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의 역사 1 - 왕조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경성의 산업 상업의 역사 1
박상하 지음 / 주류성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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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의 역사

 

조선왕조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성의 상업(1권)과 광복과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움튼 산업(2권) 부제는 상업의 역사라 하기에는 일천했고,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졌던 상업(금난전권), 상업계, 상계의 역사는 껍질의 밖이었다고 지은이 박상하는 말한다.

 

지은이는 1권에서 한·중·일 동북아의 삼국에서의 상업 발전 단계를 눈여겨보면서, 왜 조선에서 상업이 부흥하지 못했는지, 당대의 상업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왜 상업이 번성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을 살핀다. 2부에서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후 혼란 속에서 움튼 산업을, 이병철의 삼성과 정주영의 현대, 그리고 10대 재벌, 2부의 이야기는 꽤 알려진 것들이라, 한중일 삼국의 상업활동에 관한 인식을 들여다 본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서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는 화식(貨殖)열전이 실려있다. 열전이란 여러 사람의 전기를 차례로 벌여놓은 책이란 의미다. 화식은 재물을 늘린다는 뜻인데 상경(商經:상업의 교리, 성업에 관한 성인들의 글, 이른바 상업에 관한 경전)으로 친다.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불멸의 상경은 시부사와 에이치의 <논어와 주판>이라고, 공자는 결코 화식, 상업을 부자가 되는 것을 나무라지도 폄훼하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사농공상의 질서

 

상업, 상행위, 화식, 아무튼 재산을 늘리는 것은 절대 좋지 않은 일이며, 군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조선,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상인은 계급 위계의 맨 아래에 놓았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강령은 땅에 씨뿌리고 땀 흘려 김을 매고 수확하는 생산이 윗길이었다. 쌀이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옮겨주고 이문을 챙기는 짓은 비루하다는 것이다.

 

생산 이외의 부가가치를 낳는 활동은 이른바 기생충처럼 남의 피를 빨아먹는 짓이라고 본 것이다. 조선 시대를 통해 상업을 규제했던 ‘억말무본’ 즉, 상업활동은 백성들을 간사하게 만들뿐더러 숭유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성리학의 교화에도 어긋난다고 보았다. 이는 일본의 에도 막부에서도 같은 인식이었다. 임진년 조선 정벌에 합류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오사카의 상인 집안 출신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하급 무사 출신으로 가벌도 문벌도 없는 그야말로 나 홀로 성공한 사례다. 그에게 필요한 경제력의 바탕은 상업장려를 통해 얻은 것들이었다. 아무튼, 17세기 일본의 사회 신분질서는 사농공상이었다. 상인에게 부정적이었던 사무라이, 바쿠후는 유력 상인들의 집 안을 감시하는 오염된 진흙과 방까지 두면서 상인들의 검소한 생활을 강제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지배질서의 유지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런 역사적 맥락의 고려는 하지 않고 삼국이 모두 불교와 유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상업을 장려했고,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고는 평한 대목은 의아스럽다. 지은이는 상업활동의 경전, 즉 상경을 중국의 기원전에 쓴 사기 속 화식열전으로 봤고, 일본의 그것은 1840년에 태어난 시부사와 에이치가 쓴 이른바 한 손에는 논어를 또 한 손에는 주판을, <논어와 주판>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이라면 조선의 거상 임상옥의 계영배가 상경이 아니겠는가, 넘치지 않도록 늘 경계하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 소설 허생전에서도 상업과 유통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고.

 

결국,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허용된 상업활동은 육의전, 보부상과 개성 상단, 평양 상단, 의주 만상, 동래 상단(전국 4대 상단)은 사농공상의 질서 속에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조 선상 계를 이끌었다. 이것이 조선 상계의 참모습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조선 말기의 사회는 대다수 남성은 ‘양반’이었다. 계급 질서가 무너졌다. 사농공상의 질서가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고, 대한제국, 한일병탄, 일제강점기의 상업활동, 민족자본, 독립자금, 이때 출현한 기회주의자들 삼성의 이병철. 해방공간에서 광주고속을 만들었던 박인천, 도립대학이던 조선대학을 꿀꺽 삼켜버린 박철웅, 이들은 조선 시대 임상옥이 말한 ‘상인 정신’은 상자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이들이다. 상인에게 귀한 것은 물건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지은이는 불행하게도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역사에선 이 같은 상경이 없다. 율곡과 퇴계가 남겼다는 무수한 저서 속에도, 개혁 군주의 아이콘 정조의 많은 어록에서도,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의 책 곳간에서도, 문·사·철의 일체를 추구한다는 조선 선비의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11쪽)

 

“우리는 왜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라고 해서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역사가 없었는지 안타깝다. 2천 여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과 같은 19세기 만이라도 누군가 그 같은 상경을 써내고 널리 읽혔다면, 우리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 (12쪽)

 

 

이 글은 조선 시대에 적어도 19세기 말이라도 상업에 눈을 뜨고, 이윤추구를 나쁜 짓이 아니라고 장려했어야 했는데라고, 적어도 이렇게 읽힌다.

 

자, 보자 조선초 태조, 태종조에 걸친 이들 하륜도 세조의 신하가 된 신숙주 등 유학이든 뭐든 조선의 대표주자들의 상당수가 고리대금업자였다는 사실을 아는지, 상업보다 더 윗길인 금융업에 손을 댄 것이다. 율곡과 퇴계는 성리학자다. 상업을 부정적으로 본 사람들인데, 그들에게서 상업을 권하는 서책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조선의 지배층이었기에, 양반은 지주였기에, 이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군사력을 움직일 돈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고 했지 않았는가, 지배층에 가난이란 청빈한 삶이었다. 즉, 이들은 각각의 처지가 달랐기에 가치도 전혀 달랐던 것이다. 이들에게서 “상경”을 찾는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상업활동 현상을 보는 것인지, 상업과 상인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보는 것인지, 책을 읽는 동안 계속 헷갈린 대목이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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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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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에리카 산체스의 소설<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허진 역, 오렌지디, 2022)에서 보여준 멕시코 이민 2세의 이야기, 완벽한 멕시코 딸처럼 보였던 언니 올가의 죽음, 그리고 혼전 순결을 주장하며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사는 거라며 주변 눈치도 살펴야 한다는 고루한 사고의 갇힌 부모,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또 한 뼘 성장하는 주인공 훌리아, 작가의 이 책<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은 이 소설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닌 화자인 “나”, 거침없이 날리는 하이킥의 농담과 웃음소리는 그에게는 치유였을 것이다. 조울,조현을 유발하는 뇌의 부위와 유머에 필요한 창조성을 유도하는 곳이 놀랄만큼이나 비슷하다는 사실로 봐서말이다. 사나워지지 않고 백인우월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나, 유머는 이 모든 것을 좀 더 견딜만하게 해준다. 프로이트가 유머가 억압을 극복하고 심리적 압박을 해소하며 억눌린 공포와 욕구를 표출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듯이...

 

멕시코인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메스티소가 스페인어가 인종도 언어도 전통과 순수도 없음을, 신자유주의 경제가 미국이든 멕시코이든 여전히 못 하는 유색인종의 노동자계급에는 같은 곳이라고, 먹고 살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온 멕시코 출신의 이민자들, 이들은 양쪽 사회의 상류층도 주류가 돼 본 적도 없기에, 하루하루 공장에 나가 장시간 노동을 하고 패스트푸드로 허름한 집에서 내 집 갖기를 소원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멕시코든 어디든 같은 풍경이다.

 

자칫 열등감을 극복한 성공한 이민 2세의 성공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이 내면, 어렸을 적부터 느껴왔던 감정들, 우울, 무의식적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성기로 뭉쳐놓았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풀어놓는다. 아마도 감정의 해방, 내 안의 모든 것을 세상에 다 드러내놓고, 이게, 어느 한 이방인의 내면에 쌓인 오만 것들이라고,

 

나는 대체 나 자신이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정신적 스웨트샵(취약한 환경,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장)같은 직장, 나보다 더 못한 조건 속에서도 아이를 키우며 무엇이든지 이루어내던 부모 앞에서 부끄러움이…. 홀로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대학의 강사가 되고, 여러 곳에 원고를 보내는 일을 하기 전까지 홍보회사에 보낸 2년간의 악몽은 그를 다시 자살을 생각하게 할 정도였다.

 

공장에 다니는 부모님보다 더 많은 돈을 받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분들과 다르지 않은 대접을 받았다. 노동력 쥐어짜기가 어떤 것인 줄을 아주 톡톡히 경험한 것이다. 남편의 항우울제까지도 훔쳐먹을 정도의 정신건강이 황폐해짐을. 완벽한 멕시코 딸은 아니지만, 부모를 실망시키기 않기 위한 정도의 노력은 의무처럼, 그를 억압하는 또 하나의 장벽이기도 했다.

 

양극성 장애와 함께

 

산체스의 생애에 걸친 복잡한 감정들과 변덕스러운 성격들의 원인은 우울함이 아닌 양극성 장애로 밝혀진다. 그와 연애를 했던 남성 중,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선택한 이들은 없다. 다만, 그저 그랬을 뿐, 그 안에 존재했던 모성이, 이들의 씨앗 잉태를 거부한 것일지도 모를 정도로, 임신 에피소드 역시, 작가는 임신 중지가 여성의 권리임을, 함께 심해지는 정신적 고통, 그는 전기경련요법을 받는다. 그리고 함께 할 진짜 남성과의 만남,

 

산체스의 자전에세이는 거침이 없다. 누군가는 자신의 완벽한 모습만을 드러내어, 성공담으로 포장하기(양심 없게도), 또 누군가는 자신의 아픈 기억을 현재의 삶의 원동력으로 환치시켰다고 자랑하기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덮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산체스가 겪는 양극성 장애는 오히려 솔직하게 그의 모든 것을 털어내어 버림으로써 건강을 찾을 수 있는 처방이자 치료법이었다면 오히려 다행일 정도다.

 

젠더, 인종차별, 계급차별 속에서 어느 곳에도 발붙일 곳 없는 이방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던 산체스, 영어와 뉘앙스와 스페인의 그것이 다르다면, 멕시코식 스페인어는 오히려 정체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중 언어라는 상징이 그의 양극성 장애를 암시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태어날 딸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벨 훅스의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라는 책 제목이 등장한다. 딸이 겪어야 할, 인종차별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에세이의 맥락과 맥락 속에 담긴 생각들을 제대로 읽어내기는 조금, 아니 매우 어렵지만, 그래도 읽을수록 뭔가가 그려지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대목,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을 회복하려 하는가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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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 도덕적 직관의 기원 - 2024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학술 도서
패트리샤 처칠랜드 지음, 박형빈 옮김 / 씨아이알(CIR)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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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당신이 말하는 양심과 내가 말하는 양심은 달라, "양심 담론"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은 “양심” 도덕적 직관인데,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형이상학적이기도 현학적이기조차 한 물음,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어디서 그런 못된 짓을... 이 말속에는 도덕 윤리적 판단 기준으로서 사람이 해야 할 당연한 도리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과연 이것이 건전한 일반사회의 보편적 상식에 따르는 것인가?, “양심”은 암묵지다. 가장 근본적이며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라고 하지만 그 내용과 실체는 일어나는 장면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다. 도대체 “양심”이 뭐지, 꼬꼬무다.

 

이 책<양심>의 지은이 패트리샤 처칠랜드는 간혹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나마 덜 끔찍한 일만 있다는 것을 배운다고, 어쩌면 이 말이 가장 적확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양심적인 사람도 양심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택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양심”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적극적 의미보다는 소극적 상징적 의미가 더 큰 것은 아닌가,

 

처칠랜드, “양심”이란 개념을 뇌라는 물질 용어로 풀어보자

 

그는 추상적인 비물질 용어 “양심”에서 뇌라는 물질 용어로 “양심”이라는 개념을 논리적으로 분석, 규명해 내고 있다. 8장에 걸쳐 풀어낸다. 생존을 위한 포옹(1장), 애착 가지기(2장), 학습 그리고 어울려 지내기(3장), 규범과 가치(4장), 난 그냥 그런 사람이야(5장), 양심과 그 이례(6장), 사랑이 그것과 무슨 상관일까? (7장), 실제적 측면(8장)

 

도덕성의 원류는 이타성

 

우리가 도덕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포함, 궁극적으로 포유류의 사회성을 이끌었던 진화적 조정 세트(사회성 진화의 기원)는 음식이다. 새끼에게 먹이기 위해 자기 자신이 대가를 치르는 모성애는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자기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이타심으로 나타난다. 뇌신경 학자들은 부모와 자식, 배우자, 친척, 친구 간의 애착 연결과 신경화학에 대한 자세한 사항, 양심을 갖는다는 것, 협력하려는 강한 동기, 고의로 슬픔을 주는 사람을 방어하고 처벌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 1970년대 진화생물학자 윌슨이 인간의 사회성 진화는 생물학이 직면한 가장 큰 난제라고 했지만, 이렇게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양심의 내면, 양심의 뇌의 구조

 

자기 돌봄과 공존, 사회성과 자기 돌봄을 지원하는 회로(뇌)와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는 회로가 결합하여 “양심”을 만들어 낸다. ‘양심’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돌보는 발달, 모방, 학습을 통해 본능을 특정 행동으로 돌리게 하는 뇌의 구조라는 것이다. 이의 균형은 미묘하게 유지되는데, 자기 돌봄이 지나치면 ‘이기적’, 타인 돌봄이 지나치면 망‘상적 선행’을 추구하느라 자신을 방치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무엇이 표준인가에 따라 규범의 변하고, 양심 또한 움직인다

 

뇌와 사회적 규범의 관계에서 보상체계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저핵이 전두피질과 해마에 풍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보상체계는 사회적, 도덕적 규범을 학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양심의 소리에 관한 강력한 감정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런 신경 메커니즘은 계속 앞으로 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미지로 남아있다. 또한 무엇이 표준인가에 따라 규범이 미묘하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성격과 사회적 태도

 

양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양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제각각의 가치 평가 기준이 다를 수 있기에 그리고 이 기준과 가치를 정하는 배경 또한 다양하기에 그렇다. 이런 차이는 표준 뇌스캔 기술(fMRI)을 사용하여 관찰할 수 있다. 놀랍게도 뇌 이미지는 사회적 견해에 있어 보수, 진보 성향인지에 따라 군집화돼있다. 이렇게 과학기술로 증명된 것들, 그리고 양심, 우리가 어떤 그룹에 속하는 방법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법과 같은 성장에 필수적인 특성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양심의 역할이 또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뇌 구조 여하에 따라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도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감정과 양심은 또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양심이란 추상적이고 비 물질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뇌의 역할과 구조, 발달과 모방, 학습을 통해서 익히는 사회규범들을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본능을 특정 행동으로 구조화하는 뇌의 활동, 이로써 눈에 보이는 “양심”의 세계, 하지만 여전히 온전한 모습을 보기에는 많은 난제라 할까, 시간이 걸릴 듯하다. 양심의 소리와 양심의 감정은 각각 다른 것인가?, 어떤 면에서는 일치, 일체인 것처럼 보이고, 그렇지 않게도 보이니 말이다.

 

도덕성과 생물학적 접근법

 

집단 내 개인들 사이에 결집력과 안녕 유지를 위해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공유된 태도와 관행들의 조합을 도덕성이라 한다면,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동기부여받을 수 있는 이유와 친절하고 너그럽게 행위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 이유를 말해줄 수 있다는 점이 생물학적 접근법의 장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현실과 정치 그리고 도덕적 권위에 대한 개념을 정립, 혹은 재구성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양심”이란 게 뇌 신경 연구로 밝혀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인미답의 세계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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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배 페스카마
정성문 지음 / 예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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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와 노동이란 ”콘셉트“ 소설집

 

정성문 작가의 단편소설집<욕망의 배 페스카마>에는 한국사회의 변화가 신자본주의 질서로 전환되면서 겪어보지도 못한 직업의 변화, 노동의 가치, 각자도생, 계급 간의 갈등보다는 계급 안에서의 경쟁과 차별, 혐오를 담은 각자도생의 시대의 초상을 팔방으로 보여준다. 사방, 팔방으로 8개 작품을 통해 취업, 직장 폭력, 사내 불륜, 구조조정, 가혹한 노동환경, 일자리와 노동의 현실을 드러내려는 콘셉트 소설이다. 주인공은 달라도 모두가 같은 처지에 놓여있음을, 세상은 그 어느 곳도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는 편안한 곳이 아님을,

 

 

표제작 <욕망의 배 페스카마>는 1996년 8월에 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 조업 중이던 페스카마 15호에서 일어난 선상 반란을 그린 것이다. 변화하는 중국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조선족들, 교사와 농사꾼으로, 선장은 그들을 노예라고 부른다. 먹여주면 일하고, 성과가 없으면 두들겨 패고, 장에 슬은 구더기 보듯, 이 사건은 건드리지 않은 벌이 쏠까 하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60~80년대까지 인력 송출국 한국에서 이제는 외국인노동자를 들여오는 수입국(송입국)으로, 준비도 되지 않은 환경에서 그저 일손만을. 오로지 존재하는 물신, “돈” 지상주의 아래 인간의 얼굴을 대신한 화폐 속 인물만이.

 

변화하는 세상, 소외되는 이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 IMF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잡아먹힌 것이다. 일자리 또한 시대 흐름에 따라, 월급쟁이들이 마지막 사다리의 계단에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위에 있던 사람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고 대신 그 자리에 오르지만, 그 역시 또 떨어지는 처지(“카메라맨), 정치적 색깔이 다른 3대 백수의 초상을 그린 ”패밀리 비즈니스“ 창업 대신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리고, 블루칼라 검은 개가 아니라 다행일까, 직장갑질에 끽소리 못하고 오로지 온몸으로 받아내야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하얀개“의 생존의 몸부림과 갈등, 골목상권까지 다 먹어버리려는 포식자들 가운데서도 희망과 여유를 찾는 ”통차이“, 내 돈은 내 돈이고, 네 돈도 내 돈이라는 논리의 ”부부젤라“,

 

달리는 기차도 점점 빨라져 한 번 낙오되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KTX, SRT 급의 속도로 가는 피로 사회 한국. 그 마지막 정점은 같은 노동자들까지 서로를 혐오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욕망의 배 페스카마, 헬조선은 육지 건 바다 건 ”욕망”을 실은 페스카마호가 떠다닌다.

 

이 소설집은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묻는 "사회파 소설집"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라이프 라인(생명줄)을 이어주는 그림자 노동을 하던 필수노동자 군이 밝은 곳으로 그 몸을 드러내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비상시국이 지나가면, 사회적 관심 또한 그들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높은 고층아파트 지천으로 들어선 게 집이건만 내 한 몸 눕힐 곳 없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노동을 하는 사람,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간, 일하는 자,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세상임을...작가의 이어지는 작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는 어떤 세상을 그리고 있을까? 기대된다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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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같이 읽기 - 벨 훅스의 지적 여정을 소개하는 일곱 편의 독서 기록
김동진 외 지음, 페페연구소 기획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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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읽기, 7명의 지은이가 일곱 색깔 무지개를 그리듯

 

페페연구소(페미니즘 페다고지), 페미니즘교육연구소, 원서로 읽는 페페스터디와 페미니즘 대중 서적을 읽는 페미북클럽, 이 책은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로 인종과 성의 이중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희망을 담은 벨 훅스의 책 7권을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7명이 한 권씩을 읽고 색칠을 한다.

 

인종, 성차별의 경계는 “여자다운 여자의 신화‘ 가부장제

 

벨 훅스 같이 읽기는 첫번째로 독일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던 오혜민이 선택한 책<난 여자가 아닙니까>이다. 벨 훅스의 이야기를 전반에 적고 후반에는 자기 생각을 독일 유학 시절, 독일 여성정책을 강의한 여성학 교수의 인종차별과 편견, 이른바 ‘아시아’ 여성이란 도식, 참으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성차별에 대해서는 조언도 도움도 줄 수 있지만, 인종차별을 함께 이야기하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벨 훅스의 말처럼, 인종으로 흑인, 성으로 여성, 이렇게 섞인 흑인 여성은 스스로 지배자들의 논리에 빠져들어 자신들을 학대하고, 차별한다고(헌신하는 유모상과 그 반대인 사파이어), 흑인 남성에게 선거권을 줬을 때, 백인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보통 선거권을 주장하는 대신에 흑인 남성에게 부여된 특권을 받지 못한 것이 백인 여성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한편, 이 책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흑인 여성에게 덧씌워진 사회문화적 고정관념, ‘여자다운 여자의 신화’와 ‘숙녀답지 않은’ 여성에서 벗어나기, 거친 들판에서 가정의 전업주부로 가부장제적 여성의 역할을 수용함으로써 억압적인 성차별 질서를 포용, 옹호했던 치밀한 구도다.

 

센 언어가 살아남는다, 억압자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는 세상

 

그리고 두 번째로 미국 가서 공부하고 일본의 도쿄에 있는 다마가와 대학에서 공통어로서의 영어교육을 하는 김미소가 고른 책<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다>, 지은이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어라는 집에서 모어와 모국어의 관계, 좁게는 경상도에서 서울로 와서, 서울말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의 의미를 회상한다. 벨 훅스의 표현처럼 ‘표준영어’를 쓰면서 지배권력에 도전하는 무기로 지배자들의 언어를 그대로 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세계에 균열을 낸다는 말이다. 벨 훅스의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는 책 자체가 주인의 도구를 가져와서 주인을 겨누는 예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응용언어학 연구자로서 김미소는 꽤 흥미로운 담론을 전개하는데, 우선 이 부분만 읽어도 좋을 만큼 알찬 내용이 담겼다.

 

계급에 대해서 말하기, 희망과 연대

 

세 번째 책은 김은지가 고른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벨 훅스는 계급에 대해서 말한다. 왜, 누구도 단 한 번도 계급에서 말한 적이 없기에, 벨 훅스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빈곤과 인종차별에 시달렸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노동계급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거쳐 계급이동을 하면서 겪은 편견의 고통과 외로움을,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함께 계급 내에서의 갈등, 각자도생의 시대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빈곤층의 벗이던 좌파 지식인들조차 그들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언어 안에서 외부를 배척한다. 돈이 없으면 목소리도 빼앗기는 세상, 자본주의 아이들, 꼭 부자되세요라는 말, 지상의 절대가치는 돈이다. 돈이 있어야 비로소 얼굴도 구분된다. 빈민, 노숙인들의 얼굴은 구별되지 않는다. 구분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무표정한 얼굴에 희망의 빛이 돈다면, 얼굴이 달라질 것이고, 구분될 것이다. “희망” 그리고 연대,

 

네 번째 책은 조은이 선택한<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다섯 번째, 레일리가 고른 <올 어바웃 러브>, 여섯 번째 초등학교 교사인 장재영은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를 골랐다. 이 시대 각자 다른 위치에 있지만, 촘촘하고도 교묘한 여성혐오가 배어있는 사회문화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자신의 교육 실천을 돌아보면서 벨 훅스가 했던 것처럼 지배적인 구조와 문화에 도전하는 힘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는 페페 연구소 대표 김동진은 국내에서 소개되지 않은 책<본 블랙>을 선택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 속에서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벨 훅스란 이름은 어머니와 할머니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일부러 소문자로 쓴 것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책 내용을 봐달라는 소망을 담았다고, 아무튼 그랬다고 한다. 벨훅스의 ”제국주의적, 백인우월주의적,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촌철살인의 짧은 문구가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응축시켜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에 말이다. 벨 훅스의 책을 매개로 일곱 색깔 무지개를 본 듯하다. 벨 훅스의 톺아보기에 이어서 또 다른 이의 글을 이른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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