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천재적인 프로파일러 슈나이더와 악연으로 엮였던 자들이 연이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피해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굴욕적이고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는데, 그들의 사체에는 숫자 또는 알파벳으로 보이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수법은 5년 전 슈나이더가 체포한 희대의 연쇄살인마 피트 판 론이 애용하던 것인데, 문제는 피트는 현재 정신이상 범법자들을 가둬놓은 최고보안감옥에 있어서 범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유럽 전역을 오가며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을 찾기 위해 슈나이더는 파트너 자비네와 함께 동분서주하지만 좀처럼 단서는 잡히지 않고 희생자들과 슈나이더 사이의 연관성만 재차 확인될 뿐입니다. 자비네가 희생자 몸에 새겨진 메시지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그로 인해 범인의 윤곽과 범행동기 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괴팍함, 상대가 누구든 자기 위주로만 대화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마리화나를 입에 달고 살며 범인의 정신세계에 침잠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이함, 그리고 거의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결벽증과 다름없는 완벽주의. 하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기어이 진실을 찾아내는 승률 100%의 프로파일러. 독일 비스바덴 연방범죄수사국의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의 간략한 이력입니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슈나이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앞선 두 작품에 비해 슈나이더의 괴팍함과 무례함과 기이함, 그리고 완벽주의가 몇 배는 더 거칠고 고통스럽고 잔혹하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슈나이더는 예전보다 더 마리화나를 많이 피우고 더 많은 무례한 언행을 저지르는가 하면, 파트너인 자비네에게도 사건에 관한 많은 정보를 감추려고 합니다. 물론 그 덕분에 자학에 가까운 채찍질과 심신의 고통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범인은 왜 슈나이더와 악연으로 엮인 자들을 골라 치욕적인 죽음을 맛보이는가? 범인의 목적은 슈나이더를 위한 복수인가? 슈나이더를 향한 복수인가? 슈나이더는 왜 파트너인 자비네에게조차 각 사건들의 연관성은 물론 5년 전 직접 체포한 연쇄살인마 피트 판 론에 대해서도 함구하는 것일까?

이런 답답함은 중반부 이후 슈나이더가 자비네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 전까지 내내 독자들에게도 똑같은 중량의 의문과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 충격적인 고백은 앞선 두 편의 시리즈를 모두 읽은 독자에게는, 그래서 나름 슈나이더를 안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겐 더더욱 믿기지 않는 내용들인데, 이 작품의 가장 큰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손톱만큼의 언급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설정으로 인해 슈나이더는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한 줄까지 자신을 향해 폭주하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유럽 스타일의 잔혹한 범죄를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무척 재미있게 읽힐 작품입니다. ‘슈나이더 시리즈는 물론 발터 풀라스키 시리즈에서도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잔혹한 수법을 등장시키곤 하는데 이 작품은 거의 그 분야의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 자폐적이고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능력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슈나이더의 끝도 없이 펼쳐지는 독설과 상상력에 매혹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의 모난 곳과 텅 빈 곳을 빈틈없이 채워주는 자비네의 매력도 일품이긴 합니다.

 

다만,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던 범인의 정체와 범행동기, 범행수법은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웠던 대목입니다. 간혹 유럽 스릴러 가운데 범행동기가 무척 모호하거나 심리적 이상에 근거하거나 또는 신화나 전설 등 추상적인 지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극단적이진 않아도 그런 모호함과 추상성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후반부에 범인의 심리가 적극 묘사되긴 하지만 설득력이 좀 부족해 보였습니다. 범행수법 역시 설정을 위한 설정 또는 과도하게 상징성을 부각시킨다는 느낌? 아니면, 속이 거북해질 정도의 잔혹한 묘사를 변명하기 위해 설정된 느낌? 그렇게 느껴진 대목들이 훨씬 더 많아 보였습니다.

 

안드레아스 그루버가 탁월한 유럽 스타일 스릴러 작가인 건 분명하지만, 그가 좀더 현실적인 범인, 현실적인 동기, 현실적인 수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훨씬 더 큰 공감을 얻어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슈나이더 시리즈발터 풀라스키 시리즈든 신간이 나온다면 허겁지겁 찾아 읽겠지만 다음에는 좀더 현실적인 오싹함을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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