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 - 개정판
박재성 지음 / 가나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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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일반적인 의미에 더해 1446년 세종 28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찍어 낸 목판본 해설서를 고유명사 “훈민정음”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훈민정음 반포에 즈음하여 “전하. 아니 되옵니다. 종주국인 명의 황제께서 이 일을 아시는 날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는 만류 조의 상소가 앞뒤를 가리지 않을 만큼 쏟아진 것인가, 이 책은 최만리의 상소 건으로 일축됐다고 하는데,

 

훈민정음해례본에 감춰진 반역의 징표를 단서로 세조의 왕위 등극과 관련된 일련의 비밀문서, 그리고 세조의 주변 인물들 간의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소설로 엮은 불문학자 김다은의 <덕중의 정원>(무블출판사, 2023)은 해례본의 특정 구절 옆에 붙은 사인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정체 모를 서찰이 세조의 후궁이 된 덕중의 손에서 수양의 조카인 구성군에게 전해지고, 이는 연서 사건 즉, 왕의 여자가 왕의 조카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다는 덕중은 죽임을 당하는 희대 사건이 된다.

 

박재성의 책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은 지은이가 “훈민정음” 창제의 의미와 당대의 찬반론을 소개하는 소설이다. 집필 의도는 집현전 8 학사가 성종조 이후에 생육신과 사육신으로 나뉘면서, 세종조의 그들의 모습과 세조를 지지하면서 왕위찬탈의 정치적 행위에 가담한 이들을 싸잡아 못된 종자로 몰아가고 있어, 이들의 학문적 성과와 정치적 행태는 별개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정치와 윤리 도덕이 한데 어우러지던 동양 세계에서의 가치관과 마키아벨리즘으로 통하는 정치와 윤리 도덕은 별개라는 말,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생육신이니, 사육신이니 하는 구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불릴 정도로 당대 신숙주를 폄훼(?), 아무래도 좋다. 이들에게 조선은 왕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사대부, 아마도 왕도 양반이요, 사대부도 양반이며, 종주국 중국의 변방 제후에 지나지 않는 조선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훈민정음 창제원리를 설명함과 동시에 참여했던 인물의 내력을 상세하게 적고 있다. 세종이 한글 창제에 나서게 된 연유와 그 시대적 배경을 풀어내고 있다.

 

한글은 과거시험에도 나오는 등 보급을 위한 조처가 있었지만, 연산조에 이르러 그를 비방하는 언문(당대에는 한글을 이리 표현했다, 언서, 언자, 언해, 암클이라니 중글이라나)을 한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춰 부르는 말, 반절(反切)이라고도 했는데, 이를 아예 그냥 못쓰게 하기도 했다. 백성들이 한글을 읽게 되니, 다스리기가 거북할 때도 있었던겐가. 한편으로는 언문으로 어떤 양반이 내 땅을 훔쳐갔다고 고을 원에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만리가 걱정했던 것처럼 백성들이 똑똑해지니 속여먹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박재성은 최만리, 정창손 등을 사대 모화사상에 젖은 보수주의자로 봤다. 기실 이들은 세상의 중심은 중국이요, 한자, 한문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황제의 눈 밖에 벗어날 것이라,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우리에게 맞는 달력, 농사를 짓는 데 아무리 필요해도 독자적인 달력과 글을 갖는다는 것은 중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셈인데, 이런 움직임은 조선은 독립국, 세종은 거기까지는 아니라고 했지만, 진짜 그러했던 것인가?, 문화창달, 과학기술 발달의 진정한 목표와 의도는 어디에 있었을까?,

 

백성은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것만 알면 되지 문자 속을 알아 정치를 한다면 누가 농사를 짓겠느냐는 계급의식의 반영에서 훈민정음 반포와 사용을 반대했다. 30여 년간을 열심히 읽혀, 지배자들만의 소통 도구, 이른바 특권이며 기득권인데 불과 며칠 만에 문자를 깨우친다면 이 나라는 어디로 가겠느냐는 것이다. 훈민정음 반포 반대 사유가 조금은 그렇다.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세종의 나라가 더 이어진다면 백성의 나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를 우려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상상의 나래가…. 소설은 픽션이다. 팩션도 있다. 역사적 사실의 공백 속에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퍼즐을 맞춰내듯, 허구를 섞어 넣은 그런 글.

 

소헌왕후는 이미 세종 14년(1432년)에 공비가 아닌 왕비로 승봉됐는데, 1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중전을 공비라 칭했다고 하니 조금은 괴이하다. 아울러 문자 창제를 도울 인재를 발굴하다(35쪽)에서 이때까지만 해도 생원시나 진사시에 급제했다 하더라도 관직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대목이, 하위지, 성삼문, 신숙주, 이선로 등을 생원진사때 집현전 학사로 발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위지나 성삼문은 1435년(세종 17)에 생원시를 거쳐, 1438년(세종 20)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했다. 위의 문장은 생원과 진사시에 급제해도 관직에 들어설 수 없었는데 세종은 이들을 알아보고 생원, 진사를 집현전 학사로 발탁한 것처럼 읽히기 쉽다. 기실 이들은 전부 이른바 과거급제(대과)를 했다는 말이다.

 

초성과 중성 그리고 훈민정음을 완성하는 과정을 엮어내는 대목이 왕 세종의 탐구정신이 도드라지는 게 한다. 소설의 백미라면 이 대목일 듯 싶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소설 밖 세상을 상상하기가 조금은 곤란한 대목들. 정창손이 성종 때 영의정을 하게 된 것은 세종의 가르침이자 사대부의 도리…. 영 닿지 않는 표현들이 눈에 띈다. 진짜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세종이 왕위찬탈 또한 양해했다는 말인가? 책장을 덮으면서 의욕이 앞선 글이란 생각이 든다. 세종의 정치사상의 본류를 헤아려본다면, 물론 왕도정치론이었겠지만, 백성을 바탕으로 삼는 실질적인 양인의 나라로 발전이... 양반들의 나라가 아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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