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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생님을 죽였다
사쿠라이 미나 지음, 박선영 옮김 / 시옷북스 / 2024년 9월
평점 :
모교인 사이카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인 오쿠사와는 준수한 외모와 젊은 교사 특유의 친근감 덕분에 학생들에게서 호감과 지지를 받아왔지만, 여학생과의 부적절한 행위가 담긴 음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온 이후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교내 창고에서 근신하던 오쿠사와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직후 전교생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옥상에서 투신자살합니다. 하지만 그가 담임을 맡았던 반의 칠판에 누군가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라는 글을 남긴 탓에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학교 전체가 큰 충격에 빠집니다.

2021년에 읽은 사쿠라이 미나의 ‘죽인 남편이 돌아왔습니다’에 그리 좋은 평점을 주지 못해서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학교 미스터리의 유혹에 넘어가 집어든 작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 사쿠라이 미나는 저와는 잘 안 맞는 작가였고, 미스터리 역시 지나치게 단선적인데다 나이브하게 풀려서 애초 그리 높지 않았던 기대감조차 충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인기교사 오쿠사와의 충격적인 자살 장면을 그린 프롤로그 이후 그와 자주 접촉했던 네 명의 학생이 한 챕터씩 화자를 맡아 최근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오쿠사와를 못 마땅히 여겼으며 출처불명의 음란 동영상을 다운받아 인터넷에 유포한 문제아 도베, 대학교 추천입학과 관련하여 오쿠사와가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고 여기며 원망해온 모범생 구로다, 오쿠사와를 ‘남자’로 사랑했지만 늘 거절당했던 모모세,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입시 관련 특혜를 받은 탓에 오쿠사와에게 그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봤던 부잣집 아들 고미나토가 그들입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이어 오쿠사와가 화자인 마지막 챕터에선 그의 고교시절부터 옥상에서 투신한 순간까지의 삶이 그려지면서 미스터리의 진상이 공개됩니다.
칠판에 적힌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는 의문의 문구 때문에 미스터리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오쿠사와의 죽음은 과연 자살일까, 타살일까? 타살이라면 의문의 문구를 남긴 학생이 범인일까? 자살이라 하더라도 과연 오쿠사와를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끔 만든 ‘간접적인 살인범’은 네 명의 화자 가운데 누구일까?
네 명 중 적어도 세 명은 오쿠사와의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 또는 책임이 있어 보입니다. 음란 동영상 자체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지만, 화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동영상 외에 분명 다른 원인이 숨어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애초 동영상을 찍은 게 누구인지, 그걸 유포하여 어떤 이득을 얻으려 한 것인지가 독자의 궁금증을 계속 증폭시킵니다.
전작인 ‘죽인 남편이 돌아왔습니다’에 야박한 평점을 줬던 이유는 ‘독자와의 게임을 불공정하게 만든 작가의 반칙’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진실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맥스를 위해 입을 다물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의 경우 반칙까진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발단이 된 오쿠사와의 자살 자체가 설득력도 없고 공감을 얻기도 어려웠으며, 반전은 진작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단순한데다 그것이 과연 그를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할 만큼 파괴적이었는가, 라는 의문만 남겨서 역시 야박한 평점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느낌은 ‘약간의 억지가 섞인 계몽극’이었는데, 다른 독자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읽었을지 나름 궁금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