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사라진 밤
루이즈 젠슨 지음, 정영은 옮김 / 마카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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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인식장애'

주인공인 앨리슨이 갑작스러운 사고의 충격 후 진단받은 병명이다.

피 묻은 손, 신체에 남은 멍과 상처, 부서진 자동차.. 모든 것들이 정상이 아닌데 전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 없고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하는 장애까지 진단받고 끊임없는 살해 위협이 계속된다.

기억할 수 없고 얼굴마저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자신이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는 앨리슨의 범인 찾기 고군분투기다.

'안면인식장애'를 듣고는 혹시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당연하고 자주 봐 왔던 사람이라도 한동안 소식 없이 지내면 그만 얼굴이 가물가물해지고 옆에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많아 내가 이 증상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나는 그냥 기억력이 낮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거란 걸.

군중 속에 가족이 섞였을 때, 보면서도 구별해 낼 수 없는 상태가 안면인식장애라고 하니, 무서운 증상이다.

'제가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서요'하는 말을 농담 삼아 할 때가 있는데, 함부로 쓸 말이 아니구나 스릴러를 읽고 교훈을 얻는 날이었다.

남편과는 별거 중인 앨리슨에게 우울하게 살지 말고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 보라는 친구의 권유로 데이트 앱에서 새로운 남자를 알게 되고 클럽에서 첫 만남을 가지는 날 사건은 발생된다. 사건이 있던 날 함께 지내던 친구는 실종이 되고 앨리슨 주변을 맴돌면서 위협을 가해 오는 문자와 흔적을 통해 앨리슨이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사라져 버린 기억과 기억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맞물려 사건 전체에 흐르면서 범인을 추적해 가는데...

언제나 그렇듯 내가 생각했던 사람은 틀림없이 범인이 아니었다.

책 마지막에 가서야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고 범일일 수 있겠다 싶었던 용의선상의 인물들은 모두 작가의 트릭임을 알게 되면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반전에 스릴러를 읽는 묘미를 느낀다.

얼굴이 사라진 밤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범인이어서 뜨아- 했지만, 범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만큼 인과성이 부족하고 살해의 동기가 절실치 않아 범인을 알고 나니 어쩐지 시시해져 버렸다.

심리적이든, 물질적이든, 개인적인 원한이든 납득이 안되는 살인 이유는 감동을 받기가 쉽지 않다. 독자가 추측하지 못한 의외의 인물이 범인인 것으로 반전의 효과를 노렸다면 성공했으나 이런 이유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살해 위협을 한다면 지구상에 살아남을 자 몇 명이란 말인가?

그러나,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주 스릴 있었다.

이 사람인가? 어쩌면 저 사람이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앨리슨 주변의 모든 사람을 용의자 선상에 올리고 추측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뛰어난 심리 스릴러로 평가받을만했다.

앨리슨이 동생 벤이 어렸을 적 자주 읽어 주었던 '부엉이와 고양이가 바다로 나갔다네'로 시작되는 에드워드 리어의 시가 소설 곳곳에 자주 등장한다. 동화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시인데 봉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1년 하고도 하루 더 항해를 해 결혼 반지를 구하러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봉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뽕나무거나 봄나무만 검색되어 끝내 봉나무를 찾을 수 없었다.

시는 아름다웠으나 그런 시를 듣고 자랐음에도 어렸을 적 입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평생 치유될 수 없음을 봉나무를 찾지 못한 우매한 독자가 내린 결론이다.

반전에 의존하지 않는 심리 스릴러를 원한다면 실망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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