실패했는가를 따져야!

 

지은이는 한국의 고도성장 원인을 인적자원의 축적과 효율적 배분으로 봤다. 이른바 성공의 공식인 셈인데, 이게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사교육 중심의 교육시스템은 지식혁명 시대로 변화하는 속도와 내용을 따라오지 못하고, 이념대립이 일상화된 경직된 노동시장은 효율적 배분을 어렵게 해, 인적자본의 양과 생산성이 동시하락, 성장잠재력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복지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력은 선진국수준이지만, 턱없이 부족한 사회안전망 탓에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은 선진국 중 일등이다. 와스트 넘버 원,

 

개혁은 기존 제도의 구조적 틀을 바꾸는 것이기에 관행적 사고나 수단으로는 대응이 곤란하다. 경제적 합리성도 필요하지만, 정치적 수용성도 따져봐야 한다. 어려운 문제인 만큼 쉬운 정답은 없다는 말이다.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 6가지 개혁

 

첫째, 연금개혁, 세대 간의 형평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저출산 초고령사회, 인구구성과 분포는 현재까지는 50대군이 크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진다.젊은이 네 사람이 노인 한 사람을 먹여 살리는 구조에서 점차로 젊은이들의 부담이 무거워진다. 연금 문제는 경제적 논리에 터 잡아 연금 재정의 안정성에만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는 어렵다. 지은이는 세대 간 이타주의에 바탕을 둔 200조 원가량의 ‘세대통합기금’ 조성과 그 재원 대안을 제시한다.

 

둘째, 교육, 공교육이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실에서 상대평가를 없애고, 수능은 자격시험으로 대학 입시는 대학 자율에 맡기라고 한다.

 

셋째, 인구문제는 결혼 및 출산문화를 바꿀 구조적 제도 변화를 모색하는 이원화 정책을 제시한다. 노인 기준을 나이를 높이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방법, 물론 이민도 고려대상이다.

 

넷째, 노동 개혁은 적을 오해하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부당한 지대 즉, 경쟁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상이윤보다 높은 초과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 사실은 적이다. 대기업이 고수익을 내는 게 정경유착인지 기술혁신인지를 구분해야 하며, 노동계급 안에서 정규와 비정규, 같은 일을 하고도 고용형태에 따라 그 노동의 대가가 달라진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라 지적한다. 노동조합의 귀족화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이들 역시 지대 집단이 아닌 중간 계층, 일반 노동자의 대표성을 높이는 거버넌스 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글쎄다, 이런 현상은 신자유주의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현상이다. 노동계급 안에서 서로 경쟁하는 각자도생의 구도를 누가 만들었는가를 따져봐야 할 일이 아닌가싶다.

 

다섯째, 재정, 개혁을 밀고 나가는 데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조세개혁, 정부의 불신이 높아져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조세부담률을 높일 것인가, 아마도 모든 개혁 중 가장 난제일 것이다.

 

마지막 정부 개혁, 2023년 세계 잼버리대회 1,000억 원의 공금의 행방이 묘연했던 사건과 철근을 다 빼먹고 지은 순살 아파트 부패 현장까지, 한국의 부패순위는 수리남, 탄자니아 수준이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할지,

 

개혁의 성공 조건과 핵심 동력, 가장 근원적인 모순부터 해결해야!

 

6대 분야의 개혁은 먼저 돈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세금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재벌 봐주기식의 분위기에서 개미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인다는 인식이 팽배한다. 개혁은 이미 형성된 이른바 기득권을 건드리게 되는데, 기득권이란 애초부터 가진 천부인권같이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내 것을 빼앗긴 기분이 들 것이다. 연금 더 내고 덜 받는데 누가 찬성할까? 지은이는 이러한 정치경제의 역학관계를 고려하면서도, 시론적으로 재정과 시장의 힘을 제시한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면 유인체계가 필요한데, 패거리 정치문화에 오염된 편협한 정부 구성, 규제 장막 뒤에 숨어있는 무기력한 관료집단이 아니라 실력에 포용력을 갖춘 정부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물론 지은이가 6대 분야 개혁의 시론이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과 시장의 힘이 필요하다는 견해에는 수긍한다.

 

결국 대한민국호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동력을 어디에서 얻어야 할까, 지은이 개혁론의 핵심은 정부다, 실력과 포용력을 갖춘 국민이 믿을 만한 정부다. “나를 믿고 따르라” 버전인 셈이다. 이상하게도 박정희의 새마을운동과 국토개발계획이 자꾸 떠오른다. 나를 믿고 따르라.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성장하는 길이다. 그렇게 성장 제일주의의 후유증은 몇 세대에 걸쳐 남는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국방비 감축과 미일한의 군사동맹으로 한반도의 남북대치 상황으로 몰아가는 지정학 리스크가 훨씬 더 커 보인다. 한반도의 모순은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노동계급 간의 분열과 각자도생이 아니라, 거시적으로는 정전상황이다. 일촉즉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은 외국에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관광도 투자도 모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국내 개혁을 이야기하지만, 좀 더 거시적 안목으로 본다면,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의 군비축소, 경제협력관계 개선 등이 훨씬 시너지 효과가 높을 수 있다. 승자독식, 제로섬의 문화 속에서 교육 제도 개선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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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없애는 법
안드레아 바이드리히 지음, 김지현 옮김 / 온워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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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자식은 멀리하는 게 건강에 이롭다

 

참 재미있는 책 제목이다. 지은이 안드레아 바이드리히는 독이 되는 사람과 자기 의심이라는 주제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자기 행복을 위한 심리적 공간, 마음의 여유를 의미하지만, 기실 우리는 늘 이런 여유로운 공간을 그리면서도 마련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맘 편히 유유자적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에 얽매여, 아니 자기에게 얽매여, 벗어나질 못한다. 왜 그럴까?

 

이 책<지긋지긋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없애는 법>, 미련 없이 그 누군가를 마음에서 지워버려?,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산다. 항상 지긋지긋한 사람이 한두 사람쯤은 주변에 있게 마련이니, 여덟 명의 등장인물은 우리다. 늘 주변을 신경 쓰고 살아야 하는 건 인간의 본능 중 하나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악처’라고 알려졌지만, 소크라테스 같은 천하의 백수를 데리고 살아주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는 한술 더 떠서 뭐가 짖는다고 일일이 대꾸하면 못살지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 그는 이런 지긋지긋한 아내의 잔소리를 담을 공간을 만들어뒀음을 의미한다. 기실, 크산티페는 오히려 현자였을지도, 소크라테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으니, 당대 사람들이 마주한 현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 어땠는지, 또한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아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으니, 그의 아내는 그에게 훌륭한 교사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스스로 옭아매는 것으로부터 탈출

 

악연이라는 말, 내가 너를 만난 게 참으로 악연이라고, 악연이든 인연이든 관계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은 자연스레 옷장 속에서 잠자기 마련이고, 아무리 낡고 후줄근해도 내게 맞는 옷만 찾게 되는 게 또 자연스러움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선택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이기에 그렇다. 지은이가 말하는 건 아마도 선택인 듯싶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은 아닌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옷장 안에 넣어두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그 옷의 존재가 나를 옭아맨다. 옷장을 열 때마다 괜히 비싼 돈 주고 샀다는데,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은걸 왜 샀지라며….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과감하게 이 옷을 내다 버린다면, 시원하다 옷장을 열 때마다 그 옷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 정신건강에 좋다는 말이다. 이렇듯, 관계도 깔끔하게 정리하면 될 일, 그게 말처럼 쉽냐?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나를 투사하거나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즉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끄집어낸다.

 

지은이 말처럼 개자식은 멀리하는 게 건강에 이롭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듯, 안 되는 일을 두고 남의 탓을 하지 말고, 되는 일을 찾아라. 변하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다.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너 자신, 곧 자중자애하라는 말이다. 도덕경 72장에 실린 구절을 보자, (전략) 是以聖人自知不自見(시이성인자지불자견) 그런 까닭에 성인은 아는 것으로 자족할 뿐 그것을 나타내어 보이려 하지 않으며, 自愛不自貴(자애불자귀) 스스로 자기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존귀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스스로 귀하게 대우받음을 버리고, 스스로 자중자애한다.

 

바로 이것이 관계를 보는 지은이는 생각인 듯하다. “자중자애”, 나를 사랑하고 아끼라, 세상의 중심은 나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도 아울러 알아야 하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 않으니, 산너머 산이다. 인생이란 본디 첩첩산중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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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 철학자의 삶에서 배우는 유쾌한 철학 이야기
김헌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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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삶에서 배우는 철학이야기

 

지은이 김헌은 “인간다움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인문학자다. 그는 철학자라 하지 않고, 왜 인문학자라 불리기를 원했을까?, 첫머리부터 부딪히는 어려운 숙제다. 이 책의 제목<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뭔가 이상하다.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는 조금은 투박하게 생겼지만, 군인 출신이었어?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풀어보니 말이 된다. 소(so)는 몸이 성하다 뜻이고, 크라테스(kraes)는 튼튼하고 힘이 세다는 말이니, 이른바 ‘돌쇠’ 혹은 ‘돌석’이다. 우리 항일의병장 신돌석처럼, 그는 포티다이아 전투에 중무장 보병으로 참전하였는데, 혹한의 날씨에도 평상복차림으로 군영 밖으로 나가 활보했다고 한다. 맨발로 얼음 위를 걷는데, 양가죽에 담요로 몸을 감싸고 두꺼운 신발을 신은 사람들보다 더 빨리 오래 걸어 다녔다고 한다.

 

지은이가 소크라테스의 이름 풀이를 한 것은 우리가 ‘철학’ 혹은 ‘철학자’ 하면 떠오르는 창백한 얼굴에 우울한 표정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소크라테스는 용맹한 군인이었다. 군인의 이미지는 섬세함보다는 무디고 거침이 앞서기에, 최근 TV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주인공 강감찬 키가 작고 머리가 컸던 강감찬, 인간이란 무엇인지, 윤리와 도덕을 견지했던 신념은 당대의 다른 누구보다 컸고, 용감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에게는 맨날 구박을 받는다. 남들처럼 살라고 잔소리를 듣는다.

 

소크라테스의 역시 그의 부인 크산티페(황금빛이 나는 암말)에게는 형편없는 남편이다. 시장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바구하는 그를 향해 구정물을 끼얹었으니, '악처'로 소문난 그녀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소크라테스는 인류 역사상 손꼽을 만한 백수였기에 남들은 수사학을 가르치고 돈을 벌었는데, 소크라테스는 돈도 받지 않고, 또 돈받고 말하는 이들을 경멸했으니, 그의 아내 눈에는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오지라퍼로 여겨졌을터. 아무튼 이 책은 이런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낸다. 고담준론이 아닌, 생활 속에서 사물과 현상을 보면서 본질을 꿰뚫는 소크라테스의 말솜씨 또한 재미있다.

 

이 책은 문학, 사학,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문·사·철은 인문학이며,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인문학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바로 OOO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 데서 출발하는 하이데거의 철학방법을 소개한다. OOO는 무엇인가?, 붕어빵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응 붕어 모양을 한 빵이야라고 할 수도 있고, 붕어 모양 안에 앙을 넣어서 굽는 것을 말한다고, 즉 붕어빵은 무엇인가는 물음은 붕어빵의 본질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은데, 본질과 정체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찾으려는 노력 과정에서 훌륭한 지식을 얻게 된다고 생각한 하이데거는 바로 이렇게 본질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라고 본 것이다.

 

인문학이란 무엇이며, 또 인문학의 위기란 무엇일까?

 

문·사·철, 인문(人文)은 인간의 무늬를 뜻하는 것이며 이 땅에서 태어나 살다 죽어갈 인간들이 생존과 행복을 위해 새겨 넣은 흔적의 모든 것이다. 인간다움을 탐구하는 공부(스투다아 후마니타티스)가 인문학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이 질문에 답하는 학문이다. 거꾸로 ‘나는 내 안에 무엇을 새겨 넣을 것인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그림을 보느냐에 따라 내 안에 새겨지는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오늘 만난 사람들에게 어떤 무늬를 남겼는가, 내 말은 상대를 미소 짓게 만들고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는 아름다운 인문으로 남았는가, 아니면 상대의 가슴을 아픈 상처로 얼룩지게 만든 저주와 욕설의 난도질이었는가?,

 

인문학의 세 분야, 문, 사, 철, 자연과학에 가까운 철학에서 인간의 내면을 향한 철학으로

 

문학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충실하고 세상과 인간에 관한 진실을 지향하지만, 역사처럼 실증의 덕목에 묶으려 하지 않는다. 인간이 무엇을 했는가를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상상까지를 포함한다. 철학도 역사처럼 인간과 세상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하지만 무엇을 해야만 하고 그렇게 했을 때 인간과 세상은 어떤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단순한 논리 탐구를 넘어 문학에서처럼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철학은 윤리적이고 도덕적 당위성을 제안하는 가운데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대서 결실을 보려 한다. 그래서 인간의 윤리적 문제를 다루었던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본격적인 시작점으로 삼으려 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을 자연 즉 과학에 가까운 것으로 인간의 바깥에 있는 세상과 물건을 향한 것이었다면 소크라테스는 이런 지성을 인간 내면으로 돌렸다.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공동체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그렇게 하려면 어떤 덕이 필요한가,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인문학으로서의 철학을 하며 삶의 방식에 관한 진지한 탐구를 한 것이다.

 

철학, 철학자는 고담준론에 사색에 빠진 사람을 조각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처럼 현실이란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전장을 누비고 다니는 건강하고 힘센 사람이다. 이런 철학자의 생각도 간단하다.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에서 출발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과 이후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철학이란 인문학이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고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지은이는 말하고 싶었던 게다. 개똥철학도 철학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고상 망측하게 한없이 형이상학이니 하학이니 하는 말장난에 휘둘리기보다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한 말만 기억해두면 누구든 철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물질과 세속의 삶에 집착하는 형태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물질적인 가치와 육체적인 욕망이 집착하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면서 영혼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한다고.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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