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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 폴로어 25만 명의 신종 대여 서비스!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지음, 김수현 옮김 / 미메시스 / 2021년 8월
평점 :
다양한 '대여 서비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대여는 처음이었기에 호기심이 먼저였습니다.
대여료는 공짜
대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참으로 신선한 대여 서비스가 아닌가!
지금부터 이 서비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수입도 지위도 직장도 없는 제로 스펙,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존재 가치는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저도 그렇고...
어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한 것인지 궁금하였습니다.
친절하게도 그 해답은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통신 교육 서비스나 학습 교재를 출판하는 회사에 취직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게 된 그.
프리랜서가 되고 약 2년이 지난 뒤였는데 글 쓰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귀찮다, 질렸다. 보수가 별로다, 같은 답 없는 이유 때문에...
그러다 문뜩 깨닫게 됩니다.
다 큰 어른이니 어떻게든 잘 해봐야지, 하고 뭘 시작해 봤자 금방 스트레스를 받고 그만둬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고, 그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수단을 취해 봐도, 또 금방 막다른 길목에 부딪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그런 <뭔가 해보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를 되풀이하는 사이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적성에 맞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age 22
그리고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심리 상담사 고코로야 진노스케의 <존재 급여>라는 개념.
말할 것도 없이 급여란 노동의 대가이며, <뭔가를 한> 대가로 치러진다. 하지만 고코로야는 <급여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가치는 있다>라고 글을 썼다. - page 14 ~ 15
그때 그는 이거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대여 서비스를 살펴보면 참으로 소소합니다.
새내기 사회인을 마음으로 응원해 주기, 공원에서 밤바람 맞으며 맥주 한 캔 같이하기, 다소 불편한 아래층 집 베란다에 떨어진 빨래 가지러 갈 때 동행하기, 직속 상사와 거북해진 출근길에 동행해 주기 등 어쩌면 이토록 자잘한 일들이 의뢰로 들어오고 그 일을 그는 <그냥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의뢰인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촉매>같은 구실을 하는 것처럼.
실제 그의 하루가 책 속에 그려져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겐 하찮고 의미 없을지라도 다른 이에겐 마음의 위안이요, 용기를 얻는다는 사실을...
처음엔 저도 피식하며 웃어넘기다가 점점 그의 일이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직업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특히나 그가 전한 '돈'에 대한 가치관은 지금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끔 해 주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 돈에 대해 실로 다양한 가치관을 접했다. 지금 사회에서 살아감에 돈은 필요 불가결하며, 돈이 없으면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기 어렵다. 뭔가 행동을 일으킬 때도 보통은 <돈>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그래서 새로운 것이 좀처럼 태어나지 않는 게 아닐까. 맨 위에 돈을 두게 되어 버리면 재미없는 것밖에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려고 원했을 것이 도리어 스트레스를 끌어안는 요인이 되는 본말 전도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까 돈은 일단 생각에서 제외하겠다. 적어도 지금 활동은 새로운 재미로 이어져 있으며, 그 재미가 나아가서는 돈을 낳을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의뢰인에게 요금을 받게 되면 그 흐름이 완결되어 버린다고 앞부분에서 적은 것도 여기와 관련된다. 돈이라는 알기 쉬운 가치 척도를 일단 내려놓음으로써 돈이 개입된 기존 서비스에는 없는 다종다양한 가치관에 기초한 다종다양한 관계성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 page 196 ~ 197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존재 가치'가 크게 와닿았습니다.
육아에 경력단절에...
그야말로 '제로 스펙'으로 한없이 자존감이 없는 저에겐 존재의 의미조차 찾을 수 없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존재 가치가 있다는 그 말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모두가 계속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 남들과의 차이에서 이름이 붙여지고 역할이 부여되는 요즘 세상에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나에게 상대적으로 개성이 생겨났다. 까다롭기 그지없다. - page 86
저도 이런 서비스가 있다면 어떤 의뢰를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음...
그냥 아무 말하지 않고 잠시만 머물러 달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존재의 의미를 되뇌고 싶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