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를 막을 것인가 만들 것인가
아이라 샬레프 지음, 김익성 옮김 / 이사빛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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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민주주의 퇴행, 불안감 “추종”과 “추종자” “독재자”


전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그의 취임사에서 민주주의 퇴조와 권위주의 부활과 반민주주의 세력의 확장을 우려했다. 신 냉전이라는 말 대신에 “민주주의 위기”를 강조했다. 지은이 아이라 샬레프는 “독재자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라고 묻고, 세상을 구원해 줄거라는 환상으로 ‘영웅’을 만들지 말고 함께 세상을 바꿀 지도자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바바라F 월터의<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열린책들, 2025)에서는 민주주의는 확고한 안정성을 지녔고 위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그 징후는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이든 부분적 민주주의이든 독재체제이든 공통으로 나타나는 <아노크라시(anocracy)> 현상은 완전 독재(autocracy)와 민주주의(democracy) 경계 상태를 의미하는데,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아노크라시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노크라시는 한 나라를 내전의 위험에 빠뜨리는 것일까?,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서부지원을 침탈했던 무리는 누구의 추종자인가,


헌정사 초유의 사태라고 하는 6.3. 대선 결과, 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우여곡절, 대한민국호를 끌고 갈 지도자,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우리 사회 갈등구조의 반영이다. 비정치인, ”정치(政治)“의 ‘정(政)’도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의 국운을 걸었다가 아니라 지지난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민주당의 정치행태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홧김에 뭐 했다는 표현까지는 아닐지라도 한반도의 모순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대북문제를 종북세력으로 몰아가면서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그리고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 책은 마치 맞춤형처럼 새로운 대통령, 정부, 정치권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인지를 언급하는 시의적절한 안내서로 여겨진다. 조선조의 경연(經筵)이나 제왕학으로서 당 태종의 <정관정요>와 조선 중기 <성학집요> 등처럼, 지도자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유하며,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지도자는 추종자와 지지자 그리고 비판자 등을 모두 한데 담는다. 세종조의 ‘고약해’라는 관리는 왕 앞에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모두 최고 권력자의 눈치를 보기 바쁜데, 그러든 말든 잘못된 정책이나 의견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이후 다루기 힘든 사람을 일러 ‘고약해’라고 했다고도, 세종은 조정회의에서 하는 모든 발언에 관해 ”면책특권”을 부여한 셈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현명한 불복종’이다. 영화<어퓨굿맨(A Few Good Men, 1992)에서 코드레드(얼차려)를 실행해, 병사를 죽게 한 두 명의 병사, 이들은 군의 명령이라도 불복종을 해야 그게 정당한 거였어, 우리는 비겁했어, 알면서도 복종한 거야, 그게 우리의 죄 야라고... 


지은이는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이를 지지하는 추종세력(추종자 혹은 추종자 역할)이 독재자를 만들기도, 독재자를 막을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 책에서는 ”팬덤정치“라는 귀에 익숙한 표현도 톺아보는 것이다. 책 구성은 15장이며, 1장에서는 정치적 상황 속 추종자를 시작으로 2장 정치지도자: 공직의 바른 이용과 남용, 3장. 추종자의 여러 계층: 추종자가 만드는 정치지도자, 4~5장 대중계층: 여러분, 정치 권력의 토대, 그리고 군중과 개인, 6장, 활동가계층: 위협과 책임, 7~9장 관료계층: 정부 지도자의 손과 발, 정치적 감각의 개발, 딜레마를 헤쳐나가기, 10~11장 엘리트계층: 유력자와 특권적 접근 권한과 엘리트의 유형과 이들의 진정한 자기 이익에 관하여, 12~13장 측근계층: 이들은 진짜 누구일까?, 권력의 유혹, 치러야 할 대가, 14장 추종자연합: 이들이 독재자를 막는 법, 15장 정치적 추종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물론 추종자는 긍정적, 부정적 의미 양면으로 볼 수 있다. 추종자가 마냥 네거티브만은 아니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는 이들은 적이다. 없어져야 할 악인 것처럼. 이 책은 ”추종자”를 다룬다. 이 주제가 다른 책과 비교하면 특징적이다. 지은이는 추종자를 가치 중립적으로 접근한다. 


우리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게 큰 믿음을 보이며 그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동을 합리화하며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된 그런 행동을 설명하려면 부담이 너무 커져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면,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정치 영역에서는 의견을 달리하고 반대하며 다른 길을 찾을 자유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때, 이런 재평가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왜 추종자에게 주목해야 할까?


왜 떠오르는(예비적) 독재적 지도자가 아니라 추종자에 주목해야 할까?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정치지도자는 감시와 과세, 치안과 군사력이라는 압도적인 힘을 좌지우지한다. 따라서 애당초 권위주의적 성격의 개인이 독재자로 변신할 싹을 뿌리 뽑으려면 그런 개인의 가치관과 능력과 감정적 균형, 온전한 정신 상태인지 집중해서 살펴야 한다. 새롭게 부상하는 독재자의 특성을 식별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독재자의 특성 목록에 일일이 적어두더라도 떠오르는 독재자를 지지하는 추종자나 그를 반대하는 세력은 자기 관점에 따라 이런 특성을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가 독재자의 특성을 드러내는지 아니면 구원자의 자질을 보이는지를 두고 서로 달리 평가할 것이다. 일이 다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우리는 새롭게 부상한 독재자가 언제든지 알아볼 수 있는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동시대의 사건을 직접 겪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런 독재자의 존재가 모든 주변 행위자에게 그렇게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윤석열의 예를 되짚어보면, 이해에 가는 대목이다.


추종자와 지도자의 관계에서 추종자가 자기 행동을 단호하게 변화시키면 지도자가 압도적인 권력을 얻기 전에 이런 변화가 이루어진다. 추종자를 계속 붙들어 두고 위해 자기 행동을 조정해야 할 사람은 바로 지도자다.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추종자-지도자 관계의 측면으로 관심의 초점을 옮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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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SNS에 뭐라고 올릴까? - 9가지 키워드로 보는 소셜미디어 시대의 철학 모두의 인문학 5
장삼열 지음 / 스테이블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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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소크라테스는 SNS에 뭐라고 올릴까?


지은이 장삼열의 발상이 흥미롭다. 인터넷 시대, 세상이 좁아지고, 시간차도 없어지는, 이른바 시공간을 초월의 영역, 거기에 익명성도 그래서 나만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그곳에서 주인공으로 사는 맛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동전의 양면이요.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이중적 효과 때문에 매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9개 주제로 아홉 번의 철학 수업을 담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유동 사회"라고 규정한다. 고정된 것들, 지켜야 할 것들이 무녀져 흔들리는 시대, 미래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과 불안감은 지금의 내 삶을 지배한다. 헤매고 헷갈리는 가운데 "나"를 찾는 게 우선이라고, 노자 역시 자중자애를, 소크라테스 역시 "나"를, 이 책 역시 "나"를 찾는 사유를 하는 것이다. 


가상세계와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지면 탈이 난다. 개인적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순간이다. 지은이는 이런 맹점을 제대로 간파하였기에, “현실과 온라인 사이, 진짜 나를 찾는 철학 수업”이라는 부제로 이 책의 제목을 <소크라테스는 SNS에 뭐라고 올릴까>라고 붙인 듯하다. 가상과 현실에서 “왜”에 대한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아주 충분히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지은이는 9가지 주제를 뽑아 소셜미디어 시대의 철학을 생각해보자고 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나’를 잃어버리지 말고, 만약에 잃어버릴 위험에 처했다면 ‘나’를 바로잡자. 우선 9가지 주제는 각 장으로 구분해서 다룬다. 1장 ‘챌린지: 도전과 과시 사이 어디쯤 있는 걸까?’에 서는 공동체적 인간의 약해진 고리를, 2장 ‘외모지상주의: 이목구비냐 근사한 태도냐’에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의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3장 ‘플랙스: 서사가 사라진 돈 자랑의 시대’에서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때 오는 자유를 찾아서, 4장 ‘소확행: 진정한 행복과 만족’에서는 좋은 쾌락은 적절한 금욕에서 나온다. 5장 ‘나답게: 보이는 나와 진짜 나’, 6장 ‘양심: 마음의 나침반은 어디로 향할까?’에서는 인간,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홉스, 루소가 본 인간, 선과 악의 싸움을, 7장 ‘팔로워: 아는 사람 말고 진짜 친구’에서는 소셜미디어의 그림자를, 8장 ‘불안: 나만 빼고 다들 괜찮아 보여’에서는 자꾸만 느껴지는 현실의 벽,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9장 ‘소비:장바구니에 담기지 않는 소중한 것’에서는 무의미한 경쟁을 넘어 내 삶으로 복귀하기,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 그리스의 젊은이들에게 소크라테스의 영향력이 위정자들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을 일으켰다. 너 자신을 알라고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을 사는 걸까, 라는 화두를 던졌기에 터진 일이다. 현대 사회로 소크라테스를 소환해서 그에게 요즘 세태에 관한 견해를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답했을까? SNS에 올린 그의 답을 상상하면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의 심리학자 토머스 G.플랜트의 말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루게릭병의 고통을 함께 느껴보자는 챌린지,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사회운동의 성공 원인은 단순함, 재미, SNS의 파급력, 서로 연결하고 싶은 마음이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란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 본디 무리를 지어 사는 본능으로 공동체를 지향하며, 서로 돕고 사는 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 챌린지는 인간 존재의 중요한 근간에 관한 언급이며, 내가 나로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완성되어 가는 “나”, 챌린지 열풍은 외로운 현대인이 서로 연결하기 위한 마음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플렉스의 왜곡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한다는 의미인 플렉스는 1990년대 미국 힙합에서 유래했다. 일종의 동기부여다. 힙합 정신은 직설적인 표현에 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현실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다. 희망이 없던 흑인 청년들이, 지친 삶의 괴로움, 불평등에 대한 불만, 미래에 관한 불안 등을 랩에 담아 음악으로 만들었다. 희망과 동기부여, 하면 돼, 할 수 있다는 미래 영감을 주던 플렉스는 그저 껍데기만 남아, 마치 강남의 귤이 강북에 가면 탱자가 되듯, 플랙세 노출, 이른바 연애이나 인풀루언서들의 과시적 소비 행위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부작용을... 왜, 본디 플렉스는 서사 즉,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이야기 없는 자랑, 나는 이런 걸 소유한다. 가지고 있다는 과시만이 남는다면, 당연히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소유와 존재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까치, 2020)는 “우리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소유와 존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 체험의 2가지 형태다. 대화에서도 소유적 양식과 존재적 양식은 다르다. 내 견해를 주장해 상대의 생각을 바꾸려는 소유적 양식과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만나 그사이에 존재하는 ‘진리’를 찾는 노력은 존재적 실존 대화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대화기술은 대중 설득이지만, 진정한 대화는 사람이나 사물이 가진 탁월한 성질 즉, 아레테를 향해 대화와 대화가 서로 디딤돌을 놓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현대 사회, 특히 한국 사회에서 보이는 여러 현상 중 9가지를 들여다본다. 왜 소비를 하는지 경쟁적으로 사들이기, 남에게 과시하기, 비대면 인터넷 공간에서 “좋아요”를 누르면서 친구가 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외모지상주의는 보다는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 진정한 행복,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어느 날 메일 혹은 카톡을 열어본 순간 소크라테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리고 불안을 등 떠밀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일마저 예측할 수 없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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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 늙어간다는 것 - 80대 독일 국민 작가의 무심한 듯 다정한 문장들
    엘케 하이덴라이히 지음, 유영미 옮김 / 북라이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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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나이 들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은이 엘케 하이덴라이히의 솔직하고 간결하고 다정한 “나이 듦”에 관한 에세이, 80 평생을 자유롭게 살아온 그는 방송작가와 진행자로 일하면서 거침없는 하이킥를 날리는 통에 방송국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독일 사회의 노화, 늙어간다는 것, 나이 듦에 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늙음, 은퇴,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에서 완성됨, 이룸과 삶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누구에게는 멋진 세계, 세상이고 또 누구에게는 어둠과 고통일 수도 있다. 


    이 책에 실린 15개의 이야기, 젊음이란 무엇인지, 늙어가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늙어가기란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기, 우리는 문학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책을 져야 한다. 노인의 세계는 기억의 세계다. 하루하루가 자신의 날이다. 새로운 출발과 힘찬 발걸음을 책을 골라 읽고 소개했던 그의 경험에 녹아들어 있는 글 모음이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하게 한다


    방하(放下) 내려놓음이다. 명상하는 이들이 먼저 하는 행동이다. 불가에서도 방하하라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서 욕심, 욕망, 기득권이라는 고집, 나 이런 사람이야 라는 생각을 내려놓으라는 것인데, 엘케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살인자의 건강법> 속에서 다음의 문장을 끄집어낸다. 


    “사람은 매일 늙는 건 아니다. 늙는다는 느낌 없이 10년, 20년이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 두 시간 만에 20년이 한꺼번에 덮쳐온다.”


    이는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본 많은 사람의 가슴을 꿰뚫는다. 기나긴 분쟁 속에서 재판을 10년 동안 해 온 어떤 사람은 대법원의 판결을 받는 순간, 지금껏 심신을 눌러왔던 긴장감에서 해방된다. 바로 이 순간 한꺼번에 몰려오는 노화로 머리가 새하얗게, 치아는 다 빠져버리고, 온몸을 눌러오던 질병의 고통이 한순간에 그를 덮친다. 엘케는 자기 엄마도 이혼한 뒤 갑자기 폭삭 늙었다고 말했듯이 말이다. 


    엘케에게 노년은 인생의 멋진 시기다. 맘껏 살아도 되는, 세상에 더는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없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그런 나이가 됐으니, 기쁨이 되는 일만 할 수 있는 특권이 생기는 나이이기도 하다. 몸을 사릴 필요도 없이 평소에 하던 말을 내뱉어도 된다. 이 책을 쓰듯 말이다. 외모, 나이 들면 자연스레 목줄이 쳐지고, 눈가에 주름도 지기 마련인데, 나이 들어도 얼굴 관리를 하는 게 품위라는 외모지상주의에 세뇌된 사람들, 스트레스받으면 큰일이 일어난 줄 아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 그는 “삶은 곧 일이야”라고 말한다. 보톡스 맞아 빵빵해진 얼굴보다 삶으로 빵빵해진 인생을 사는 여성들이 멋지다고 선언한다.


    죽음에 관한 생각: 삶의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됐고 화살이 날아온다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저 위에서 운명이 영원으로부터 죽음의 활시위를 당긴다. 그 화살은 우리가 숨 쉬는 내내 날아온다. 화살이 도착하면 우리는 멈춘다(독일 소설가 장 파울, 51쪽).


    경제적 유용성과 관계없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이 세상에 참여해야 하고, 죽을 때까지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 사람을 가장 빨리 늙게 하는 것은 도전하지 않는 삶이라고 갈파했다. 노동 사회는 끝났다는 독일의 철학자 프레히트는 현대인이 더는 생존을 위해서만 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사회적 소속감을 추구하려고, 즉 임금 노동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려고 노동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임금 노동과 성과사회가 점차 “의미사회”로 전환되면서, 물질적 번영과 양적 성장보다는 일의 질과 조건, 자유로운 삶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모두를 위한 자유>(열린책들, 2025). 


    엘케의 나이 듦에 깔린 생각과 현대 사회의 흐름은 비슷한 맥락이지만 방향은 같다. 피로함, 은퇴, 쉼, 편안함이 나이 듦을 표현하거나 상징하는 데서, 새로운 삶, 거침없는 자유, 기쁨이 되는 활동이 나이 듦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한다. 늙음 뒤에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에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을 바탕에 깔면, 세상은 새롭게 보일 것이다. 노년에도 우리는 뭔가를 잃고 뭔가를 얻는다. 어떤 나이대든 모두 경험하듯이, 나이 든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다. 


    평생 책을 읽고 대중에게 책을 소개하고 나이 듦, 노년, 죽음에 관한 문장들을 소개한다.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이들의 생각을 전해준다. 법학자, 정치사상가인 노르베르트 보비오<노년에 대하여>에서 말한 구절을 끌어온다. 

    “노년의 삶은 인생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삶에 대한 태도는 당신이 삶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삶을 가파른 산으로 보는가, 천천히 헤엄쳐 나아가는 넓은 강처럼 보는가, 사방이 나무로 들어찬 빽빽한 숲으로 보는가, 당신은 인생을 어떻게 보는가?


    노년은 세상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를 받아들일 것인지 어떨지는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다. 노년은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는 시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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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 중독의 시대를 말하다
    배현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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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마약 중독시대, 꼭 알아야 할 마약예방법 


    지은이 배현은 약사다. 약은 언제나 ‘도움’이 되리라 믿기 쉽지만, 지식 없이는 독이 되기도 한다는 그는 한번 손대면 멈출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 “마약”.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쉽게 중독되는 마약, 의료용 마약, 불법 마약까지 그 예방법을 이 책에 담았다. 그는 약을 사는 데 쓰는 돈은 전 세계 1등, 생각보다 사람들은 약을 잘 모른다. 모른면 때로는 약이 될 때도 있지만, 독이 될 때가 문제가 된다. 의료용 마약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 또한 씁쓸하지만 진실이다. 


    책은 4장으로 구성됐다. 1장 ‘일상을 파고든 중독성 약물’에서는 너무 쉽게 접하는 중독성 약물, 문제의 시작이다. 카페인도 적당히, 담배는 끊고, 술은 줄이는 게 아니라 금주다. 2장 ‘의료용 마약이 더 위험하다’에서는 불법이든 합법이든 중독성 약물은 위험하다. 수면제, 살빠지는 약, 집중력을 높이는 약, 마약류인데 마약이 아닌 약을 살펴본다. 3장 ‘나도 모르는 사이 노출될 수 있는 불법 마약류’에서는 각성, 안정 성격이 다른 약성분, 헤로인,코카인, 대마는 또 무엇인지, 4장 ‘마약, 이제는 정말 끊어야 할 때“에서는 적절한 처벌과 함께 지속적인 예방교육이 필요하다. 미약의 무서운 중독성, 마약의 종류와 분류, 중독치료와 재활라는 흐름의 책은 최근 ”마약 중독“과 관련된 책의 편집방향인 듯 싶다. 40년 동안 마약중독 재활현장에서 일했던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조성남의 <마약을 심킨나라, 대한민국>에서 너무 쉽게 중독되는 마약과 단속 중심이 아닌 재활치료와 마약예방으로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 합법이든 불법이든 ”마약“이란 성질에 중심을 둬야 


    마약중독 메커니즘은 사업실패, 가족 문제, 질병 등을 이유로 마약에 손을 댔고, 보통은 40대 남성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다이어트 등의 목적에서 점차로 마약으로 옮아가고,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각성을 위해 마약을 찾는다. 최근 창원의 청소년들이 펜테날 패치를 붙이고 다니는 등, 마약에 위험성에 관한 인식이 낮고, 합법이 곧 면죄부라는 오해, 약물이든 마약이든 모두 독물임에는 변함이 없다. 즉, 합법이라서 해서 중독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중독성이 강하기에 ”마약(痲藥)“ 이라 부르는 것이다. 


    마약청정국?, ”10대 중독자“의 수가 적었다는 점에서 ”청정“이었다는 말이다


    합법적인 의료용 마약 프로포폴의 오남용이 불법 마약보다 더 심각하고, 판테날은 유튜브에 등장하는 좀비 마약이다. 10대가 마약 시장의 주요 소비자라는 놀라운 사실. 최근까지 마약 청정국이었다는 오해, 오히려 필로폰 수출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본 국내에서 마약류 단속이 심해지자, 생산거점을 한국으로 옮겨 상당 기간 필로폰을 일본에 공급했다. 이제 거점은 중국 등지로, 옮겼지만, EMS, SNS 등으로 손쉽게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약물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약물을 잘 알아야 


    마약은 신경안정(마비)과 각성(자극하거나) 효과를 가진다. 전자는 중추신경 억제하여 뇌를 마비시키는 수면제, 진정제, 진통제와 마취제, 알코올, 모르핀, 헤로인, 펜타닐 등으로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사용한다. 불안이 마비되는 효과가 있어 항불안제로, 하지만 남용 때는 술에 취한 듯하며 간질 발작이 일어나기도, 후자는 뇌를 자극한다. ‘자극 추구’성향의 사람들이 남용하는 약물로 필로폰(메스암페타민), 코카인, 엑스터시, 다이어트약으로 처방되는 각성제(펜터민, 디에타민), 카페인, 니코틴 등이다. 눈동자가 확대되고 예민해지며 심하면 급성 정신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마약 대처는 법적 처벌보다 예방과 치료와 재활로 방향을 바꿔야


    약을 끊는 건 쉽다. 안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지은이는 마약구매자를 아무리 강하게 처벌한다 하더라도 실제 잡히는 사람은 일부일 뿐이다. 우리 국민의 20%이상이 마약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것이니까, ”약“이라고, 마약은 불법이며, 헤로인, 필로핀 등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이 자신도 모르게 중독성이 강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다. 일단 중독이 되면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약을 끊는 일은 참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았을 때의 즐거움을 찾는 것인데, 약을 끊었는데 계속 너무 힘들기만 하면 재발 위험이 크다는 순환 사이클이다. 오죽했으면 ‘피눈물을 흘려보지 않고는 약물 중독에서 회복될 수 없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자조 모임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기에 강제치료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마약류의 중독 문제는 예방이 최선의 치료라는 점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학교에서 마약류 교육은 유아에서 청소년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 현실적인 문제는 성인에게 있는데,성인 대상 교육은 학생만큼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필수교육인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 등과 함께, 마약류에 관한 예방도 포함하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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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의 마음 - 도시는 어떻게 시민을 환대할 수 있는가
    김승수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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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황량한 도시에 마음을 담는다

     

    지은이 김승수는 8년 동안 전주시장으로, 25년 동안을 공공 정책과 도시에 천착해 온 도시 혁신가, 전주시장 시절 ‘책이 삶이 되는 책의 도시 전주’, 황량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책과 마음을 주제로 한 이야기다. 그는 정보와 서사에 관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서사’, 이야기 속에 담긴 전승적 지식은 정보와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적 구조로 돼 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정보’와 ‘서사’ 사연이 있는 도시, 도시민의 마음을 채워 줄 책은 정보가 아닌 지식으로 다면적이다. 시민교육이란 바로 가까이 있는 도서관에서, 그저 책을 빌려주는 장소가 아닌 마음을 채워줄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써 작동한다. 사람이 행복한 도시에 관한 인문학적 통찰이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됐고 도시의 의미와 역할, 마음, 확장과 미래를 17개의 도서관 이야기 속에 녹아냈다. 1부 ‘도시의 의미 “당신에게 도시는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 개의 도서관 <정원문화도서관>과 <건지산숲속도서관>이다. 2부 도시의 역할 ’도시가 책과 함께 사유할 수 있다면‘에서는 <한옥마을 도서관>과 <완산도서관 자작자작 책 공작소>를, 3부 도시의 마음 ’우리가 지은 것은 도서관이 아닙니다‘에서는 공공장소는 한 시대를 가장 의미 있게 상징한다고, <연화정도서관>을 비롯한 10곳을 소개하는데, 아이들의 책 놀이터, 그림책 도서관 등 다양한 도서관을 들여다본다. 4부 도시의 미래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필요하다‘고, 책의 도시는 이어가야 할 유산, 도시는 늘 과정에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시란 무엇인가?  ‘책의 도시 전주‘

     

    도시(都市)는 인간의 정치경제와 사회적인 활동이 중심이 되는 장소이며, 인구 집중으로 인해 비교적 인구 및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을 말한다. 이른바, 인근의 산업단지나 농촌, 어촌 등지의 행정과 유통, 문화생활의 중심 역할을 하는 장소다. 공간으로서 도시는 어떤 기능을 할까? 그저 모여 사는 인구 집중지역은 하드웨어다.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채워 넣을 것인가, 이 책에서 다루는 도시는 기능이다. 소프트웨어로서 “도서관” 이른바, 도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줄 그 무엇을 전라북도 특별자치도의 중핵도시인 ’전주’를 다룬다. “책의 도시 전주’를, 

     

    도시란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가? 사람이 행복한 도시가 되어야, 

     

    지은이는 존재하지만, 부재한 우리의 도시로, 하드웨어만 존재할 뿐 도시의 색깔, 도시다운 도시로 만들어줄 소프트웨어의 부족함을 ”고객만 있고 시민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도시는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변화는 시작된다. 공공장소는 자기 견해를 밝혀야 한다. 적당한 성공은 철저한 실패보다 위험하다. 

     

    그가 생각하는 도서관, 책, 그리고 공공장소의 수준이 시민의 삶의 수준이라고, 한편으로 도서관이란 공간은 어울릴 권리, 노닥거릴 권리, 도모할 권리를 담는다. 도서관은 ”여행지“다. 

     

    이렇게 다양한 도서관의 얼굴, 공공장소의 얼굴, 도시 속 공간, 숲속에 도서관이 필요한 이유 등을 설명한다. 때로는 여행지, 이웃집, 숨돌릴 장소, 생각할 수 있는 공간,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담긴 곳, 우리는 이렇게 다양함을 지닌 도서관을 상상한 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다. 작은 도서관이 왜 곳곳에 만들어졌을까?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라며 이해된다..

     

    동네 골목에 도서관을 짓는 이유

     

    아마도 이 책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왜 동네 골목에 도서관을 짓는가? 도시는 효율성이라는 관념에 정면으로 그게 아니라고, 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의 행복이다. 행복을 도시 가치의 맨 위쪽에 놓는다. 낡은 것을 대체하는 게 새것이라는 생각,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세상의 흐름이니, 다만, 옛것 낡은 것 안에 담겨있는 돈을 효율성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추억이라는 정신적 가치다. 사람들은 지은이에게 묻는다. 왜 구도심 골목에 도서관을 짓는가, 차라리 도시 외곽에 크게 현대식으로 지으면 많은 사람이 찾을 텐데... 지은이는 말한다. ‘지킬 것을 지키는 게 진정한 변화라고, 이 방식이 전주가 도시를 대하는 태도라고, 꽤 흥미로운 관점이다. 그가 말하는 관점이 바뀌어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고,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구도심은 그저 낡은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과 감정이 스며든 장소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구도심 골목의 작은 건물을 도서관으로 재생하거나, 오래된 도서관을 부수지 않고 변화를 주는 것은 하나하나에 장소성과 다양성을 담으려는 시도였다. 도시의 기념비적인 장소는’ 거대함‘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가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시를 들여다보면, 황량함은 풍부함으로 낡은 건물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 위생적으로도 범죄예방에서도 문제가 된 도시의 슬럼가, 낡은 것을 치워버리고 새롭게 건물을 세우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 책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어조로 말한다. 관점을 바꾸라고... 효율성 그것도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지 않겠냐고, 

     

    이 책은 우리에게 도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의 하나로 전주 ”책의 도시”를 내놓았다. 낡은 것과 새것의 의미와 가치도 다시 생각해보라고, 시청에, 도서관에, 공원에 마음을 담을 때 도시와 우리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짐을 느낄 것이라고,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의 시사와 여기에 담긴 많은 힌트를 어떻게 우리 도시에 접맥시킬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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