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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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에 관한 전략을 위하여


양극화는 어떤 문제에 관한 우리-그들의 사고방식, 즉 다른 인식과 견해에 차이가 있어 생기 긴장과 갈등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우파와 좌파 그리고 중도가 존재하는데, 이 책의 관심은 “중도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다루며 최종적으로는 양극화에 관한 충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지점은 단순히 좌, 우 사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지점으로 인해 사회가 통합되고 문명적으로 공존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2006년부터 대화, 갈등, 양극화 관련 작업을 시작, 북아일랜드, 레바논, 네팔, 콩고, 세르비아 등에서 일어난 갈등, 양극화 상황 등을 경험했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지난 10년 동안 경험한 결과다. 


책 구성은 3부 7장이며, 1부는 양극화의 작동방식, 새로운 접근 방식 기본 법칙 3가지와 5가지 역할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갈등에 관한 올바른 이해(갈등의 7단계와 해결 4단계)를 바탕으로 어떻게 양극화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보여준다. 3부는 지은이의 연구 결과로써 양극화에 관한 전략적 해결책에 쓰는 구체적인 도구들을 소개한다. 특히 중도에서 버티기 전략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사회적 결속과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며 판도를 바꾸는 4요소, 목표, 주제, 위치, 어조를 바꾸라고 한다. 중재적인 발언과 행동 등을 싣고 있다. 


양극화의 복잡성


양극화는 단순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봐서는 안 되며, 차별, 불평등, 폭력의 원인이라고 예단하거나 낙인, 딱지를 붙여서도 안 된다(현상적 혹은 표면적 양극화라 하자). 양극화는 이보다 더 심각(입체적이고 깊이 있는)하기에 모든 면을 보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치인과 시민 사이의 양극화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됐을까, 이른바 진영 혹은 편을 가르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주동자가 들고나오는 이슈, 목표, 어조 등에 따라 사람들은 영향을 받는다. 


구분하기 어려운 갈등과 양극화 “우리-그들” 사고방식


사회에서 우리-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은 크고 작은 규모로 존재한다. 이들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과 양극화는 다르다. 물론 갈등은 지은이의 구분에 따르면 양극화의 동생쯤 되기에 비슷하지만, 결은 다르다. 사람들은 종종 양극화를 다소 큰 갈등이 통제를 벗어난 상황으로 여긴다. 그래서 갈등을 다루는 방식으로 양극화에 맞서지만, 이것들은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이슬람 대 비이슬람’의 양극화, 미국에서 백인 경찰 대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역 사회 대립, 부유한 기업가와 가난한 노동자 사이의 충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어느 한쪽 집단에 가깝다고 느끼며 선택하거나 그와 반대로 그냥 외부에 머무르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갈등 관리가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양극화는 상황이 다르다. 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누구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누구에게 접근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양극화 관리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다에쉬 테러리스트(뉴스에서 IS라고 하는 이들과 구분을 위해 지은이가 명명)들이 유럽을 공격할 때마다, 이슬람교도는 그런 사람들과 연을 끊으라는 요청을 받는다. IS 대신에 다에쉬라는 IS의 아랍어 전체 명칭의 앞 글자만 딴 단어로 부르는 이유는 IS라는 용어가 기발한 방식으로 양극화에 영향을 주어서다. 이 용어를 사용하면 아랍 모두를 한 집단으로 묶어버리기에 누가 테러리스트인 줄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교도 대 비이슬람교도의 양극화를 부추겼는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호한 상태가 돼버린다. 


이 책은 이런 특징을 현장경험을 통해서 충분히 숙지한 전문가답게 갈등과 양극화 이것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양극화로 갈 수 있고, 양극화가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형제로 부르고 있다.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양극화는 서로가 반대되는 극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우리-그들’이라는 개념과 대립 구도의 사고방식, 이를 부추기면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연료’, 합리성보다는 ‘직감의 역학’이 작동하는 것이 양극화의 표징이라 볼 수 있겠다. 양극화 논쟁에서는 아무리 합리적 혹은 합당한 반박을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를 기본 3 법칙으로, 그리고 여기에 각각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양이라는 5가지 역할이 있다.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 이들의 에너지는 밖으로 향하며, 특정 방향으로 움직인다. 


갈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갈등은 부정적인가, 아니면 긍정적인가,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두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갈등이다.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다. 갈등이 생기면 이를 다루는 기술을 훈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긴다. 평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평화가 깨졌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갈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갈등을 마주하게 된 이유는 우리 모두 같은 것을 원하기에 그렇다. 이 유사성이 갈등의 근원이라면 상대와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갈등은 양극화 촉진하고 양극화는 갈등을 강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갈등과 양극화의 상호작용이다. 이 역시 7단계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양극화의 새로운 접근 방식


여기서 필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중재든 대화든 그리고 대화라는 매체를 쓰려면 타당한 지식과 실용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양극화에 대응하려면 4가지 기준을 제대로 다뤄야 한다. 즉, 판을 뒤엎는 것이다. 목표와 주제, 위치와 어조를 바꾸라는 것인데, 주동자가 주목하는 것은 중간그룹이다. 크기가 줄어들면 양극화 현상이 증가한다. 양극화는 중간에 있는 사람을 흑백의 선택으로 몰아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반대로 양극화를 줄이는 것 또한 중간층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사회결속은 중간층 바로 중간지대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주제는 정체성이다. 어조를 변경하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데, 핵심은 누구를 가르쳐 들지 말라는 것이다. 중재적 발언과 행동이 필요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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