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의 갈림길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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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자들의 무죄 변론을 잇달아 성공시킨 미키 할러는 전국의 재소자들로부터 빗발치듯 의뢰를 받습니다. 그 가운데 수임할 의뢰를 1차적으로 검토하는 건 그의 이복형인 해리 보슈입니다. 경찰 퇴직 후 골수암에 걸렸던 보슈는 지금은 할러의 비공식 조사관으로 일하는 중인데, 의뢰 편지를 보낸 재소자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한 뒤 무죄 가능성이 있는 케이스를 할러에게 추천하는 것입니다. 보슈는 보안관 부관인 전남편 로베르토를 사살한 혐의로 수감 중인 루신더의 의뢰에 주목하고, 할러 역시 무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문제는 피살자가 보안관 부관이라는 점. 예상대로 숱한 난관이 닥쳐오는 가운데, 할러와 보슈는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하곤 소송을 제기합니다.


 

서평에 앞서 해리 보슈 시리즈의 팬들을 위해 이 작품의 이력을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한국에 출간된 해리 보슈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버닝 룸인데 미국에선 2014년에 출간됐습니다. ‘회생의 갈림길미키 할러 시리즈’ 7편으로 보슈가 거의 공동주연으로 등장하는데 미국에서 2023년에 출간됐습니다. 말하자면 보슈의 한국 팬들은 무려 9년이란 시간을 건너뛰게 된 셈입니다. 물론 미키 할러 시리즈’ 6편인 변론의 법칙’(2020)에도 보슈가 잠깐 얼굴을 내비치긴 했으니 ‘9년의 공백은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9년 사이에 미국에서 해리 보슈 시리즈7편이나 출간됐으니, 보슈의 팬이라면 그 작품들이 먼저 한국에 출간되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동안 보슈는 경찰에서 은퇴한 뒤 골수암에 걸렸고, 르네 발라드라는 새 주인공과 여러 번 협업을 거쳤으며, 17살이던 보슈의 딸 매디는 어느새 LA경찰이 돼있습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을 읽지 못한 채 이젠 확연히 노년기에 접어든 보슈를 접하려니 마음이 많이 심란했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할러의 판매량이 더 높아서 벌어진 일인 듯하지만, 부디 다음 번 마이클 코넬리의 한국 출간작은 해리 보슈 시리즈’ 18편인 ‘The Crossing’이기를 기대해봅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연대기가 궁금한 분은 https://blog.naver.com/memories226/222086403503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회생의 갈림길은 한때 지독한 속물이자 악마의 변호사로 불렸던 미키 할러가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재소자들의 무죄 입증을 위해 분투하는 정의의 변호사로 변신한 모습을 그립니다. 원제인 ‘Resurrection Walk’는 본문에서 여러 차례 부활의 발걸음으로 번역됐는데, 이는 할러의 변론 덕분에 새 삶을 얻은 자들이 교도소를 벗어나는 모습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는 속물적인 변호사가 아니라 억울한 자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역할을 자처한 할러 본인의 환골탈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의 변신에 큰 힘을 보태주는 인물이 바로 이복형 해리 보슈입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이야기 구조는 간결합니다. 전남편을 사살한 혐의로 5년간 복역해온 루신더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할러와 보슈는 물론 미키 할러 어벤저스들이 갖은 위협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인신보호 구제청구소송(한국의 재심청구와 비슷합니다)을 통해 끝내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안 그래도 성공사례가 드문, 변호사로서는 거의 모험에 가까운 도전인데, 사건 피해자가 법집행자(보안관 부관)라는 점과 5년 전 루신더가 스스로 혐의를 인정하고 형량을 거래한 사실 때문에 할러와 보슈의 여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할러는 법정에서 자신만의 화려한 쇼를 연출합니다. 강약을 조절해가며 상대를 도발하기도 하고, 속으론 쾌재를 부르면서도 가짜 표정으로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계획대로 재판이 진행되도록 법정에서 위험천만한 난동을 부리기도 합니다. 여느 법정미스터리에선 맛볼 수 없는 이 쾌감이야말로 미키 할러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미덕을 보좌하는 것은 보슈를 비롯한 미키 할러 어벤저스들의 법정 밖에서의 분투인데, 이번에는 보슈를 제외하곤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 인물이 별로 없어서 조금 심심하게 읽힌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미키 할러 시리즈가 계속 인신보호 구제청구소송에 주력할지 아니면 또 다른 방향으로 선회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 됐든 할러와 보슈의 협업이 계속 이어질 거란 점만큼은 확실해 보여서 이전까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재미를 줄 것 같습니다. 이복형제이자 변호사&퇴직경찰 콤비인 두 사람이 다음엔 어떤 사건으로 법정에 나서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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