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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사람들 - Hello, Strang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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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설게 하기.라는건 러시아 형식주의를 대표하는 쉬플로크스키가 제시한 말이라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영화에서 취하는 대표적인 즐거움이 낯설게 하기 였더랬다. 당연했던 일들이 살짝 변주되면서 모순을 드러내는 순간, 익숙했던 것들이 배치에 따라 어색하게 느껴지는 맥락이 영화를 비롯한 문화영역의 미덕이 아닐까. 했더랬다. 

 한국판 '누들'이라 할 만하다. 비록 다 큰 베트남 청년은 중국소년만큼의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고, 탈북청년도 딱히 도움을 줄 만큼 여유로운 형편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마음을 나누는 기본적은 뼈대는 동일하다. 당연하게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벽, 그 암담함을 동력삼아 그들은 애써서 말하고, 애써서 듣는다. 여자친구든 여동생이든 사소한 오해야 어쨌든 그들이 공유하는 삶의 절망은 그야말로 일맥상통한다.

 낯선 사람들이 낯선 곳을 헤매는데, 엉뚱하게도 한국이 낯설어졌다. 이 땅 어딘가 탈북자가 살고 있을 테고, 이 땅 어딘가 팔려오듯 시집온 베트남 처녀가 아이를 가졌을테고, 그녀를 사랑한 베트남 총각이 불법체류를 감수하며 임금체불에 시달릴게다. 도시에는 멋대가리 없는 아파트가 즐비하고, 시골 어느곳에서도 '꿈의궁전'이라는 모텔이 있을법하다. 대형마트에서 이불을 구입하고, '503호' 내 집을 찾아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가 버거운 이방인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한국을 발견한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고속버스와, 규격화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유와 인간성을 잃어가는데, 이 곳에 미적응한 덕분으로 그는 길잃은 외국인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내어줄 수 있었을게다. ATM옆에서 현금인출을 가르치던 형사와의 미묘한 긴장감이 그의 선의를 의심할 수 있을만큼 나의 경계심는 날을 세우고 있었고, 밀폐된 택시 속 잠깐 마주칠뿐인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 그녀의 만성적 피로감에 내가 덩달아 지쳤다.  

 비록 나도 어색하고 불편한 대한민국 땅이지만, '내래 집에 잘 들어왔어요'라고 환하게 말하던 그 탈북자에게 이 땅이 쉴만한 '집'이 될 수 있기를, 소 키우며 살겠다는 베트남 청년에게도 그를 놓아주었던 경찰관의 나라로 기억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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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풍경 가득한 곳으로 여행을 희망한다면, 멀리 바다 건너갈 것도 없이, 이 영화를 보면 되겠다. 이곳이 더이상 내가 알던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여행을 충동질하던 낯선곳에 대한 로망을 보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덧말. 낯선 대한민국 운운하며 리뷰를 쓰긴 했지만, 바다 건너가도 도시의 삶이라는건 어차피 비슷하지 않더냐. 더이상 처음 만난 세계의 감동따위 있을리가 없다. 쩝. 

 그런 전차로, 내 마음 내키는대로 주는 별점은 4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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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위 키스 - Kiss Pleas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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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움직인다. 그 당연명제에 이유가 필요하다면 '키스'이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프랑스 영화. 같이 영화를 본 혹자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과 다를바 없는 영화가 아니냐고 말함으로써 우리사이에 화해불가능한 코드의 강을 건너가버렸지만, 유쾌한 방식으로 '연애'를 성찰하게 만드는 흔치않은 수작이다. 불륜은 악이라고 규정하는 가부장적 감성코드로는 감당할 수 없을만한 예의와 낭만을 겸비했는고로, 선정적인 카피와 거친 줄거리로 지레짐작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마주할 것을 강추하는 바이다. 

 애정결핍을 호소하는 남자, 키스해도 되냐고, 가슴을 만져도 되냐고, 일일이 허락받는 남자가 영화를 만든 감독이란다. 수다스럽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욕망을 설득해 준 니콜라스 덕분에 '키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영화속에서의 화자는 니콜라스와 주디트의 이야기를 전하는 에밀리이지만서도.) 보수적인 문화에서 성장한 탓에 '비쥬'라는 인사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나인지라, 프랑스인인 그에게도 키스가 무겁다는 동질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것인가? 라는 구태의연한 질문에 답이 필요했던게 아니다. 어떻게 모든 관계가 '우정' 혹은 '사랑'으로 분류되며, '친구' 혹은 '연인'이라고 제목을 달 수 있겠느냐. 마는, 나름의 기준은 있었던 까닭이다.  스킨십에 떨림이 있느냐 없느냐. 그의 입술이 키스를 부르느냐. 마느냐. 굿바이 키스를 빙자해 무게를 재 볼 것도 없이, 아직까지 그 기준은 예외가 없었다.  

 특별히 마음을 후볐던 장면은 주디트의 남편이 운명적인 여성을 만난 척 떠날때였다.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이 사과를 받고,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며 겸허히 인정해주는, 사실을 드러내서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기대했던 결과로 매듭짓기 위해, 말 그대도 역지사지가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마음을 시리게했다. 키스가 이유이건 말건, 끝내 사랑은 움직인다는 냉정한 사실을 가슴 저리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키스로 시작된 니콜라스와 주디티의 사랑이 쭈욱 안녕하기를, 에밀리와 가브리엘의 키스도 진정 굿바이가 가능했기를, 요즈음의 난 좀처럼 반전가능한 사랑 이야기가 불편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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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이따금 성욕을 해소(!)할 필요가 있는 탓으로, 당당하게 돈으로 거래해도 부끄러울 것 없다는 대한민국의 마초들에게 충분한 교육용 에피소드를 제공하고 있는고로 별 다섯개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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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 Himalaya, where the wind dwell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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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영화를 만든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이고. 미친듯이 불어대는 바람때문에 통계상 정신병이 많이 발생하는 동네로의 '귀향'을 만든건 페도로 알모도바르였다. 그리고 히말라야에 바람을 주인공으로 찍은 이 영화의 감독은 전수일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였던가. '검은 땅의 소녀와'도 보기는 했다. 절망 그 이상을 말해주지 않는 예술영화의 불편함. 유머없이 건조한 삶을 응시하게 만드는 잔인함.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그가 인정받는다는 것과 별개로, 탐미주의적 영상미학을 구현한다는 평가가 무색하게, 그의 영화는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제목외의 사전정보는 없었으면서, 당연히 다큐라고 생각했다. '히말라야' 그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서사인데, 다른 수식이나 장식이 필요있으랴. 그 땅에 대한 오래된 로망으로 망설임없이 애매했고, 아침부터 영화관을 찾았다. 관객은 달랑 세명.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구나. 생면부지의 사람들일지언정,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을 지언정, 그 자리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기뻤다. 

 친절한 대사로 자상하게 상황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주인공이 회사를 쫓겨난 기러기 아빠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거운 트렁크를 셀파에게 맡기고도, 끝내 고산증으로 쓰러져 나귀등에 실려 가는 주인공 '최'는 어쩌다보니 구두를 신고 히말라야에 올랐을 따름이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영상은 카메라만 올려놓으면, 명장면이 된다. 최민식은 그 위에 숟가락만 올려놓듯 그냥 서 있는걸로 충분했다. (물론 고산지대에서의 촬영이 쉽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만,) 내가 영화를 통해 견뎌야했던 그곳의 고요함과 평안에서 주인공 '최'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죽은자를 위로하기 위해 바람에 흩날리는 천조각과 달그락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푸차레, 손에 피를 묻히고 난 후에야 양의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정직한 살생, '라카(?)'를 마시며 이방인에게 노인들을 위한 일이 있냐고 묻는 할아버지들하며, 도르지의 생사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부인과 뜨거운 밤을 보낸 인증된 아빠의 등장까지, 말로 설명되지 않은 상황들이 존재자체로 이야기가 되었다. 

 딱 한장면, 짧은 영어로 도르지의 아들과 나눴던 대화가 있기는 하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제대로 기억해두지 못한게 아쉽지만, 저 산 너머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에서 카르마를 닦는다고 했던가. 최가 히말라야를 오르는 내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이끄는대로 흘러갔던 그가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오고, 폐허가 된 한국 어느 골목에 버림받은 몰골로 꿈을 꾸고, 다시 도르지 아내의 보살핌으로 새로운 생을 얻게 될때까지 바람이 불어왔고, 바람이 불어갔다. 바람이 분다는데, 그래서 그냥 살아갈 따름인데, 왜 당신의 결론은 '희망'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투정부려 무엇할것이냐. 

 반복된다. 그 꼬맹이가 불던 피리소리마냥, 미묘한 변화에 애써 귀기울여주지 않으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다. 한번도 가지 못했던 그 곳, 히말라야의 평화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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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죽어버린 그 네팔노동자는 그 좋은 땅 버리고 왜 이 험한 땅에 온것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걸 감수하면서까지 필요한게 무엇인가. 영혼을 잃은 기러기 아빠나 몸을 잃은 이주노동자나 왜 인생의 덕목은 인내와 헌신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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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Moth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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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챙겨먹임 당하는, 아들은 좋겠다.
 

  '모성은 본능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친구는, 친절하고 자상해서 천상 여자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인품을 겸비했더랬다. 국민 엄마 김혜자의 연기는 연기일까. 실제일까. 강명석의 인물분석에 의하면, 그는 모성애보다 연기욕심이 짙은 천상배우란다. 요즘 드라마 작가들은 엄마를 위해 '잘 다녀왔니? 밥을 먹었고?'라는 대사밖에 만들 줄 모른다며, 기꺼이 김수현의 뮤즈가 되어 뿔난 엄마로 논란의 중심에 섰을 때 조차도, 김혜자의 모성성은 의심받지 않았다. 

 봉준호가 갈때까지 가는, 폭주하는 엄마를 그린다고 했을때 김혜자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상냥하고 자상하고 여리고 순수한 우리들의 엄마가 걱정스러웠던 탓이다. 마더에서 그녀는 눈동자를 이동하고, 손가락을 바르르 떨면서까지 온몸으로 연기했다. 이것이 40년 연기인생의 내공이었구나 감탄할 따름이었다. 

 왜 영화감독이 카메라 모델을 하는걸까 했더만, 이 아저씨 사진찍듯 영화를 만든다. 화면에는 필요한 요소들이 알맞게 들어가도록 구성되고, 전경을 담은 화면에도 군더더기가 없다. 맨하튼이란 술집 내부컷의 인물배치와, 진구와 대면하는 집안컷의 조명각도, 증거품 골프채를 입수하는 순간의 긴장된 편집이, 웰메이드 영화의 명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살인장소와 골프장, 보리밭, 진구집, 고물상, 심지어 교도소까지 꼼꼼한 헌팅의 노고가 그대로 묻어나 컷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마지막 고속버스신의 석양은 단연 압권이었다.  

 엄마는, 뭐 그러려니 한다.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 대가를 바라지 않기에 빛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처연할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억척스러움은 마냥 옹호받을 수 없는 광기가 있다. 그 사실을 봉준호가 부러 알려주지 않아도 알 법 하다. 

 하지만, 바보새끼.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리라고 배운 바보 새끼는 오래된 박카스병만 기억하고, 엄마 없는 바보새끼는 칠칠치 못한 흔적으로 없는 죄도 뒤집어쓴다. 허벅지에 침을 놓고 기억을 삭제하고 싶다고 한들, 쌀떡이란 슬픈 은어가 지워질리 있을까. 두부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불에 그을린 침통을 비밀리에 전한다고 한들, 진실을 알고 있었던 정직한 장사꾼의 죽음의 진상이 궁금할리 있을까.  

 정직한 리얼리티와 시대정신의 미덕을 갖춘 감독, 그의 차기작이 기대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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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엄마, 혹은 아줌마.

 명랑한 전화벨이 울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 그 엄마, 혹은 아줌마 덕분에 -1점.

 작품에 대한 평가는 시대적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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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텐 - Adrift in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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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오다기리 조는 미키 사토시의 뮤즈였던 모양이다. 
 
 일본배우로서는 흔하지 않은 바람직한 기럭지와 예쁜 엉덩이를 가지고 있는 오다기리 조는 '메종 드 히미코'이후부터 오랫동안 아껴왔지만, 미키사토시는 잘 알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수다와 재치로 긴장을 조율하고 기승전결을 엮어내는 영화가 감독을 궁금하게 만들지 않을만큼 너무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였던 비추고 있었던 탓이다.  

 필모그래피를 본 다음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소 구미코의 카메오 등장과 엉뚱한 3인조 직장동료에서 '시효경찰'은 눈치챌 수 있었지만, '인더풀'과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발견한 순간 그의 영화들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일상적이지만 정상적이지 않(다고 평가되)는 존재에 대한 긍정, 특이한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지만 별다르게 특별하지는 못한 어중간한 삶에 대한 낙관. 권태로움이 사무칠때, 그래도 즐겁지 아니하냐고 묻게 되는 힘을 가진 영화들이렸다.

 네이버에서 '코미디'로 분류한 바, 나름의 유머가 가득하고, 포스터 본격도쿄산택무비라고 규정한 바, 아름답게 미화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일본의 골목과 사람냄새가 가득하다. 제목을 '텐텐'이라고 명명하는 바, 굴러가고 돌아가며 과거의 기억의 기억과 꾸며진 행복을 '전전'하는 내용이다.

 키시베 잇토쿠를 만나니 진짜 행운이 있었다. 시부야 엄마 덕분에(!) 후쿠하라와 재회할 수 있었고, 롤러코스터도 타고, 동물원에서 하마도 보고, 맛있는 카레도 먹었는데, 그 모든 찰나의 시간들이 행복했으면 그 뿐. 그가 날 버린 아빠냐고 알아서 무엇하겠느냐.

 마지막으로 양말 악어 오려붙인 라코스테 티셔츠와 '어떻게 먹고 사냐'는 질문에 무술로 응수한 시계방 할아버지는 꽤 오랫동안 실실 쪼갤만한 에피소드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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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이 있고, 고아가 있는데, 한없이 밝은 영화.

 우리나라 영화는 어째 이리 한없이 무거운가.

 -1점은 엔딩크래딧후의 결정적인 장면을 생략한 상영관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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