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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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몰입해서 읽으면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인정받은 시대의 구라쟁이 황석영 작가 책이고 내용도 재밌어서 휘리릭 읽힌다.

이백만, 이일철,이지산 - 일제강점기부터 해방될 때까지 철도원을 지낸 삼대의 이야기가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를 당하자 본사 공장 굴뚝 위로 올라가 복직투쟁을 벌이는 이진오를 통해 회상되는 내용이다.

400여 일을 굴뚝 위에서 생활하면서 가족들이 겪은 경험을 통해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사를 조명하는데 한국의 근현대사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기에도 좋은 책이었다.

그 시대의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일제 강점기 식민지 민초들의 삶은 피폐했고 하루하루 연명해 가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때 철도원이라는 괜찮은 기술을 가진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를 가진 이진오의 집안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철도원 삼대가 어떻게 한 세기를 겪으며 걸어왔는지는 이진오의 할머니이자 이일철의 아내 신금이를 통해 정리되고 화자 되는데 신식 공부를 했음에도 귀신을 볼 줄 아는 신금이 여사로 인해 이 책은 감칠맛을 더하고 신비하고도 재밌는 이야깃거리로도 가득한 책이 된 듯하다.

산업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근현대 백여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거쳐 현대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 보고자 했고 유년기 추억이 깃든 고향의 이야기이며 동시대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고 작가의 말에 밝혔다.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의 시간 속에서 어떤 이는 그들 덕분에 밥을 빌어먹고 살고 어떤 이들은 그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지하운동을 멈추지 않는데, 이일철과 이이철 이 두 형제의 이야기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노선은 틀렸으나 어쨌든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코민테른, 주의자, 빨갱이, 앞잡이, 끄나풀, 독서회,오르그,레포...그 시절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쓰던 말이 자주 나오는데 나도 생소한 단어가 많았고 요즘 아이들은 들어 본 적이 없을 듯한 말들이 많아 그 시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시대 이해의 보충 서로 도 괜찮을 듯싶었다.

일제강점기 하층민 이백만이 철도 수리원이 될 수 있었던 우여곡절과 이일철이 철도 기관사가 되기까지의 입신양명, 이지산이 어린 철도원으로 꿈을 펼치려 했을 때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 가족사의 일이기도 하지만 한반도 100년의 역사를 꿰는 서사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을 하거나 지하조직으로 민중을 깨우치고 식민지 민족으로 영원히 살지는 말자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상과 외세의 간섭으로 이산의 고통과 민족의 분단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언젠간 극복해야 할 우리의 과제임을 느끼게 했다.

중간중간 이념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었으나 그럴 때마다 나타난 신금이 여사와 증조 할머니 주안댁으로 인해 이야기는 내 이웃의 이야기가 되고 했다.

하루 종일 이 책 한 권 읽느라 아무것도 못했으나, 하루 종일 다른 일하느라 이 책을 못 읽었으면 어쩔뻔했나? 싶은 뿌듯함이 있었다.

어려운 책은 아니나 쉽게 읽어선 안 될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황석영 작가가 1989년 방북했을 때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의 노동자와 이 시대의 노동자가 나아졌고 달라졌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책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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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드라마 방영 기념 한정판)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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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좋은 오늘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오겠다는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오늘 와야 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미세먼지도 없었고 기온도 21도로 적당했고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 오래간만에 동네 한 바퀴 뛰러 나갔다.

사회적 거리두기(내가 건전하고 모범적인 시민임을 다시 확인)로 두어 달을 바깥출입을 삼가 했는데 이렇게 화창하고 아름다운 날에 방에만 있는 것도 피고 있는 꽃들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스크를 하고.(뛸 때의 마스크는 걸을 때의 방독면 착용과 비슷하다)

겹황매화, 박태기, 철쭉, 이 팝, 산딸나무, 모란.

뛰는 도중 인사를 나눈 아이들은 이정 도고 낮고 잘게 피어 구분을 할 수 없었던 꽃과 숨어 있어 정확히 보이지 않는 꽃들에겐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다.

날씨가 좋다는 건 이래저래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아무도 채근하지 않아도 때에 맞춰 꽃을 피우고 잎을 내밀고 시간과 공간을 조화롭게 채색할 줄 아는 풍경들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과 늘 있어 왔던 것에 대한 감사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다니- 스스로 대견해 하며 칭찬을 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몇 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오길래 베스트셀러에 현혹되지 않겠다, 팔랑귀로 생을 마감할 수는 없다는 각오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작가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누워보다가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없었다.

이도우 작가의 신작이라닛!!!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2004년 출간 이후 '잠옷을 입으렴'을 2012년 2월에 내고'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2020년 2월에 냈으니 8년마다 신작을 내는 셈이다.

이렇듯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이도우 작가의 신작을 읽을 수 있다니... 성마른 사람은 답답해서 죽을 수도 있는 세월이다.

TV를 잘 보지 않아 모르고 있었는데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었다. 내가 주문했을 때는 드라마 방영 기념 한정판을 팔 때여서 '굿나잇책방 겨울 통신' 기간 한정 증정 본의 뜻밖의 득템까지. 아, 좋다.

배경이 겨울이었지만 읽는 내내 봄날 같았다.

연애소설을 이렇게 부드럽고 달달하게 잘 쓰는 작가가 현존해 있다는 건 로맨틱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겐 무한 축복이다. 가뜩이나 핍진한 현실에 이런 달달한 연애 소설 한 권쯤은 읽어 줘야 잊고 있었던 로맨틱의 피가 다시 흘러 세상이 좀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믿는다.

은섭과 해원.

그들의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꿈이 바다가 보이는 맥줏집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바다가 보이는 책방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가 보이는 맥줏집 한 켠에 책을 넣고 '바다가 보이는 책도 파는 맥줏집'으로 꿈을 확장 시켜 봐? 꿈이란 게 실현 가능성이 없더라도 꿈꾸는 자의 마음이니- 내 꿈의 평수가 좀 더 넓어졌다면 이 책 덕분이다.

은섭이 알바로 일하는 큰아버지의 논두렁 스케이트장과 해원의 이모가 사는 호두하우스 펜션, 그리고 은섭의 굿나잇서점. 그들이 사는 북현리는 이 땅 어디에나 있을 법한 풍경들이고 둘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먹고 살아야 하는 상업의 풍경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생업에 몰두하는 상업의 풍경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면 그 공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다채롭고 풍성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 이도우 작가라서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고, 최고,요새 아이들 말로 쵝오!

겨울이 와서 좋은 이유는 그저 한 가지.

내 창을 가리던 나뭇잎들이 떨어져

건너편 당신의 창이 보인다는 것.

40 도는 술이 아니다

영하 40 도는 추위가 아니다

400킬로미터는 거리도 아니다

- 러시아 속담

그리고 40세는 나이도 아니다

- 배근상( 책방 회원인 아저씨)

이런 웃을 수 있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간간이 넣는 추임새들의 이야기도 너무 좋았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가사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가슴 떨리는 일로 살아볼 수 있다면 그 삶도 나쁘지 않지.

                                

이도우 작가의 책은 RHK에서 양장본으로 나와 좋았는데(소장용이니까) 이번엔 아니어서 "양장본으로 나오면 사러 가겠어요'다.

연애의 세포는 빙하기 공룡이 얼어 죽을 때 함께 죽었다고 느끼시는 청춘이거나 읽으면서 따뜻해지고 슬픈데 위로가 되네.. 하는 책을 찾으신다면 이도우 작가의 책을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한때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부디 건강하시어 다음 신간은 반으로 줄여 한 사 년 만에 볼 수 있기를 고대하고 파마도 해본다.

그리고, TV 방영된 주요 장면들을 몇 개 봤는데 아, 실망, 실망.

연기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내가 상상하던 은섭과 해원과는 거리가 있었고 책이 이백삼십아홉 배쯤 더 낫다는 걸 알려드림.

연애를 못해 성격까지 까칠해지고 물리적 달달함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는 딸아, 너에게 선물을 할까 하노라.

후한이 두려워 여기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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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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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나 커피나 달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가끔 진한 블랙을 마시면 개운해질 때가 있다.

농축된 밀도가 주는 중후함이 식도 밑까지 내려가 위에 퍼지는 느낌을 받을 때, 카페인의 독한 기운이 신경을 따라 흐르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걸 자주 느낀다. 인생이든 커피든 쓴맛을 알아야 단 맛이 정신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지.. 개똥철학을 읊으며 한 가지만 고집하지 않는 나는 얼마나 개방적이고 치우치지 않는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 칭찬하곤 한다. 하하하.

'추우면 외로움도 깊어진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블랙커피가 아니라 오리지널 에스프레소를 더블 샷으로 마시는 듯한 독하고 매운 기운이 서려있어 읽을수록 정신이 쨍해졌다.

의료사고를 낸 뒤 세상과 단절하고 섬에 갇혀 사는 초로의 의사 프레드리크 벨린의 이야기다.

얼음을 깨고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일주일에 세 번 오는 집배원 뿐. 변화가 없고 단조로운 삶에 느닷없이 40년 전의 연인이 찾아오면서 고요하고 적막하던 그의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하리에이트가 찾아오기 전까지의 삶이 춥고 외로웠던 것이라면 옛날에 했던 약속을 지키라며 도망쳐 온 현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하리에이트의 추궁은 늘그막의 삶을 더욱 무겁게 한다.

회피했던 시간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벨린은 느린 걸음과 깊은 호흡으로 맞닥뜨린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 속으로 걸어간다.

삶을 반추하고 비겁을 후회하고 책임질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할 생각으로.

배신당할까 봐 먼저 배신했지만 왜 그랬는지 자신도 설명할 수 없고 자신의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손을 내민다. 거칠고 투박해 잡기가 꺼려질 수도 있으나 너무 늦게 내민 손이 아니길 바라며 딸을 기다리고 자신의 실수로 한 쪽 팔을 잃은 환자를 기다린다.

벨린을 당황스럽게도 하고 두렵게도 했지만 들뜨게도 한 딸이 주문해 준 이탈리아에서 온 구두를 신는 장면이 마지막에 나온다. 옛 연인이었던 하리에티트가 혼자 키워 온 40년 만에 존재를 알게 된 딸이다.

바깥으로 신고 나가는 일은 절대 없고 매일 부엌을 몇 바퀴씩 돌다 상자에 다시 넣는데 개나 개미에게 보여는 주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느낀다.

너무 좋아서 밖에는 신고 나가지 못하고 매일 부엌을 몇 바퀴씩 돌다 다시 상자 안에 구두를 넣고 있는 초로의 노인을 상상하니 그만 짠해져서 코끝이 시큰했다.

이렇게 외롭고 무겁게 늙어가는 중에도 작은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반짝이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구나.

외롭고 추운 시간을 스스로 선택했다 해도 나눠 줄 작은 관심만 있다면 꺼지지 않는 모닥불을 가슴에 피워주는 것과 같겠구나. 영화의 엔딩 신을 보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져 더 마음이 아팠다.

얽매이는 관계의 두려움으로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은 벨린뿐만은 아니다. 두려움이던 관계가 기쁨이 될 수도 있음을 알 때 누군가를 기다리게 된다는 것을 겨울의 한 가운데를 견디는 벨린을 통해 깨달았다.

더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다.

여기까지 왔음에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게 어떤 삶이든, 누구를 위한 삶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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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사라진 밤
루이즈 젠슨 지음, 정영은 옮김 / 마카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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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인식장애'

주인공인 앨리슨이 갑작스러운 사고의 충격 후 진단받은 병명이다.

피 묻은 손, 신체에 남은 멍과 상처, 부서진 자동차.. 모든 것들이 정상이 아닌데 전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 없고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하는 장애까지 진단받고 끊임없는 살해 위협이 계속된다.

기억할 수 없고 얼굴마저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자신이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는 앨리슨의 범인 찾기 고군분투기다.

'안면인식장애'를 듣고는 혹시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당연하고 자주 봐 왔던 사람이라도 한동안 소식 없이 지내면 그만 얼굴이 가물가물해지고 옆에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많아 내가 이 증상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나는 그냥 기억력이 낮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거란 걸.

군중 속에 가족이 섞였을 때, 보면서도 구별해 낼 수 없는 상태가 안면인식장애라고 하니, 무서운 증상이다.

'제가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서요'하는 말을 농담 삼아 할 때가 있는데, 함부로 쓸 말이 아니구나 스릴러를 읽고 교훈을 얻는 날이었다.

남편과는 별거 중인 앨리슨에게 우울하게 살지 말고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 보라는 친구의 권유로 데이트 앱에서 새로운 남자를 알게 되고 클럽에서 첫 만남을 가지는 날 사건은 발생된다. 사건이 있던 날 함께 지내던 친구는 실종이 되고 앨리슨 주변을 맴돌면서 위협을 가해 오는 문자와 흔적을 통해 앨리슨이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사라져 버린 기억과 기억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맞물려 사건 전체에 흐르면서 범인을 추적해 가는데...

언제나 그렇듯 내가 생각했던 사람은 틀림없이 범인이 아니었다.

책 마지막에 가서야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고 범일일 수 있겠다 싶었던 용의선상의 인물들은 모두 작가의 트릭임을 알게 되면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반전에 스릴러를 읽는 묘미를 느낀다.

얼굴이 사라진 밤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범인이어서 뜨아- 했지만, 범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만큼 인과성이 부족하고 살해의 동기가 절실치 않아 범인을 알고 나니 어쩐지 시시해져 버렸다.

심리적이든, 물질적이든, 개인적인 원한이든 납득이 안되는 살인 이유는 감동을 받기가 쉽지 않다. 독자가 추측하지 못한 의외의 인물이 범인인 것으로 반전의 효과를 노렸다면 성공했으나 이런 이유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살해 위협을 한다면 지구상에 살아남을 자 몇 명이란 말인가?

그러나,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주 스릴 있었다.

이 사람인가? 어쩌면 저 사람이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앨리슨 주변의 모든 사람을 용의자 선상에 올리고 추측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뛰어난 심리 스릴러로 평가받을만했다.

앨리슨이 동생 벤이 어렸을 적 자주 읽어 주었던 '부엉이와 고양이가 바다로 나갔다네'로 시작되는 에드워드 리어의 시가 소설 곳곳에 자주 등장한다. 동화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시인데 봉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1년 하고도 하루 더 항해를 해 결혼 반지를 구하러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봉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뽕나무거나 봄나무만 검색되어 끝내 봉나무를 찾을 수 없었다.

시는 아름다웠으나 그런 시를 듣고 자랐음에도 어렸을 적 입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평생 치유될 수 없음을 봉나무를 찾지 못한 우매한 독자가 내린 결론이다.

반전에 의존하지 않는 심리 스릴러를 원한다면 실망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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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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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쉬면 하루 종일 책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쉬어보니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날이 더 많다.

체내에 누적된 피로는 내 몸을 누이고 내 눈을 감겨 책과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일단 누우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먹는 것조차도 귀찮다.

그리고, 지칠 만큼 자다 깨면 이제 남들은 잘 시간이다.

어차피 밤은 조용하게 지내야 하는 때니 미뤄 둔 쌓인 집안일을 하느라 북적대는 건 이웃이나 가족에게 예의가 아니다. 그냥 조용히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남들이 다 잘 때 읽는 책은 방해받지 않아서 좋다.

한 밤에 든 책을 다 읽고 나니 창밖이 뿌옇게 밝아오고 다시 다른 사람들은 일어날 시간이었다.

간만에 재밌게 후루룩 읽은 책이다.

스릴러라 지루하지 않고 약간의 오컬트와 촌철살인의 유머가 적절히 버무려져 있어 좋았다.

처음 읽어 본 작가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검색해 보니 작년에 '초크맨'으로 엄청난 독자층을 확보하고 이 책으로 영국의 여자 스티브 킹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었다.

이 작가를 알게 돼서 기쁘고 아직 읽지 않은 전작 초크맨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쉬는 동안 읽으라고 친구가 보낸 준 책. 무려 11권. 이 상자에서 맨 처음 간택 당한 책이 '애니가 돌아왔다'였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폐광이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친구들과 호기심으로 들어간 폐광이 사실은 다른 용도로 설계된 유골들의 무덤이었고다. 어둠 속에서 동생이 사고를 당해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하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동생이 사라진다. 실종 신고를 내고 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친구들과 다른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둔 생태라 동생이 폐광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무서움에 떨고 있는데, 48시간 만에 동생이 돌아왔다.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웃으며 -

도박중독으로 도박빚을 갚지 못해 살해 위협을 당하는 조는 이메일 한 통을 받고 도망치듯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모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사건의 진실에 한 발짝씩 다가간다. 폐광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 미쳐가다 자살한 친구에 대한 재 조명, 아직도 폐광 희생양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동네, 폐광을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암에 걸린 첫사랑, 그리고 동생을 잃을 당시 어울려 다녔던 불량했던 친구 스티븐과의 악연 정리...

숨 쉴 틈 없이 사건이 전개되는 건 아니지만 느슨해지지 않았다.

도박 빚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현실의 조와 20년도 넘은 악몽의 사건이 다시 재현되면서 과거의 조각들을 가지고 현재의 사건을 풀어나가는 조의 시니컬한 유머가 감칠맛을 더해 주어 스릴러임에도 강 약 중강 약의 고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드러나지 않는 관계, 생각지 않았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스릴러임에도 유쾌하게 읽었다. 스릴러를 잘 읽지는 않지만 올해 읽은 스릴러 중 최고다.

아쉬운 게 있다면,

'애니가 돌아왔다'의 제목에서 주는 암시적인 효과가 별로 없어 살짝 김이 빠지긴 했다.

애니가 돌아온 후 이상행동을 보이는 애니에 대한 관찰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기이한 일들을 기대했는데 이상하긴 했으나 크게 활약을 하지 못하고 그냥 이상한 채로 죽어버려 뭐지? 했다.

죽었다 살아났고 표정과 행동이 이전의 동생이 아니라고 했으니 공포영화에 자주 나오는 천장에 매달려 걸어 다닌 다든가 우물 속에서 기어 나온 다든가 괴력을 발휘해 침대를 이고 서있다든가 하는 걸 기대했는데 그냥 냄새가 심해지고 알 수 없는 중얼거림과 오줌을 자주 싸고 섬뜩하게 째려보는 것이 다이다.

다른 희생자도 그렇고.

책 띠지에 '불을 끈 뒤에도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강렬한 공포!'라고 썼는데 불을 끄니 그냥 잠이 왔다.

그러나 다 읽기 전에 불을 끌 수 없는 건 확실하다. 눈에다 불을 켜고 읽을 수 있다면 모를까.

스티븐 킹의 문체나 구성을 많이 닮아 스티븐 킹 작품을 좀 읽어 온 사람이라면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구나 생각이 금방 들긴 하겠더라만 대부분의 스릴러 작가들이 스티븐 킹을 흠모하고 킹만큼 쓰길 원하지만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C.J. 튜더도 킹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두 번째 펴낸 책이 이 정도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 재미를 가졌다는 건 스티븐 킹의 아성을 넘볼 수 있는 작가 가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본다.

최근 스티븐 킹의 책을 잘 읽지 않아 모르겠는데 마지막 읽었던 킹의 책은 킹도 힘이 많이 빠졌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바.

재미있는 책은 언제나 옳다.

재미있는 책을 선물해 주는 친구는 언제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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