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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를 막을 것인가 만들 것인가
아이라 샬레프 지음, 김익성 옮김 / 이사빛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민주주의 퇴행, 불안감 “추종”과 “추종자” “독재자”
전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그의 취임사에서 민주주의 퇴조와 권위주의 부활과 반민주주의 세력의 확장을 우려했다. 신 냉전이라는 말 대신에 “민주주의 위기”를 강조했다. 지은이 아이라 샬레프는 “독재자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라고 묻고, 세상을 구원해 줄거라는 환상으로 ‘영웅’을 만들지 말고 함께 세상을 바꿀 지도자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바바라F 월터의<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열린책들, 2025)에서는 민주주의는 확고한 안정성을 지녔고 위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그 징후는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이든 부분적 민주주의이든 독재체제이든 공통으로 나타나는 <아노크라시(anocracy)> 현상은 완전 독재(autocracy)와 민주주의(democracy) 경계 상태를 의미하는데,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아노크라시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노크라시는 한 나라를 내전의 위험에 빠뜨리는 것일까?,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서부지원을 침탈했던 무리는 누구의 추종자인가,
헌정사 초유의 사태라고 하는 6.3. 대선 결과, 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우여곡절, 대한민국호를 끌고 갈 지도자,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우리 사회 갈등구조의 반영이다. 비정치인, ”정치(政治)“의 ‘정(政)’도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의 국운을 걸었다가 아니라 지지난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민주당의 정치행태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홧김에 뭐 했다는 표현까지는 아닐지라도 한반도의 모순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대북문제를 종북세력으로 몰아가면서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그리고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 책은 마치 맞춤형처럼 새로운 대통령, 정부, 정치권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인지를 언급하는 시의적절한 안내서로 여겨진다. 조선조의 경연(經筵)이나 제왕학으로서 당 태종의 <정관정요>와 조선 중기 <성학집요> 등처럼, 지도자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유하며,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지도자는 추종자와 지지자 그리고 비판자 등을 모두 한데 담는다. 세종조의 ‘고약해’라는 관리는 왕 앞에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모두 최고 권력자의 눈치를 보기 바쁜데, 그러든 말든 잘못된 정책이나 의견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이후 다루기 힘든 사람을 일러 ‘고약해’라고 했다고도, 세종은 조정회의에서 하는 모든 발언에 관해 ”면책특권”을 부여한 셈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현명한 불복종’이다. 영화<어퓨굿맨(A Few Good Men, 1992)에서 코드레드(얼차려)를 실행해, 병사를 죽게 한 두 명의 병사, 이들은 군의 명령이라도 불복종을 해야 그게 정당한 거였어, 우리는 비겁했어, 알면서도 복종한 거야, 그게 우리의 죄 야라고...
지은이는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이를 지지하는 추종세력(추종자 혹은 추종자 역할)이 독재자를 만들기도, 독재자를 막을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 책에서는 ”팬덤정치“라는 귀에 익숙한 표현도 톺아보는 것이다. 책 구성은 15장이며, 1장에서는 정치적 상황 속 추종자를 시작으로 2장 정치지도자: 공직의 바른 이용과 남용, 3장. 추종자의 여러 계층: 추종자가 만드는 정치지도자, 4~5장 대중계층: 여러분, 정치 권력의 토대, 그리고 군중과 개인, 6장, 활동가계층: 위협과 책임, 7~9장 관료계층: 정부 지도자의 손과 발, 정치적 감각의 개발, 딜레마를 헤쳐나가기, 10~11장 엘리트계층: 유력자와 특권적 접근 권한과 엘리트의 유형과 이들의 진정한 자기 이익에 관하여, 12~13장 측근계층: 이들은 진짜 누구일까?, 권력의 유혹, 치러야 할 대가, 14장 추종자연합: 이들이 독재자를 막는 법, 15장 정치적 추종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물론 추종자는 긍정적, 부정적 의미 양면으로 볼 수 있다. 추종자가 마냥 네거티브만은 아니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는 이들은 적이다. 없어져야 할 악인 것처럼. 이 책은 ”추종자”를 다룬다. 이 주제가 다른 책과 비교하면 특징적이다. 지은이는 추종자를 가치 중립적으로 접근한다.
우리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게 큰 믿음을 보이며 그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동을 합리화하며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된 그런 행동을 설명하려면 부담이 너무 커져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면,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정치 영역에서는 의견을 달리하고 반대하며 다른 길을 찾을 자유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때, 이런 재평가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왜 추종자에게 주목해야 할까?
왜 떠오르는(예비적) 독재적 지도자가 아니라 추종자에 주목해야 할까?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정치지도자는 감시와 과세, 치안과 군사력이라는 압도적인 힘을 좌지우지한다. 따라서 애당초 권위주의적 성격의 개인이 독재자로 변신할 싹을 뿌리 뽑으려면 그런 개인의 가치관과 능력과 감정적 균형, 온전한 정신 상태인지 집중해서 살펴야 한다. 새롭게 부상하는 독재자의 특성을 식별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독재자의 특성 목록에 일일이 적어두더라도 떠오르는 독재자를 지지하는 추종자나 그를 반대하는 세력은 자기 관점에 따라 이런 특성을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가 독재자의 특성을 드러내는지 아니면 구원자의 자질을 보이는지를 두고 서로 달리 평가할 것이다. 일이 다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우리는 새롭게 부상한 독재자가 언제든지 알아볼 수 있는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동시대의 사건을 직접 겪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런 독재자의 존재가 모든 주변 행위자에게 그렇게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윤석열의 예를 되짚어보면, 이해에 가는 대목이다.
추종자와 지도자의 관계에서 추종자가 자기 행동을 단호하게 변화시키면 지도자가 압도적인 권력을 얻기 전에 이런 변화가 이루어진다. 추종자를 계속 붙들어 두고 위해 자기 행동을 조정해야 할 사람은 바로 지도자다.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추종자-지도자 관계의 측면으로 관심의 초점을 옮기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