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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꽃
로카고엔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평점 :
고백하자면, 서평을 쓸지 말지를 한참 고민한 작품입니다. 기이한 설정에 탐미적이고 파괴적인 서사를 품은 독특한 호러물임에 틀림없지만, 수록된 일곱 편의 연작 단편 가운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작품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호러는 이야기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장르이기에 논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이해하려’ 애쓰는 것 자체가 독자로서 부적절한 자세일 수도 있지만, ‘죽음에 이르는 꽃’은 기시 유스케와 미쓰다 신조를 비롯한 그 어느 호러작가의 작품과도 결이 다른, 그래서 그 안에 담긴 인물과 사건과 엔딩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 읽고도 좀처럼 어떤 맛인지 알아 챌 수 없는 작품이라 읽는 중에도, 다 읽은 후에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던 겁니다.
일곱 편의 연작 단편의 화자는 모두 바바 집안사람들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바바 집안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상처의 1차적인 원인은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아버지 바바 요시유키의 만행이었지만, 설령 그가 없었다 해도 바바 집안은 신의 저주라도 받은 양 세상의 모든 불운과 불행과 악의 기운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 운명을 더욱 가혹하게 만드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매번 다른 모습으로 바바 집안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구네 니코라이라는 신비한 남자입니다. 높은 콧날, 여성적인 얇은 턱, 짐승의 이빨처럼 보이는 뾰족한 송곳니와 함께 복잡한 색의 홍채를 지닌 그는 남자가 봐도 심장이 두근댈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은 외모를 유지하는 그는 운송업자, 정신상담사, 영어교사, 미술상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바바 집안사람들에게 다가갑니다. 구네는 (아주 드물게) 고난에 빠진 약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도 하지만, 그를 만난 바바 집안사람들 대부분은 파국에 가까운 엔딩을 맞이합니다. 기회를 주되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가차 없이 벌을 내리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인간의 악마적 근성을 도발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죽음에 이르는 꽃’은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던 바바 집안사람들이 ‘각자의 구네 니코라이’와의 만남으로 인해 더욱 더 지독한 파국을 겪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제 ‘이해력의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구네 니코라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너무나도 모호하고 추상적인 데 있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들 역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라는 하소연을 거듭합니다. 문제는 그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과 행동이 이야기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장면들에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니 이어지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도무지 들어오질 않습니다. 난삽하지만 왠지 시선이 끌린다, 추악하고 파괴적이지만 왠지 매혹적이다, 비현실적이지만 왠지 현실감이 강렬하다 등 다른 호러물에선 맛보기 힘든 기괴함과 특별함을 품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론 (호러물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어불성설이지만) 각 수록작마다 ‘해설’이 실렸다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 평점은 어떻게 줘야 할지 무척 난감했는데, 막상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그야말로 횡설수설일 뿐인 서평입니다. 야박한 평점은 오로지 저의 이해력 부족 탓이니 객관성이라곤 조금도 없다고 보면 됩니다.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보니 “깔끔하고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는 호평이 대부분이어서 더욱 난감해졌는데(어떤 분은 난이도가 쉬운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스포일러를 담아서라도 좋으니 ‘해설’에 가까운 서평을 올려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 서평을 통해 제 이해력이 조금이라도 향상된다면 그때쯤 다시 한 번 ‘죽음에 이르는 꽃’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