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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 융 심리학이 밝히는 내 안의 낯선 나
로버트 A. 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3월
평점 :
나는 스스로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곳(이때 아무도는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을 말한다.)에서 항상 또 다른 나와 대면하게 된다. 또 다른 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히 꼭꼭 숨겨둔 욕망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빛이 커지면 어두움도 커지듯 밝은 곳의 선한 모습은 어두운 곳의 악한 모습를 극도로 억압한 결과이다.
즉, 이면에 악한 속성을 억압한 만큼 겉으로는 선한 속성이 들어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죄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조금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선행으로 죄를 상쇄하려고 하지만 선행이 커질수록 이면의 그림자도 더욱 커지게 되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선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융은 자신의 그림자를 부정하지 말고 인정함으로써 명암의 균형과 융합을 통해 스스로의 발전의 동력으로 삼도록 권고한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까지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숨겨진 힘을 통제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통제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내 속에 그림자를 깨닫고 인정하지만 이 힘은 현재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에도 부담이 되는 것이다.
내가 도움을 청하는 그 사람도 나와 동일한 문제에 봉착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융은 만돌라라는 개념을 이야기 한다. 만돌라는 선과 악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도 아니고, 타협하거나 중립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선만 있던지, 혹은 악만 있는 반쪽이 아니라 선악이 함께 있는 모순을 이야기한다.
잘못하면 삶의 다양한 색채들이 제 빛을 내지 못하고 회색을 만들어 낼수도 있다. 회색은 모든 색깔이 뭉쳐 중성화가 일어나면서 우중층한 단조로움을 드러낸다. 하지만 만돌라는 삶의 다채로운 색을 내는 것이다.
자주 그림자로 인해 진한 흑색에 가까운 회색 속에서 주저앉을 때가 많다.
통제할 수 없는 폭발력, 거부할 수 없는 힘, 폭발 후 너무 처참하게 나의 내면을 파괴하는 힘, 그런것이 내 속에 있는 그림자이다.
신에게 부르짖음도 이제는 염치없다고 회색이 충고해 준다.
어쩌면 부르짖을 의지조차도 무참히 짖밟아버리는 힘이 그림자이다.
한때 모든 의지를 꺾고 그림자에 순응해서 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삶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한부 인생에서 그림자에 대한 단순한 순응은 신의 존재를 믿는 자로서 용납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은 염치없더라도 돌아오라... 그러면 용서하리라... 하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다.
책 속에 글자들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을 통해, 뇌를 통해 나의 내면으로 들어온 글자들은 깊은 어둠에 잠긴 곳곳을 해집고 다니면서 밝은 빛을 심어준다. 마치 44년동안 청소하지 않던 지저분한 집안을 대청소를 하듯...
그 속에서 썩어 문들어진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만나 당황하기도 한다. 반면에 여기 있었구나 하고 예전에 잊어버렸던 소중한 것을 찾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있는 줄도 몰랐던 황금같은 보물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책' 이라는 것에서 해결점을 찾아 본다. 그림자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고 해결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신이 모든 그림자에 대한 죄를 용서해 주셨다. 하지만 이미 그림자가 깊숙히 배인 육체의 틀 속에서는, 이 틀을 완전히 벗어버리기 전까지는 그림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더불어 융이 말하듯 삶의 무지개를 만들는 동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책을 통해 내면의 강팍한 마음을 치유하고 나만의 글을 통해서 그 찌꺼기들을 밖으로 배출한다.
나만의 이야기를 열심을 내어 들어주고 이해해 줄 누군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동병상련의 동지를 만났다고 해도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에 열을 내기 바뿌고 종국에는 우리가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에 그친는 것이 일반이다.
속시원하게 마음 맞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과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끄집어내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내면의 성찰을 위해서는 깊은 곳에 있는 자기자신과의 깊은 만남이 필요하다.
책과 글쓰기가 이런 작업에 도움이 될 것 같고 때문에 지금도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