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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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에 관한 전략을 위하여


양극화는 어떤 문제에 관한 우리-그들의 사고방식, 즉 다른 인식과 견해에 차이가 있어 생기 긴장과 갈등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우파와 좌파 그리고 중도가 존재하는데, 이 책의 관심은 “중도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다루며 최종적으로는 양극화에 관한 충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지점은 단순히 좌, 우 사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지점으로 인해 사회가 통합되고 문명적으로 공존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2006년부터 대화, 갈등, 양극화 관련 작업을 시작, 북아일랜드, 레바논, 네팔, 콩고, 세르비아 등에서 일어난 갈등, 양극화 상황 등을 경험했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지난 10년 동안 경험한 결과다. 


책 구성은 3부 7장이며, 1부는 양극화의 작동방식, 새로운 접근 방식 기본 법칙 3가지와 5가지 역할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갈등에 관한 올바른 이해(갈등의 7단계와 해결 4단계)를 바탕으로 어떻게 양극화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보여준다. 3부는 지은이의 연구 결과로써 양극화에 관한 전략적 해결책에 쓰는 구체적인 도구들을 소개한다. 특히 중도에서 버티기 전략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사회적 결속과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며 판도를 바꾸는 4요소, 목표, 주제, 위치, 어조를 바꾸라고 한다. 중재적인 발언과 행동 등을 싣고 있다. 


양극화의 복잡성


양극화는 단순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봐서는 안 되며, 차별, 불평등, 폭력의 원인이라고 예단하거나 낙인, 딱지를 붙여서도 안 된다(현상적 혹은 표면적 양극화라 하자). 양극화는 이보다 더 심각(입체적이고 깊이 있는)하기에 모든 면을 보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치인과 시민 사이의 양극화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됐을까, 이른바 진영 혹은 편을 가르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주동자가 들고나오는 이슈, 목표, 어조 등에 따라 사람들은 영향을 받는다. 


구분하기 어려운 갈등과 양극화 “우리-그들” 사고방식


사회에서 우리-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은 크고 작은 규모로 존재한다. 이들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과 양극화는 다르다. 물론 갈등은 지은이의 구분에 따르면 양극화의 동생쯤 되기에 비슷하지만, 결은 다르다. 사람들은 종종 양극화를 다소 큰 갈등이 통제를 벗어난 상황으로 여긴다. 그래서 갈등을 다루는 방식으로 양극화에 맞서지만, 이것들은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이슬람 대 비이슬람’의 양극화, 미국에서 백인 경찰 대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역 사회 대립, 부유한 기업가와 가난한 노동자 사이의 충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어느 한쪽 집단에 가깝다고 느끼며 선택하거나 그와 반대로 그냥 외부에 머무르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갈등 관리가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양극화는 상황이 다르다. 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누구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누구에게 접근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양극화 관리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다에쉬 테러리스트(뉴스에서 IS라고 하는 이들과 구분을 위해 지은이가 명명)들이 유럽을 공격할 때마다, 이슬람교도는 그런 사람들과 연을 끊으라는 요청을 받는다. IS 대신에 다에쉬라는 IS의 아랍어 전체 명칭의 앞 글자만 딴 단어로 부르는 이유는 IS라는 용어가 기발한 방식으로 양극화에 영향을 주어서다. 이 용어를 사용하면 아랍 모두를 한 집단으로 묶어버리기에 누가 테러리스트인 줄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교도 대 비이슬람교도의 양극화를 부추겼는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호한 상태가 돼버린다. 


이 책은 이런 특징을 현장경험을 통해서 충분히 숙지한 전문가답게 갈등과 양극화 이것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양극화로 갈 수 있고, 양극화가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형제로 부르고 있다.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양극화는 서로가 반대되는 극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우리-그들’이라는 개념과 대립 구도의 사고방식, 이를 부추기면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연료’, 합리성보다는 ‘직감의 역학’이 작동하는 것이 양극화의 표징이라 볼 수 있겠다. 양극화 논쟁에서는 아무리 합리적 혹은 합당한 반박을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를 기본 3 법칙으로, 그리고 여기에 각각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양이라는 5가지 역할이 있다.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 이들의 에너지는 밖으로 향하며, 특정 방향으로 움직인다. 


갈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갈등은 부정적인가, 아니면 긍정적인가,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두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갈등이다.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다. 갈등이 생기면 이를 다루는 기술을 훈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긴다. 평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평화가 깨졌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갈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갈등을 마주하게 된 이유는 우리 모두 같은 것을 원하기에 그렇다. 이 유사성이 갈등의 근원이라면 상대와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갈등은 양극화 촉진하고 양극화는 갈등을 강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갈등과 양극화의 상호작용이다. 이 역시 7단계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양극화의 새로운 접근 방식


여기서 필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중재든 대화든 그리고 대화라는 매체를 쓰려면 타당한 지식과 실용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양극화에 대응하려면 4가지 기준을 제대로 다뤄야 한다. 즉, 판을 뒤엎는 것이다. 목표와 주제, 위치와 어조를 바꾸라는 것인데, 주동자가 주목하는 것은 중간그룹이다. 크기가 줄어들면 양극화 현상이 증가한다. 양극화는 중간에 있는 사람을 흑백의 선택으로 몰아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반대로 양극화를 줄이는 것 또한 중간층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사회결속은 중간층 바로 중간지대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주제는 정체성이다. 어조를 변경하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데, 핵심은 누구를 가르쳐 들지 말라는 것이다. 중재적 발언과 행동이 필요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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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되려다 쉬운 사람 되지 마라 - 2500년 동양고전이 전하는 인간관계의 정수
이남훈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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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과 승승장구, 그 선택의 기로 


2500년 동양고전이 전하는 인간관계의 정수, 지은이 이남훈이 주목한 것은 “주도권”이다. 왕과 패권자가 절대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여도 뛰어난 신하가 나라 정치를 바로 세울 수도 있고, 간신배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 돈이 많다고, 나이가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반드시 주도권을 쥐는 것도 아니다. 주도권을 잃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은 늘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충실했지만, 회사에서 토사구팽,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면서도 늘 불안해하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누군가에게 잘해주었지만, 반대로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는 ‘쉬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가족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한 사람도 결국, “주도권”을 빼앗긴 사람의 모습이다. 고전 속에는 오랫동안 검증된 지혜가 담겨있다. 


이 책 구성은 6부다. 1부는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참맛, ‘물어뜯지 못할 거면 짖지도 마라’에서는 뒤에 서야 앞설 수 있고, 잊을 수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결핍은 부실함이 아니라 채워질 가능성이다. 보통 생각과 다른, 즉, 역발상의 지혜가 엿보인다. 2부 나의 방어벽을 구축하는 세상과의 거리 조절 ‘트렌드를 좇으려다 스타일을 구길 것인가?’ 내가 보는 나에 갇히면 남이 보는 나를 만날 수 없다. 대단히 철학적이다. 우월감에 빠지면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없게 된다. 세상에 주파수를 맞추다 보면 내 중심축까지 잃을 수 있다. 나만의 바운더리를 구축해야 함을 의미한다. 3부는 ‘좋은 사람이 되려다 ’쉬운 사람‘이 되는 이유, 인간관계, 기대는 오버이고 예의는 지능이다. 4부 ’사람과 관계를 보는 안목으로 주도권을 지켜라. 5부 주도권을 가로막는 심리 상태의 극복, 6부 사회적 위상의 역동성을 만들어가는 등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25가지 지혜가 담겨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생겨난 지혜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나를 잃지 않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부제 ‘좋은 사람이 되려다 쉬운 사람이 되지 말라, 왜 쉬운 사람이 될까, 그 이유만 알아도 내 삶의 주인공으로 온전히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아닐까 싶다. 


좋은 사람이 되려다 쉬운 사람이 되는 이유 


“묵묵하고 말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절대 속마음을 털어놓지 말아라” 


타인과는 수세적으로, 나 자신과는 공세적으로 친밀해지라고, 사람과의 만남은 이제까지 살아온 두 인생의 충돌이기도 하다. 둘이 만나 불꽃이 튀며 인생이 더 흥미진진해질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검증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은 수세적으로, 수세적이란 수동적이란 의미는 아니다. 즉, 나를 지키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만 허락하는 관계가 수세적이다. 두 인생의 충돌과정에서 상대방한테서 올 수 있는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조선 시대 허균이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 진계유다. 그의 책 <소창유기>에는 수세적 인간관계에 관한 몇 가지 지혜가 담겨있다. 진계유는 일반 상식의 조금 뒤편에서 관계를 이어 나가는 자세를 가지라고 했다. 


“남이 내 앞에서 칭찬하게 하기보다는 남이 내 등 뒤에서 험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낫고, 잠깐 사귀면서 좋아하기보다는 오래 함께 지내면서 싫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낫다.”


“누군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남에게 은혜를 베풀기보다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은 일이 훨씬 후덕하다.”


“ 남의 잘못을 꾸짖을 때는 너무 엄하게 하지 마라. 그가 받아들여 감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좋은 말로 남을 가르칠 때는 너무 고상하게 하지 마라, 그가 알아듣고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 세 문장을 기억해둬야 한다. 첫째 글은 “내 등 뒤에서 험담”하지 않도록 하라. 늘 바운더리를 생각하고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 때로는 환심을 사야 할 때도 생긴다. 하지만,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기에 자랑할 것도 없고 기억할 필요도 없지만, 쓸데없이 기억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받은 은혜는 잊지 않고 갚아야 한다. 반드시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 은혜는 돌고 도는 것이기에 누군가에게 베풀어야 한다. 인간관계의 선순환. 세 번째 글 역시, 익히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나를 다스리는 일은 쉽지 않기에 꾸짖기 전에 2초만 기다리자.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도록.


나 자신과의 공세적 대화란 무엇인가, 나 자신에게 일깨우는 것이다. 넌 잘할 수 있어, 라고 실제 심리학적 실험에서도 자신과의 대화는 유의미한 것으로, 심지어 사회적으로 처한 고통의 극복에도 효과가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누구한테도 토로할 수 없는 곤란, 곤경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신과 대화를 했다. 바로 유명한 <명상록>이 그것이다. 글쓰기는 역시 마음을 다스리는 데 유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비가 가진 비장의 무기 “겸손” 


겸손은 나를 낮추고, 허리를 굽힘으로써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이는 보기 나름이다. 겸손은 이기심의 정수, 최상의 것일 수도 있다. 가장 이타적인 것이 이기적이다. 겸손은 상대방의 경계를 풀어, 무방비 상태로 만들 수 있고, 그런 상태에서 상대의 급소를 찾아낼 기회가 되기도, 착한 사람이 되려다 쉬운 사람이 된다는 말 속에는 내 바운더리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거기에 “겸손”이란 무기를 더하면, 나를 잃지 않고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아 “중심축”을 유지 혹은 지켜낼 수 있다. 이는 곧 “주도권”으로 이어진다. 고정된 해석에 머물지 않고 문자의 맥락을 읽어낸다면 고전은 늘 나에게 정답을 찾아내는 힌트를 준다. 나에게 맞는 해결책은 고전 속에 친절하게 담겨있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기억해 둘 것은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내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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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성교육 - AI보다 현명한 부모의 우리 아이 지키기
이석원.김민영 지음 / 라온북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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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초래할 무서운 성문화


딥페이크(딥러닝+가짜) 성착취물, AI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괴물, 한국만 모르는 딥페이크 천국 세계 1위,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다른 나라보다 한국이 훨씬 심각, 아동·청소년(학령기, 학생 등 죄다 포함)은 무방비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물음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올해 EU 의회에서 처음으로 ‘여성 대상 폭력 및 가정 폭력 퇴치에 관한 지침’이 통과했다. 이 지침은 EU의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최소한의 것”, 각 국가는 적어도 이 지침에 맞춰 3년 이내에 국내법을 개정해야 한다. 한국은 그 기본조차 못함은 물론 '디지털 성폭력'이라는 현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적절한 대응 방안도 마련하지 못하는 "3 못(디지털 성폭력의 기본이해, 현상이해, 적절한 대응 마련을 못 하는)의 연쇄가 일어나고 있다.


세상을 경악하게 만든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의 70%가 10대


딥페이크의 성범죄 대상은 가족으로까지 확산, 엄마, 누나, 여동생, 사촌 등의 사진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사용되고 있다.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에서는 2,000여 명이 가족사진을 공유하며 불법 합성물을 만들기도, 한 참여자는 “엄마 사진을 공유하니, 마치 영웅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라며 믿기 힘든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고. 딥페이크를 보기만 했던 아이가 제작하는 아이로…. 단순한 장난이었다는 말, 혼란스럽다. 


챗GPT 성교육 혁명이란


챗GPT라는 기술과 그 기술이 바꿀 문화에 대해 처음 접하는 사람이나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설명한다. 둘째, 챗GPT가 성문화에 미치는 영향과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다양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셋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챗GPT 시대에 맞는 성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를 5장으로 구분하여 1장에서는 챗GPT개념과 세계가 왜 이 기술에 주목하는지를 알아본다. 2장에서는 챗GPT가 우리 삶과 문화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과 지금 당장에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 3장에서는 챗GPT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성 문제들을 분석하고 그 위험성을 밝힌다. 4장에서는 양육자가 챗GPT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녀에게 주도적으로 성교육을 시키는 방법을 안내한다. 5장에서는 아이들이 챗GPT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분별력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제시한다. 


기존 성교육의 문제와 한계 극복 방안


챗GPT가 출현한 시대, 기존의 성교육의 문제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과 획일적 내용, 변화하는 성문화에 대한 대응 부족 등이다. 챗GPT시대에 맞는 새로운 성교육 방법과 재구성을 보자. 첫째 개인화된 학습 접근과 실시간 상호작용, 둘째, 정확성, 신뢰성을 갖춘 정보제공이 중요하다. 셋째로 윤리적 기준 확립과 존중 의식이 필요하다. 넷째, AI 기반 성교육 플랫폼 구축과 협력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챗GPT로 만들어낸 성범죄의 예방도 챗GPT로, 즉 응용 AI가 만들어낸 문제를 AI가 해결하도록 한다는 발상이 흥미롭다. 


Sora 프로그램의 성범죄 악용과 법적 대응의 어려움


소라 같은 생성형 AI 프로그램 영상 제작 기능은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첫째는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증가와 피해자 보호와 법적 대응의 어려움, 딥페이크와 같은 기술적 범죄는 증거 수집이 어렵고 가해자를 추적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소라를 개발한 오픈 AI와 같은 기업의 책임도 명확하지 않기에 피해자가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챗GPT든 AI든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은 분별력과 판단력의 문제다. 장난인데 뭘 하는 수준을 넘어 인권침해라는 인식, 인간 존중의 가치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은 AI와는 본디 상관없다.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 도덕을 강조하자는 건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오프라인의 포르노 등과 달리 인터넷을 통해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상공간에서는 사람의 인격 또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동전의 양면, 즉 기술발달은 늘 유익한 것만 아니라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딥페이크는 왜 문제이며, 어떤 사회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챗GPT를 다스리는 아이 만들기


한 아이를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생각하고 분별하는 힘이 있는 아이, 생각 훈련 전 자아를 단단하게, 민감성(감수성)을 가진 아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아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아이는 “전인적 교육” 그 자체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지만, 학업 성적 중심의 교육이 빚어낸 아이들의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챗GPT등 생성형 AI를 통해서 확산,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교육문제를 보면 우선 인간이 되야라는 말과 통한다. 다만, 예측 불가능하다는 위험요소를 다각적으로 분석,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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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읽기의 혁명 - 비루한 삶도 고귀한 삶도 부활한다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4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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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읽기의 혁명은 니체 특유의 화법때문에 수많은 오해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손석춘은 바로 이런 대목에서 오해와 이해를 위해 "니체 읽기의 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니체 읽기의 혁명


지은이 손석춘은 오랫동안 언론인 생활을 하고 대학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며 책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때 철학을 공부하면서 니체를 접했고, 언론인으로 생활하면서도 니체를 놓지 않았다. 마르크스 철학과 하버마스 철학을 삶의 현실에 견주어 학위논문을 쓰고 대학에서 강의를, ‘비평과 커뮤니케이션’ 강의 시간에 니체 철학을 삶의 비평이론을 다룬다. 


이 책은 니체철학과 우주철학의 대화다. 니체가 경고했듯이 누군가의 철학에 다가설 때 자신의 관점을 잃지 않아야 한다. 니체를 읽을 때도 생각의 근육을 단련해가야 옳다고 강조하는 지은이, 그는 니체에 관한 세상의 두 가지 흐름을 지적했다. 하나는 삶에 지칠 때 힘을 얻고자 니체의 단편적 문장에 기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철학이 파시즘은 아니더라도 반민주주의임이 확실하다며 니체 읽기를 경계하는 것이다. 


손석춘의 니체 읽기의 혁명은 영원회귀 우주론을 바탕으로 주권적 개인들이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시대를 열망하는 니체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니체 애독자 중에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니체의 사유는 개개인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철학의 길에 들어서면서 ‘위대한 정치’를 구상했고 그의 시대 비판이 근대사회를 겨냥하고 있다. 권리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 개인의 정립과 그에 대한 니체의 깊은 통찰을 새겨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이 책의 구성은 6장 체재이며, 니체의 삶과 철학의 출발점(1~2장), 니체의 삶, 그가 보수도 진보도 경멸한 까닭을 싣고 있다, 철학의 출발점은 기독교와 휴머니즘을 비판한 우주론, 우주론(3장)에서는 힘에의 의자와 영원회귀, 형이상학적 이분법과 신의 죽음을, 인생론(4장)에서는 비루한 삶과 고귀한 삶, 죽음은 허무가 아닌 아름다운 축제라고 장자가 그의 아내가 죽자 북을 치면서 기쁜 얼굴을 하였다는 데 그는 힘든 삶을 떠나 이제야 평온을 찾았다고, 세계관의 차이는 이렇게 현상을 해석하는 게 달랐다, 니체의 영원회귀 철학과 우주과학을, 사회철학(5장)에서는 반민주주의자, 그 오해와 이해, 고귀한 사람을 질투하는 사회, 실천론(6장)에서는 임금 노예의 치욕을, 반도덕적 전투와 전투적 도덕, 주권적 개인의 정치철학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니체, 우리 사회의 니체 철학의 접근법은 꽤 유의미하다. 


손석춘은 이 책에서 그가 깨우친 니체를 말하며, 학문하는 태도를 지적한다. 니체 읽기의 기준은 유럽도 미국도 아닌 바로 현실 속 한국이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 유럽의 잣대로 한국을 재단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세를 손석춘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니체는 진짜 반민주주의자인가, 그 오해와 이해, 니체 읽기 혁명이 필요한 이유


지은이는 니체가 민주주의와 평등을 비판하는 글 때문에 반민주주의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흑백논리다. 니체는 히틀러의 나치즘과 파시즘의 선전에 악용됐다고 봤다. 그 뿌리로 니체가 죽고 1년 후인 1901년 <권력에의 의지>라고 알려졌지만, 실은 그의 여동생이 파시스트 남편의 직간접적인 개입 아래 오빠의 의도와 다르게 편집하며, 짜깁기에 가필까지. 이렇게 니체의 유고는 파시즘 사상을 담은 책이 됐다. 


지은이는 니체를 비판한 진보적인 법학자 박홍규의 <니체는 틀렸다>를 비판한다. 니체 전집 어디에서도 반민주주의적 문장들을 비판하는 해제를 찾아볼 수 없다며 시작한 박홍규의 니체 비판, 그는 니체의 반민주주의적 사상이 한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엘리트주의와 궤를 같이한다고 분석했다. 학벌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노동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초인이 되라, 귀족이 되고 주인이 돼라”라는 니체의 권고는 차별만 더욱 고취할 뿐이라고, 손석춘은 이 점에 관해 한국에서 많이 읽히는 배경을 살펴볼 때 한 번쯤 새겨볼 대목이라고 했다. 박홍규의 비판은 농구선수 출신의 예능인 서장훈이 개그맨 김제동을 비판한 대목과 궤를 같이한다. 장래가 어두워 불안해하는 청년들에게 ‘요새 청년들에게 괜찮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며 무책임하게 응원하는 발언’이라고, 김제동은 이런 강연을 하고도 수천만 원의 강사비를 받지만, 청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냈느냐고.


박홍규의 니체 비판은 단적으로 말해 니체 사상의 핵심은 인종주의 반민주주의라며 그의 귀족주의를 덧칠해 오로지 정신적인 것으로 만들려 해서는 안 된다. 귀족주의는 현실에서 갖가지 독재로 존재한다고, 손석춘은 박홍규의 비판을 과도하고 한계가 뚜렷한 비판이지만 경청할 대목도 있다고, 그는 박홍규가 니체 철학을 오해하고 있다고 봤다. 우선 니체는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니체 자서전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고, 이 대목에서 박홍규는 얼음으로 덮인 산 정상에서 고독을 기꺼이 감수하며 삶의 모든 것을 탐구하는 철학자가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라고 각자도생의 삶을 부추길 수 없다. 니체의 문학적 표현을 법학자가 곧이곧대로 풀이할 때 생길 수 있는 오독이며, 니체에 대한 비판이 지극히 도식적인데, 이는 니체의 철학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고.


손석춘의 비판에 대한 박홍규의 반 비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박홍규의 비판을 반민주주의자로 보는 흐름에 있다고 본 듯하다. 손석춘과 박홍규의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손석춘이 니체의 전체를 삶의 철학, 사회문화 차원의 논리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고귀한 사람을 질투하는 사회”에서 이렇게 썼다. 


“니체는 ‘자유 사회’의 인간은 한낱 ‘무리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며 ‘인간이 평등한 권리와 요구를 지닌 왜소한 동물로’ 퇴화하는 흐름을 ‘동물화’로 규정한다. 그것도 ‘왜소한 동물’이다. 영원회귀와 종말인을 경계 또는 경고하고 자기를 넘어서는 극복인이 되기를 호소해 온 니체로선 두 인간 유형 사이의 격차를 외면한 채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상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손석춘의 이어서 위대한 정치가 구현된 공동체에서 정신적 위계와 불평등을 인정해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니체는 ‘귀족적인 사회’를 제시한다. 이 대목에서 문구에 집착하면 니체는 귀족주의자요 반민주주의자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귀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이 문장에 관한 오해를 해소할 수 있다고. “귀족이란 말은 종래 뜻한 바 보다는 훨씬 정신적인, 그리고 근본적인 뜻”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곧 고귀한 사람이 중심이 된 사회, 건강한 사람을 길러내는 사회를 이르는 니체식 표현이라고. 손석춘의 니체 읽기 혁명은 꽤 흥미롭다. 니체 애독가에게도 비판자에게도 새롭게 니체를 보자고 말하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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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 망해가는 세계에서 더 나은 삶을 지어내기 위하여
양미 지음 / 동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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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역설


지은이 양미는 수도권에서 사회운동, 정당 활동, 그리고 생업 전선에서 비정규직을 거쳐 정규직, 서울 은평 신문기자, 독립영화 제작, 여성과 노동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한 민주시민교육을 하면서 두루 한국사회의 모순을 경험했다. 2015년에 시골로 터를 옮겨 아이들에게 “인권”과 “환경”을 주제로 수업과 놀이, 글쓰기, 텃밭 일구기를 하면서 가끔 임금노동을 하면서 생활한다. 


그에게 비친 시골, 농촌의 풍경은 외지인의 주마간산이라면 늘 풍요롭고, 온화하고 인심이 넘치는 그런 이상향이겠지만, 그곳에 터 잡고 사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2시간에 한 번 오는 농촌 버스, 장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자니 돌아오는 길에 다 녹아버리고, 수박 한 덩이 사 오려 해도 무거워서 낑낑거려야 하니, 차가 있다고 해도 경운기나 몰 줄 아는 어르신들은 운전면허가 없다. 


한디디<커먼즈란 무엇인가>의 저자나 더 촘촘한 민주주의를 위하여라는 이라영의 추천의 글 속에 이 책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드러나 보이지만, 아무래도 말이 어렵다. 차라리 시골은 은퇴해서 가는 곳이 아니며, 귀향 귀촌, 귀농이라는 의미불명의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시골에는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고, 삶을 엮어가는 무대 그 자체다. 


한국의 시골 생활 속에서 그저 시골이니까가 아니라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기에, 이동권 보장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적 시골살이, 시골은 어떤 면에서는 도시보다 더 정치적이다. 물론 나쁜 의미로서 말이다. 시스템은 무능하거나 부패했다. 시골은 군수나 군의원, 공무원, 지역유지, 이권단체 등이 좌지우지하는 그들만의 왕국이다. 도시는 감시자가 있어(시골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대놓고 해먹을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기에 적당히 눈치 보면서 사는데, 시골은 아예 대놓게 해 먹는다. 시골에서 기후 위기, 환경, 동물권은 호강에 초치는 소리쯤으로 들린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6부다. 왜 시골로 가기로 했는지(1부), 시골에 온 이후 내가 만난 시골의 민낯을, 2022.6.부터 2023.8.까지 전북 무주, 진안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내용(2부)인데 가장 관심은 ‘이동권’이었다. 그다음으로 돌봄의 장소가 필요하다(3부)에서는 주거관과 농촌 현실을, 빈집은 많지만,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기 힘든 현실, 이를 이용해 이권을 얻는 사람들과 손 놓고 있는 행정에 관한 이야기를, 생존권을 넘어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4부) 에서는 시골 여성과 청년 이야기를, 그리고 ‘기여’는 어떻게 정치가 될 수 있을까(5부), 행정이 기여와 활동을 생계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제도적 착취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지금 시골에는 민주주의가 절실하다(6부). 정치 혹은 민주주의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군수와 지방의원들에 관한 이야기, 수상한 조례 내용과 조례가 만들어지는 진행 상황도 담았다. 지은이는 민주주의를 좋은 삶, 좋은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시골에서 다시 꿈꾸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의식을 적었다. 


정치적 시골살이가 왜 필요한가?


도시중심의 지방자치제도, 지방분권을 향해가지 못하고, 현상 유지다. 분권 의지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읍면동에 있는 자치위원회는 본디 무엇을 하는 것인고라는 의문이, 주민자치위원회라는 읍, 면, 동장의 자문기구를 대체할 주민자치회가 지방자치 분권 및 지방행정 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전국 지자체에서 시범 사업을 하고 있고, 주민자치회 설치와 운영에 대해서는 따로 법률로 정하도록. 2020년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민자치회 관련 조항은 삭제됐다. 주민이 조례제정과 개정안을 낼 수 있게 됐지만, 현실적으로 갈 길이 멀다. 제도적으로야 시골이든 도시든 주민의 참여민주주의라는 것을 의식하고는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아마 시골, 왜 도시보다 더 치열하게 정치적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적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협의 실행기구다. 그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 기본이다. 주민이 주체인 모임이다. 우리 마을, 동네에 이런 게 필요하고, 모꼬지와 축전은 이렇게 하자고 자발적으로 나서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인데, 뭐가 불편한지 주민자치회를 법안에서 빼버렸단 말인가, 앙 없는 붕어빵?, 


군내버스 운전노동자에게 듣다


농어촌 인구 10퍼센트만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책임지면서 불편과 불만의 대상이 되어 욕받이까지 담당하는 버스 운전노동자는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까를 소개(쪽수가 없어서 2부6)한다. 실제로 일어는 현실 그대로다. 도시의 시내버스 운전노동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지은이 2부 7에 사람도 휠체어도 다닐 수 없는 길, 보행권을 바란다는 소제목의 글에 이렇게 썼다. 보도 위의 놓여있는 대형화분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볼거리겠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장애물일 뿐, 누구의 시좌로 이런 장애물을 보도에 올려놓았을까, 주마간산의 시골 풍경을 즐기는 관광객을 위해서. 이곳에도 사람이 사는데, 그들의 이동권을 방해하는 것은 도대체가.


영광군수 보궐선거가 끝났다. 진보정당 후보는 지금 사용연장이 쟁점이 된 한수원의 한빛원자력발전소(3개, 총6기)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영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위에서 봤던 지방자치단체와 유지들, 군번영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환경보호는 그림의 떡, 군수 후보자 중 누구라도 원전 사용연장 반대 견해를 입에 담는 순간, 탈락의 가능성이 크다. 말 그대로 선거의 최대 리스크다.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이 순간 증발하고 만다. 진보건, 보수건 간에.


그래서 이 책 제목이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임을. 정치와 행정, 주민의 이동권과 돌봄 등의 지역복지만 들먹여도 눈에 보이는 장애가 넘쳐난다. 이 책은 시골살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랍니다. 바꿀 의지가 있는 사람이 와야 할 곳이 시골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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