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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평점 :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에리카 산체스의 소설<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허진 역, 오렌지디, 2022)에서 보여준 멕시코 이민 2세의 이야기, 완벽한 멕시코 딸처럼 보였던 언니 올가의 죽음, 그리고 혼전 순결을 주장하며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사는 거라며 주변 눈치도 살펴야 한다는 고루한 사고의 갇힌 부모,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또 한 뼘 성장하는 주인공 훌리아, 작가의 이 책<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은 이 소설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닌 화자인 “나”, 거침없이 날리는 하이킥의 농담과 웃음소리는 그에게는 치유였을 것이다. 조울,조현을 유발하는 뇌의 부위와 유머에 필요한 창조성을 유도하는 곳이 놀랄만큼이나 비슷하다는 사실로 봐서말이다. 사나워지지 않고 백인우월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나, 유머는 이 모든 것을 좀 더 견딜만하게 해준다. 프로이트가 유머가 억압을 극복하고 심리적 압박을 해소하며 억눌린 공포와 욕구를 표출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듯이...
멕시코인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메스티소가 스페인어가 인종도 언어도 전통과 순수도 없음을, 신자유주의 경제가 미국이든 멕시코이든 여전히 못 하는 유색인종의 노동자계급에는 같은 곳이라고, 먹고 살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온 멕시코 출신의 이민자들, 이들은 양쪽 사회의 상류층도 주류가 돼 본 적도 없기에, 하루하루 공장에 나가 장시간 노동을 하고 패스트푸드로 허름한 집에서 내 집 갖기를 소원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멕시코든 어디든 같은 풍경이다.
자칫 열등감을 극복한 성공한 이민 2세의 성공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이 내면, 어렸을 적부터 느껴왔던 감정들, 우울, 무의식적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성기로 뭉쳐놓았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풀어놓는다. 아마도 감정의 해방, 내 안의 모든 것을 세상에 다 드러내놓고, 이게, 어느 한 이방인의 내면에 쌓인 오만 것들이라고,
나는 대체 나 자신이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정신적 스웨트샵(취약한 환경,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장)같은 직장, 나보다 더 못한 조건 속에서도 아이를 키우며 무엇이든지 이루어내던 부모 앞에서 부끄러움이…. 홀로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대학의 강사가 되고, 여러 곳에 원고를 보내는 일을 하기 전까지 홍보회사에 보낸 2년간의 악몽은 그를 다시 자살을 생각하게 할 정도였다.
공장에 다니는 부모님보다 더 많은 돈을 받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분들과 다르지 않은 대접을 받았다. 노동력 쥐어짜기가 어떤 것인 줄을 아주 톡톡히 경험한 것이다. 남편의 항우울제까지도 훔쳐먹을 정도의 정신건강이 황폐해짐을. 완벽한 멕시코 딸은 아니지만, 부모를 실망시키기 않기 위한 정도의 노력은 의무처럼, 그를 억압하는 또 하나의 장벽이기도 했다.
양극성 장애와 함께
산체스의 생애에 걸친 복잡한 감정들과 변덕스러운 성격들의 원인은 우울함이 아닌 양극성 장애로 밝혀진다. 그와 연애를 했던 남성 중,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선택한 이들은 없다. 다만, 그저 그랬을 뿐, 그 안에 존재했던 모성이, 이들의 씨앗 잉태를 거부한 것일지도 모를 정도로, 임신 에피소드 역시, 작가는 임신 중지가 여성의 권리임을, 함께 심해지는 정신적 고통, 그는 전기경련요법을 받는다. 그리고 함께 할 진짜 남성과의 만남,
산체스의 자전에세이는 거침이 없다. 누군가는 자신의 완벽한 모습만을 드러내어, 성공담으로 포장하기(양심 없게도), 또 누군가는 자신의 아픈 기억을 현재의 삶의 원동력으로 환치시켰다고 자랑하기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덮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산체스가 겪는 양극성 장애는 오히려 솔직하게 그의 모든 것을 털어내어 버림으로써 건강을 찾을 수 있는 처방이자 치료법이었다면 오히려 다행일 정도다.
젠더, 인종차별, 계급차별 속에서 어느 곳에도 발붙일 곳 없는 이방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던 산체스, 영어와 뉘앙스와 스페인의 그것이 다르다면, 멕시코식 스페인어는 오히려 정체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중 언어라는 상징이 그의 양극성 장애를 암시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태어날 딸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벨 훅스의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라는 책 제목이 등장한다. 딸이 겪어야 할, 인종차별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에세이의 맥락과 맥락 속에 담긴 생각들을 제대로 읽어내기는 조금, 아니 매우 어렵지만, 그래도 읽을수록 뭔가가 그려지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대목,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을 회복하려 하는가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