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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벚꽃
유즈키 유코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평점 :
르온서평단(단단한맘&레이첼)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한 여대생의 죽음으로 인해 경찰이 거센 비난에 휩싸인다. 스토킹 피해를 신고했지만 경찰이 신고 접수를 미룬 사실이 한 신문사의 특종으로 알려졌기 때문. 현경 홍보과 직원 모리구치 이즈미는 자신이 무심결에 흘린 정보를 절친이자 기자인 쓰무라 지카가 멋대로 이용하여 특종을 올린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지카는 그 기사를 쓰지 않았다며, 다른 내막이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얼마 후, 지카가 변사체로 발견된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이즈미는 지카의 죽기 전 행적을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인터넷서점의 줄거리를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꽤 오래 전에 읽은 ‘반상의 해바라기’와 ‘달콤한 숨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움을 느낀 탓에 살짝 관심 밖으로 뒀던 유즈키 유코였지만, 오랜만의 신작 소식이 무척 반갑게 여겨진 건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먼저, 또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고독한 늑대의 피’와 마찬가지로 경찰 미스터리, 특히 언론이 개입된 살인사건에, 국가와 개인의 문제까지 다룬다는 홍보글에 눈길이 훅 끌렸기 때문입니다.
더욱 흥미를 돋운 건 주인공 모리구치 이즈미가 ‘경찰청 말단 직원’이란 점이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는 경찰이나 형사가 아니라 홍보과에 근무하는 사무직입니다. 말하자면 수사권도 없고, 수사의 ABC도 모르는 아마추어란 뜻인데, 이런 주인공이 살인사건의 진실 찾기와 함께 경찰 내부의 문제를 파헤친다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지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이즈미는 관할서 신참 형사인 이소카와와 함께 지카의 행적을 조사하며 단서를 모읍니다. 그 과정에서 홍보과장인 도가시, 수사1과장인 가지야마 등 경찰 상부에게 의심을 사기도 하지만, 나름 합리적인 추론을 내세우며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진짜 형사처럼 관련자들을 상대로 탐문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즈미가 갓 부임한 초짜 형사라도 됐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아무래도 수사권 없는 사무직이란 한계 때문에 이즈미의 행보는 처음부터 제약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탓에 결정적인 정보수집과 수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조직을 지키려 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려 하며, 누군가는 국가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는 인물들을 통해 ‘정의’라는 같은 단어가 얼마나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출판사 소개글 中)
이즈미와 이소카와의 조사는 뜻밖의 성과를 냈고, 수사1과의 분투 덕분에 범인을 특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성공은 이즈미에겐 조금도 기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경찰 내부의 낡고 오랜 문제를 직시하게 만들었고,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가에 대해, 또 국가와 개인을 저울에 올려놓았을 때 어느 쪽의 무게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 대해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이즈미가 내린 중대한 선택은 충분히 독자의 공감을 사고도 남았는데, 일본에서 2021년에 출간된 이 작품의 후속작 ‘月下のサクラ’가 한국에도 소개된다면 이즈미의 ‘중대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경찰소설을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나름 아쉬움도 남은 게 사실입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우선 ‘반상의 해바라기’와 ‘달콤한 숨결’과 마찬가지로 없어도 무방한 부연설명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몰라도 되는 인물들의 사연은 물론 음식점이나 술집의 정경 묘사에 너무 많은 분량이 할애됐습니다. 또 독자가 이미 인지한 정보를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설명한 탓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사1과의 다소 어설픈 모습이라든가 꽤 중요한 단서와 물증에 대해 너무 쉽고 편의적으로 처리한 대목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아쉬운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큰 서사 자체가 매력적이라 앞서 언급한 이 작품의 후속작 ‘月下のサクラ’에 대한 기대감이 커집니다. 주인공 이즈미가 어떻게 성장해있을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경찰 내부의 문제가 또 어떤 식으로 노정됐을지 무척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이 작품이 좋은 성과를 내서 ‘고독한 늑대의 피’의 후속작인 ‘凶犬の眼’과 ‘暴虎の牙’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