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소크라테스는 SNS에 뭐라고 올릴까?
지은이 장삼열의 발상이 흥미롭다. 인터넷 시대, 세상이 좁아지고, 시간차도 없어지는, 이른바 시공간을 초월의 영역, 거기에 익명성도 그래서 나만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그곳에서 주인공으로 사는 맛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동전의 양면이요.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이중적 효과 때문에 매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9개 주제로 아홉 번의 철학 수업을 담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유동 사회"라고 규정한다. 고정된 것들, 지켜야 할 것들이 무녀져 흔들리는 시대, 미래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과 불안감은 지금의 내 삶을 지배한다. 헤매고 헷갈리는 가운데 "나"를 찾는 게 우선이라고, 노자 역시 자중자애를, 소크라테스 역시 "나"를, 이 책 역시 "나"를 찾는 사유를 하는 것이다.
가상세계와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지면 탈이 난다. 개인적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순간이다. 지은이는 이런 맹점을 제대로 간파하였기에, “현실과 온라인 사이, 진짜 나를 찾는 철학 수업”이라는 부제로 이 책의 제목을 <소크라테스는 SNS에 뭐라고 올릴까>라고 붙인 듯하다. 가상과 현실에서 “왜”에 대한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아주 충분히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지은이는 9가지 주제를 뽑아 소셜미디어 시대의 철학을 생각해보자고 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나’를 잃어버리지 말고, 만약에 잃어버릴 위험에 처했다면 ‘나’를 바로잡자. 우선 9가지 주제는 각 장으로 구분해서 다룬다. 1장 ‘챌린지: 도전과 과시 사이 어디쯤 있는 걸까?’에 서는 공동체적 인간의 약해진 고리를, 2장 ‘외모지상주의: 이목구비냐 근사한 태도냐’에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의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3장 ‘플랙스: 서사가 사라진 돈 자랑의 시대’에서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때 오는 자유를 찾아서, 4장 ‘소확행: 진정한 행복과 만족’에서는 좋은 쾌락은 적절한 금욕에서 나온다. 5장 ‘나답게: 보이는 나와 진짜 나’, 6장 ‘양심: 마음의 나침반은 어디로 향할까?’에서는 인간,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홉스, 루소가 본 인간, 선과 악의 싸움을, 7장 ‘팔로워: 아는 사람 말고 진짜 친구’에서는 소셜미디어의 그림자를, 8장 ‘불안: 나만 빼고 다들 괜찮아 보여’에서는 자꾸만 느껴지는 현실의 벽,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9장 ‘소비:장바구니에 담기지 않는 소중한 것’에서는 무의미한 경쟁을 넘어 내 삶으로 복귀하기,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 그리스의 젊은이들에게 소크라테스의 영향력이 위정자들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을 일으켰다. 너 자신을 알라고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을 사는 걸까, 라는 화두를 던졌기에 터진 일이다. 현대 사회로 소크라테스를 소환해서 그에게 요즘 세태에 관한 견해를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답했을까? SNS에 올린 그의 답을 상상하면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의 심리학자 토머스 G.플랜트의 말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루게릭병의 고통을 함께 느껴보자는 챌린지,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사회운동의 성공 원인은 단순함, 재미, SNS의 파급력, 서로 연결하고 싶은 마음이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란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 본디 무리를 지어 사는 본능으로 공동체를 지향하며, 서로 돕고 사는 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 챌린지는 인간 존재의 중요한 근간에 관한 언급이며, 내가 나로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완성되어 가는 “나”, 챌린지 열풍은 외로운 현대인이 서로 연결하기 위한 마음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플렉스의 왜곡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한다는 의미인 플렉스는 1990년대 미국 힙합에서 유래했다. 일종의 동기부여다. 힙합 정신은 직설적인 표현에 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현실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다. 희망이 없던 흑인 청년들이, 지친 삶의 괴로움, 불평등에 대한 불만, 미래에 관한 불안 등을 랩에 담아 음악으로 만들었다. 희망과 동기부여, 하면 돼, 할 수 있다는 미래 영감을 주던 플렉스는 그저 껍데기만 남아, 마치 강남의 귤이 강북에 가면 탱자가 되듯, 플랙세 노출, 이른바 연애이나 인풀루언서들의 과시적 소비 행위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부작용을... 왜, 본디 플렉스는 서사 즉,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이야기 없는 자랑, 나는 이런 걸 소유한다. 가지고 있다는 과시만이 남는다면, 당연히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소유와 존재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까치, 2020)는 “우리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소유와 존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 체험의 2가지 형태다. 대화에서도 소유적 양식과 존재적 양식은 다르다. 내 견해를 주장해 상대의 생각을 바꾸려는 소유적 양식과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만나 그사이에 존재하는 ‘진리’를 찾는 노력은 존재적 실존 대화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대화기술은 대중 설득이지만, 진정한 대화는 사람이나 사물이 가진 탁월한 성질 즉, 아레테를 향해 대화와 대화가 서로 디딤돌을 놓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현대 사회, 특히 한국 사회에서 보이는 여러 현상 중 9가지를 들여다본다. 왜 소비를 하는지 경쟁적으로 사들이기, 남에게 과시하기, 비대면 인터넷 공간에서 “좋아요”를 누르면서 친구가 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외모지상주의는 보다는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 진정한 행복,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어느 날 메일 혹은 카톡을 열어본 순간 소크라테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리고 불안을 등 떠밀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일마저 예측할 수 없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