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연애 안 하겠습니다
최이로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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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혼주의자, 연애도 졸업?

 

최이로 에세이, 책 날개에 적힌 필명 “이로”에 관한 설명, 어찌하여 일본어에서 빌렸을 꼬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자신만의 색과 또 다른 의미 ‘위로’를 함께 드러내기 위함이라, 한자면 어떻고 일본어면 어떠하리, 자기만의 색으로 또 나와 또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는 건 모두의 정신건강에 좋으니.

 

작가는 잠정적 비혼주의입니다.라고 말한다. 요즘은 혼인이 인생의 ‘관혼상제’라는 통과의례에서 성인이 되는 관례(남 20세, 여 15세)다음에 오는 단계다. 누군든 ‘혼인’은 당연하게 여겨져, ‘아직 미혼’이라는 관용구가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미혼과 비혼으로, 또 잠재적, 잠정적 비혼으로 분화해가면서 개념도 혼란스럽다. 남녀든 어린이와 어른, 노인이든 관계라는 것은 제각각이다. 아내와 남편, 여보, 당신으로 부부가 되는 건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관념됐다. 그저 관성적인 연애 후, 혼인, 그리고 자녀의 출생과 육아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는 세대(30년을 1세대로)에서 세대로 넘어가면서 문화든 전통이든 생겨나고 굳어지거나 변하게 마련이다. 졸혼 또한 그런 맥락이다.

 

한 때 한국 월드컵대표팀을 4강까지 이끈 히딩크 감독, 그는 아내를 ‘여자친구’라고 소개했다. 배우자나 부인, 파트너라는 말 대신에 ‘여자친구’라는 표현을, 그래서 법률혼이나 사실혼이냐는 우스운 농담도 회자한 적이 있다. 조금 시간을 뒤로 돌려보면 인간중심의 심리학과 실존철학자로 알려진 에리히 프롬과 페미니스트의 초창기 인물인 <제2의 성>(을유문화사, 2021)의 지은이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아무런 법적 흔적도 남기지 않고 함께 살았다. 남편과 아내로, 학문의 동지로, 아무튼 혼인사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작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니 본론으로 되돌아가 보자.

 

“혼자”라는 건 모든 걸 극복할 힘이 있어야 가능한 것,

 

혼자면 외롭지 않아. 글쎄다 뭘 기준 삼아 외롭다. 또 그렇지 않다고 하는 걸까?, 외로움은 결여, 결핍이고, 내면의 불안이다. 인간의 본능이 무리를 지어사는 군집 동물이라 하고, 남녀가 끌리는 건 당연하며, 사회에 나와 어엿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3가지(직장, 결혼, 자녀)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제 이런 말은 박제화돼가는 중이다. 머지않아 민속박물관 한쪽에 인간세 인류의 생활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혼자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외롭거나 슬프지 않다는 작가의 표현은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린디 엘킨스탠턴이란 유명과학자의 자서전<젊은 여성 과학자의 초상>(흐름출판, 2023)의 부제 차별과 편견을 넘어 우주 저편으로 향한 대담한 도전, 이 부제 역시 엘킨스탠턴의 이야기를 짤막하면서도 적확, 강렬하게 표현한다. 여성이 장식이든 시대, 80년대의 MIT에서 여대생은 그저 남성중심사회를 장식해주는 꽃에 불과해, 꼭 성적으로 입학을 허가한 것은 아니라는 차별과 편견 속의 대학사회.

 

시대가,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그저 여성들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는 데 불과하다. 무슨 혁명적 변화도, 개벽 천지, 신세계가 열린 것도 아니다. 그저 늘 그렇게 있었던 것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작가는 연애라는 열쇳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랑과 이별, 이별 방식은 사별도, 양다리 걸치다가 떠난 경우도,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할 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도, 작가에게는 이런 과정들이 관혼상제처럼 인생의 통과의례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성장통은 청소년기의 신체적 변화만이 아니라 늙어 죽는 그 날까지 겪는 통증이다. 누구에게 호감을 느끼고 이성이든 동성이든 왠지 보고 싶고 자주 만나고, 딱히 오늘부터 하루다 연애하는 거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제목과 달리 연애를 안 하겠다고 다짐한 선언서가 아니다. 비혼주의자를 위한 에세이도 아니다. 작가는 열쇳말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 건강하고 행복한 연애를 하자고 하는 말이다. 헤어지고 울고불고하는 연애는 이제 졸업, 그런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연애’라는 늘 가슴 뛰는 낱말, 관계에서 이해로 진화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어두운 감정들, 잘 떨고 일어서자, 어차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고, 내가 누구한테 인정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면 굳이 인정에 목말라할 필요가 있나? 내가 흐릴 때는 세상도 흐려 보이고, 내가 맑고 밝을 때는 또한 세상도 맑고 밝게 보이니. 자중자애하자. 이 책의 제목은 "저, 연애 안 하겠습니다"로 적혀있지만, "저, 연애 제대로 해보겠습니다"로 바꿔 읽어야 할 듯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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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 - 개정판
박재성 지음 / 가나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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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일반적인 의미에 더해 1446년 세종 28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찍어 낸 목판본 해설서를 고유명사 “훈민정음”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훈민정음 반포에 즈음하여 “전하. 아니 되옵니다. 종주국인 명의 황제께서 이 일을 아시는 날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는 만류 조의 상소가 앞뒤를 가리지 않을 만큼 쏟아진 것인가, 이 책은 최만리의 상소 건으로 일축됐다고 하는데,

 

훈민정음해례본에 감춰진 반역의 징표를 단서로 세조의 왕위 등극과 관련된 일련의 비밀문서, 그리고 세조의 주변 인물들 간의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소설로 엮은 불문학자 김다은의 <덕중의 정원>(무블출판사, 2023)은 해례본의 특정 구절 옆에 붙은 사인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정체 모를 서찰이 세조의 후궁이 된 덕중의 손에서 수양의 조카인 구성군에게 전해지고, 이는 연서 사건 즉, 왕의 여자가 왕의 조카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다는 덕중은 죽임을 당하는 희대 사건이 된다.

 

박재성의 책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은 지은이가 “훈민정음” 창제의 의미와 당대의 찬반론을 소개하는 소설이다. 집필 의도는 집현전 8 학사가 성종조 이후에 생육신과 사육신으로 나뉘면서, 세종조의 그들의 모습과 세조를 지지하면서 왕위찬탈의 정치적 행위에 가담한 이들을 싸잡아 못된 종자로 몰아가고 있어, 이들의 학문적 성과와 정치적 행태는 별개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정치와 윤리 도덕이 한데 어우러지던 동양 세계에서의 가치관과 마키아벨리즘으로 통하는 정치와 윤리 도덕은 별개라는 말,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생육신이니, 사육신이니 하는 구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불릴 정도로 당대 신숙주를 폄훼(?), 아무래도 좋다. 이들에게 조선은 왕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사대부, 아마도 왕도 양반이요, 사대부도 양반이며, 종주국 중국의 변방 제후에 지나지 않는 조선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훈민정음 창제원리를 설명함과 동시에 참여했던 인물의 내력을 상세하게 적고 있다. 세종이 한글 창제에 나서게 된 연유와 그 시대적 배경을 풀어내고 있다.

 

한글은 과거시험에도 나오는 등 보급을 위한 조처가 있었지만, 연산조에 이르러 그를 비방하는 언문(당대에는 한글을 이리 표현했다, 언서, 언자, 언해, 암클이라니 중글이라나)을 한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춰 부르는 말, 반절(反切)이라고도 했는데, 이를 아예 그냥 못쓰게 하기도 했다. 백성들이 한글을 읽게 되니, 다스리기가 거북할 때도 있었던겐가. 한편으로는 언문으로 어떤 양반이 내 땅을 훔쳐갔다고 고을 원에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만리가 걱정했던 것처럼 백성들이 똑똑해지니 속여먹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박재성은 최만리, 정창손 등을 사대 모화사상에 젖은 보수주의자로 봤다. 기실 이들은 세상의 중심은 중국이요, 한자, 한문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황제의 눈 밖에 벗어날 것이라,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우리에게 맞는 달력, 농사를 짓는 데 아무리 필요해도 독자적인 달력과 글을 갖는다는 것은 중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셈인데, 이런 움직임은 조선은 독립국, 세종은 거기까지는 아니라고 했지만, 진짜 그러했던 것인가?, 문화창달, 과학기술 발달의 진정한 목표와 의도는 어디에 있었을까?,

 

백성은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것만 알면 되지 문자 속을 알아 정치를 한다면 누가 농사를 짓겠느냐는 계급의식의 반영에서 훈민정음 반포와 사용을 반대했다. 30여 년간을 열심히 읽혀, 지배자들만의 소통 도구, 이른바 특권이며 기득권인데 불과 며칠 만에 문자를 깨우친다면 이 나라는 어디로 가겠느냐는 것이다. 훈민정음 반포 반대 사유가 조금은 그렇다.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세종의 나라가 더 이어진다면 백성의 나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를 우려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상상의 나래가…. 소설은 픽션이다. 팩션도 있다. 역사적 사실의 공백 속에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퍼즐을 맞춰내듯, 허구를 섞어 넣은 그런 글.

 

소헌왕후는 이미 세종 14년(1432년)에 공비가 아닌 왕비로 승봉됐는데, 1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중전을 공비라 칭했다고 하니 조금은 괴이하다. 아울러 문자 창제를 도울 인재를 발굴하다(35쪽)에서 이때까지만 해도 생원시나 진사시에 급제했다 하더라도 관직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대목이, 하위지, 성삼문, 신숙주, 이선로 등을 생원진사때 집현전 학사로 발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위지나 성삼문은 1435년(세종 17)에 생원시를 거쳐, 1438년(세종 20)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했다. 위의 문장은 생원과 진사시에 급제해도 관직에 들어설 수 없었는데 세종은 이들을 알아보고 생원, 진사를 집현전 학사로 발탁한 것처럼 읽히기 쉽다. 기실 이들은 전부 이른바 과거급제(대과)를 했다는 말이다.

 

초성과 중성 그리고 훈민정음을 완성하는 과정을 엮어내는 대목이 왕 세종의 탐구정신이 도드라지는 게 한다. 소설의 백미라면 이 대목일 듯 싶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소설 밖 세상을 상상하기가 조금은 곤란한 대목들. 정창손이 성종 때 영의정을 하게 된 것은 세종의 가르침이자 사대부의 도리…. 영 닿지 않는 표현들이 눈에 띈다. 진짜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세종이 왕위찬탈 또한 양해했다는 말인가? 책장을 덮으면서 의욕이 앞선 글이란 생각이 든다. 세종의 정치사상의 본류를 헤아려본다면, 물론 왕도정치론이었겠지만, 백성을 바탕으로 삼는 실질적인 양인의 나라로 발전이... 양반들의 나라가 아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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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실천이성비판 -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박정하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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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칸트라는 철학의 저수지, 근대 이성의 완성자

 

지은이 박정하는 칸트를 한마디로 정의한다. 칸트의 철학은 서양 철학사의 중앙에 자리 잡은 큰 저수지다. 칸트 이전의 철학이 모두 칸트에게 흘러들었고, 그 이후 철학은 모두 칸트에게서 흘러나왔다고, 칸트의 철학 3부작,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 중, 순수이성비판은 예비작업이자 중간 과정이며, 실천이상비판은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출발점으로 현재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주요 윤리 이론 중의 하나인 의무주의 원리를 제시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에게 “실천이성비판”이 주어진다 해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지은이가 짚어주는 칸트의 철학적 흐름은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칸트의 철학 세계로 안내해준다. 순수이성과 실천이성과 판단력 모두 “비판”이 따라붙는다. 칸트에게 “비판”이란 기존의 이해에 대한 재해석이며, 이론 이성과 실천 이상 역시 하나의 이성의 두 개의 얼굴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이성에 관한 무비판적 수용에서 벗어나 톺아보면서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열쇠였던 셈이다.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의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에서 공리주의와 의무주의,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등은 이른바 윤리의 삼국시대, 공리주의와 득윤리, 의무주의에 관한 생각들도 엿볼 수 있다.

 

실천이성비판 읽기

 

칸트는 도덕법칙은 정언 명령이라 이해한다. 도덕은 만약이란 조건이 붙은 가언 명령과 정언 명령, 무조건 따라야 하는 불가역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는 것을 정언 명령으로 제시한다. 개인의 이해관계나 관심을 넘어서 ‘보편적’ 관점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덕법칙의 토대는 실천이성

 

칸트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우하고, 단지 수단으로서 대우하지 말라는 것 또한 정언 명령으로 제시한다. 다른 사람의 존엄성과 권리를 해치지 않는 원칙만이 도덕법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도덕법칙은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것으로 본 칸트는 자연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의 법칙을 넘어설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로 파악한다. 따라서 자유는 인간에게 자연적 본능과 욕망을 이겨내고 의무를 지킬 힘을 준다. 자유의 힘을 통해 인간은 도덕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다고….

 

우리가 일상에서 모든 그것에 거짓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려는 것은 사실이다. 거짓말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이미 우리는 도덕법칙을 알고 있는데, 이를 ‘이성의 사실’이라 표현한다. 지적능력의 유무도 계급, 신분과도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모두 이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고, 자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의무주의의 한계는?

 

의무주의의 한계는 없을까? 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답은 쉽지 않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의무의 충돌,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면 어떻게 될까?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와 진실해야 한다는 의무 중 어느 것이 우선일까? 실천이성은 여기에 시원한 답을 해주지는 않는다. 아울러 의무만으로 우리의 도덕 행위를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관용, 친절, 자선은 의무적으로 꼭 지켜야 할 덕목은 아니지만, 도덕적 권장 사항임에는 틀림이 없다. 의무 개념만으로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다 포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칸트로 대표되는 의무주의는 어떠한 이유로도 훼손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강조한다. 즉, 충분, 완전하게 설명을 할 수 없는 의무주의란 본디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닐까, 의무주의와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가? 역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칸트는 “이성”에 관해 우리에게 생각을 해보라고 하기에 여전히 읽히는 철학서가 아닐까 싶다. 세상이 바뀌면 사람의 생각도 변한다고 하지만, 영구불변의 원칙은 존재한다. 바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이성”이라는 점이다. 지은이가 안내하는 칸트의 철학은 우리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즉, 칸트를 다시 읽어야 할 의미를 설명해준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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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사용한 조작의 역사 -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숫자들
앙투안 울루-가르시아.티에리 모제네 지음, 정수민 옮김 / 북스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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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순사기, 가짜뉴스, 탈진실의 원천으로

 

우리가 숫자를 전혀 이해하기 못했기에 숫자의 힘은 더 존경받고 있다는 볼테르의 아포리즘으로 시작하는 이 책<숫자를 사용한 조작의 역사>은 정치이론에 사용되는 수학 연구자 앙투안 울루 가르시아와 작가 티에리 모제네가 썼다. 통계를 “새빨간 거짓말”이라 부르는 식의 책들과 같은 맥락으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총리였던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거짓말, 지독한 거짓말, 그리고 통계가 있다고, 볼테르 역시 조작되거나 잘못 해석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 숫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으니, 때때로 대의를 모두를 위한 선량한 거짓말 또는 사기에 동원되는 숫자, 신문 기사에 나오는 숫자, 편집의 마술을 부리면, 나쁜 것도 형편없는 것도 긍정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탈바꿈하니, 과학에서 통계나 숫자를 가지고 사기 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 책은 10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숫자” 위험한 관계, 마키아벨리 계산, 국가가 요구하는 숫자, 평균인에서 제거 대상으로, 죄수의 방정식, 지표통치 등 낯설지 않은 주제들이다.

 

피타고라스- 모든 것은 숫자다

 

귀족에 봉사하는 숫자, 피타고라스가 꿈꾼 이상 도시는 철학, 수학, 정치로 구성된다고, 모든 것을 숫자로 표시할 수 있으니, 그의 숫자는 모든 것이 수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수에 따라 형성된다고, 아무튼 그는 수학과 정치를 연결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마키아벨리의 계산법

 

지은이는 폰 노이만의 “게임이론”의 원류는 마키아벨리라고 본다. 도시국가들 사이에 주도권쟁탈전에 항상 적들보다 한발 앞서가려면 전략을 잘 짜야 하는데, 적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좁히면서 두 진영이 대결하는 힘의 메커니즘을 수치화했다. 인간성을 배제한 그의 수학적 모델은 용기, 공정함, 사랑과 희생이란 모든 것을 배제했다. 이른바 정치의 3대원칙을 잘 수행한 것이다.

 

게리맨더링의 사고도 역시 숫자놀음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용어다. 정부·여당이 선거에서 승리가 보장되는 선거구획정을 말한다.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숫자란 의미다. 선거구획정이 위험한 조작인가, 정치적 선택인가?,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보다 낮은 총득표수를 얻고서도 승리한 이유는 다수결의 함정에 있었다. 아니다. 우리가 단순 다수결제에 익숙한 탓이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총득표수가 아니라 주 단위로 몇 개 주에서 승리했냐를 따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숫자와 정치라는 열쇳말만 두고 보자면,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권력남용 혐의가 2심에서 48가지 혐의없음 ‘무죄’ 선고됐다. 이른바 사법부의 권력 지향, 해바라기파 정치 판사를 구분하는 기준을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직업), 재산, 출신학교 등을 검색어로 해서 분류, 수치화하면 어떨까, 아마도 “유전무죄” 원칙이 작동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런 면에서는 숫자란 확실하고도 명확하다. 이른바 경향성을 밝히는 데는 말이다. 지금 국회의원 비례대표의석수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도 숫자다. 여기에 숨겨진 권력의 메커니즘이 보일까?

 

오염을 줄이려면 오염을 늘리면 된다(희한한 법칙)

 

목적을 가진 통계지표는 그 자체로 속임수다. 디젤게이트 사건, 폭스바겐의 엔진 오염 발생 수치 조작은 고객에는 비용을 줄여주고, 검사 당국에서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엔진이니 양쪽 모두 만족한 결과다. 그 반대도 있다. EU 산하 공동연구센터는 2018.7.자동차제조업체들이 발표한 CO2의 배출량이 실제보다 높다고 밝혔다. 이들은 왜 수치를 높였을까? 여기에 동원된 굿 아이디어는 “역설”이었다. 유럽에서는 자동차 CO2 배출량을 줄이라고 요구하기에 목표 수치에 쉽게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치를 부풀리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100을 배출하면 80까지 줄어야 하지만, 110을 배출한다고 하면 90까지 줄이면 되는 것이어서 목표치가 20에서 10으로 낮아진다, 그럼 비용도 당연히 줄어드니까,

 

의견을 수치화해 여론을 바꾸자 "탈진실"

 

미국의 정치판 “아스트로터핑” 1980년대 중반 텍사스 상원의원 로이드 벤슨 앞으로 수백 통의 편지를 날아든 것이다. 이 편지는 보험 회사가 이익을 지키려고 로비, 조작한 것으로 벤슨은 텍사스 사람이라면 잔디와 아스트로 터프의 차이점을 알고 있다고 해서 생겨난 용어가 바로 아스트로터핑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중의 활동을 가장해 다수의 의견처럼 만들어내는 관행이란 뜻이다.

 

탄소발자국 감소, 생태학적 성과, 지표 조작으로 안 될 때는 처음부터 수치를 날조한다. SNS 팔로우 수 늘리기, 좋아요 엄청많이 만들기는 수 천 개의 가짜 프로필을 만들어 ‘좋아요’를 누르면 그만이다. 국정원의 유명한 ‘댓글 조작’처럼, 신문사들 또한 유가부수 조작을 통해 몸집 부풀리기를 한다. ABC 협회에 등록된 신문사는 발행 부수를 공개해야 하는데, 마구 찍어내, 유가율이 90%, 80% 이렇게 수치를 보고하고, 절반 이상을 폐지로 동남아에 수출, 과일 싸개 종이로 한국 신문이, 신문이 물건을 돌돌 말아 싸주는 포장지로. 책 출판도 그러하다. 베스트셀러, 밀리언셀러는 몇만 부가 팔려야 할까? 역시 숫자에 눈이 가는데 이 역시 마케팅기법일 뿐, 정작 스테디셀러처럼 꾸준히 인기를 얻은 책은 숫자에서 제외, 이걸 신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에는 대형 서점 온·오프라인을 통해 책 내용은 뒤로하고 요즘 이게 핫하고,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사보는 수밖에, 정보홍수 시대에 진짜 깜깜이는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자 무대를 바꿔보자. 신문의 광고성 기사란에는 침소봉대, 부풀리기에 동원되는 것이 여론조사, 설문조사 등 그럴싸한 포장을 씌워서 내보내는 데 역시, 숫자가 붙고, 퍼센트에 어쩌고저쩌고하면 믿을 수밖에... 바로 숫자와 정치, 볼테르가 예리하게 당대의 세태를 지적했듯이 숫자를 이해를 못 하면 무조건 존경할 수밖에.

 

진실을 가리는 교묘한 숫자는 기원전 6세기 한 수학자로부터 시작됐다. 어떤 목적을 가진 통계라면 절반은 털고 보자는 생각이, 하지만 정작 자신에 관한 일이라면 백 퍼센트 신뢰하는 심리 현상, 그 맨바닥에는 숫자가 있다. 숫자 놀음만 잘해도 인간을 98%짜리 유인원처럼 다룰 수 있게 되니. 이 얼마나 기막힌 무기인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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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밍 웨이브
무스타파 술레이만 지음, 마이클 바스카 정리, 이정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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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물결, 제4의 물결, 물결은 늘 전대미문

 

미국의 문명평론가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농경 기술발견의 ‘제1의 물결’을 지나, 산업혁명 기간을 ‘제2의 물결’로, 정보 통신 기술 기반의 정보화 사회를 ‘제3의 물결’이라 했다. 이제 인공지능과 합성생물학을 핵심기술로 인간 사회에 밀어닥친 ‘제4의 물결’,

 

이 책에서는 ‘다가오는 물결’(더 커밍웨이브)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가 앞선다고 말한다. 과유불급, 적정선을 유지하는 게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토플러는 제3의 물결 시대도래로 가치관의 붕괴와 가족관계 혼란, 고독한 군중, 파편화된 개인 등의 사회문제를 초래했지만, 정신만 차리면 미래는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폈다. 하지만 지은이들은 지금 급속하게 발전해 가는 두 개의 핵심 기술의 일으키는 제4의 물결의 미래는 인류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전례 없는 위험을 초래하여 재앙, 디스토피아가 될지, 장밋빛 미래가 될지 모른다고 했다.

 

이들이 염려하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의 급속한 기술발전이 독보적인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며, 인공지능 등 혁명적인 도전이 가져올 수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어떻게 억제, 회피할 것인가 지금 당장 정부가 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결들은 늘 전대미문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물결”이라 부르는 것이다. 모르기에 두렵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합성생물학, 두 개의 핵심 기술이 세상을 좌지우지한다고?

 

다가오는 물결은 인공지능(AI)과 합성생물학(synthetic bio)이 두 가지 핵심기술로 정의된다.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고 부와 여유를 가져다주는 한편 이런 기술의 확산은 다양한 방식의 악의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혼란과 불안전, 재앙까지도 일으킬 힘을 줄 수 있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딜레마다.

 

AI는 수많은 실직자를 만들어 낼 수도, 새로운 무기가 되면 네트워크 세계는 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맞춤형 DNA 가닥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합성생물학의 미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까, 지은이들은 비관주의 회피함정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 즉, 잠재적 위협이나 부정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 두 가지 핵심기술로 만들어질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장밋빛 미래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를 지워버리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심리적 특성이 그러하니 당연한 염려다.

 

이 책은 4부 14장에 체제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기술변화 물결의 역사를, 2부에서는 다가올 물결에 대해 살펴본다. 인공지능과 합성생물학을 둘러싼 세계적인 경쟁과 인센티브 그리고 마주하는 딜레마를, 3부에서는 억제되지 않은 기술의 물결이 가져올 거대한 권력 재분배의 정치적 함의를, 국민국가의 체계는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형태의 폭력, 잘못된 정보의 홍수, 사라져 가는 일자리, 치명적인 사고 등 새로운 물결로 증폭된 충격으로 더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적고 있다. 4부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기술을 억제하고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방법은 무엇일까?

 

억제와 억제 문제, 대합의 요구

 

억제는 기술을 감시, 축소, 통제, 잠재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는 능력이며, 기술이 물결을 일으켜 광범위하게 확산하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 예측과 통제 불능의 돌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향의 문제(억제 문제)가 발생하면 인류사회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억제 곤란 상황(더 심화할 수 있는 고유한 특징-비대칭성, 초진화성, 만능성, 자율성-으로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 같은 디스토피아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에 더해 국가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며 이의 해소방안으로 사회적 합의(대합의,GRAND BARGAIN) 시민들은 국가가 무력 사용권을 독점하는 대신 새로운 기술을 활용, 질서를 유지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해로운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을 기대하는)을 하게 될 것이다.

 

억제를 위한 10가지 단계

 

동심원을 그리듯 외연을 확장해나가는 것인데, 첫째로 ‘기술 안전’이다. 챗GPT를 호평하면 호들갑을 떠는 행위 뒤에 감춰진 양면성, “가짜 뉴스”를 진짜처럼 만들어내는 부작용에 대한 통제, 기술이 진전된다고 기술적인 수정만으로 인공지능이 일으키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한다. 이른바 ‘비관주의적 회피함정’에 빠지게 될 테니까, 지은이는 기술 안전을 위한 아폴로계획(인류의 달탐사계획처럼)을 세우자고 제안한다. 둘째로 감사, 늘 감시해야 한다. 지식은 힘이고 힘은 통제이듯이, 기술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장하는 수단이다.

 

셋째, 초크 포인트다. 소수의 선진국이나 기업만이 가진 핵심기술, 소재, 부품의 확산을 늦추자는 것이다. 개발 속도를 늦추고 규제 기관과 방어기술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수단, 제작자, 비평가 참여해야 한다. 즉, 책임감 있는 개발자가 처음부터 적절한 통제 장치를 기술에 통합하도록 보장한다. 다섯째, 기업의 이익과 목적, 기술 배후에 있는 조직의 인센티브를 기술 억제에 맞춰 조정한다. 여섯째 정부, 정부가 기술을 구축, 규제, 완화 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일곱째, 조약, 동맹의 시대, 국제조약을 맺어서 협력시스템을 만들기, 여덟째, 문화, 학습과 실패를 공유하는 문화 조성을 통해 신속한 해결 방법을 전파한다. 아홉째, 운동, 민중의 힘은 각 구성요소에 압력을 행사하고 책임을 묻는 등 모든 수준에서 대중의 의견이 필요하다, 열째 좁은 길, 앞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로 인류가 재앙적 또는 디스토피아적인 결과를 피하고자 다가오는 기술의 물결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개방성과 폐쇄성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길러야 한다.

 

챗GPT가 열어줄 미래, 학술논문 작성 챗GPT 활용법을 광고마저 등장했다. 아예 논문작성을 맡기기도 한단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는 다르다. 창의성이란 본질에서 접근방법이 전혀 다른데, 비관적인 회피함정에 빠진 것인지, 기술의 물결, “계륵”인가, “뜨거운 감자”인가, 제3의 물결을 맞이하는 시대에 전하는 토플러의 말처럼 정신체계를 재구축, 이른바 정신 차리자, 장밋빛 환상 뒤에 감춰진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면서 조심스레, 넘침도 부족함도 없는 상태가 이상적인데...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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