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세대인 존 로크처럼 조지 버클리도 인간 지식의 주된 원천을 경험으로 꼽았다. 하지만 로크가 데카르트의 이원론(정신+물질)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버클리는 두 종류의 실체 중 하나만을 인정했다. 그는 정신적 실체만을 인정한 '비물질적 관념론'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세계는 정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주관적 관념론, 유아론이라고도 한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esse est percipi)" 이는 버클리의 사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예를 들어 눈앞에 있는 컴퓨터는 나의 지각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방을 나가버리면 어떻게 될까? 지각되지 않은 이 방의 모든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가? 설마? 이 대목에서 버클리는 데카르트처럼 신을 끌어들인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신이 이 방을 지각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물건은 안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약간 맥빠지는 결론일지 모르지만, 세계는 항상 신에게 지각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신의 실존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논증이다. 참고로 들뢰즈는 이러한 신의 위치에 타자를 대입한다. 그에 따르면 상대적 타자에 의해 우리 인식의 유한성이 채워진다는 것이다.

관찰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무는 쓰러질 수 있을까? 있다!
세계는 늘 신에 의해 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인식의 유한성은 신에 의해 보완된다.
한때 나는 누가 뭐래도 유물론자였다. 의식이든 정신이든 물질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영혼이니 신이니 하는 것들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물질은 쪼개고 쪼개 현재 표준 모형에서 12개의 기본 입자와 보손(입자들 사이에서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기본 입자는 부피가 없고 질량만 가지는 점 입자다. 그 외 대부분은 말 그대로 텅 빈 공간이다. (물론 형태를 가지거나 우리가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물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게다가 그나마 있는 입자들도 미시적으로 볼 때 확률적으로 존재하다가 관찰이라는 행위를 하게 되면 위치가 정해진다니(파동함수의 붕괴)... 참으로 놀랍지 아니한가. 더 나가면 다소 황당하긴 하지만 '인류 원리'에서는 인류라는 의식적 존재가 없다면 우주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양자 역학을 다른 분야와 섞어서 얘기하는 책들은 대단히 많다. 철학, 불교, 의식, 신비 등 여러 카테고리에서 양자 역학을 끌어들인다. 인간이 가지는 인식의 한계, 해석의 불확실성이 이런 결과를 낳았으리라. 너무 무리한 끼워 맞추기식 설명은 지양해야겠지만 다양한 해석을 열린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의식의 지평선이 조금이나마 확장될 수 있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