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예서의시 18
박천순 지음 / 예서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천순 시집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시인은 2011년 계간 ‘열린시학’ 가을호(제27회 신인작품상)에 <붉은 브레이크>외 3편으로 등단했다. 당선작 선정 심사평에서 순간적인 착상을 끈질기게 물고 나가는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다. ‘붉은 브레이크’는 이끌어가는 묘사력을, ‘얇은 잠’에서는 심리주의적인 기법이 밀도 있게 형상화돼있다고 했다. 2021년 제9회 정읍사문학상에서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로 대상을 받았다. 이 시집의 제목이 시의 제목이다. 

 

이 시집은 여는 시 ‘하루는 가늘다’로 시작하는데, 꽤 인상이 강렬하다. 바쁜 나날 속에서 하루하루를 위태하게 넘기면서(허리띠를 졸라맨다), 그저 걸어갈 수밖에 없는 허리는 가늘 수밖에…. 손을 펴서 뭔가를 잡으려 해도 읽을 수 없는 우주는 대답 없이 저물어간다. 우리의 생이 그러한 것인가, 그러면서도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여위어 가는 하루하루 몰입, 하자 하자…. 마치 시위의 후렴구호처럼….

 

그런데 ‘하’는 하자를 넘어선다고 마치 큰 소리로 웃는 웃음소리처럼 하·하. 하로 들린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수도하고 있다고,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시어는 언어의 함축이다. 상징을 담아내는 글자 하나가, 이렇듯 느낌이 다를 수 있을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시는 읽는 이의 감정 상태에 따라 느낌 속에서 시의 울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는가, 시인의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시가 어렵다 쉽다는 아마도 읽는 이의 감정에 달렸지 않을까?, 

 

시집은 5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가족의 사랑 2부는 연인과의 사랑 3부는 내 안을 들여다보는 시로, 4부는 ‘길’ 위에서, 5부는 ‘봄’을 노래하며…. 총 88편의 시가 실려있다. 

 

 

 

가족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그리고 내 마음, 생로병사 흥망성쇠의 ‘길’? 

 

1부에 실린 시 <바다가 사랑이다>에서 

 

‘바다는 토닥토닥 물결뚜껑을 매만진다. 

‘햇살 따라 장독 덮개를 갈무리하던 어머니처럼’ 

 

바다는 어머니의 장독대다. 햇살 따라 장맛을 깃들게 하는…. 세상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또 <바지락칼국수>에서 보듯이 가족은 밥상에 둘러앉아 큰 대접에 한가득한 칼국수를 코 훌쩍 거리“며 먹는다. 저녁이 온기로 출렁….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내일도 견딜 만할 거 같다.”

<감자 옆에 감자 옆에 감자>에서는 감자를 먹는 식구들 “뼈마디 불거진 갈고리 같은 손이 닮았어요”….“내일은 별을 구워 먹고 싶어요” 온기 속에 사랑이 피어오르는 풍경이다.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나무는 혼자가 아니란다. 푸름과 높이와 새소리와 함께 있다고, 나무는 키가 커간다. 숲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자유의 꿈을 놓은 적이 없다. 흔드는 바람, 날마다 의식을 깨운다. 

 

2부에 실린 <나무 그림자> “너와 난 동시에 태어났어…. 너의 호흡을 마시며 자라났어.” “나를 스치는 건 검은 바람뿐 내 몸은 종이처럼 닳은 어둠이야…. 이제 내게로 와줘 네가 오면 난 사라지지 너 또한 사라지지 파랗게 새파랗게 그 순간만 기억할게” 연인은 동시에 태어나는 존재일지라도 영원히 같은 색깔을 유지하지는 못한다. 그림자란 늘 그러하듯…. 표현이 아름답다. <사랑의 눈동자> “태초부터 사랑이었다…. 사랑이 죽으면 도서관에 보관된 끝없는 눈동자가 된다. 사랑의 힘은 흘러간다…. 그가 또 다른 사랑에 목말라 하듯이 사랑은 돌아오리라. 그리고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콩나물국을 끓이리라 안개가 걷히고 다시 길을 떠나는 새벽이다.” 옷이나 이불로 사용했던 사랑은 조금씩 낡아가기 시작한다. 사랑은 숨결, 옷, 이불처럼 낡아가고, 사랑은 죽은 자의 책이 되어 내 눈동자를 가져갔다. 사랑은 기억 속에 남겨지고, 내 눈동자를 가져갔다.

사랑이라는 것, 부부라는 것, 가정을 이루고 사랑을 가꿔간다는 것이 이렇게 우여곡절의 콩나물 끓이기…. 냄비 속에 녹아들어 따뜻한 온기를 가지는 게 아닌가?

 

 

 

3부, <마음에 바람이 분다> 마음 놓고 흔들려 본 적 있는가…. 붉으락푸르락 때론 샛노랗게 저며진 마음 들판에 풀어놓은 적 있는가, 켜켜이 숨죽였던 마음이 춤을 춘다. 내 마음은 한 번쯤은 훨훨 날아가고 싶지 않을까, 

 

4부는 삶의 길에 관한 이야기다 <길을 걷다> “모두들 알지만 모두를 모르는 척하는 길 완벽히 아는 것과 완벽히 모르는 것 사이에는 담담한 마음이 있을 뿐이지요.” 5부 <봄이 온다니> “바람이 몸에 감긴다. 나뭇가지마다 뒤척이는 이파리들 푸릇한 숨소리. 이 세상 다녀간 사람들 다시 태어나고 싶은 봄, 내 몸에서 형용사들 하염없이 나부끼고 흩어지고 떨어지고 다시 솟아오르고” 봄은 생명과 소망의 계절임을 절망과 어둠 속에서도 여름을 내달리는 숲은 웅장하다. 마치 역사의 발전법칙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만물소생, 흥망성쇠의 여정을…. 여름을 거쳐, 가을로, 겨울로 어김없이 

 

 

수도에 가까운 몰입과 황홀의 이미지즘

 

 

민용태 시인은 이 시집 해설에서 “수도에 가까운 몰입과 황홀의 이미지즘”이라 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과 묘사, 아마도 등단작품의 심사평과 같은 맥락의 몰입을 발견한 것인가?, 작가의 시는 싱그럽고 상쾌하다고 해야 할까, 작가의 말 “지나가는 시간을 물에 녹여내니 흘러가지 않고 남는 순간들이 있었다”를 되뇌며, 순간들을 두 손으로 건져내어 이름을 붙이고 나뭇가지를 달아주었다. 마치 눈사람에게 손을 만들어주고 빨간 장갑을 끼워주는 상상을 해본다. 

 

 

 

 

시집은 인간사를 노래한다. 시를 읽는 내 느낌이 그런가?, 행간에 갇혀있는 터져 나올 듯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 움직임의 감정이, 숲과 나무, 우주는 자연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두려움, 하지만 자연의 흐름과 함께, 가족의 사랑은 밥상에 둘러앉아 땀과 정성이 베인 바지락칼국수 소박하고 거칠지만, 콧물을 흘려가며 후루룩후루룩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고 피어오르는 김은 열기와 희망이지 않을는지….

 

나는 ‘시’를 읽을 때마다 찍어서 맛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눈으로 읽고, 소리로 읽고, 머리로 보면서, 손으로 더듬어가면서 녹아들어 있는 내 안의 감정의 소리를 듣는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