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지 않은데 왜 백인인가? - 인종차별, 헛소리에 지지 않고 말대답하기
박중현 지음 / 드루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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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인종차별이란 무엇이며 왜 발생하는가?


지은이 박중현은 그의 특이한 경력 때문에 세계 시민으로 15년을 외국에서 보냈다. 그가 일하던 현장, 특히 인사팀장이라는 일은 관계에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이른바 한 눈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은 물론 성과 평가를 바탕으로 승진 후보자로 추천할 것인지 말지, 또, 어떤 업무에 적합한지 어떤지까지도 꿰뚫어봐야 실패없는 인사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니말이다. 물론 이는 그가 “인사팀장”으로 인간의 본성을 좀더 잘아기 위해 심리상담사 자격까지 취득할 정도였다는 전제에서 짐작해 본 것이다. 


그는 “인종차별”에 관한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인종차별에 관한 책들은 전문연구자나 혹은 이론 등 학문적 접근을 하고 있어, 일상 생활 솎에서 느끼는 인종차별은 그냥 차별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가치인가, 아니면 구조적인 것인가, 유색인종에 관한 배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이른바 호주의 “백호주의”의 근원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등을 파고들면 들수록 꼬꼬무가 되기 십상이다. 지은이는 일상 생활의 경험과 사례를 중심으로 인종차별을 설명하고자 한다. 주제는 무겁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가닥이 잡힐 수 있도록 흐름을 만들어 서술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책은 8장 구성이다. 1장 ‘고정관념과 표현’에서는 “고정관념”이 어떻게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인종적 고정관념”이 다른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왜곡된 시선을 갖는지를 설명한다. 2장 ‘구조적 인종차별’에서는 사회 제도와 시스템 안에서 인종차별이 자리하는 지를 톺아본다. 3장 ‘편견의 근원’에서는 인종에 관한 편견이 과거 유럽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시대의 사고방식을 만들어 낸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4장 ‘미묘한 차별’에서는 지능적이고 음습해진 인종차별, 일상적이면서도 미묘한 상호작용에서 드러난다 착한 혹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이야기다. 의도치 않는 차별은 존재하는가(무의식일뿐이라고 주장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의도치 않는 차별이 사람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며, 자아에 영향을 미치는가 아마도 이 책에서 눈여겨 봐야햘 대목이 아닌가 싶다. 5장 ‘식민주의의 유산’에서는 식민주의가 해방과 함께 종식된 게 아니라 일상을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문화적, 심리적 구조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는 후천적유전에 관한 설명에서도 드러난 바있다. 아우슈비츠 학살의 생존자 가계에서 나타나는 우울증상 등이 말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한국과 일본사회에서 서구문화를 모방하고 받아들이려는 강한 압박감을 눈여겨본다. 6장 ‘유해한 남성성과 인종적 증오’에서는 남성성이 신체적 힘과 권력으로 정의되는 방식이 어떻게 인종에 관한 증오와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본다. 7장 ‘저항과 역인종차별’에서는 차별개념과 그 사회적 맥락을 다룬다. 과거에 차별을 경험했던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지, 이는 호되게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독하게 며느리를 대하거나, 군대 내의 폭력의 확산과 전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상급자에게 호되게 당한 하급자는 새로 들어온 신입병사를 시쳇말로 엄청 갈군다. 마치 너도 당해보라는 듯이, 이런 일상에 인종 대신에 지역으로 바꿔놓아 보면 눈에 보인다. 8장 ‘인종적 트라우마’에서는 인종차별이 개인에게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다룬다. 특히 어린시절에 겪은 구조적인 차별이 어떻게 개인의 자아형성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고, 고정관념과 차별 극복방법의 시론을 제언한다. 


이책은 “인종차별학”의 사전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개인적, 구조적, 심리학적 접근 또한 눈에 띈다. 하지만, 지은이가 이 책을 쓴 목적에 맞게 사례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한 권에 책에 담기에는 너무 거대한 담론이 아닌가싶다. “인종차별론”의 다이제스트라고 해야할까, 요즘 한국 사회의 이슈인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배경의 이주민”, “전문직 배경의 이주민” 이주민세계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다국적”이란 말이 가치 중립적이기 보다는 우리와 너, 안과 밖이란 전제에서 또 다른 편견이라는 논의도 있다. 


마이클 잭슨은 왜 피부색 하얀 백인이 되고 싶어했나?


백인에 대한 환상이라고 간단하게 말해버리면 편할 듯한데, 그렇지 못하다. 마이클 잭슨은 세계적인 가수로서 명성과 부를 이미 거머쥔 인기스타다. 그런 그가 왜 검은 피부를 하얗게 만들려고 했을까? 그는 왜? 라는 물음에 천착하면서 그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유색인종에 대한 음습한 차별이, 이유도 없다. 그냥 차별하고 혐오한다. 여전히 백인들의 눈에 흑인은 노예일 뿐인 것인가?, 미국의 대법원의 인종차별의 반성이자 해소였던 "적극적 조치(어퍼먼티브액션)의 위헌 판결"은 또 다른 차별이 서막이 열렸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작가 최인훈의 문학세계 속에서 아시아를 다룬 “최인훈의 아시아: 연대와 공존의 꿈으로 세계사 다시쓰기”(장문석, 틈새의 시간, 2025)에서 저자는 1960년 소설 “광장”을 계기로 분단문학의 극복과 아시아의 극복은 세계 시민사회라는 인종과 지역에 관한 차별, 혐오의 시발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인종적 우월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선민의식의 작용에 기인한 것이라고.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무의식적, 의식적, 혹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처럼 의도하지 않는 차별의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했다. “인종차별론”의 입문서 혹은 교양도서로서 추천할만한다. 이 책으로 인권감수성이 1도라도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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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철학 신박한 정리 - 한 권으로 흐름을 꿰뚫는 생각의 역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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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동서고금의 생각 역사를 한 권에 담아


철학사는 곧 철학이라고 명쾌하게 밝힌 이 책<동서양 철학 신박한 정리>의 지은이 박영규. 그는 2600여 년 전, 당대의 현인이라 불렀던 철학자들의 사유와 생각의 역사를 4부로 나누어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에서 세상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해체주의의 데리다까지 40여 명의 철학자를 현대로 소환한다. 그들의 생각을 현대인에게 들려준다. 수학의 피타고라스는 한때 신앙으로 종교로까지 여겨지기도, 이른바 ‘피타고라스학파’다. 원자론의 데모크리토스, 현대 과학의 “원자론”과는 결이 다르지만, 당대 이들이 생각한 것은 자연의 순환이었고, 천동설이라는 중세 가톨릭적 세계관에 앞서 이미 지동설을... 결과를 놓고 보면 놀랄 일이기보다는 꽤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신의 세기에서 인간의 세기로 넘어오는 과정 종교와 철학의 관계는 종교를 더 정교하고 강력하게 단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철학이 생겨난 것이지만, 학문의 발달 사회의 확대로 철학은 종교를 대체하는 합리적인 행동 지침으로 재탄생한다. 종교는 신안에 터 잡은 복종의 행동 지침으로 철학은 복종을 위한 지침의 한계보다는 합리성에 무게를 두었기에 종교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점 또한 유념해야 한다.




지은이는 이 책을 읽을 때, “완벽한 철학은 없다. 그래도 철학 하라, 그대의 생존력을 위하여”라고 서두에 적어두었다. 사유하라 살기 위해서, 생존력이 강해야 살 수 있었던 시대, 생존력을 위해 철학을 했던 시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사유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음을...




책 구성은 4부이며, 1부‘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이오니아의 자연 철학자들(탈레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까지 6명)과 아테네의 인간주의 철학자들(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4명), 그리고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들(디오게네스, 제논, 에피쿠로스 등 5명) 15명의 철학자를 소개한다. 2부 ‘고대 중국 철학’에서는 노장사상으로 대표되는 도가(허유와 상용, 노자, 열자, 장자 등 5명), 유가(방훈과 중화, 공자, 맹자, 순자 등 5명), 묵가, 명가, 법가, 13명의 사상가를, 3부 ‘이성 중심의 동서양 철학’ 신유학 시대를 맞이한 중국 철학(주돈이, 장재, 이정 형제, 주자, 육구연, 왕수인 등 6명)과 과학 시대를 연 17세기 유럽 철학, 칸트와 독일의 관념 철학자(칸트, 피히테, 셀링, 헤겔 등 4명) 18명을, 4부 ‘19세기와 20세기의 현대 철학’에서는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철학(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마르크스, 니체 등 4명), 객관과 존재, 실존으로 전환을 모색한 20세기 철학(베르그송, 후설, 듀이, 비트겐슈타인,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 7명), 프랑스의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라캉,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 6명) 이른바, 동서고금의 생각을 한데 모았다. 






철학은 인류의 “생존에 유리한 행동 지침”이라 계속 변화한다


애초 자연에서 세상을 이치를 원이라든가, 물질이라든가, 물과 불이라든가, 우주 순환까지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 시대의 철학, 종교와 정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인간주의’,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들과 고대 중국의 사상들, 그리고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넘어온 17세기의 관념 철학, 19세기에서 20세기를 거쳐 철학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설명법이었던 이분법에서 벗어나기를,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흐름, 구조주의는 인간이 행하고, 생각하고, 인식하고, 느끼는 모든 것의 기저에 깔린 구조를 밝히는 것으로 문화와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구조화돼 있기에 그 구조를 파악해서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려는 철학이다. 즉, 인간의 존재를 자신의 의지나 생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이미 만들어진 언어 구조나 무의식 구조 등에 의해 구성된 존재라고 바라본다. 사회학,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 언어학에서 문화와 기호나 상징 해석의 방법론으로 사용된다. 탈구조주의 포스트 구조주의는 구조를 형성하는 이항 대립(철학의 가장 큰 난관을 타개했던 이분법적 논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 그 자체와 대상을 생산하는 지식의 체계를 모두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해체하자. 기존의 질서와 규칙, 관습과 법, 관계와 인식, 역사와 기득권 등 지배하는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다소 건조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철학이란 인류의 가장 강력한 생존 지침이었다. 시대가 변화면 철학도 변화하듯, 세상에 완벽도 완결도 없다.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사유의 투쟁을 거쳐 완벽한 진리에 닿고자 노력하는 존재다. 


이 책에서 다루는 철학 이론과 철학사는 무엇을 읽고, 세상의 사유의 관점에는 어떤 것이 있고, 왜 그 시기에 그런 생각이 필요했는지, 그런 생각은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헤겔의 “변증법”처럼 정, 반, 합의 역사적 흐름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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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로 간 허준 - 상위 1% 통합암치료 핵심 솔루션
    유화승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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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통합암치료 해법 “새로운 패러다임”


    한의사인 유화승의 <미국으로 간 허준>(2013)의 후속작이다. “허준”이란 지은이 설명을 보태지 않더라도 조선 시대의 명의 허준 개인이 아닌 그의 후예들인 한의(韓醫) 집단을 상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의사(韓醫師)가 곧 허준인 셈이다. 


    이 책의 핵심은 “통합암치료”이며, 아직 통합암치료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한국 사회에 통합암치료의 목적과 지향점, 동서양의 의료기술을 융합, “환자 중심주의”를 실현해보자는 주장이 담겨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서양의학의 질병과 치료에 관한 인식과 사고체계와 동양의 것의 융합이다. 질환부를 외과 처치(수술 등)로 직접 도려내는 등의 치료를 하지만, 동양의학은 침구와 탕약 등으로 자가 회복력(면역력 강화, 즉 회복력을 길러 병마와 싸우는)을 높이는 간접방법으로, 이런 단편적이고 이분적 구분법은 전체상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된다. 


    암을 도려내거나 방사선 항암치료로 심신의 부담을 주기보다는 고통 완화와 심신안정을 유지하는 치료법을 융합(황묘백묘론처럼, 쥐를 잡는 게 고양이, 환자 중심의료지향)론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첨단 의료센터에서 적어도 20여 년 전부터 해 온 “통합암치료”의 배경은 거칠게 말하면 위에서 말한 사고가 작동한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한의학(韓醫學)은 한의학(漢醫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를 독자적인 체계로 구성하려는 시도에서 한나라 한(漢)을 나라 한(韓)으로 바꿔쓰게 된 듯하다. 우선 한의학의 관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근대 이전의 동양 사회에서는 의술(醫術)을 펴는 자를 의자(醫者) 혹은 의원(醫員)이라 했고, 서양의학을 받아들인 후에는 동양 사회(여기서는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옛 중국의 영향력이 미친 곳)에서는 중의(中醫)와 양의(洋醫)로 구분, 서양의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썼다. 동의학(東醫學)이란 개념도 함께 쓰고 있다. 이는 동양의학으로 몽골의 전통의학으로 치료하는 의사를 몽의라고 하니... 일본의 경우는 의료계에서는 관행적으로 양의와 한의(漢醫), 중의(中醫)의 구분은 있으나, 공식적으로 의사는 양의를 말하며 한의사제도를 운용하고 있지 않다. 대신에 의료기사로서 침구사가 있다. 


    이 책<하버드로 간 허준>은 지은이가 12년 전, 1년 동안 미국 휴스턴의 MD 앤더슨 암센터 통합의학부서에서 연구한 후, <미국으로 간 허준>을 통해 “통합암치료”를 소개하고, 대한통합암학회를 결성하는 등의 활동을, 다시 두 번째 연구년에 하버드 의대 다나파버 연구소에서의 6개월 동안 지켜본 통합암치료 시스템에 관한 글로, 한국에서도 “통합암센터”가 정착과 확산의 희망을 담았다.

    책은 6장 구성이며, 1장 ‘다시 미국으로’ 2장 ‘하버드 의대 다나파버암연구소’에서는 다나파버의 5가지 핵심가치와 연구소의 통합의학센터를 소개한다. 3장 ‘자킴 센터의 통합암치료 프로그램’, 4장 ‘하버드 다나파버 암연구소의 통합암치료 연구’, 5장 ‘자킴 센터에서 만난 사람들’ 6장 ‘하버드로 간 허준’에서는 지은이의 하버드 다바파너 암연구소에서의 활동상을 담았다. 


    하버드 다나파버의 5가지 핵심가치


    암연구소는 암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 없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비전 아래 다섯 가지 핵심가치를 천명했다, 영향력(연구와 임상 치료, 교육, 지지와 옹호로 현재와 미래의 질병에 대한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변화를 만든다), 우수성(최고의 행동기준을 준수, 지속해서 성실히 우수함을 추구한다), 연민과 존중(우리는 치료를 받는 사람과 또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탐구(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면서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협력과 혁신을 촉진하는 탐구 문화를 조성한다), 평등과 포용성(우리는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그 누구도 다른 사람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자킴 센터에서는 어떤 원칙에 따라 통합암치료를 하는가 


    2000년에 설립된 자킴 센터는 환자들에게 다양한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스턴 최초의 암통함센터로 “하버드 다나파버 자킴 센터 핵심 원칙”에 따라 활동한다. 첫째는 근거기반치료(과학적 연구를 통한 검증), 환자 중심 접근(삶의 질과 치료 효과 개선), 다학제 팀 협력(의사, 한의사, 영양사, 운동치료사 협업)


    센터는 침 치료와 마사지를 위한 개별치료실, 상담실, 요가 및 운동 수업을 위한 스튜디오 등, 환자들의 항암치료 부작용을 줄여주고,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표준치료와 표현예술치료, 창의 예술(종이접기), 명상과 마음 챙김, 춤과 활동, 요리 수업, 영양사와 대화 등 다양한 종류의 통합암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다학제 팀 협력은 국내 병원 중 경희의료원처럼(의과대학, 한의과대학을 갖춘 곳) 양방과 한방진료를 함께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는 곳도 있지만, 지은이가 말하는 통합치료체계의 콘셉트와 같은 협진 등 통합의료서비스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암 환자들에게 더는 수술도 방사선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없으니,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라는 말 대신에 심신의 건강 유지를 통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환자 중심의료”의 세계로의 전환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하버드 다나파버 암 연구소의 5대 핵심가치인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과 우수성, 그리고 연민과 존중, 탐구, 평등과 포용성의 원칙을 따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한방이니 비과학적이라고 백안시하거나 멀리하는 태도 양방만이 최선의 해결책(솔루션)이라는 사고, 이른바 이분법적 사고는 이미 과거의 것이다. 니체, 푸코, 들뢰즈 등의 노력으로 우리는 다양성의 사고를, 흑과 백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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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이란 무엇인가 - 자유롭고 평등한 사귐의 길을 찾아서
      박홍규 지음 / 들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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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지은이 박홍규 선생은 이 책을 “사상사”라고 말한다. 그는 “우정”(사전적 의미는 친구의 정)을 “자유롭고 평등한 사귐”이라 정의한다. 그는 “나에게 친구란 단순히 친한 사이가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로 맺어진 공동의 상대입니다.”라고 했다. 서로를 지배하거나 명령하거나 구속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서로를 더 높거나 낮음도 없이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일하는 같은 자격의 상대인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친구란 하나도 없는 게 당연하다. 진정 그러한 것인가, 우정의 사상사를 따라가면서 “우정”을 톺아본다. 지금도 “우정”이란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 개념을, “우정”이란 무엇인가 따져보자.


      우정 혹은 우애와 관련된 질서, “붕우유신(朋友有信)” 즉, 오륜(五倫)의 하나. 벗과 벗 사이의 도리(道理)는 믿음에 있음을 이른다고, 여기서 나오는 도리란, 사람이 어떤 처지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가리킨다. 

      “우정론”에 관해서 역사상 가장 빨랐다고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는 죽어가면서 말하기, “오, 나의 친구여, 친구는 없다네”라고, 지은이는 책을 뒤져봐도 이런 말을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는 걸 찾을 수가 없다고, 이 말은 조선의 연암 박지원이 그의 절친 홍대용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소위 친구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그래서 “우정”은 지은이의 지적 욕구를 자극한 주제가 됐던 모양이다. 이 책은 우정에 관하여 근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살펴본다. 통상 우리가 사용하는 근대(近代), 중세와 현재 사이의 시대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1876년의 개항 이후부터 1919년 3.1운동까지의 시기를 말하기도, 이때, 대한제국이라는 왕정에서 공화제로 바뀌었다. 즉 국민국가 시대이면 신분 자체가 없는 평등사회가 됐다는 의미로 새겨도 될 듯하다.


      책 구성은 2부 15개의 우정론을 다룬다. 근대 이전의 우정론은 고대 동양의 그것을 비롯하여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와 키케로, 기독교 등의 우정론 그리고 근대 이전 동아시아의 우정론까지, 근대 이후는 몽테뉴, 계몽주의와 루소, 레싱과 칸트, 조선 후기, 담사동, 현대의 우정론까지 그리고 이의 요약과 전망을 담았다. 


      고대 동서양의 우정론 – 공적 관계, 여론 형성의 목적으로 토론에 참여하는 의욕이 “우정”


      고대 동서양은 신분 계급사회였고, 친구란 같은 계급 내에서 형성된 교류 관계다. 이상적인 대인관계가 성립되는 공간은 다양한데, 공공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관계나 정치적인 관계다. 여기서 친구란 정치문제, 즉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관련된 공공적 문제에 관한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의사 교환의 상대다. 이런 사상의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키케로, 18세가 영국 철학자 샤프츠베리에 이른다. 이들은 말하는 “우정”은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토론에 참여하는 의욕을 의미했다. 의욕 자체가 우정인 셈이다. 의견이나 이해관계의 일치, 친밀함은 우정의 전제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사상사의 우정과 일상의 우정이 다름을... 


      근대 이후의 우정론 


      몽테뉴는 이상적인 대인관계가 사적 생활의 내부에서만 가능하다고 봤다. 친구는 분신,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존재로, 친구와 사귐에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는 친구의 사귐에 의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시쳇말로 어떤 사람을 평할 때, 그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다. 사상사 안에는 우정 무용론과 우정 유해론도... 우정을 하나의 거래로 보는 윤리학자도 있으니, 그만큼 친구와 우정은 찾기 어렵다는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오성과 한음을 관포지교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정”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 실제는 아니다. 두 사람은 과거장에서 만났고, 이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정치적 입장은 달랐다는 점, 그렇다 하더라도 사적 우정과 공적 처지를 구별할 줄 알았다는 이성적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새로운 우정 공동체


      지은이가 말하려는 핵심은 “우정 공동체”다. 인종과 국가, 성별 등 그 밖의 모든 국경을 넘어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우정이나 친족 관계를 통해 우리는 잠재적으로 급진적이고 위험한 방식으로 자신을 무너뜨리고 새로워질 수 있다. 우정은 이런 의미에서 자유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우정은 새로운 정치가 탄생하는 토양이 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우리는 함께 어울리고, 취미를 공유하고, 잡담을 나눈다. 서로를 편안하게 유지한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의 알고리즘은 프로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우정을 버튼 한 번 클릭하는 차원으로 축소한다. “그냥 친구야”라는 말은 하찮은 유대 관계를 말한다. 


      가족의 비핵화, 우리는 사람들이 한 쌍의 부부가 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가족 구조 안에서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하는 이성애 규범적인 가족 구조에 저항하는 데 관심이 있는 퀴어 커뮤니티, 성 소수자의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기술로 가족 구조의 변화가 필요했고,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보다는 핵가족화가 건강에 더 해롭다는 점을 지적한다. 흑인 사회의 비공식적 입양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초개인화, 1인 가구 등 극한까지 거의 임계치에 이르는 공동체는 아이에서 노인에 이르는 돌봄이 단지 법적인 가족만이 책임지는 구조로, 지은이는 사회적 돌봄,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말이, 원시적이고 미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본성에 맞는 태도였음을.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인 가족 관계는 남녀와 부자의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겼다. 근대에 와서 결혼은 자유롭고 평등한 계약 관계가 됐지만, 실질적으로는 반드시 자유롭고 평등하지는 않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왔다. 일부일처제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반드시 남녀평등이 아니었듯이, 이렇게 보자면 모두가 가족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이 남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우정 공동체가 지금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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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앞에서 쓰기
      김영주 지음 / 밑줄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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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커피 앞에서 쓰기


      작가 김영주의 수첩 산문집이다. 그는 밑줄 수집가, 영상,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한다. 이 책은 늘 가지고 다니던 포켓 수첩 한 권에 그날그날 떠오른 생각을 적어둔 사유일 수도, 생각일 수도 감상일수도 일기일 수도, 감상문일 수도 있다. 독특한 글쓰기 유형이랄까,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설탕, 크림 대신에 생각을 한술 두술 넣어보자, 커피 향과 맛은 어떻게 될까? 흥미로운 상상을 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


      우리의 하루 생활을 되돌이켜 보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보고, 듣고, 느낀다. 이글 모음은 바로 그 순간의 느낌을 잊지 않고 적어두었기에, 글쓰기 취재 수첩처럼 날 것 그 자체다. 또, 책 안에는 이 글을 읽고 생각나는 메모나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도록 마치 지은이처럼 해보라고 권유하듯 빈칸을 마련해두었다. 

      책 구성은 따로 목차가 없지만, '여름'이란 계절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라진 장소들', '주고받기', '아침, 도서관', '일요일' , '삶의 근력' 등으로 이어져 간다. '여름' 과 '주고받기'가 눈에 띈다. 


      “여름”이란 장


      마트에 갔더니...(중략) 한쪽 가득 수박이 쌓였다. 지은이의 기억은 슈퍼마켓 캐셔를 했던 스무 살 때로 소환된다. 한여름 커다란 수박을 싸게 팔기에 욕심껏 사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비를 만나 빗길에 넘어져 오지게 큰 수박 두 통을 깨버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처구니없었던 한 여름날의 헤프닝, 지은이는 그날 제대로 수박을 집으로 가져왔더라면 슈퍼마켓의 캐셔였던 기억도 잊혔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추억은 쓰기도 달기도 한 모양이다.


      여름에 만난 사람은 모두 여름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만나는 날이 왔다면 그는 이미 꽤 가까운 사람이 된 것이니라... 이 대목이 맘에 든다. 한때 만났던 사람은 그때 그 기억 속에 갇히지만, 이어지는 만남은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이나 옷처럼 한 겹 두 겹 두꺼워져 간다는 말일까?


      “주고받기”


      주고받기에 관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자리매김한다. “줄 수 있다면, 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 관계는 탁구처럼 주고받는 것이었다. 한쪽만 계속 서브하면 결국 지치게 된다“고, 나는 주는 것만 생각한다. 받을 때는 늘 기쁜 마음뿐이다. 주고서 뭔가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불경스럽다. 주면 주는 것이지, 왜 받으려 하는지, 축의금과 조의금 등의 부의금에 관한 생각이 달라서일까? 어느 날 지인은 ”나는 그 사람 부친상 때 조의금을 보냈고, 문상까지 했는데, 어째서 그 사람은 내 딸 결혼식 때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지, 내가 그보다 못했기 때문인가, 왠지 무시당한 기분이라고...“ 줄때의 마음은 받기를 바라지 않았듯이 오면 오고 안 오면 말지, 인간사 새옹지마라 당신에게 그렇게 처신하는 사람은 또 누군가에 당신처럼 이야기하지 않을까를 생각해보세요.라고


      이 책을 읽는 동안 글쓰기의 묘미라 할까, 책을 평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은 평할 수 없다. 그저 나도 ”전염“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니...


      감히 평할 수 없다는 말이다. 또 보자. 지은이는 주고받기 중에 ”마음”을 주고받는 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세상 이치는 묘해서 나는 마음을 주지만 상대에게 마음을 얻었는지, 내가 준 만큼 얻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지은이는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가 지금 내게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라고 적고 있다. 꽤 의미심장한 말이다. 


      함께하는 우리, 배려와 우정의 공동체를 생각하며


      각자도생“ 자기 계산법에 따르는 요즘에, 이 대목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행복할 권리“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무조건적 배려의 의무감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회피의 합리화라는 구절이다. 불안정, 불확실성 시대에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품앗이, 배려와 돌봄, 연대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각자도생 삶의 기법, 그래야 무조건적 배려라는 공동체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에서 벗어나도 죄책감이 줄어들기에... 박홍규는 그의 최신 책<우정이란 무엇인가>에서 우정공동체를 주장한다. 공동육아처럼 돌봄의 비공식적 돌봄의 문화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원천임을 재발견했노라고, 


      작은 포켓 수첩 안에 빼곡히 들어찬 삶의 지혜, 순간순간 나는 잘살고 있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귀들, 아마도 이런 책을 두고 ”양서“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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