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인형 놀이
마이크 오머 지음, 공보경 옮김 / 북로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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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동안 실종됐던 소녀 캐시 스톤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자 인디애나주의 작은 마을 베설빌에는 환희와 불안감이 교차합니다. 기쁜 일이긴 하지만 캐시를 납치한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때문입니다. 아동 심리치료사 로빈 하트는 말문을 열지 않는 캐시에게 인형놀이를 통한 치료를 시도하다가 뜻밖의 공포에 사로잡히는데, 캐시는 갖가지 엽기적인 방법으로 인형들을 살해하는 놀이를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인형놀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여자가 발견되자 로빈은 겁에 질려 경찰에 연락합니다. 담당형사 너새니얼 킹은 처음엔 로빈의 진술을 의심했지만 동일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본격적인 수사에 나섭니다.



‘따르는 사람들’ 이후 3년 만에 출간된 마이크 오머의 스릴러입니다. 한국에는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 시리즈인 ‘살인자의 사랑법’과 ‘살인자의 동영상’, 그리고 인질협상가 애비 멀린 시리즈인 ‘따르는 사람들’이 출간됐는데, 검색해보니 미국에서 두 시리즈 모두 3편에서 종결됐고, ‘침묵의 인형놀이’는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얼론입니다. 앞선 두 시리즈의 후속작을 기다렸던 터라 마이크 오머의 신작 소식을 반겼는데, 의외로 스탠드얼론인 ‘침묵의 인형놀이’가 먼저 출간됐습니다.


앞선 작품들의 주인공은 각각 범죄심리학자와 인질협상가였는데, 이번에는 아동 심리치료사가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물론 FBI요원이나 강력계 형사 등 세컨드 주인공들이 수사 실무를 맡긴 하지만, 마이크 오머는 일부러 주인공들을 실제 수사에는 개입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만드는 취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납치 15개월 만에 살아 돌아왔지만 말문을 닫은 채 여전히 겁에 질려 있는 아홉 살 소녀 캐시, 그런 캐시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돌보며 치료에 전념하면서도 엽기적인 인형놀이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로빈, 그리고 아직 체포되지 않은 캐시 납치범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로빈을 도우며 진실 찾기에 나선 형사 너새니얼 등이 미스터리 스릴러를 이끄는 실질적인 주인공들이지만, ‘침묵의 인형놀이’는 그 외에도 서로에게 상처를 낼 뿐인 가족의 문제, 작은 마을의 폐쇄적이고 은밀한 분위기, 여러 인물의 일그러진 집착과 욕망 등 심리 스릴러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하여 서사의 두께를 더욱 두툼하게 만듭니다.


다만 이 심리 스릴러 서사에 관해선 의견이 갈릴 수 있는데, 마이크 오머의 전작들이 적극적인 캐릭터의 주인공과 빠른 속도의 스릴러를 앞세운 반면, ‘침묵의 인형놀이’는 초중반 내내 집요할 정도로 세세하게 그려진 심리치료 과정 및 로빈과 캐시의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와 심리묘사 등 다소 지루한 전개가 펼쳐져서 수사를 담당하는 너새니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까지 꽤 느리고 느슨한 책읽기가 필요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 읽고 나면 초반의 지루한 기초공사가 꼭 필요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으로 마이크 오머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범죄피해자이자 심리치료가 필요한 환자지만 동시에 연쇄살인에 관한 결정적 정보를 쥐고 있는 듯한 소녀가 오로지 인형놀이만을 통해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심리치료사에게 전달한다는 설정, 또 그 목격 사실이 현실 속 연쇄살인의 유일하고 유력한 단서가 된다는 설정은 기발하면서도 여느 미스터리 스릴러와는 차별화된 서늘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미치광이 사이코패스나 다름없지만 살해동기와 수법이 독특한 연쇄살인범의 정체도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매력을 맛보기 위해선 초반부의 지루함을 잘 견뎌내야 하는데, 1/3쯤 되는 지점부터는 마이크 오머 특유의 스피디한 스릴러가 전개되면서 그때까지의 인내심을 충분히 보상해줄 테니 너무 빠른 예단으로 이 작품의 미덕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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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림 ㅣ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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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블로그.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이를 낳던 도중 아내가 사망하고, 몇 년이 흘러 아내가 남긴 그림들의 진실을 깨달은 남편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블로그를 중단하고 만다. 우연히 블로그를 발견한 오컬트 동아리원 구리하라와 사사키는 이 그림들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블로그에 숨겨진 소름 끼치는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마침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출판사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일명 ‘이상한 시리즈’로 새롭고 독특한 호러 미스터리를 선보인 우케쓰의 작품입니다. 앞서 읽은 ‘이상한 집’과 ‘이상한 집 2’가 집의 평면도를 기반으로 전개된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였다면, ‘이상한 그림’은 제목대로 어딘가 기이해 보이는 네 장의 그림을 통해 오랫동안 자행되어 온 연쇄살인의 진상과 그것을 야기한 한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을 파헤칩니다.


프롤로그에 이어 모두 네 편의 연작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 완결된 미스터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50여 년의 시간에 걸친 하나의 미스터리로 연결돼있기도 합니다. 각 단편의 첫 머리엔 평범한 듯 하지만 불온한 기운을 발산하는 그림들이 먼저 소개됩니다. 이어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그린 이 그림들을 사건 당사자 또는 제3자가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각각의 그림이 그려진 사연과 그 안에 깃든 비밀들이 파헤쳐지면서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온 참혹한 비극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 진실이 공개되는 순간 앞서 읽어온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빈틈없는 정교한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지는 듯한 짜릿한 쾌감과 함께 한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이 얼마나 거대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구성을 무척 좋아하는데 마치 반전 한 개를 보너스처럼 제공받은 듯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집’이 호러 서사에 주력했다면, ‘이상한 그림’은 심리 스릴러와 본격 미스터리의 맛도 함께 곁들여져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무엇보다 글과 그림이 혼재된 독특하고 파격적인 편집은 책을 읽는다기보다 영상물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자극해서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록작 가운데 그림 설정이 다소 과하고 억지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작품 전체의 매력을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상한 그림’은 책갈피를 끼워 두며 여러 번에 걸쳐 읽으면 그 맛을 제대로 만끽하기 어렵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다 그림까지 적잖이 삽입되어 있어서 주말 한나절이면 충분히 완독할 수 있으니 한 번에 끝까지 읽을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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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드 3 - 하우스메이드의 집
프리다 맥파든 지음, 정미정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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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딸 에이다와 9살 아들 니코를 둔 밀리와 엔조는 궁핍하게 지내던 뉴욕 브롱크스의 아파트를 떠나 롱아일랜드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합니다. 무리한 대출 때문에 경제적 부담은 커졌지만 밀리는 이제야 제대로 된 부모가 된 듯 뿌듯함과 행복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이웃한 두 집 여자의 몰상식한 행태와 집안에서 감지되는 불쾌한 느낌 때문에 밀리의 행복은 금세 균열을 맞이합니다. 거기다가 이웃집 여자의 노골적인 추파를 받아주는 듯한 남편 엔조와 갑작스레 난폭해진 아들 니코 때문에 밀리의 고민은 점점 심각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밀리는 인생이 통째로 붕괴될 위기에 빠집니다.



미국 기준으로 ‘하우스메이드 2’가 출간된 건 2023년인데, 불과 1년 후인 2024년에 출간된 ‘하우스메이드 3’의 시간적 배경은 무려 11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보통 시리즈 주인공의 나이는 책의 출간에 맞춰 한두 살씩 먹기 마련인데, 그야말로 파격적인 점프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우스메이드 1’에서 25~26세였던 밀리는 32세의 ‘하우스메이드 2’를 거쳐 어느 새 40대 중반의 두 아이의 엄마가 됐는데, 여러 사람의 목숨을 거뒀던 잔혹한 과거에서 벗어나 가까스로 평범한 삶에 안착했다며 안심할 무렵 또다시 찾아든 불운한 사건과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 때문에 절망하고 맙니다.


‘하우스메이드 3’는 프리다 맥파든과 여덟 번째로 만난 작품인데, 올해 읽은 ‘대리모’에 이어 두 번째로 별 3개라는, 제 기준으론 거의 최하에 가까운 평점을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본문 가운데 “시리즈물에서 세 번째 책이 명작인 경우는 드문 편이니”라는 문구가 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의 느낌을 조금도 에두르지 않고 표현하자면, ‘하우스메이드 3’는 1~2편의 명성에 폐를 끼친 것을 넘어 애초 출간되지 말았어야 할 작품입니다.


‘하우스메이드 2’의 서평에 “‘서론’이 너무 길고 장황했다”라고 쓴 적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그저 길고 장황한 수준이 아니라 이야기의 절반을 넘어서까지 전개되는 지루한 서론 때문에 메인 사건이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힘이 빠집니다. 

주인공이자 엄마이자 아내인 밀리는 “왜 저런 상황들을 죄다 참고 넘어갈까?”라는 의문이 수차례 들 정도로 민폐에 가까운 캐릭터가 됐고, 밀리의 과거를 모두 아는 동지이자 남편인 엔조는 순전히 밀리의 분노를 자아내기 위해 다분히 그답지 않은 행동을 억지스럽게 거듭합니다. 이웃집 여자들과 60대 가사도우미 등 주요 조연들은 몰상식하고 기이한 행동들로 밀리의 혈압을 높이곤 하지만 그들에게서 사실감이라곤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설정들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전체 분량의 절반도 넘는 1부가 할애됩니다.

밀리의 가족들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뜨린 사건은 잘 해야 중편 정도의 분량을 통해 익히 예측 가능한 방향대로만 전개됩니다. 반전은 조금도 놀랍지 않았고, 사건은 긴장감을 느낄 틈도 없이 초스피드로 해결됩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구성은 ‘과도한 가분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우스메이드 1’이나 ‘네버 라이’에서 발휘됐던 프리다 맥파든의 쫄깃하고 매력적인 스릴러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저처럼 이 작품이 진짜 프리다 맥파든이 쓴 게 맞나, 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플롯이나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현저히 부족해 보이는 작품을 시리즈의 성공에 편승해 상업적인 목적으로 내놓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인터넷서점의 평점을 보면 대체로 호의적인 경우가 많았으니 어쩌면 저만 유독 날선 서평과 박한 평점을 준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작가의 작품을 여덟 편쯤 읽었다면 그와 그의 작품에 거는 기대라는 게 남다를 수밖에 없고, 그 기대가 ‘출간되지 말았어야 할 작품’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무너졌다면 다른 여느 작가의 ‘수준 이하 작품’보다 더 심한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우스메이드 3’는 제게 딱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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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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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전3권)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건 2011~2013년입니다. 개정판(2016년)이 나올 정도로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하고 환영받은 작품이었지만 그동안 늘 관심만 가졌을 뿐 실제로 읽지 않은 이유는 ‘유머 미스터리 수사물’이 제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살인사건이라는 잔혹한 소재를 다루는 미스터리라면 당연히 무겁고 묵직하고 어두운 톤이어야 한다는 취향 탓에 유머 혹은 코지로 분류되는 미스터리를 멀리 한 게 사실인데, 물론 그런 작품들을 아주 안 읽은 건 아니지만 왠지 제목에서부터 유머와 코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좀처럼 가까이 할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다가 꽤 오랜 공백을 깨고 두 권으로 구성된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됐고, SNS에 공개된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작품 개요를 읽어보곤 그동안 제가 이 시리즈에 대해 심하게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유머 미스터리 수사물’이 맞긴 하지만 그건 단지 주인공들의 코믹한 캐릭터 덕분에 붙은 타이틀일 뿐 사건과 미스터리 해법만큼은 제가 좋아하는 무겁고 묵직하고 어두운 톤을 품고 있었고, 주조연들의 면면과 관계를 살펴보니 역시 제가 좋아하는 일본 특유의 B급 정서가 진하게 녹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벌가의 외동딸이지만 그 신분을 숨긴 채 구니타치 경찰서의 형사로 활약 중인 호쇼 레이코와, 호쇼 집안의 집사지만 형사를 능가하는 탁월한 추리력을 지닌 가게야마가 미스터리 해결사 역할을 맡습니다. 레이코가 툭하면 버럭질을 남발하는 다혈질에다 때론 대책 없는 ‘공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건을 대할 때만큼은 진심을 다하는 캐릭터라면, 가게야마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집사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도 사건에 대한 추리를 벌일 때만큼은 자신이 모시는 레이코에게 독설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 캐릭터라서 이 둘만의 조합으로도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여기에 가세한 두 조연의 캐릭터도 만만치 않은데, 한 명은 중견재벌가의 아들이자 자뻑의 대가이며 무례한 말투와 성희롱을 일삼는 것은 물론 형사로서 부실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레이코로부터 전해들은 가게야마의 추리’ 덕분에 경시청 수사1과로 영전됐다가 결국 민낯이 드러나 다시 구니타치 경찰서로 좌천된 가자마쓰리 경부이고, 또 한 명은 레이코의 첫 후배이자 신참으로, 눈치라곤 전혀 없는 엉뚱함에 빵점짜리 박력과 평균치 이하의 어휘력을 지닌 와카미야 아이리입니다.


1~2권을 합쳐 모두 10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기괴하고 잔혹한 사건들과 함께 밀실트릭, 알리바이 트릭, 다잉메시지 등 본격 미스터리의 다양한 장치들이 동원돼서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내내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특히 작위적인 설정이나 억지에 가까운 전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추리를 통해 진상에 도달하는 방식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네 명의 주조연들은 거의 만담에 가까운 대화와 어이없는 티키타카를 주고받지만, 이 코믹한 코드들은 깔끔하고 명료한 미스터리 서사와 잘 어우러지면서 전혀 이질감 없이 흥미를 돋웁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 “지적 쾌감과 웃음을 동시에 즐기고 싶은 독자”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텍스트가 돼줄 거란 생각인데, 저처럼 ‘유머 미스터리 수사물’에 거부감을 가진 독자라도 한번쯤 도전해볼 것을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드라마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앞서 출간된 세 권의 전작들은 물론 한국에 출간된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들도 찬찬히 살펴보겠지만, 우선 ‘재벌가 영애 형사’ 레이코와 ‘독설+폭언 집사’ 가게야마의 활약상을 영상으로 만나보려고 합니다. 이 독특한 캐릭터들의 케미가 어떻게 실물로 그려졌을지 너무 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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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벚꽃
유즈키 유코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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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온서평단(단단한맘&레이첼)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한 여대생의 죽음으로 인해 경찰이 거센 비난에 휩싸인다. 스토킹 피해를 신고했지만 경찰이 신고 접수를 미룬 사실이 한 신문사의 특종으로 알려졌기 때문. 현경 홍보과 직원 모리구치 이즈미는 자신이 무심결에 흘린 정보를 절친이자 기자인 쓰무라 지카가 멋대로 이용하여 특종을 올린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지카는 그 기사를 쓰지 않았다며, 다른  내막이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얼마 후, 지카가 변사체로 발견된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이즈미는 지카의 죽기 전 행적을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인터넷서점의 줄거리를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꽤 오래 전에 읽은 ‘반상의 해바라기’와 ‘달콤한 숨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움을 느낀 탓에 살짝 관심 밖으로 뒀던 유즈키 유코였지만, 오랜만의 신작 소식이 무척 반갑게 여겨진 건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먼저, 또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고독한 늑대의 피’와 마찬가지로 경찰 미스터리, 특히 언론이 개입된 살인사건에, 국가와 개인의 문제까지 다룬다는 홍보글에 눈길이 훅 끌렸기 때문입니다. 

더욱 흥미를 돋운 건 주인공 모리구치 이즈미가 ‘경찰청 말단 직원’이란 점이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는 경찰이나 형사가 아니라 홍보과에 근무하는 사무직입니다. 말하자면 수사권도 없고, 수사의 ABC도 모르는 아마추어란 뜻인데, 이런 주인공이 살인사건의 진실 찾기와 함께 경찰 내부의 문제를 파헤친다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지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이즈미는 관할서 신참 형사인 이소카와와 함께 지카의 행적을 조사하며 단서를 모읍니다. 그 과정에서 홍보과장인 도가시, 수사1과장인 가지야마 등 경찰 상부에게 의심을 사기도 하지만, 나름 합리적인 추론을 내세우며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진짜 형사처럼 관련자들을 상대로 탐문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즈미가 갓 부임한 초짜 형사라도 됐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아무래도 수사권 없는 사무직이란 한계 때문에 이즈미의 행보는 처음부터 제약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탓에 결정적인 정보수집과 수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조직을 지키려 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려 하며, 누군가는 국가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는 인물들을 통해 ‘정의’라는 같은 단어가 얼마나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출판사 소개글 中)


이즈미와 이소카와의 조사는 뜻밖의 성과를 냈고, 수사1과의 분투 덕분에 범인을 특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성공은 이즈미에겐 조금도 기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경찰 내부의 낡고 오랜 문제를 직시하게 만들었고,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가에 대해, 또 국가와 개인을 저울에 올려놓았을 때 어느 쪽의 무게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 대해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이즈미가 내린 중대한 선택은 충분히 독자의 공감을 사고도 남았는데, 일본에서 2021년에 출간된 이 작품의 후속작 ‘月下のサクラ’가 한국에도 소개된다면 이즈미의 ‘중대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경찰소설을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나름 아쉬움도 남은 게 사실입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우선 ‘반상의 해바라기’와 ‘달콤한 숨결’과 마찬가지로 없어도 무방한 부연설명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몰라도 되는 인물들의 사연은 물론 음식점이나 술집의 정경 묘사에 너무 많은 분량이 할애됐습니다. 또 독자가 이미 인지한 정보를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설명한 탓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사1과의 다소 어설픈 모습이라든가 꽤 중요한 단서와 물증에 대해 너무 쉽고 편의적으로 처리한 대목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아쉬운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큰 서사 자체가 매력적이라 앞서 언급한 이 작품의 후속작 ‘月下のサクラ’에 대한 기대감이 커집니다. 주인공 이즈미가 어떻게 성장해있을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경찰 내부의 문제가 또 어떤 식으로 노정됐을지 무척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이 작품이 좋은 성과를 내서 ‘고독한 늑대의 피’의 후속작인 ‘凶犬の眼’과 ‘暴虎の牙’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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