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의 갈림길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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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자들의 무죄 변론을 잇달아 성공시킨 미키 할러는 전국의 재소자들로부터 빗발치듯 의뢰를 받습니다. 그 가운데 수임할 의뢰를 1차적으로 검토하는 건 그의 이복형인 해리 보슈입니다. 경찰 퇴직 후 골수암에 걸렸던 보슈는 지금은 할러의 비공식 조사관으로 일하는 중인데, 의뢰 편지를 보낸 재소자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한 뒤 무죄 가능성이 있는 케이스를 할러에게 추천하는 것입니다. 보슈는 보안관 부관인 전남편 로베르토를 사살한 혐의로 수감 중인 루신더의 의뢰에 주목하고, 할러 역시 무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문제는 피살자가 보안관 부관이라는 점. 예상대로 숱한 난관이 닥쳐오는 가운데, 할러와 보슈는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하곤 소송을 제기합니다.


 

서평에 앞서 ‘해리 보슈 시리즈’의 팬들을 위해 이 작품의 ‘이력’을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한국에 출간된 ‘해리 보슈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버닝 룸’인데 미국에선 2014년에 출간됐습니다. ‘회생의 갈림길’은 ‘미키 할러 시리즈’ 7편으로 보슈가 거의 공동주연으로 등장하는데 미국에서 2023년에 출간됐습니다. 말하자면 보슈의 한국 팬들은 무려 9년이란 시간을 건너뛰게 된 셈입니다. 물론 ‘미키 할러 시리즈’ 6편인 ‘변론의 법칙’(2020년)에도 보슈가 잠깐 얼굴을 내비치긴 했으니 ‘9년의 공백’은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9년 사이에 미국에서 ‘해리 보슈 시리즈’가 7편이나 출간됐으니, 보슈의 팬이라면 그 작품들이 먼저 한국에 출간되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동안 보슈는 경찰에서 은퇴한 뒤 골수암에 걸렸고, 르네 발라드라는 새 주인공과 여러 번 협업을 거쳤으며, 17살이던 보슈의 딸 매디는 어느새 LA경찰이 돼있습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을 읽지 못한 채 이젠 확연히 노년기에 접어든 보슈를 접하려니 마음이 많이 심란했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할러의 판매량이 더 높아서 벌어진 일인 듯하지만, 부디 다음 번 마이클 코넬리의 한국 출간작은 ‘해리 보슈 시리즈’ 18편인 ‘The Crossing’이기를 기대해봅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연대기가 궁금한 분은 https://blog.naver.com/memories226/222086403503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회생의 갈림길’은 한때 지독한 속물이자 악마의 변호사로 불렸던 미키 할러가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재소자들의 무죄 입증을 위해 분투하는 ‘정의의 변호사’로 변신한 모습을 그립니다. 원제인 ‘Resurrection Walk’는 본문에서 여러 차례 ‘부활의 발걸음’으로 번역됐는데, 이는 할러의 변론 덕분에 새 삶을 얻은 자들이 교도소를 벗어나는 모습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는 속물적인 변호사가 아니라 억울한 자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역할을 자처한 할러 본인의 ‘환골탈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의 변신에 큰 힘을 보태주는 인물이 바로 이복형 해리 보슈입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이야기 구조는 간결합니다. 전남편을 사살한 혐의로 5년간 복역해온 루신더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할러와 보슈는 물론 ‘미키 할러 어벤저스’들이 갖은 위협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인신보호 구제청구소송(한국의 재심청구와 비슷합니다)을 통해 끝내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안 그래도 성공사례가 드문, 변호사로서는 거의 모험에 가까운 도전인데, 사건 피해자가 법집행자(보안관 부관)라는 점과 5년 전 루신더가 스스로 혐의를 인정하고 형량을 거래한 사실 때문에 할러와 보슈의 여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할러는 법정에서 자신만의 화려한 쇼를 연출합니다. 강약을 조절해가며 상대를 도발하기도 하고, 속으론 쾌재를 부르면서도 가짜 표정으로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계획대로 재판이 진행되도록 법정에서 위험천만한 난동을 부리기도 합니다. 여느 법정미스터리에선 맛볼 수 없는 이 쾌감이야말로 ‘미키 할러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미덕을 보좌하는 것은 보슈를 비롯한 ‘미키 할러 어벤저스’들의 법정 밖에서의 분투인데, 이번에는 보슈를 제외하곤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 인물이 별로 없어서 조금 심심하게 읽힌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미키 할러 시리즈’가 계속 인신보호 구제청구소송에 주력할지 아니면 또 다른 방향으로 선회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 됐든 할러와 보슈의 협업이 계속 이어질 거란 점만큼은 확실해 보여서 이전까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재미를 줄 것 같습니다. 이복형제이자 ‘변호사&퇴직경찰 콤비’인 두 사람이 다음엔 어떤 사건으로 법정에 나서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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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꽃
로카고엔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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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서평을 쓸지 말지를 한참 고민한 작품입니다. 기이한 설정에 탐미적이고 파괴적인 서사를 품은 독특한 호러물임에 틀림없지만, 수록된 일곱 편의 연작 단편 가운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작품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호러는 이야기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장르이기에 논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이해하려’ 애쓰는 것 자체가 독자로서 부적절한 자세일 수도 있지만, ‘죽음에 이르는 꽃’은 기시 유스케와 미쓰다 신조를 비롯한 그 어느 호러작가의 작품과도 결이 다른, 그래서 그 안에 담긴 인물과 사건과 엔딩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 읽고도 좀처럼 어떤 맛인지 알아 챌 수 없는 작품이라 읽는 중에도, 다 읽은 후에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던 겁니다.

 

일곱 편의 연작 단편의 화자는 모두 바바 집안사람들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바바 집안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상처의 1차적인 원인은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아버지 바바 요시유키의 만행이었지만, 설령 그가 없었다 해도 바바 집안은 신의 저주라도 받은 양 세상의 모든 불운과 불행과 악의 기운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 운명을 더욱 가혹하게 만드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매번 다른 모습으로 바바 집안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구네 니코라이라는 신비한 남자입니다. 높은 콧날, 여성적인 얇은 턱, 짐승의 이빨처럼 보이는 뾰족한 송곳니와 함께 복잡한 색의 홍채를 지닌 그는 남자가 봐도 심장이 두근댈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은 외모를 유지하는 그는 운송업자, 정신상담사, 영어교사, 미술상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바바 집안사람들에게 다가갑니다. 구네는 (아주 드물게) 고난에 빠진 약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도 하지만, 그를 만난 바바 집안사람들 대부분은 파국에 가까운 엔딩을 맞이합니다. 기회를 주되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가차 없이 벌을 내리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인간의 악마적 근성을 도발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죽음에 이르는 꽃’은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던 바바 집안사람들이 ‘각자의 구네 니코라이’와의 만남으로 인해 더욱 더 지독한 파국을 겪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제 ‘이해력의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구네 니코라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너무나도 모호하고 추상적인 데 있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들 역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라는 하소연을 거듭합니다. 문제는 그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과 행동이 이야기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장면들에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니 이어지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도무지 들어오질 않습니다. 난삽하지만 왠지 시선이 끌린다, 추악하고 파괴적이지만 왠지 매혹적이다, 비현실적이지만 왠지 현실감이 강렬하다 등 다른 호러물에선 맛보기 힘든 기괴함과 특별함을 품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론 (호러물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어불성설이지만) 각 수록작마다 ‘해설’이 실렸다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 평점은 어떻게 줘야 할지 무척 난감했는데, 막상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그야말로 횡설수설일 뿐인 서평입니다. 야박한 평점은 오로지 저의 이해력 부족 탓이니 객관성이라곤 조금도 없다고 보면 됩니다.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보니 “깔끔하고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는 호평이 대부분이어서 더욱 난감해졌는데(어떤 분은 난이도가 쉬운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스포일러를 담아서라도 좋으니 ‘해설’에 가까운 서평을 올려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 서평을 통해 제 이해력이 조금이라도 향상된다면 그때쯤 다시 한 번 ‘죽음에 이르는 꽃’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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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비들
데니스 루헤인 지음, 서효령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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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락한 이유’ 이후 6년 만에 한국에 소개되는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입니다.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1970년대가 배경인 이야기라 ‘커글린 가문 3부작’에서 맛봤던 데니스 루헤인 특유의 시대물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무척 컸습니다.

‘작은 자비들’은 197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파 서사와 딸의 복수를 위해 지옥행을 마다하지 않은 한 어머니의 투쟁기가 절묘하게 섞여있어서 영화에 비유한다면 당시의 혼란상을 생생하게 그린 다큐멘터리와 롤러코스터 같은 액션 스릴러가 한 화면에 절반씩 담긴 듯한 특별한 느낌을 줍니다.

 

인종차별 서사의 출발점은 버싱(Busing)입니다. 1974년 보스턴 법원은 인종차별문제의 해소책이라며 각각 백인과 흑인학생으로만 이뤄진 두 공립고등학교에게 “상당수의 학생을 맞바꿔 버스(Bus)로 통학시키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강제 전학을 통해 두 인종의 학생들을 섞어놓기만 하면 인종차별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거라는 안이하고도 무책임한 이 판결 때문에 가난한 백인들의 도시 사우디(사우스 보스턴의 애칭)는 대혼란에 빠지고 이내 격분에 사로잡힙니다.

 

이런 와중에 42살의 메리 패트는 조만간 버싱으로 인해 흑인학생들과 한 반에서 수업을 듣게 될 17살 딸 줄스 때문에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런데 전날 밤 친구들과 외출한 줄스가 아무 연락도 없이 실종되고, 하필 같은 시간대에 흑인청년 한 명이 기차역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자 메리 패트는 두 사건이 연관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패닉에 빠집니다. 함께 외출했던 딸의 친구들은 물론 사우디를 장악하고 있는 마피아까지 찾아가 줄스의 행방을 묻던 메리 패트는 결국 믿고 싶지 않은 사실과 마주하게 되고, 그때부터 지옥행을 각오한 복수극을 준비합니다. 문제는 ‘딸을 위한 복수극’이 곧 흑인청년의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는 행위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안 그래도 버싱으로 인해 흑인들을 향한 혐오감이 극에 달한 사우디의 백인들의 눈에 메리 패트는 ‘흑인을 위해 싸우는 백인여성’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자비들’은 지금까지 읽은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모두 1차원적으로 보이게 만들 만큼 묵직한 작품입니다. 가난한 백인들의 도시 사우디에서 벌어진 흑인청년 살인사건 미스터리와 한 어머니가 벌이는 무자비한 복수 스릴러를 그리면서도 이분법과는 거리가 먼 다층적인 인종차별 서사를 저변에 깔아놓아서 흔히 ‘선악의 대결’로만 포장되곤 했던 유사한 작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감과 깊이를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인종차별이 단지 흑백 간에 벌어지는 문제만은 아니란 점(가난한 백인 VS 상류층 백인), 또 인종차별에 대한 신념이란 게 실은 그때그때 개인의 처지에 따라 갈대처럼 흔들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인종차별을 이용하여 물질적 혹은 정치적 이익을 보는 세력이 존재했다는 점 등 지금껏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인종차별의 이면을 집요하게 그린 대목들입니다.

 

주인공 메리 패트는 이 대목들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인종차별에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던 그녀는 버싱과 흑인청년의 죽음과 딸 줄스의 실종을 겪는 동안 거듭 자신의 태도를 바꿉니다. 그것은 신념이 약해서도 아니고, 생각이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줄스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인종차별에 관한 한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메리 패트의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줄스가 정글과도 같은 사우디에서 무탈하게 성장하기를 바랐던 탓에 자기도 모르게 ‘백인의 우월감’을 주입했던 일에 대해 메리 패트는 처절할 정도로 자책합니다. 그런 심정에서 총과 무기를 집어 들고 복수에 나서는 그녀를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은 착잡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메리 패트의 복수극은 조용하지만 잔혹하게 이뤄집니다. 납치, 협박, 폭행, 감금 등 그녀가 해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합니다. 하지만 그 복수극은 조금도 짜릿하거나 통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수가 거듭될수록 메리 패트의 가슴속에 무거운 누름돌이 연이어 쌓이는 듯 느껴져서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배가될 뿐입니다.

 

‘작은 자비들’은 쉽고 편하게 읽히는 스릴러는 절대 아닙니다. 따로 떼어놓아도 각각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는 두 개의 서사가 절묘하게 섞여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각의 서사가 지닌 무게감과 비극성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작인 ‘우리가 추락한 이유’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낀 데니스 루헤인의 팬이라면 ‘작은 자비들’을 통해 그때의 아쉬움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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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생님을 죽였다
사쿠라이 미나 지음, 박선영 옮김 / 시옷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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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인 사이카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인 오쿠사와는 준수한 외모와 젊은 교사 특유의 친근감 덕분에 학생들에게서 호감과 지지를 받아왔지만, 여학생과의 부적절한 행위가 담긴 음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온 이후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교내 창고에서 근신하던 오쿠사와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직후 전교생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옥상에서 투신자살합니다. 하지만 그가 담임을 맡았던 반의 칠판에 누군가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라는 글을 남긴 탓에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학교 전체가 큰 충격에 빠집니다.


 

2021년에 읽은 사쿠라이 미나의 ‘죽인 남편이 돌아왔습니다’에 그리 좋은 평점을 주지 못해서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학교 미스터리의 유혹에 넘어가 집어든 작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 사쿠라이 미나는 저와는 잘 안 맞는 작가였고, 미스터리 역시 지나치게 단선적인데다 나이브하게 풀려서 애초 그리 높지 않았던 기대감조차 충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인기교사 오쿠사와의 충격적인 자살 장면을 그린 프롤로그 이후 그와 자주 접촉했던 네 명의 학생이 한 챕터씩 화자를 맡아 최근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오쿠사와를 못 마땅히 여겼으며 출처불명의 음란 동영상을 다운받아 인터넷에 유포한 문제아 도베, 대학교 추천입학과 관련하여 오쿠사와가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고 여기며 원망해온 모범생 구로다, 오쿠사와를 ‘남자’로 사랑했지만 늘 거절당했던 모모세,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입시 관련 특혜를 받은 탓에 오쿠사와에게 그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봤던 부잣집 아들 고미나토가 그들입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이어 오쿠사와가 화자인 마지막 챕터에선 그의 고교시절부터 옥상에서 투신한 순간까지의 삶이 그려지면서 미스터리의 진상이 공개됩니다.

 

칠판에 적힌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는 의문의 문구 때문에 미스터리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오쿠사와의 죽음은 과연 자살일까, 타살일까? 타살이라면 의문의 문구를 남긴 학생이 범인일까? 자살이라 하더라도 과연 오쿠사와를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끔 만든 ‘간접적인 살인범’은 네 명의 화자 가운데 누구일까?

네 명 중 적어도 세 명은 오쿠사와의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 또는 책임이 있어 보입니다. 음란 동영상 자체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지만, 화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동영상 외에 분명 다른 원인이 숨어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애초 동영상을 찍은 게 누구인지, 그걸 유포하여 어떤 이득을 얻으려 한 것인지가 독자의 궁금증을 계속 증폭시킵니다.

 

전작인 ‘죽인 남편이 돌아왔습니다’에 야박한 평점을 줬던 이유는 ‘독자와의 게임을 불공정하게 만든 작가의 반칙’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진실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맥스를 위해 입을 다물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의 경우 반칙까진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발단이 된 오쿠사와의 자살 자체가 설득력도 없고 공감을 얻기도 어려웠으며, 반전은 진작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단순한데다 그것이 과연 그를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할 만큼 파괴적이었는가, 라는 의문만 남겨서 역시 야박한 평점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느낌은 ‘약간의 억지가 섞인 계몽극’이었는데, 다른 독자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읽었을지 나름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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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의 가족
가와세 나나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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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하고 난폭한 남존여비 추종자 60대 하세베, 겉멋과 탐욕에 찌든 70대 노파 지요코, 속을 알 수 없는 시건방진 16살 소년 리쿠토,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고 희롱한 뒤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20대 여성 나쓰미. 인터넷을 통해 동반자살을 도모한 네 사람은 실행 당일 심야의 깊은 산속에서 뜻밖의 상황에 처합니다. 한 여자가 갓난아기를 유기하고 도망치는 모습을 목격한 것입니다. 죽기 위해 모인 자들이 갓난아기를 살려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문제는 SNS에 올라온 영상 하나 때문에 네 사람이 갑자기 유괴범으로 몰렸다는 점입니다. 이어 각자의 개인정보가 무차별로 공개되고 마녀사냥과도 같은 추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네 사람은 아기를 유기한 범인을 직접 찾아내기로 합니다.


 

꽤 오래 전 부산영화제에서 ‘자살관광버스’라는 일본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동반자살을 모의한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하며 인생의 마지막 즐거움을 누린 뒤 사고로 위장하여 세상을 떠나려 했지만 우여곡절과 반전 끝에 기막힌 엔딩을 맞이하는 이야기입니다. ‘4일간의 가족’의 등장인물 캐릭터와 대략의 줄거리만 보곤 ‘자살관광버스’ 초반부와 비슷한 유쾌한 스타일의 미스터리 혹은 감동 위주의 휴먼 드라마가 아닐까, 막연히 추측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읽는 내내 한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었고, 아기를 구하고 누명을 벗기 위한 네 사람의 분투는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로드무비 스타일 미스터리 스릴러였으며, 그들이 밝혀낸 사건의 진상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눈을 돌리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서사 역시 조금도 억지스럽지 않아서 여러 차례 독자의 눈가를 뜨끈하게 만들곤 합니다.

 

이야기는 ‘자살관광버스’처럼 다소 소란하게 시작됩니다. 동반자살을 위해 모였지만 네 사람은 서로를 공격하고 모욕하고 비난합니다. “그딴 일로 왜 죽어?”라는 훈계까지 늘어놓는 웃지 못 할 장면들이 연출됩니다. 그러다가 한 여자가 살해 목적으로 갓난아기를 유기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이들의 관계는 급반전됩니다. 정의감이라고 할 수 없는 그 어떤 감정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잠시 보류하고 ‘갓난아기 구하기’에 뜻을 모은 것입니다.

이 대목까지만 보면 그다지 새롭지도 않고 기대감을 유발하지도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올린 SNS 영상 하나 때문에 졸지에 유괴범이 된 네 사람이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신상이 털리고 흉악한 범죄자로 몰리자 말 그대로 죽을 각오로 ‘갓난아기 유기범 찾기’에 나서면서 이야기는 독자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롤러코스터처럼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상황에서 개인정보가 전부 노출돼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게 된 데다 손에 쥔 단서라곤 아기를 유기하던 여자의 흐릿한 사진 하나가 전부인 네 사람은 숱한 위기를 맞이합니다. 당연히 의견 충돌도 자주 일어나고, 포기하자는 말도 수시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네 사람을 한데 묶는 건 그들이 사부로라는 이름까지 지어준 갓난아기입니다. 애초 못 본 척 하고 계획대로 세상을 떠났으면 그만이었겠지만, 깊은 산속에 버려졌던 사부로가 자신들의 마음 속 뭔가를 툭 건드린 그 순간부터 네 사람의 인생은 뜻밖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고, 이제 단순히 사부로를 살렸다는 안도감을 넘어 사부로를 죽이려 했던 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분노까지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다시 한 번 살아보겠다는 간절한 의지를 품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네 사람은 사부로를 구한다는 목적으로 매 순간 스스로를 치유했다. 지금까지 찾지 못한 다시 살 기회를 탐욕스럽게 잡으려 하는 것이다.” (p273)

 

고백하자면 읽기도 전에 다소 뻔한 전개가 예상된 나머지 초반부만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을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4일간의 가족’은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 것은 물론 미스터리 스릴러와 휴먼 드라마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리 새롭지 않은 설정에서 출발했지만 매번 독자의 예상을 깨부수며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뽑아낸 필력도 눈길을 끌었는데, 덕분에 가와세 나나오의 다른 작품도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4일간의 가족’ 외에 한국에 소개된 작품은 ‘이사부로 양복점’이 유일한데, 기회가 된다면 그녀의 전공인 미스터리를 통해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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