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탐정 ㅣ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LA 협곡에 위치한 엘비스 콜의 집에서 그의 연인 루시 셰니에의 아들 벤이 납치당한다.

베트남전에서의 작전 수행 중 저지른 잘못에 대한 복수라는 범인의 전화를 받은 엘비스는

자신 때문에 벤이 유괴되었다는 생각에 심한 자책감을 느낀다.

LA 경찰 청소년과에서 본격적인 수사가 개시되고,

벤의 친부인 리처드와 그가 데리고 온 전직 형사들이 수사의 통제권을 거머쥐려 하면서

엘비스는 점점 공식 수사에 참여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조 파이크와 함께 별도로 수사에 나선 엘비스는 집요한 추적 끝에 범인의 윤곽을 밝히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의 실체에 충격을 받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L.A 레퀴엠’(2017년 5월 출간)에 이은 ‘엘비스 콜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인 ‘L.A 레퀴엠’이 엘비스의 파트너인 조 파이크의 고통스런 성장기를 상세히 그렸다면,

‘마지막 탐정’은 엘비스의 불우한 유년기와 베트남전에서 얻은 심신의 깊은 상처,

그리고 모두의 놀림감이었던 엘비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 비극적인 가족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연인인 루시의 아들 벤은 엘비스가 친아들 이상의 애정을 쏟는 10살 소년입니다.

벤의 납치가 과거 자신의 베트남 참전 당시의 참화와 관련 있다는 걸 알게 된 엘비스는

자책감은 물론 연인 루시의 냉랭한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모든 정황을 조사해 봐도 베트남전 당시 참화의 당사자들은 모두 죽은 게 확실했고

당연히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벤을 납치했다는 범인의 협박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언제나 불친절한 LAPD는 물론 실종자수사대까지 엘비스의 개인적인 수사를 방해하는데

이에 더해 루시의 전 남편이자 벤의 친부인 리처드까지 수하들을 데리고 나타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모든 책임이 엘비스에게 있다고 우겨대는 탓에

엘비스는 이래저래 사면초가에 처한 채 조 파이크와 함께 외로운 싸움을 끌어갑니다.

 

번역하신 윤철희 님은 ‘L.A 레퀴엠’이 정적인 서사였다면

‘마지막 탐정’은 무척 역동적이라고 설명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반대의 느낌입니다.

벤이 납치된 현장에서 미량의 증거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엘비스의 모습이라든가

과거 베트남전에 대한 회상, 자신에게 엘비스라는 이름을 지어주곤 사라진 어머니 등

대체로 감성적인 서사가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액션스릴러로서의 미덕이 부족한 건 아닙니다.

엘비스와 조 파이크는 수시로 독자의 아드레날린을 폭발적으로 분비하게 만들곤 하는데,

그런 장면이 기대만큼 자주 등장하진 않더라도

일단 나왔다 하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후련함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압도적인 쾌감? 짜릿한 전율?

범인들과 대치하는 마지막 시퀀스는 그런 쾌감과 전율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비 유부남(?)인 엘비스에게 대시하는 매력적인 여형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전작 ‘L.A 레퀴엠’의 경우 TV수사물 주인공의 모델이기도 했던 사만다 돌런이 있었다면

이번엔 폭발물 전문가이자 청소년과 형사인 캐럴 스타키가 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스타키는 로버트 크레이스의 또다른 작품인 ‘데몰리션 엔젤’의 여주인공이기도 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후 시리즈에서도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 만점의 여형사였습니다.

또, ‘L.A 레퀴엠’에 이어 이번에도 카메오로 등장한 마이클 코넬리의 히어로 해리 보슈는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로 그의 팬들에게 가슴 설레는 경험을 선물해줬습니다.

 

아무래도 메인 스토리가 엘비스 콜의 자책감, 자괴감, 상심 등을 다루고 있어서

대체로 가라앉은 분위기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엘비스의 매력과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됐고,

조 파이크의 넘사벽에 가까운 철벽 캐릭터 역시 그의 선글래스 만큼 강렬해서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액션스릴러 영화를 직접 본 듯한 유쾌한 책읽기가 됐습니다.

못 읽은 시리즈 전작들도 궁금해지고, 이후에 출간될 후속작도 기대가 되고,

특히 엘비스의 조력자였던 캐럴 스타키가 주인공인 ‘데몰리션 엔젤’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사이다 같은 시원함과 짜릿함을 맛보려는 독자에겐 더없이 좋은 추천작이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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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 :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ㅣ 레오나 시리즈 The Leona Series
제니 롱느뷔 지음, 박여명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부제처럼 이 작품의 주인공인 강력범죄 수사관 레오나는

자신의 목적인 ‘자유로운 삶’을 위해 극단적 수단인 ‘완전범죄’를 저지르기로 결심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범죄자들을 모아 특별과외(?)까지 시키며 완전범죄를 세밀하게 기획하면서도

동시에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폭탄테러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다는 점입니다.

 

전작인 ‘레오나 : 주사위는 던져졌다’에서 이미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던 레오나는

이번에는 극심한 정신적 피로와 딸 양육 문제 때문에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등장합니다.

그 와중에 범죄자들과 함께 어마어마한 한탕을 기획하는가 하면

당연히 비밀경찰이 맡아야 할 폭탄테러범 단독수사까지 떠맡게 됩니다.

그야말로 심신이 엉망인 상태에서 혼자서 세 명의 인생을 사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수면부족 때문에 종일 몽롱함에서 못 벗어나는 레오나에게 전염된 듯

저 역시 어딘가 나사 하나가 풀린 상태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 같았습니다.

 

대부분 시리즈가 전작을 읽지 않고도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별 문제가 없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전작을 읽어야 제 맛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레오나라는 주인공의 전사(前史)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녀가 왜 무모한 범죄를 통해서라도 자유로운 삶을 쟁취하려는 것인지 공감하기 힘들고,

그녀에게 가장 큰 위협인 아르망이라는 인물과의 악연도 납득하기 힘들고,

딸 베아트리세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작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좀더 진한 맛을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쉬움이라면, 별개로 전개되던 두 개의 이야기(폭탄테러범 조사와 완전범죄 설계)가

후반부에 이르러 접점을 갖긴 하는데 그 대목이 좀 석연치 않다는 점입니다.

또, 분량으로만 보면 거의 두 이야기가 절반씩을 나눠 갖고 있는데,

폭탄테러범 이야기는 확장성이 부족해서 그다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완전범죄 설계는 대부분 ‘경찰에게 잡히지 않는 방법에 관한 특강’처럼 포장돼서

긴박감이라든가 스릴러로서의 미덕이 좀 부족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 면에서만 보면 1편에 비해 여러 가지로 아쉬운 느낌이었습니다.

 

3부작으로 기획된 작품이라 예상대로 열린 결말로 이야기가 마무리됐는데,

심신이 엉망이 된 레오나가 최종편에서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해집니다.

이왕이면 최종편은 좀더 오락적 요소와 스릴러의 미덕이 가미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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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기계 - 신이 검을 하사한 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금색기계’는 환상의 존재와 인간이 공존하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범상치 않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의 신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손을 가진 소녀와 타인의 살의를 볼 수 있는 소년,

충격적인 비밀을 안고 있는 유능한 도신(에도시대의 경찰),

그리고 신으로 칭송받는 불가사의한 존재 ‘금색님’.

문명이 꽃피는 평화로운 시대이면서 한편으론 신과 요괴들이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에도시대.

소설은 수많은 작가들을 매혹시킨 이러한 시대의 매력을 잘 담아낸 소설임과 동시에,

개성적인 등장인물과 흥미로운 사건들로 촘촘하게 짜인 훌륭한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개인적으로 소설이나 영화 등 모든 장르를 막론하고 역사극과 시대극을 좋아하다 보니

쓰네카와 고타로의 ‘금색기계’ 출간소식에 귀가 기울여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미야베 월드 시리즈’나 미야기 아야코의 ‘화소도중’ 등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는 언제나 흠뻑 빠져들 만큼 매력적이었고

마치 옛날이야기에 판타지가 가미된 듯한 서사는 그야말로 별미 중의 별미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금색기계’는 오랜만에 만난 에도시대 배경의 맛깔난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인물의 관점에서 전개됩니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손을 가진 소녀 하루카,

타인의 살의와 거짓말을 꿰뚫어볼 수 있는 소년 구마고로,

그리고 온몸이 금색으로 뒤덮인 신비한 존재 ‘금색님’이 그들입니다.

 

1747년을 현재 시점으로 하고 있으며 1547년부터 무려 200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이 긴 시간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금색님’입니다.

그리고 1747년 현재 성인이 된 하루카와 구마고로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면서

그들이 소년, 소녀시절부터 겪어온 파란만장한 사연들이 교차되며 전개됩니다.

그 사연들 곳곳에 ‘금색님’이 연루되곤 하는데,

분명 만화적 상상력이 연상될 정도로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정교한 설계 덕분에 조금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감정적으로 몇 번이나 격해지곤 했습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신의 조화야.”라는 극중 인물의 인상적인 대사대로

하루카와 구마고로와 ‘금색님’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겪은 일들은

너무나도 기구하고 운명적이라서 정말 신의 조화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익숙한 ‘옛날이야기 서사’에 만화 같은 판타지가 뒤섞인 독특한 작품이라

읽은 독자 사이에도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고, 읽기 전부터 편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미야베 월드’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그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라면

조금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는 작품인 것도 사실입니다.

분명 미스터리 서사가 깔려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도시대, 판타지, 파란만장한 운명 등의 코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저의 호평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쓰네카와 고타로의 작품 중 ‘야시’는 제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지 꽤 오래 됐습니다.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조만간 먼지구덩이에서 구해줘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야시’ 외에도 검색해보니 (대부분 품절 또는 절판 상태지만) 모두 5권이 출간됐더군요.

“환상적인 세계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 걸 보면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풍의 서사를 다루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중고서점을 통해서라도 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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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랑한 소년 ㅣ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천재적인 프로파일러 슈나이더와 악연으로 엮였던 자들이 연이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피해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굴욕적이고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는데, 그들의 사체에는 숫자 또는 알파벳으로 보이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수법은 5년 전 슈나이더가 체포한 희대의 연쇄살인마 피트 판 론이 ‘애용’하던 것인데, 문제는 피트는 현재 정신이상 범법자들을 가둬놓은 최고보안감옥에 있어서 범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유럽 전역을 오가며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을 찾기 위해 슈나이더는 파트너 자비네와 함께 동분서주하지만 좀처럼 단서는 잡히지 않고 희생자들과 슈나이더 사이의 연관성만 재차 확인될 뿐입니다. 자비네가 희생자 몸에 새겨진 메시지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그로 인해 범인의 윤곽과 범행동기 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괴팍함, 상대가 누구든 자기 위주로만 대화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마리화나를 입에 달고 살며 범인의 정신세계에 침잠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이함, 그리고 거의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결벽증과 다름없는 완벽주의. 하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기어이 진실을 찾아내는 승률 100%의 프로파일러. 독일 비스바덴 연방범죄수사국의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의 간략한 이력입니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슈나이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앞선 두 작품에 비해 슈나이더의 괴팍함과 무례함과 기이함, 그리고 완벽주의가 몇 배는 더 거칠고 고통스럽고 잔혹하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슈나이더는 예전보다 더 마리화나를 많이 피우고 더 많은 무례한 언행을 저지르는가 하면, 파트너인 자비네에게도 사건에 관한 많은 정보를 감추려고 합니다. 물론 그 덕분에 자학에 가까운 채찍질과 심신의 고통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범인은 왜 슈나이더와 악연으로 엮인 자들을 골라 치욕적인 죽음을 맛보이는가? 범인의 목적은 슈나이더를 위한 복수인가? 슈나이더를 향한 복수인가? 슈나이더는 왜 파트너인 자비네에게조차 각 사건들의 연관성은 물론 5년 전 직접 체포한 연쇄살인마 피트 판 론에 대해서도 함구하는 것일까?

이런 답답함은 중반부 이후 슈나이더가 자비네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 전까지 내내 독자들에게도 똑같은 중량의 의문과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 충격적인 고백은 앞선 두 편의 시리즈를 모두 읽은 독자에게는, 그래서 나름 슈나이더를 안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겐 더더욱 믿기지 않는 내용들인데, 이 작품의 가장 큰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손톱만큼의 언급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설정으로 인해 슈나이더는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한 줄까지 자신을 향해 폭주하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유럽 스타일의 잔혹한 범죄를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무척 재미있게 읽힐 작품입니다. ‘슈나이더 시리즈’는 물론 ‘발터 풀라스키 시리즈’에서도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잔혹한 수법을 등장시키곤 하는데 이 작품은 거의 그 분야의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또, 자폐적이고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능력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슈나이더의 끝도 없이 펼쳐지는 독설과 상상력에 매혹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의 모난 곳과 텅 빈 곳을 빈틈없이 채워주는 자비네의 매력도 일품이긴 합니다.

 

다만,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던 범인의 정체와 범행동기, 범행수법은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웠던 대목입니다. 간혹 유럽 스릴러 가운데 범행동기가 무척 모호하거나 심리적 이상에 근거하거나 또는 신화나 전설 등 추상적인 지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극단적이진 않아도 그런 모호함과 추상성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후반부에 범인의 심리가 적극 묘사되긴 하지만 설득력이 좀 부족해 보였습니다. 범행수법 역시 설정을 위한 설정 또는 과도하게 상징성을 부각시킨다는 느낌? 아니면, 속이 거북해질 정도의 잔혹한 묘사를 변명하기 위해 설정된 느낌? 그렇게 느껴진 대목들이 훨씬 더 많아 보였습니다.

 

안드레아스 그루버가 탁월한 유럽 스타일 스릴러 작가인 건 분명하지만, 그가 좀더 현실적인 범인, 현실적인 동기, 현실적인 수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훨씬 더 큰 공감을 얻어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슈나이더 시리즈’든 ‘발터 풀라스키 시리즈’든 신간이 나온다면 허겁지겁 찾아 읽겠지만 다음에는 좀더 현실적인 오싹함을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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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ㅣ 미드나잇 스릴러
로저먼드 럽튼 지음, 윤태이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출산을 불과 3주 남겨둔 동생 테스가 갑자기 실종되자

뉴욕에 살던 언니 비어트리스는 급히 런던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테스는 곧 더러운 공원 화장실에서 사체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여러 정황을 들며 자살로 결론짓지만

비어트리스는 경찰, 검시관, 정신과 의사 등의 소견에 반박하며

스스로 테스의 죽음의 진실을 찾기로 결김하곤,

뉴욕의 안정된 직장마저 포기한 채 런던에서의 지난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 ● ●

 

형식과 내용 모두 무척 특이한 작품입니다.

적잖은 분량이지만 본문 전체가 테스에게 보내는 비어트리스의 장문의 편지로 이뤄져있습니다.

그 안에는 테스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비어트리스가 겪었던 분투의 기록과 함께

그녀들이 얼마나 특별한 자매였는지,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깊고 절절한지,

또,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과거가 얼마나 그립고 애틋한지 세세히 쓰여 있습니다.

 

극과 극의 성격에, 그만큼 멀리 떨어져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지만,

자매는 똑같은 상처를 가슴 깊이 묻어둔 한 가족이었고,

어쩌면 ‘달라서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쌍둥이 같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어머니까지 테스의 자살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비어트리스만은 절대 그럴 수 없었던 건 이렇듯 테스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언니일 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던 비어트리스는

테스의 죽음이 임신과 관련 있다는 지점에서 출발하여 차근차근 진실 찾기를 시작합니다.

담당 경찰은 무기력하거나 비협조적이고, 테스가 다녔던 병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어트리스는 무모한 여정을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테스의 죽음이 자살은 물론 우발적인 범행 때문도 아닌,

지극히 계획적이고 사악한 의도를 지닌 자의 끔찍한 범행임을 알아냅니다.

 

사실, 편지 형식의 장편을 읽는 것은 드문 경험이기도 하거니와,

좀처럼 문장들이 눈에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함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범죄스릴러라는 장르에서는 더더욱 불편할 거란 우려와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그런 우려와 편견은 초반부 잠깐을 제외하곤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작가의 필력이 워낙 뛰어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편지 형식에 잘 어울리는 문학적 주제가 작품 전반에 구석구석 진하게 깔려있는데다

이질적인 것이 분명한 스릴러 서사와도 억지스럽지 않게 잘 섞인 덕분에,

‘진실 찾기’ 챕터와 ‘특별한 자매 이야기’ 챕터가 번갈아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거부감이나 이질감 없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두 개의 서사가 모든 스릴러 독자에게 쉽게 먹히진 않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특별한 자매 이야기’ 부분에서는 독자에 따라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고,

심하게는 스릴러 본연의 맛을 희석시킨다고 여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평범한 20대 후반의 여성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는 여정은

여러 가지 장벽들 때문에 진도는 느리고 성과는 미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속도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자에겐 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 ‘굿 미 배드 미’, ‘너를 놓아줄게’, ‘나는 너를 본다’ 등

‘나무의 철학’의 미드나잇 스릴러 시리즈는 작품 간 내용도 다르고 질적인 편차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뉘앙스(사건만큼 비중 있게 다뤄진 개인의 심리)를 풍기곤 했는데,

‘시스터’ 역시 그와 같은 궤를 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만큼 깊고 진한 서사를 다룬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었다고 하니,

이후 출간된 작품들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로저먼드 럽튼의 후속작을 한 편 정도는 꼭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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