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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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문화, 이민자(비등록-그냥 국경을 넘어온 이들)2세의 청소녀의 성장소설, 언니의 죽음, 전통적 사고를 고집하는 멕시코 엄마와의 갈등, 친구들과 우정, 첫사랑, 작가의 꿈을 위해 나래를 펴는 주인공 훌리아의 멘트가 돗보이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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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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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다

 

완벽한 멕시코 딸은 대학에 가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부모님과 함께 산다. 완벽한 멕시코 딸은 결코 가족을 떠나지 않는다. 주인공 훌리아 엄마는 결혼 전에는 절대 남자와 성관계를 가져서도 안 된다. 정크푸드(햄버거 따위)를 먹어서도 안 된다. 마치, 우리 사회의 오래전 아니 지금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전통적(유교질서라 해두자) 사고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은 시카고에 사는 멕시코 이민자(미등록 외국인, 이른바 체류비자 없이 멕시코에서 몰래 미국에 들어와 사는 부모, 하지만 딸은 속지주의인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미국시민이다)의 딸인 주인공 훌리아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다. 성당에 제대로 안 나가고, 정크푸드를 먹고, 제멋대로 살면서,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진짜 무례한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 작가가 되겠다고 하고,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고, 다초점 안경에 여드름 자국, 뚱뚱한 몸, 15살이 되도록 간단한 요리 하나도 못 한다. 요즘 말로 엄마 눈에는 여성으로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애물단지인 셈이다.

 

 

 

 

완벽한 멕시코 딸은 올가였을까? 

 

완벽한 멕시코 딸은 훌리아의 언니, 올가다. 엄마를 도와 야무지게 집안 살림도 요리도 척척 해낸다. 이야기의 서막은 올가의 장례식이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며 시카고의 가장 번잡한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어 죽었다. 올가의 죽음으로 훌리아와 엄마아빠는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훌리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 친하지도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했던 언니. 그렇지만 가까운 존재의 죽음으로 훌리아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학교생활 그렇고 우정도, 우연히 소설처럼 영화처럼 찾아온 첫사랑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언니 올가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 것 같아 고통받던 훌리아는 언니의 흔적을 쫓는다. 뭔가 이상하고 비밀스러운 언니의 이면, 이 죽음에는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얌전하고, 착하고, 욕심 없고 똑똑하기까지 한 아름답고 완벽한 올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나? 아빠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진짜로 그랬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감추고 인내하며 살아온 올가의 욕망, 욕구가 드러나는 뭔가 있는가)임신까지, 진짜 올가의 모습은 아무도 몰랐던 게 아닐까? 이해받지 못하고 부모님의 속을 뒤집는 사고를 쳤던 훌리아. 실제로는 가족들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스물아홉 장으로 엮여있다. 에피소드를 하나씩 묶어서,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훌리아, 군데군데 촌철살인의 멘트, 페미니스트로서 인식도, 표현 하나하나가 시원스럽다고 해야 할까. 심각한 대목에서도 불쑥 뛰어나오는 코미디, 단조로울듯한데 전혀 그렇지 않은 소설, 

 

 

이 소설은 라틴계 이민자 가정의 딸인 청소녀 훌리아의 성장소설이다.

 

아마도 작가 에리카 산체스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밀한 묘사는 마치 그 현장과 당시의 경험 등이 바탕에 깔린 듯, 미국이라는 인종의 샐러드 볼 안에서 정체성을 고집하는 부모세대와 미국 사회에서 삶을 지향하는 2세간의 마찰, 상반된 문화 속에서 나를 찾기 위한 노력, 그것이 올가형이든 훌리아형이든 어떤 형태로든 세상과도 가족과도 싸워야 했다. 뉴욕으로 떠나면서 아빠에게 다시 그림을 그리한다. 훌리아는 엄마 아빠가 이해하든 말든 가족을 위해 사는 것도 그가 이루려는 것의 일부가 아닐까…. 

 

가족들과 화해, 그가 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이야기하자 잉맨 선생님은 그것을 글로 써보라고 한다. 그 글이 대학입학 지원 에세이가 됐다. 자신을 스스로 그의 안에 있던 또 다른 나와 싸움에서 이번은 승리한 듯하다. 또, 언젠가는 겨루기가 벌어질지도 모르지만….

 

백인이 중심인 미국 사회에서 히스패닉, 라틴계 이민자 특히 경제적 이유로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국경을 넘은 이들에게 직업의 선택이란 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태어난 2세들은 미국시민이다. 이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법과 제도의 경계, 철조망이나 해자처럼 이것이 심리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미상을 11개월 연속으로, 전미문학상의 후보까지 오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시아계 이민, 한국계, 일본계, 중국계의 이야기도 소개되기를 기대해본다. 

 

훌리아의 거침없는 쏟아내는 시원스러운 말, 하이킥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마지막 장면, 뉴욕을 향한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일기장에서 올가의 태아 초음파 사진을 꺼낸다. 지난번에는 심장이 뛰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이것을 사랑해야 할 또 다른 존재를, 이미 죽은 또 다른 존재를 어떻게 엄마 아빠에게 줄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서. 2년 동안 언니를 이해하기 위해 언니의 삶을 뒤졌고, 그러면서 훌리아는 아름답고 추한 자신의 조각을 찾는 법을 배웠다. 어느새 한뼘 더 성장한 훌리아, 이제 둥지를 떠날 때가 된 것인가...

 

 

 

우리사회에도 많은 훌리아가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이 많이 이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며, 아울러 우리 주변의 훌리아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기를, 응원해주시길...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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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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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2학기 시작과 함께 동복을 입고, 전학 온 은기

 

담임 선생이 전학생을 소개한다. 이 친구는 강은기야…. 그때의 은기를 생각하면 기우뚱한 가로등이 떠오른다. 호수의 옆에 놓인 다른 기억…. 한낮에 홀로 불이 켜져 있는 가로등. 그러다 밤이 되면 슬그머니 빛을 잃고 어둠에 잠기는 가로등. 하지만 그날 은기는 그냥 전학생이다. 호정은 SNS도 하지 않고, 낡은 폴더 폰을 쓰는 은기가 궁금해지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오는 그의 하굣길이 신경 쓰인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나는 은기에 대한 마음은 셀레임으로 바뀌고, 그렇게 찾아온 호정의 풋풋한 첫사랑...

 

열 입 곱 살, 고1의 세상, 대입이라는 언덕을 향해가는 사춘기 청소년과 청소녀 호정과 은기. 그리고 강은기, 대입전을 치르는 전쟁터와도 같은 학교, 친구들, 나래와 보람, 지후, 짖굿은 곽근…. 언제 어느 때고 사춘기,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지금껏 일어났던 일들…. 소설을 읽노라면, 어느덧, 그 시절로 돌아간다.

스마튼 폰에, 인강, 페이스북, 학원을 빼면, 학교 앞 떡볶이 가게, 튀김과 오뎅, 분식 가게는 여전하다.

 

호수의 옆 기억들

 

친구들이 가진 사연들, 호정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한 뒤 할머니 댁에서 지내던 시절의 묵직한 분위기, 말을 배우기 전에 그 마음을 알아버렸다. 동생 진주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 이런 화목한 가족에 녹아들지 못하는 호정, 혼자 누워 있던 어두운 밤, 엄마와 아빠를 만나러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갔던 어느 저녁의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호정은 여전히 엄마와 아빠의 관심이 부담스럽다.

 

얼어붙은 호수, 봄이 오는 날

 

호정과 은기, 같이 떡볶이를 먹고, 같이 걷고, 살짝 손을 잡고, 그게 전부였던 둘 사이…. 어느 날 호정과 사이가 좋지 않던 곽근과 그의 무리는 은기의 과거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은기는 학교를 자퇴하고 사라진다. 그가 학교를 떠난 것에 죄책감을 느낀 호정, 친구들에게도 예민하게 대하며, 친구, 가족 모두로부터 고립, 담을 치고 지내면서 우울증으로까지….

 

은기의 아픈 과거 기억들, 가정폭력으로 어머니와 함께 폭력을 당해온 어린 시절, 사건이 있던 날도 학교에서 돌아오자 술에 취해 어머니의 목을 졸이는 아버지를 떠밀었고, 주방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쳐 뇌출혈로 사망, 목이 졸렸던 어머니는 의식을 잃고, 은기는 상해치사로, 재판 중에 어머니가 깨어나, 이날 상황을 담아두었던 스마트 폰 속 증거 때문에 무죄로 풀려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냈던...은기

 

은기는 떠났지만, 이게 첫사랑인가, 다시 홀로 남겨진 호정, 단단히 얼어붙은 호수에 금이 가고, 가족상담을 고민하고, 친구들과 화해하며 호정은 겨울은 봄을 향해,

 

은기를 찾아 나서는 호정…. 은기는 좋았어 호정아. 기쁜 날이 많았어, 너랑 같이 다면 버스도 괜찮았는데…. 네 덕분이야. 너 때문이었어. 고마워, 오늘…. 이렇게 인사하러 와 준 것도…. 잘 가,

 

호정, 내 마음에 빈방이 생겼다. 그 때문에 나는 슬플 것이다. 그러나 잊지 않으려 한다. 그 방에 얼마나 따듯한 시간이 있었는지를.

 

오늘이 나의 첫눈이다.

 

대입을 준비하는 싸움터와 같은 학교,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춘기 청소년, 청소녀의 일상들, 잠을 줄여가면서 목숨 걸고 경쟁대열에서 쳐지지 않기 위해 비타민제와 두통약을 늘 먹어대는 이들에게도 꿈과 사랑이 있고, 그 대척에 입시 준비라는 스트레스는 혼란스럽기만 한데, 우울증을 겪을 수도, 그 경계선에 놓인 이들도, 누군가를 시기 질투의 마음으로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폭로하고,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생활이 눈앞에 그려진다.

 

청소년, 청소녀의 성장소설이란 아마도 이런 맥락일까?,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갈 준비, 아픔과 기쁨, 오랜 겨울을 깨고 봄이 오려나,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이, 이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청소년, 청소녀의 삶, 가족과 학교 그들의 놓인 환경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살핀다. 특히, 심리적인 움직임까지 포착해 나간다. 우울증과 가정폭력 등의 주제 또한….

 

 

<출판사로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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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결정은 타이밍이다
최훈 지음 / 밀리언서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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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결정은 타이밍이다

1%의 미련도 남지 않게 최선의 선택과 결정을 하는 법

 

나이를 먹으면 선택과 결정을 일도양단처럼 딱 부러지게 내릴 수 없게 된다. 우유부단이나 선택 결정 장애라 해도 좋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은 경우가 우리 생활 속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일어난다. 또, 짬뽕을 먹을 것인가, 짜장을 먹을 것인가 하는 단순한 선택과 결정에도 주저하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그저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뿐이다. 이 작은 선택과 결정을 주저하면 자신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상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펴낸 목적을 자신의 경험 속에서 선택과 결정이 타이밍임을 절감,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최선의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했다.

 

결정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선택과 결정의 주체가 내 자신임을 자각하는 단계에서 출발한다. 내 삶의 주체는 ‘나’라는 인식, 내 기호, 습관, 가치관과 아울러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와의 소통, 직면하기다.

 

누구나 선택과 결정, 선택 불가능 증후군은 정도의 차이를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있고, 정도의 차이는 개인차에 기인한다. 선택과 결정에서 “답변 유보, 시간벌기 등”으로 생각할 여유를 확보하고, 그동안 검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챙겨보고 점검해보라는 것이다.

 

최고의 선택과 결정을 위한 5가지 키워드와 필요한 큐레이션

 

우선 첫째로 내 모든 결정을 <긍정>하라, 두 번째 <심플> 즉, 단순하게 생각하라. 셋째 너 자신을 알라<확신>, 넷째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마지막 <경험>이다. 최고의 선택은 경험에서 나온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머릿속 원숭이 죽이기(90쪽)를, 머릿속에 서 들리는 많은 이야기 곰곰이 따져보면, 주위의 시선과 관심, 다른 사람의 기대감 등 지금까지 내면화된 모든 것들을 떨쳐내는 것이다. 또 결정 저울 파악하기는 100% 완벽한 선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최선이 무엇인지, 어떻게 50:50을 이룰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팔랑귀 예방법은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말라, 잠시 멈춰서 생각하고 천천히 결정을, 그다음으로 프로결정러의 말하기는 적확한 표현, ‘나’ 화법, 솔직하게 표현하기가 중심이다. 프로 결정러의 체크리스트(내가 지금 이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요소별로 따져본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상황분석도, 내 안의 존재하는 또 다른 나와의 소통하는 것도, 모두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이를 “생각할 여유 갖기 혹은 시간벌기”라는 아주 중요한 수단을 들고 있다. 선택과 결정이 어려운 상황, 여러 가지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에서 뭘 선택과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정답”은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지은이는 다행스럽게도 태생적으로 소심한 성격과 신중한 성격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선택과 결정의 시간차는 개인차일 수도 있고, 사고방식, 즉 생각하기, 가치관 등이 다양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도 존재한다. 즉 멀티, 입체적이며 복잡하다는 점, 그리고 이 선택과 결정으로 누군가가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느냐의 여부 등도 함께 생각하기 등이 기본이 돼야 할 것이다.

 

지은이의 주장에 크게 동의한다. 설득력 있는 자료들을 끌어들여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무엇보다도 당위론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결정장애를 고치려 노력하는 가운데서 깨우친 것들을 공유하려 힘쓰고 있다는 점이 독창적이라 할 수 있겠다.

 

상황에 적절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지라도, 긴장감을 놓지 않고 단기, 중기, 장기에 걸친 상황 전개를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 변화에 따른 대응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 확보가 훌륭한 선택과 결정을 내올 수 있는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하인리히의 법칙> 한 건의 사고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29번의 같은 류의 사고가, 300번의 사고가 일어날 뻔한 상황이 1:29:300…. 이 또한 선택과 결정에 참조할 만한 이야기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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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예서의시 18
박천순 지음 / 예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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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순 시집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시인은 2011년 계간 ‘열린시학’ 가을호(제27회 신인작품상)에 <붉은 브레이크>외 3편으로 등단했다. 당선작 선정 심사평에서 순간적인 착상을 끈질기게 물고 나가는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다. ‘붉은 브레이크’는 이끌어가는 묘사력을, ‘얇은 잠’에서는 심리주의적인 기법이 밀도 있게 형상화돼있다고 했다. 2021년 제9회 정읍사문학상에서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로 대상을 받았다. 이 시집의 제목이 시의 제목이다. 

 

이 시집은 여는 시 ‘하루는 가늘다’로 시작하는데, 꽤 인상이 강렬하다. 바쁜 나날 속에서 하루하루를 위태하게 넘기면서(허리띠를 졸라맨다), 그저 걸어갈 수밖에 없는 허리는 가늘 수밖에…. 손을 펴서 뭔가를 잡으려 해도 읽을 수 없는 우주는 대답 없이 저물어간다. 우리의 생이 그러한 것인가, 그러면서도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여위어 가는 하루하루 몰입, 하자 하자…. 마치 시위의 후렴구호처럼….

 

그런데 ‘하’는 하자를 넘어선다고 마치 큰 소리로 웃는 웃음소리처럼 하·하. 하로 들린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수도하고 있다고,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시어는 언어의 함축이다. 상징을 담아내는 글자 하나가, 이렇듯 느낌이 다를 수 있을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시는 읽는 이의 감정 상태에 따라 느낌 속에서 시의 울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는가, 시인의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시가 어렵다 쉽다는 아마도 읽는 이의 감정에 달렸지 않을까?, 

 

시집은 5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가족의 사랑 2부는 연인과의 사랑 3부는 내 안을 들여다보는 시로, 4부는 ‘길’ 위에서, 5부는 ‘봄’을 노래하며…. 총 88편의 시가 실려있다. 

 

 

 

가족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그리고 내 마음, 생로병사 흥망성쇠의 ‘길’? 

 

1부에 실린 시 <바다가 사랑이다>에서 

 

‘바다는 토닥토닥 물결뚜껑을 매만진다. 

‘햇살 따라 장독 덮개를 갈무리하던 어머니처럼’ 

 

바다는 어머니의 장독대다. 햇살 따라 장맛을 깃들게 하는…. 세상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또 <바지락칼국수>에서 보듯이 가족은 밥상에 둘러앉아 큰 대접에 한가득한 칼국수를 코 훌쩍 거리“며 먹는다. 저녁이 온기로 출렁….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내일도 견딜 만할 거 같다.”

<감자 옆에 감자 옆에 감자>에서는 감자를 먹는 식구들 “뼈마디 불거진 갈고리 같은 손이 닮았어요”….“내일은 별을 구워 먹고 싶어요” 온기 속에 사랑이 피어오르는 풍경이다.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나무는 혼자가 아니란다. 푸름과 높이와 새소리와 함께 있다고, 나무는 키가 커간다. 숲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자유의 꿈을 놓은 적이 없다. 흔드는 바람, 날마다 의식을 깨운다. 

 

2부에 실린 <나무 그림자> “너와 난 동시에 태어났어…. 너의 호흡을 마시며 자라났어.” “나를 스치는 건 검은 바람뿐 내 몸은 종이처럼 닳은 어둠이야…. 이제 내게로 와줘 네가 오면 난 사라지지 너 또한 사라지지 파랗게 새파랗게 그 순간만 기억할게” 연인은 동시에 태어나는 존재일지라도 영원히 같은 색깔을 유지하지는 못한다. 그림자란 늘 그러하듯…. 표현이 아름답다. <사랑의 눈동자> “태초부터 사랑이었다…. 사랑이 죽으면 도서관에 보관된 끝없는 눈동자가 된다. 사랑의 힘은 흘러간다…. 그가 또 다른 사랑에 목말라 하듯이 사랑은 돌아오리라. 그리고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콩나물국을 끓이리라 안개가 걷히고 다시 길을 떠나는 새벽이다.” 옷이나 이불로 사용했던 사랑은 조금씩 낡아가기 시작한다. 사랑은 숨결, 옷, 이불처럼 낡아가고, 사랑은 죽은 자의 책이 되어 내 눈동자를 가져갔다. 사랑은 기억 속에 남겨지고, 내 눈동자를 가져갔다.

사랑이라는 것, 부부라는 것, 가정을 이루고 사랑을 가꿔간다는 것이 이렇게 우여곡절의 콩나물 끓이기…. 냄비 속에 녹아들어 따뜻한 온기를 가지는 게 아닌가?

 

 

 

3부, <마음에 바람이 분다> 마음 놓고 흔들려 본 적 있는가…. 붉으락푸르락 때론 샛노랗게 저며진 마음 들판에 풀어놓은 적 있는가, 켜켜이 숨죽였던 마음이 춤을 춘다. 내 마음은 한 번쯤은 훨훨 날아가고 싶지 않을까, 

 

4부는 삶의 길에 관한 이야기다 <길을 걷다> “모두들 알지만 모두를 모르는 척하는 길 완벽히 아는 것과 완벽히 모르는 것 사이에는 담담한 마음이 있을 뿐이지요.” 5부 <봄이 온다니> “바람이 몸에 감긴다. 나뭇가지마다 뒤척이는 이파리들 푸릇한 숨소리. 이 세상 다녀간 사람들 다시 태어나고 싶은 봄, 내 몸에서 형용사들 하염없이 나부끼고 흩어지고 떨어지고 다시 솟아오르고” 봄은 생명과 소망의 계절임을 절망과 어둠 속에서도 여름을 내달리는 숲은 웅장하다. 마치 역사의 발전법칙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만물소생, 흥망성쇠의 여정을…. 여름을 거쳐, 가을로, 겨울로 어김없이 

 

 

수도에 가까운 몰입과 황홀의 이미지즘

 

 

민용태 시인은 이 시집 해설에서 “수도에 가까운 몰입과 황홀의 이미지즘”이라 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과 묘사, 아마도 등단작품의 심사평과 같은 맥락의 몰입을 발견한 것인가?, 작가의 시는 싱그럽고 상쾌하다고 해야 할까, 작가의 말 “지나가는 시간을 물에 녹여내니 흘러가지 않고 남는 순간들이 있었다”를 되뇌며, 순간들을 두 손으로 건져내어 이름을 붙이고 나뭇가지를 달아주었다. 마치 눈사람에게 손을 만들어주고 빨간 장갑을 끼워주는 상상을 해본다. 

 

 

 

 

시집은 인간사를 노래한다. 시를 읽는 내 느낌이 그런가?, 행간에 갇혀있는 터져 나올 듯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 움직임의 감정이, 숲과 나무, 우주는 자연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두려움, 하지만 자연의 흐름과 함께, 가족의 사랑은 밥상에 둘러앉아 땀과 정성이 베인 바지락칼국수 소박하고 거칠지만, 콧물을 흘려가며 후루룩후루룩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고 피어오르는 김은 열기와 희망이지 않을는지….

 

나는 ‘시’를 읽을 때마다 찍어서 맛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눈으로 읽고, 소리로 읽고, 머리로 보면서, 손으로 더듬어가면서 녹아들어 있는 내 안의 감정의 소리를 듣는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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