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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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전 강원도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잠시 유명하다는 계곡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계곡 주변에서 걷다가 문득 물 흐름에 어떤 일정한 규칙이 있는 듯하여 물 흐름을 지켜보고 싶어 엎드려 계곡 물의 흐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물이 직선으로 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바다가 아니니 주변의 바위나 자그마한 돌덩이 때문에 그 물은 거쳐거쳐 흘러감에 자연적으로 일직선으로 가지 못하는 것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 물이 쭉 내려오다가 밑으로 떨어지는 작은 계단 언저리 바로 못 미쳐 바위와 바위 사이에 한참을 맴돌며 회오리처럼 휘감기다가 밑으로 흘러가는 걸 보며 '변화'와 '순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이동함에 한참을 맴돌며 주변을 어우르다가 목적지점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어떤 것은 빠르게 당도하고 어떤 것은 물 밑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한참을 맴돌고 난 후에야 다음 지점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세상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 순리와 법칙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과 삶은 물같다고 한 어느 지인의 말이 떠올라 그 자리에 엎드려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철학! 그리스어의 Philos(사랑)과 Sophia(지혜)의 합성어인 Philosophia에서 유래된 Philosophy를 풀이하자면 '지(知)'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知)’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哲學)의 ‘哲’이라는 글자도 ‘賢’ 또는 ‘知’와 같은 뜻이다.




이와 같이 철학이란 그 자의(字義)로 보아서도 단순히 知를 사랑한다는 것일 뿐, 그것만으로는 아직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철학자도 진리를 추구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철학은 과학과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철학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철학은 세계의 흐름을 바라보며 그것의 법칙과 그 현상을 이해하면서 어떻게 참다운 삶을 영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며, 삶의 의미를 반성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왜 사는가와 같은 아주 근원적인 문제를 따지는 학문이라고 할까?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과 같은 문제는 세상을 둘러보는 것이다. 즉 철학은 현상에 대한 탐구가 아닌 본질에 관한 탐구로써 인간 행위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우리의 존재의 의미, 삶의 의미, 인생의 가치와 목적 등 주체적 생존에 가장 중요하고 이상적인 것에 관한 탐구를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이 서양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기원전 6세기의 이오니아 해변에서부터였다고 한다. 그것은 상업과 전쟁 등으로 인해 이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와 관념들이 만나면서 전통의 권위가 강하지 않았고 이집트와 수메르, 트라키아, 동방국가 등의 과학과 신화와 종교에 접할 기회도 많아졌으며 그리스에서 사제 집단도, 성스러운 경전도 따로 없었다는 것이 유리하게 작용했을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다양한 지역과 민족의 문화를 만날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전통과 권위로부터 자유로웠던 그리스 사람들은 자연의 기적 앞에서 저마다 경이로움을 느끼며 관찰과 탐구로 이어가 이것이 '서양철학'의 탄생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참 재밌는 현상은 기원전 600~500년 무렵엔 중국에서는 공자와 노자가,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 부처, 페르시아에서는 자라투스트라, 팔레스타인에서는 성서의 예언자들이,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와 철학자 등이 활동했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시대의 흐름엔 철학의 기운이 넘쳐흘렀었던가 보다.




서양철학은 기원 전 600년경 그리스에서 부터 비롯되어 5~6세기까지의 철학을 말하는데, 그 시기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으로 이 시기는 자연에 관해 관심이 많아 자연철학이라고도 불리운다. 고대 그리스의 초기 철학자들의 관심은 자연세계의 본질에 관한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존재하는지, 존재의 기본단위는 무엇인지 알고자 했으며, 그것이 물이나 공기, 불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들의 탐구방법은 관찰과 관찰된 것에 대한 사변이었기 때문에 때로 이들은 경험주의자라고도 불린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란 문자 그대로 소크라테스 이전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를 한데 묶어서 쓰는 낱말이다. 이 낱말은 처음 독일의 고전 문헌학자 헤르만 딜즈가 이들 철학자의 단편들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의 제목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뒤,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독일어를 직역하여 그대로 쓰고 있으며, 오늘날 서양 철학사에서 굳어진 낱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흔히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라고 불리기도 하며, 또는 그들이 태어난 지방의 이름을 따서 이오니아, 엘레아 철학자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1931년 그리스에서 출생한  이 책의 저자 콘스탄틴 J.밤바카스는 『철학의 탄생』 저술 의도를 당시의 사상가들의 길은 단 하나였고 통일되어 있어 그 철학이 세운 지식과 사유의 건물이 잘 구성되고 잘 발달되어 있어 아직 탐구되지 않았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려고 시도하면서 처음으로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사유를 탄생시킨 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정신의 혁명으로 부르는 그들의 업적에 가까이 접근하고자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연과학과 철학의 경계영역을 전문 연구 분야로 삼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서 나타나는 자연과학적 사고들과 현대 과학의 인식들을 이 책을 통해 비교서술하고 서양 철학과 자연과학의 뿌리가 되는 기원전 6~5세기 태동기 그리스 철학의 발생, 발전, 인물, 쟁점, 현대철학 및 현대과학과의 접점들을 풀어내 정리하여 연대기에 따라 밀레토스의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사모스의 피타고라스, 콜로폰의 크세노파네스,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 아크라가스의 엠페도클레스, 클라조메나이의 아낙사고라스, 압데라의 데모크리토스에 이르는 철학자들에 대해 그들의 개성과 생애, 저작, 학설, 그들의 저마다의 사상을 어렵지 않게 풀어 써 독자들을 그리스 철학의 시대로 안내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비밀스럽고 경이로운 계시다. 이 세계는 존재자들의 찬란한 계시의 현상이며, 우리는 너무나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이 세계의 영묘한 의미를 파악할 능력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 크리스토스 말레비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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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랑의 코드
크리스티안 슐트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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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사랑 애) = 受(주고받을 수) +心(마음 심)

그저 좋아하는 것, 이것 저것 챙겨주는 것, 관심 갖는 것만으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사랑이다.

“그녀는 내 모든 감각을 사로잡았다.”

“그녀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느끼고,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행복을 느낀다.”

베르테르가 한 말이다.

자신을 타인과 완전히 동일시하고 타인에게 전부를 내맡기고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런 자기 포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느끼는, 둘이 하나가 되는 이 특이한 결합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것을 시스템 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저자는 소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게임의 당사자는 연인들이 아니라 소통이자, 사회이며,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회의 일부로서 이런 사회가 벌이는 게임의 말馬에 불과하므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을 감정으로 인식하고 체험하지만 사실 사랑은 전혀 다른 것, 다시 말해 소통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랑은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소통의 특수한 형식으로 사랑은 어떻게 행동해야 상대가 이 감정들을 이해할 것인지 알려주는 표지판이자, 이런 감정들을 형성하도록 자극하는 미끼이다.



소통에 대해 말하자면 장자의 철학 공식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망각 忘却 +연결 連結 = 소통 疏通 → 道行之而成

그것은 바로 망각과 연결의 실천 철학으로 망각과 연결은 소통(疏通)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소(疏)는 '막힌 것을 터버린다'를 의미하고 통(通)은 새로운 연결을 뜻한다.

즉, 장자의 '소통'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망각과 비움을 통해 극복하여 나와 다른 삶의 형식을 갖는 타자와의 새로운 연결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통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는 에피소드로 '수영 이야기'가 있다.



『공자는 땅에서의 삶을 가장 잘 영위한다고 정평이 난 사람이다. 그런데 땅의 고수인 공자가 어느 날 육지의 가장 끝, 험악한 폭포수(물)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삶의 기술이 무력해지는 이곳에서 공자는 또 다른 고수 한 명을 만나게 된다. 그 고수는 물에서의 삶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다시 말해 수영의 달인이었다. 공자는 그에게 묻는다. "물을 건너는 데 그대는 어떤 특이한 방법이라도 지니고 있는가?" 물의 고수는 이렇게 말한다. "특별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나는 옛 삶(故)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의 삶(性)에서 자라났으며 운명(命)에서 완성하였습니다.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속에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 나옵니다. 물의 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물을 건너는 방법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다시 묻는다. "옛 삶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의 삶에서 자라났으며, 운명에서 완성하였다고 그대는 말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물의 고수는 대답한다. "제가 육지에서 태어나서 육지에 편안해진 것이 옛 삶이고, 제가 현재 물에서 자라서 물에 편안해진 것이 지금의 삶이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운명입니다.』


수영의 달인은 원래 땅에서의 삶에 익숙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땅과 전혀 다른 규칙으로 흘러가는 물을 만나게 된다. 이 때 땅에서의 방식(선입견)만 고수하고 물을 대하면 물 속에서 허우적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땅 생활에서 축적된 선입견을 버리고(잊고/비우고) 물에서의 새로운 방식을 몸으로 익혀 나갈 경우(연결) 물을 땅과 같이 익숙하게 느낄 수 있고 유유히 물 속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의도하지 않은 채 세상에 태어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특화된 삶의 방식을 몸에 붙인 채 살아간다. 이는 일종의 선입견으로 굳어지면서 다른 공동체에 속한 타자를 만날 때도 그 방식(선입견)을 강요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되는데 인생에서 끊임없이 겪게 되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파괴적이지 않고 생산적인 모습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선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에 기반한 자신만의 선입견을 과감히 버리고(잊고/비우고)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필사적인 연결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장자의 사상을 압축한 구절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은 직역을 하면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가 되는데 장자의 道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항상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통하는 만큼 길이 열리는 것이고 길이 열린 만큼 道가 이루어진다는 얘기이다.



사랑의 코드가 기적에 가까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강력한 ‘파트너’ 덕분이다.

이 파트너란 사랑의 코드를 지원하며 소통에 참여한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믿고 쓸 수 있는 ‘소통 매체’를 말한다. 따라서 권력, 진리, 돈, 사랑과 같은 매체는 협박수단, 원칙, 교환 수단, 감정을 상징하며 더불어 소통의 성공여부를 암시한다.

사랑의 경우 코드의 가치는 ‘개인적/비개인적’으로 나뉜다. 이를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 ‘사랑받는다/사랑받지 않는다’나 ‘우리 둘/다른 모든 사람들’로도 나눌 수 있는데 결정적인 것은 사랑의 코드가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이 중요한 것이다. 그 밖의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생각하며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나는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만 바라본다네.”라고 말한 것처럼.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 때문에 행한 일은 언제나 선과 악의 저편에 있다.”

사랑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양쪽에게 똑같이 불평등한 역할 분담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의 독특한 세계관을, 상대의 체험 모두를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 사실을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상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사랑받는 쪽은 자기 체험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사랑을 주는 쪽은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종종 오해를 유발하는데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반응해야 할 뿐 아니라, 체험으로 인식되느냐, 행동으로 인식되느냐에 따라 행동은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배려심이 깊다고 느낄 수도 있고 불만투성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결국 모든 것은 그때그때의 인식에 달려 있고 열쇠는 연인들 스스로 쥐고 있다.

이런 소통의 덫을 피해가려면 일정 정도 호의를 베풀고 상대 보다 먼저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믿음 또한 적정량이어야 하므로 어려운건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사소한 일 하나하나를 모조리 관계의 테스트로 여기지 않을 때만 성공할 수 있다. 낭만적 사랑관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는 타인, 즉 다른 의식과 하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의 본성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와 유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비교 불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때문에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행동이 필요하며, 지나치게 양보하고 갈등을 겁내면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 오랫동안 상대의 고집과 대결하고 싶다면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지만 관계를 위해 자신의 독립과 개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개별화가 사랑에 미치는 영향은 원칙적으로 이중적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활용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더욱 심한 불안감을 견뎌야 한다. 변화를 향한 자신의 욕망은 물론이고 파트너의 욕망까지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싱글들은 사회적 교류의 욕망이 강하다. 그래서 커플에 비해 우정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정은 장기적인 관계이므로 정체성을 심어주고 든든한 발판이 되어주며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의무가 훨씬 적다는 것이 심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고 절대적인 요구를 하지도 않고 24시간 통제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발적인 의지에 달려 있고 외로움을 막아주는 대체가족이며, 생존 투쟁의 동맹자이다. 싱글들은 비 싱글들에 비해 친구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며, 상황에 따라 분류하여 적절하게 배치할 줄 안다. 그래서 싱글 생활의 매력이 줄어들수록 위대한 진짜 사랑, 낭만적 사랑의 코드로 향한 동경이 커진다. 앞으로 남은 삶을 낭만적으로 영위하는 최고의 기회는 열정의 호흡이 긴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미래에도 사랑의 문제는 ‘이중의 자아 사랑’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으며 강한 자의식은 물론이고 상대의 마음을 존중할 줄 아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즉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고,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받을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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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걸어가 행복하라 - 틱낫한이 전하는 마음챙김의 지혜
틱낫한 지음, 김승환 옮김 / 마음터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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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그 기준이 무언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근거로 한다. 그런데 근거나 기준이 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은 어째서 옳은 것일까? 그것의 근거 역시 내가 옳다고 믿는 다른 근거 때문이다. 이렇게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그 출발점은 역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다. 결국 나의 생각, 나의 믿음이 내가 옳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즉 “내가 옳은 것은 내가 옳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이를 불교에선 ‘아상(我相)’이라고 한다.

부처 말대로 ‘정견(正見)’을 세우는 것은 내 견해를 옳다고 내세우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생각에 귀 기울이고, 다른 판단, 다른 가치에 마음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무엇이 옳은가를 내 기준을 떠나서 판단할 수 있고, 그래야 무엇이 옳은가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상’을 버리는 것, 혹은 ‘무아(無我)’가 지혜(般若)를 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부처는 지각 있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도덕을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틱닛한이 이를 현대화하여 정념 수행으로 재탄생시켰다. 각 계율의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정념이기 때문이다. 정념을 품고 있으면 몸과 감정과 정신, 세계의 흐름을 간파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과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정념은 우리 스스로와 가족과 사회를 보호하며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와 현재를 지켜준다. 이러한 정념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실천적 표현이 바로 계율이다. 하지만 이 정념 수행은 절대적인 계율이 아니고 마음의 힘과 평화를 키우고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돕기 위한 실천적인 지침이다.


첫 번째 정념 수행에서는 살생을 삼간다. 즉 생명존중으로 이것은 자비심에 대한 수련이다.

부처는 마음이 곧 모든 행동의 근원이라 하였다. 즉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생각이 비뚤어지고 혼란과 절망, 분노, 증오가 싹튼다. 여기서 주어지는 임무는 정확한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다. 공존의 핵심적 본질은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 즉 ‘저것은 저것이므로 이것은 이것이다’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마음에 있다. 

두 번째 정념 수행에서는 절도를 삼간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자애이다.

내면의 자애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표현할 길을 찾기 위해서는 깊은 성찰의 도를 깨쳐야 한다. 이 수행의 핵심인 관용을 실천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깊은 실천을 필요로 한다. 단 5분이라도 참된 존재의 상태를 경험한다면 그 시간은 세상의 어떤 선물보다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시간은 佛法과 담대함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한 선물이다.

세 번째 정념 수행에서는 성적인 비행을 삼간다.

불교에서는 몸과 마음의 합일을 중요시한다. 몸에 생기는 문제는 무엇이든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의 안정은 곧 마음의 안정이며 몸의 위해는 곧 마음의 위해이다. 진정한 사랑은 오랜 약속도 당장의 약속도 필요치 않다. 약점이나 강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진정한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그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기 내면의 인내심과 이해력과 에너지를 끌어내야 한다. 사랑은 기쁨과 행복을 불러오는 자애의 능력이자, 아픔과 고통을 승화시키는 자비의 능력이기도 하다.

동양철학에서는 성적 에너지, 호흡의 에너지, 영적인 에너지 이 세 가지 에너지원이 있어 말이든 글이든 행동을 너무 많이 하면 세 가지 에너지원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에너지원을 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등을 대고 누워서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 에너지원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한 가지를 수행하면 나머지 두 가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세 번째 수행의 핵심단어는 ‘책임’이다. 즉 이 정념 수행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책임감이 결여되어 불자들의 공동체나 일반 사회에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어 이 수행은 우리 자신과 가족, 사회의 안정성과 평화를 회복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방법이다.

네 번째 정념 수행에서는 깊은 경청과 사랑의 말로 그릇된 언사를 삼간다.

이 수행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 자신을 내놓으려면 먼저 스스로의 내면에 자리잡은 분노와 절망, 고통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한다. 이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아닌 말, 과장된 말, 이간질하는 말, 추악한 말 등을 삼가고 실천해야 한다. 이 수행은 보살수행으로 문제가 생겼다면 문제를 오래 방치할수록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므로 깨어있는 말과 깊은 경청을 실천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평화와 이해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다섯 번째 정념 수행에서는 부주의한 독소를 삼간다.

이 수행의 목표는 정념에 입각한 소비로 우리의 몸은 조상과 부모, 후손들에게 속함과 동시에 이 사회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소유이기도 하므로 자신의 몸을 건강히 지키는 것이 전 우주와 모든 조상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길로 미래의 후손을 배반하지 않는 길이다. 부처가 말하는 세 가지 근원적인 독소는 분노, 증오, 망상으로 이 수행의 핵심은 육체와 의식의 식이요법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등한시하는 도피의 수단으로 명상을 남용해서는 안 되며 집단적 차원의 계몽이 필요하다. 이 수행은 첫 번째 정념 수행과 정확히 일치하므로 육식을 줄이는 것이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 수행을 실천하는 일은 곧 정념과 자비를 실천하는 길이다.

 

다섯 가지 정념 수행은 사랑 그 자체로 사랑을 완성하는 수련의 길이다. 보통 한 가지 정념 수행을 제대로 실천하다 보면 다섯 가지 수행을 모두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세 가지 선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축복, 스스로의 의지로 자립할 기술을 터득할 수 있는 능력, 담대함이다. 『반야심경』에서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통찰력을 우리와 나누고 공포와 슬픔, 고통을 초월하도록 돕는다. 담대함이라는 선물은 우리 안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부처의 본질은 정념이다. 부처는 삶에 세 가지 특성이 있다고 가르쳤는데 무상無常, 무아無我, 열반涅槃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부정하는 가르침은 진정한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수행을 계속하면 무상과 무아의 세계에 열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정념의 실천은 깨달음의 핵심이다. 깨달음만으로도 기쁨과 평화,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깨달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미덕의 초석은 그 자체로 커다란 행복과 자유이며 현명한 명상의 필수 조건이다. 이를 잘 준비하면 이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인간으로 탄생한 특별한 기회와 삶 속에서 자비와 진정한 이해를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를 허비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삶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벽암록』중에서 


인상깊은 구절

나는 ‘길을 익혀간다‘라는 정념 수행식의 표현을 좋아한다.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무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은 분명 있다. 공자는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정념 수행의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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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
틱낫한 지음, 오다 마유미 그림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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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틱낫한 스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어떤 책을 읽어도 새벽같이 차분하고 평안하다.

스님의 글은 문구 하나하나마다 고통 속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에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글들로 우리가 숨 쉬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것에 감사의 마음과 평화의 마음이 저절로 깃들게 하는 힘을 실어준다.

그 중에서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이 책이 가장 그 느낌이 강한 것 같다.


책의 구성은 1장, 하루를 시작하는 게송, 2장, 명상의 게송, 3장, 음식을 먹을 때의 게송, 4장, 일상적 활동을 위한 게송 이렇게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조용한 새벽녘에 일어나 정갈한 마음으로 글 한편씩 읽어 내려가면 그날 하루의 시작이 어지러울 것도 힘들 것도 없을 듯하다.

책에서 처음 접하는 단어 ‘게송偈頌’‘은 일상생활에서 암송할 수 있는 짧은 싯귀로,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명상 훈련임과 동시에 시적 훈련이기도 한 게송은 선불교 전통의 핵심이지만 암송하는 데는 특별한 지식이나 종교적 활동이 필요 없다. 어떤 사람들은 두고 떠올릴 수 있는 구절을 선택해서 암송하기를 즐기고, 어떤 이들은 자주 볼 수 있는 장소에 써 붙여두기도 한다고 하니 일테면 성경 문구 한 구절과 간략한 해설을 덧붙여 놓은 묵상집을 아침에 하나씩 펼쳐들고 묵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보면 될 것 같다.


명상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에게서 들은 말 중 하루 아침의 시작을 자신의 침대 옆에 작은 거울을 하나 가져다 놓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후 반드시 일어나기 전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다듬고 일어나 가족들을 만나던지 하루를 시작하라는 그 분의 말씀에 절대 공감한 적이 있었다. 일종의 자기 관리인데 잠자고 난  후의 흐트러진 몸가짐과 정신을 거울을 통해 자신과 첫 대면하면서 마음가짐을 다듬고 활짝 웃는 훈련을 하여 하루의 시작을 겸손한 마음으로 시작하라는 그 분의 말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실행에 옮기려고 하지만 첫 실행을 몸에 습득하기엔 강한 정신력과 많은 인내와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었다.

아침을 다른 이들보다 빨리 시작하여 새벽의 맑은 기운을 마시고 약간의 스트레칭, 그리고 따끈한 차 한잔으로 시작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그것을 실행하여 기쁨을 맛보지 않고서는 그 느낌을 알 수가 없다.

밤을 세우고 새벽을 맞이하는 것과는 확연히 틀린 조금은 뻐근하지만 상쾌한 그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어쩌다 한 번 하게 되는 그 맑은 기운을 체험하기 위해 도전을 새롭게 해 보지만 아무래도 정신력이 약한지 번번이 실패하고 말아 요즘 고심 중이다. 다시 틱닛한 스님의 게송으로 다시 한 번 도전할 밖에...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책에 나온 게송은 우리네 일상과 아주 가까이 접하게 되는 소재들로 스님의 게송처럼 작은 것 하나하나를 게송의 글처럼 매번 새롭게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그 이상 기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아마도 그건 큰 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복도 내가 만들어 가는 것 일진데 내가 살아있는 이 순간 1분 1초라도 감사의 마음에 그 고통도 내가 있는 존재요 그 기쁨도 내가 지금 현존하고 있다는 의미로 내가 상처받는 고통을 잠시 받을지라도 나의 상처를 상대가 몰라 저지른 실수이니 그들의 화에 내 분노에 아파하지 말고 내 상처를 그 고통에서 끄집어 내어 나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고마워 한다면, 세상 모든 것들에 인상 쓰지 않고 이해의 마음과 배려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이든 내 마음이든 또한 내 주변의 가까운 사물이든 내가 키우는 식물이든 모든 것들을 읽어주고 쓰다듬어 준다면 폭력과 싸움은 없을 텐데... 라는 생각도 잠시 가져본다. 내 생각이 너무 뱃속 편한 방관자적인 생각과 행동일까?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첫 장 첫 글을 소개해 본다.

잠에서 깨며

눈을뜨며 나는 미소를 짓네

아직 쓰지 않은 스물두 시간이 내 앞에 있네

매순간을 꽉 차게 살리라.

모든 존재를 자비심으로 바라보리라 다짐하네

 

이젠 알 것 같다. 삶을 건강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 이상 큰 축복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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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리는 인생철학
루화난 지음, 허유영 옮김 / 달과소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 헛되이 허송세월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 뜨겁게 열정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사는 사람 또한 그리 흔치는 않다.

사실 ‘제대로’라는 말을 그리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제대로’, ‘잘’ 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가벼이 넘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새록새록 깨닫게 된다. 또한 그 나이 때에 해야 할 것들, 생각할 것들이 반드시 있고 그 내용 또한 다 다르고 또 그때 그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언젠간 꼭 그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라 그 나이 때에 해야 할 ‘앓음’과 ‘성장의 고통’은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는 것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선 더 좋다는 것도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사람들이라면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난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가 받을 상처가 클까봐 한 발 앞서서 나아가야 할 것들을, 맞서야 할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만큼 남보다 그 과정을 늦게 거쳐야 하는 때늦음을 경험하다보니 내가 사랑하는 조카들과 동생들에게는 반드시 “하지 마라”라는 말보다 “힘들더라도 실패가 눈앞에 보이더라도 반드시 해 봐라”라는 말로 대신한다.

아무리 무분별한 것일지라도 또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그것이 어리석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내가 보기엔 그 과정은 당사자가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므로 찾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다닐 때의 바른 생활 시간이라든가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도덕적인 잣대는 약간의 충고는 될지 몰라도 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의 성장에는 그것은 도움이 전혀 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어 다시 생각을 되돌려 하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어떤 것을 규정하는 것, 단정적인 생각, 이분법적인 생각을 강요당하는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것 때문에 한 동안 정신적인 방황도 했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사회를 먼저 산 사람으로서 “하지 마라”라는 말보다 ‘잘’ 들어주고 본인이 얘기하면서 자신 스스로 해결점을 찾을 수 있게 놔두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진정 그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말이다.




루화난의 마음을 다스리는 人生철학표지 첫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방식대로 계속 살아갈 용기‘는 있는가?“

-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사람은 감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 용기도 없다. 그 일에 연루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사람은 감히 사랑할 용기도 없다.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사람은 감히 희망을 가지도 못한다. 실망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 우리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딱 한번 주어지는 것이라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아마도 세상에 두려울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닥친 순간적인 것들은 일생에 딱 한 번 주어지는 것이므로 그것에 도망친다는 것은 눈앞에 펼쳐진 기회를 제대로 맛보지 않고 밥상을 엎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려움 뒤에 숨어있는 희망의 숨바꼭질 게임을 빨리 파악하고 헤쳐나가는 것이 인생에 주어진 삶의 게임을 잘 하는 것이리라.




참 신기한 것은 똑같은 내용의 글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읽는 이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순리에 따르며 사는 사람이든, 이치를 거스르며 사는 사람이든 자신의 생활과 영혼을 지탱해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 인생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은 큰 축복일 것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길이 있지만 유일하게 존재하지 않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되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결국 어제의 실패를 내일의 경험으로 삼아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굽이 굽이 다가오는 험난한 인생의 질곡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제대로’ 살기란 참 어렵다!

‘나무의 방향은 바람에 의해 결정되지만, 사람의 방향은 자기가 결정한다’ 는 명언이 있다. 자신의 진정한 적은 자신의 나태, 태만, 방황, 인내를 모르는 것으로 우리의 운명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있거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린다면 그건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방향이 없는 인생은 절대로 멋있는 인생이 될 수 없다.

목표는 인생의 방향이다.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라는 건 누구나 다 잘 알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그 원인은 바로 그들이 구체적인 장래의 목표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공이란 바로 간단한 일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다.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결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정오가 되면 허리를 쭉 펴고 활기차게 일하고,

저녁에는 힘차게 걸어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루화난의 마음을 다스리는 人生철학은 자칫 관념적인 말로 그저 그런 내용으로 생각하고 눈으로만 읽고 가슴에 담지 않아 흘려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읽다가 작은 말이라도 그 때 자신의 가슴을 톡 건드린 무언가가 있다면 다른 건 다 담아두지 않아도 괜챦을 듯 하다. 이유는 그 작은 것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가슴에 담는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가장 큰 삶의 지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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