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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랑의 코드
크리스티안 슐트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愛(사랑 애) = 受(주고받을 수) +心(마음 심)
그저 좋아하는 것, 이것 저것 챙겨주는 것, 관심 갖는 것만으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사랑이다.
“그녀는 내 모든 감각을 사로잡았다.”
“그녀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느끼고,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행복을 느낀다.”
베르테르가 한 말이다.
자신을 타인과 완전히 동일시하고 타인에게 전부를 내맡기고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런 자기 포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느끼는, 둘이 하나가 되는 이 특이한 결합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것을 시스템 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저자는 소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게임의 당사자는 연인들이 아니라 소통이자, 사회이며,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회의 일부로서 이런 사회가 벌이는 게임의 말馬에 불과하므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을 감정으로 인식하고 체험하지만 사실 사랑은 전혀 다른 것, 다시 말해 소통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랑은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소통의 특수한 형식으로 사랑은 어떻게 행동해야 상대가 이 감정들을 이해할 것인지 알려주는 표지판이자, 이런 감정들을 형성하도록 자극하는 미끼이다.
소통에 대해 말하자면 장자의 철학 공식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망각 忘却 +연결 連結 = 소통 疏通 → 道行之而成
그것은 바로 망각과 연결의 실천 철학으로 망각과 연결은 소통(疏通)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소(疏)는 '막힌 것을 터버린다'를 의미하고 통(通)은 새로운 연결을 뜻한다.
즉, 장자의 '소통'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망각과 비움을 통해 극복하여 나와 다른 삶의 형식을 갖는 타자와의 새로운 연결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통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는 에피소드로 '수영 이야기'가 있다.
『공자는 땅에서의 삶을 가장 잘 영위한다고 정평이 난 사람이다. 그런데 땅의 고수인 공자가 어느 날 육지의 가장 끝, 험악한 폭포수(물)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삶의 기술이 무력해지는 이곳에서 공자는 또 다른 고수 한 명을 만나게 된다. 그 고수는 물에서의 삶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다시 말해 수영의 달인이었다. 공자는 그에게 묻는다. "물을 건너는 데 그대는 어떤 특이한 방법이라도 지니고 있는가?" 물의 고수는 이렇게 말한다. "특별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나는 옛 삶(故)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의 삶(性)에서 자라났으며 운명(命)에서 완성하였습니다.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속에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 나옵니다. 물의 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물을 건너는 방법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다시 묻는다. "옛 삶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의 삶에서 자라났으며, 운명에서 완성하였다고 그대는 말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물의 고수는 대답한다. "제가 육지에서 태어나서 육지에 편안해진 것이 옛 삶이고, 제가 현재 물에서 자라서 물에 편안해진 것이 지금의 삶이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운명입니다.』
수영의 달인은 원래 땅에서의 삶에 익숙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땅과 전혀 다른 규칙으로 흘러가는 물을 만나게 된다. 이 때 땅에서의 방식(선입견)만 고수하고 물을 대하면 물 속에서 허우적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땅 생활에서 축적된 선입견을 버리고(잊고/비우고) 물에서의 새로운 방식을 몸으로 익혀 나갈 경우(연결) 물을 땅과 같이 익숙하게 느낄 수 있고 유유히 물 속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의도하지 않은 채 세상에 태어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특화된 삶의 방식을 몸에 붙인 채 살아간다. 이는 일종의 선입견으로 굳어지면서 다른 공동체에 속한 타자를 만날 때도 그 방식(선입견)을 강요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되는데 인생에서 끊임없이 겪게 되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파괴적이지 않고 생산적인 모습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선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에 기반한 자신만의 선입견을 과감히 버리고(잊고/비우고)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필사적인 연결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장자의 사상을 압축한 구절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은 직역을 하면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가 되는데 장자의 道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항상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통하는 만큼 길이 열리는 것이고 길이 열린 만큼 道가 이루어진다는 얘기이다.
사랑의 코드가 기적에 가까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강력한 ‘파트너’ 덕분이다.
이 파트너란 사랑의 코드를 지원하며 소통에 참여한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믿고 쓸 수 있는 ‘소통 매체’를 말한다. 따라서 권력, 진리, 돈, 사랑과 같은 매체는 협박수단, 원칙, 교환 수단, 감정을 상징하며 더불어 소통의 성공여부를 암시한다.
사랑의 경우 코드의 가치는 ‘개인적/비개인적’으로 나뉜다. 이를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 ‘사랑받는다/사랑받지 않는다’나 ‘우리 둘/다른 모든 사람들’로도 나눌 수 있는데 결정적인 것은 사랑의 코드가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이 중요한 것이다. 그 밖의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생각하며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나는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만 바라본다네.”라고 말한 것처럼.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 때문에 행한 일은 언제나 선과 악의 저편에 있다.”
사랑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양쪽에게 똑같이 불평등한 역할 분담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의 독특한 세계관을, 상대의 체험 모두를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 사실을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상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사랑받는 쪽은 자기 체험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사랑을 주는 쪽은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종종 오해를 유발하는데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반응해야 할 뿐 아니라, 체험으로 인식되느냐, 행동으로 인식되느냐에 따라 행동은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배려심이 깊다고 느낄 수도 있고 불만투성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결국 모든 것은 그때그때의 인식에 달려 있고 열쇠는 연인들 스스로 쥐고 있다.
이런 소통의 덫을 피해가려면 일정 정도 호의를 베풀고 상대 보다 먼저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믿음 또한 적정량이어야 하므로 어려운건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사소한 일 하나하나를 모조리 관계의 테스트로 여기지 않을 때만 성공할 수 있다. 낭만적 사랑관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는 타인, 즉 다른 의식과 하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의 본성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와 유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비교 불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때문에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행동이 필요하며, 지나치게 양보하고 갈등을 겁내면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 오랫동안 상대의 고집과 대결하고 싶다면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지만 관계를 위해 자신의 독립과 개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개별화가 사랑에 미치는 영향은 원칙적으로 이중적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활용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더욱 심한 불안감을 견뎌야 한다. 변화를 향한 자신의 욕망은 물론이고 파트너의 욕망까지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싱글들은 사회적 교류의 욕망이 강하다. 그래서 커플에 비해 우정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정은 장기적인 관계이므로 정체성을 심어주고 든든한 발판이 되어주며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의무가 훨씬 적다는 것이 심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고 절대적인 요구를 하지도 않고 24시간 통제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발적인 의지에 달려 있고 외로움을 막아주는 대체가족이며, 생존 투쟁의 동맹자이다. 싱글들은 비 싱글들에 비해 친구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며, 상황에 따라 분류하여 적절하게 배치할 줄 안다. 그래서 싱글 생활의 매력이 줄어들수록 위대한 진짜 사랑, 낭만적 사랑의 코드로 향한 동경이 커진다. 앞으로 남은 삶을 낭만적으로 영위하는 최고의 기회는 열정의 호흡이 긴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미래에도 사랑의 문제는 ‘이중의 자아 사랑’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으며 강한 자의식은 물론이고 상대의 마음을 존중할 줄 아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즉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고,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받을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