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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의 역사 1 - 왕조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경성의 산업 ㅣ 상업의 역사 1
박상하 지음 / 주류성 / 2024년 1월
평점 :
상업의 역사
조선왕조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성의 상업(1권)과 광복과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움튼 산업(2권) 부제는 상업의 역사라 하기에는 일천했고,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졌던 상업(금난전권), 상업계, 상계의 역사는 껍질의 밖이었다고 지은이 박상하는 말한다.
지은이는 1권에서 한·중·일 동북아의 삼국에서의 상업 발전 단계를 눈여겨보면서, 왜 조선에서 상업이 부흥하지 못했는지, 당대의 상업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왜 상업이 번성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을 살핀다. 2부에서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후 혼란 속에서 움튼 산업을, 이병철의 삼성과 정주영의 현대, 그리고 10대 재벌, 2부의 이야기는 꽤 알려진 것들이라, 한중일 삼국의 상업활동에 관한 인식을 들여다 본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서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는 화식(貨殖)열전이 실려있다. 열전이란 여러 사람의 전기를 차례로 벌여놓은 책이란 의미다. 화식은 재물을 늘린다는 뜻인데 상경(商經:상업의 교리, 성업에 관한 성인들의 글, 이른바 상업에 관한 경전)으로 친다.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불멸의 상경은 시부사와 에이치의 <논어와 주판>이라고, 공자는 결코 화식, 상업을 부자가 되는 것을 나무라지도 폄훼하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사농공상의 질서
상업, 상행위, 화식, 아무튼 재산을 늘리는 것은 절대 좋지 않은 일이며, 군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조선,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상인은 계급 위계의 맨 아래에 놓았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강령은 땅에 씨뿌리고 땀 흘려 김을 매고 수확하는 생산이 윗길이었다. 쌀이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옮겨주고 이문을 챙기는 짓은 비루하다는 것이다.
생산 이외의 부가가치를 낳는 활동은 이른바 기생충처럼 남의 피를 빨아먹는 짓이라고 본 것이다. 조선 시대를 통해 상업을 규제했던 ‘억말무본’ 즉, 상업활동은 백성들을 간사하게 만들뿐더러 숭유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성리학의 교화에도 어긋난다고 보았다. 이는 일본의 에도 막부에서도 같은 인식이었다. 임진년 조선 정벌에 합류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오사카의 상인 집안 출신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하급 무사 출신으로 가벌도 문벌도 없는 그야말로 나 홀로 성공한 사례다. 그에게 필요한 경제력의 바탕은 상업장려를 통해 얻은 것들이었다. 아무튼, 17세기 일본의 사회 신분질서는 사농공상이었다. 상인에게 부정적이었던 사무라이, 바쿠후는 유력 상인들의 집 안을 감시하는 오염된 진흙과 방까지 두면서 상인들의 검소한 생활을 강제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지배질서의 유지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런 역사적 맥락의 고려는 하지 않고 삼국이 모두 불교와 유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상업을 장려했고,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고는 평한 대목은 의아스럽다. 지은이는 상업활동의 경전, 즉 상경을 중국의 기원전에 쓴 사기 속 화식열전으로 봤고, 일본의 그것은 1840년에 태어난 시부사와 에이치가 쓴 이른바 한 손에는 논어를 또 한 손에는 주판을, <논어와 주판>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이라면 조선의 거상 임상옥의 계영배가 상경이 아니겠는가, 넘치지 않도록 늘 경계하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 소설 허생전에서도 상업과 유통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고.
결국,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허용된 상업활동은 육의전, 보부상과 개성 상단, 평양 상단, 의주 만상, 동래 상단(전국 4대 상단)은 사농공상의 질서 속에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조 선상 계를 이끌었다. 이것이 조선 상계의 참모습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조선 말기의 사회는 대다수 남성은 ‘양반’이었다. 계급 질서가 무너졌다. 사농공상의 질서가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고, 대한제국, 한일병탄, 일제강점기의 상업활동, 민족자본, 독립자금, 이때 출현한 기회주의자들 삼성의 이병철. 해방공간에서 광주고속을 만들었던 박인천, 도립대학이던 조선대학을 꿀꺽 삼켜버린 박철웅, 이들은 조선 시대 임상옥이 말한 ‘상인 정신’은 상자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이들이다. 상인에게 귀한 것은 물건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지은이는 불행하게도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역사에선 이 같은 상경이 없다. 율곡과 퇴계가 남겼다는 무수한 저서 속에도, 개혁 군주의 아이콘 정조의 많은 어록에서도,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의 책 곳간에서도, 문·사·철의 일체를 추구한다는 조선 선비의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11쪽)
“우리는 왜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라고 해서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역사가 없었는지 안타깝다. 2천 여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과 같은 19세기 만이라도 누군가 그 같은 상경을 써내고 널리 읽혔다면, 우리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 (12쪽)
이 글은 조선 시대에 적어도 19세기 말이라도 상업에 눈을 뜨고, 이윤추구를 나쁜 짓이 아니라고 장려했어야 했는데라고, 적어도 이렇게 읽힌다.
자, 보자 조선초 태조, 태종조에 걸친 이들 하륜도 세조의 신하가 된 신숙주 등 유학이든 뭐든 조선의 대표주자들의 상당수가 고리대금업자였다는 사실을 아는지, 상업보다 더 윗길인 금융업에 손을 댄 것이다. 율곡과 퇴계는 성리학자다. 상업을 부정적으로 본 사람들인데, 그들에게서 상업을 권하는 서책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조선의 지배층이었기에, 양반은 지주였기에, 이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군사력을 움직일 돈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고 했지 않았는가, 지배층에 가난이란 청빈한 삶이었다. 즉, 이들은 각각의 처지가 달랐기에 가치도 전혀 달랐던 것이다. 이들에게서 “상경”을 찾는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상업활동 현상을 보는 것인지, 상업과 상인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보는 것인지, 책을 읽는 동안 계속 헷갈린 대목이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