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매미 엔시 씨와 나 시리즈 2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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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75월에 출간된 하늘을 나는 말에 이은 엔시 씨와 나 시리즈두 번째 작품입니다.

시리즈 작품이 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출간되는 것은 무척 드문 경우인데,

덕분에 전작의 기억과 여운을 간직한 상태에서 후속작을 읽게 됐습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는 전작보다 한 살을 더 먹은 스무살 문학부 여대생입니다.

책을 좋아하고, 나이답지 않게 고문학과 전통예능에 조예가 깊은 씩씩한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 가운데 라쿠고(落語)라는 이야기 예술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부채나 수건 같은 소도구와 함께 목소리, 추임새, 몸짓만으로

해학과 풍자가 섞인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연기하는 예술입니다.

그 라쿠고의 대가 중 특히 슌오테 엔시 씨를 좋아하는

1년 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각별한(?) 사이가 되었고,

특히 일상에서 벌어진 기이하거나 미스터리한 일에 대해 숨김없이 상의하곤 했습니다.

밤의 매미는 스무살이 된 의 주변에서 벌어진 소소한 미스터리들을

여전히 친절하고 비범한 라쿠고의 명인엔시 씨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각각 100페이지 안팎의 세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출판사 소개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서점 서가의 책이 거꾸로 꽂혀 있는 이유와 그 범인을 밝히는 으스름달밤’,

체스의 말과 달걀과 거울이 차례로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깜찍한 소동을 그린 ‘6월의 신부’,

남녀의 엇갈린 인연과 그 사정을 파헤치는 밤의 매미등입니다.

 

밤의 매미1990년에 출간됐고, 4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면서

살인 없는 일상 미스터리가 미스터리로서 공식적으로 인증 받게 만든 작품입니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을 일상 미스터리의 고전이라 부르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출간되는 일상 미스터리는 살인만 없을 뿐 꽤나 센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다

제법 치밀한 미스터리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기타무라 가오루의 밤의 매미나 전작인 하늘을 나는 말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순수 일상 미스터리와 의 성장기가 믹스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전통예능인인 엔시 씨의 추리는

앞뒤가 착착 들어맞는 완벽한 논리보다는 감성이라든가 예술적 재능에 기반을 둔,

그러니까 심오한(?) 비약 또는 예술적 상상력에 의해 완성되고 있어서,

미스터리 자체를 기대한 요즘 독자들에게는 제법 싱겁게 읽힐 여지가 많은 작품입니다.

 

물론 엔시 씨의 추리는 객관적인 단서에서 출발합니다.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누구도 쉽게 간파하지 못한 포인트를 짚어내고,

그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추론합니다.

그것은 때론 악의일 때도 있고, 선의일 때도 있고, 양쪽의 경계선에 선 것일 때도 있습니다.

때론 따끔하게 악의를 꾸짖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에서 와 엔시 씨는

인간을 긍정하는 결말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번역자 정경진님의 후기)

역시 엔시 씨와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대하는 방법,

,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교훈으로 삼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갑니다.

 

어쩌면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은 미스터리보다는 성장소설로 접근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미덕을 좀더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나는 말의 서평 말미에 후속작 밤의 매미에 대한 저만의 기대를 남겼었는데,

 

사건 같은 사건도 있으면 좋겠고, 신비한 엔시 씨도 좀 현실적이면 좋겠고,

반전이든 감동이든 나름의 비장의 무기도 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욕심입니다.”

 

하지만 기타무라 가오루의 일상 미스터리는 말 그대로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러니까 오히려 사건성이 희박한 진짜 일상의 해프닝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탐정 역할에 굳이 이야기 예술인 라쿠고의 명인 엔시 씨를 설정한 것도,

사건을 물어오는 를 이제 갓 성인이 된 여대생으로 설정한 것도

분명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을 것입니다.

밤의 매미는 그런 의도를 (전작보다도 더) 명확하게 보여준 작품이었고,

저의 욕심이 작가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엔시 씨와 나 시리즈는 모두 6편이 출간됐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나머지 시리즈를 모두 출간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작을 읽고도 그랬듯이) 계속 이어서 읽을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의 성장과 엔시 씨의 매력은 구미가 당기지만,

과연 작가가 사건다운 사건을 설정해줄지,

그래서 무척이나 통속적인 저의 욕심을 충족시켜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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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퀴엠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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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살해 혐의로 불명예 퇴직한 전직 경찰 조 파이크와 탐정사무소를 공동운영하는 엘비스 콜.

두 사람은 한때 조의 연인이었던 카렌 가르시아 실종 사건 수사를 의뢰받지만,

그녀는 하루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엘비스는 그녀가 연쇄살인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다.

한편 경찰에 의해 용의자로 지목됐던 남자가 살해된 채 발견됐는데,

유일한 목격자인 이웃이 조를 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에 구속된 조는 교도소 이송 차량에서 탈출해 도망자가 된다.

엘비스는 미스터리를 풀고 조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의 퍼즐을 다시 맞추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L.A. 레퀴엠엘비스 콜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입니다.

고백하자면, 앞선 7편을 하나도 못 읽은 탓에 이 작품을 다 읽은 뒤,

왜 콜&파이크 시리즈가 아니고 엘비스 콜 시리즈일까?” 궁금했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이 작품 전까지의 조 파이크는 대부분 조력자에 머물렀고,

실질적으로는 엘비스 콜 원맨쇼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L.A. 레퀴엠은 엘비스와 조가 거의 대등한 역할을 분담했고,

특히 조의 어린 시절, 해병대 시절, 순찰차 경관 시절 등이 차례로 그려진 덕분에

진짜 &파이크 시리즈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읽혔습니다.

 

꽤 오래 전이지만, 로버트 크레이스와 처음 만난 작품은 워치맨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작품은 조가 단독 주인공으로 독립한 조 파이크 시리즈1편이었습니다.

조의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던 탓이겠지만,

당시 남겨놓은 메모에는 단순 액션물? 이 작가 작품은 읽기 전 반드시 서평 확인이라는,

참으로 야박한 평가가 적혀있습니다.

아마 엘비스 콜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은 뒤에 워치맨을 읽었더라면

10배는 더 감칠맛 나는 책읽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L.A. 레퀴엠은 액션 스릴러의 정석 같은 다양한 코드와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입니다.

우선, 무엇보다 방대한 분량을 순식간에 완주하게 만드는 끝내주는 캐릭터들이 눈길을 끄는데

유머와 실력을 겸비한 매력적인 사립탐정, 트라우마와 폭력성과 냉정함을 겸비한 전직 경찰,

선과 악, 탐욕과 정의 등 갖가지 개성을 지닌 LAPD의 경찰 군상들,

끔찍한 사건 속에서도 애틋한 멜로 라인을 만들어내는 인상적인 여인들,

그리고 무게감은 제각각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역할을 하는 조연 등이 그들입니다.

 

물론 압권은 주인공 엘비스와 조인데,

두 사람은 닮은 듯하면서도 180도 다른 매력을 발산합니다.

엘비스가 한량+섹시+유머+지능+집요함으로 뭉친 캐릭터라면,

조는 무표정+진지+지고지순+정의+폭력성이 뒤범벅된 캐릭터입니다.

어찌 보면 도저히 함께 탐정사무소를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극인 인물들이지만,

두 사람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찰떡궁합과 신뢰를 과시하면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캐릭터뿐 아니라 중심사건 역시 끊임없이 자가발전하면서 긴장감을 높여갑니다.

처음엔 단순폭행살인으로 여겨졌던 사건이 끔찍한 연쇄살인으로 판명되는가 하면,

곧이어 치밀하게 계획된 보복살인으로 밝혀지면서 계속 국면이 전환되곤 합니다.

더구나 조 파이크가 누명을 쓴 끝에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면서

이야기는 단순히 사악한 연쇄살인범 찾기를 넘어

사건 이면의 감춰진 진실을 찾고,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한 휴먼스릴러로 진화합니다.

 

‘L.A. 레퀴엠의 매력 두 가지를 고른다면,

하나는 동료살해범으로 낙인찍혀 불명예 퇴직 당한 조의 어두운 과거사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사립탐정 엘비스와 LAPD 여형사 사만다 돌런의 위험한 협업이야기입니다.

불우한 성장기부터 시작되어 경찰을 그만두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조의 과거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완결된 이야기가 될 만큼 매력적입니다.

LAPD 강력반 내에서 마초들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던 여형사 사만다 돌런과

역시 LAPD로부터 못마땅한 견제를 받는 엘비스의 협업은 무척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둘의 관계는 충돌-이해-협력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지만,

이미 여친이 있는 엘비스에게 돌런이 적극적으로 대시하면서 색다른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연쇄살인범의 정체와 범행동기인데,

뭐랄까, 매력적으로 세팅된 큰 무대에 비해 범인이 너무 초라하고 왜소해 보인다고 할까요?

범인은 그 나름의 가치관과 동기가 강력해야 시선을 끌 수 있는 법인데,

이 작품의 범인은 결론을 위해 작위적으로 짜맞춰진인물처럼 보였고,

그의 복수심의 근원도, 희생자들을 선택한 기준도, 범행수법이나 범행은닉을 위한 행보들도

다분히 정해진 결론으로 이야기를 유도하려고 억지스럽게 꾸며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엘비스와 조의 이야기가 워낙 강력하고 탄탄해서 충분히 상쇄될 수 있었지만,

범인마저 매력적이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거란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이후 엘비스 콜 시리즈의 어떤 작품이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엘비스와 조가 좀더 멋진 범인과 대결하는 이야기를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사족이지만,

멀홀랜드 드라이브, 우드로 윌슨, 할리우드 경찰서, 어슬렁대는 코요테 등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덕분에 너무 익숙해진 L.A의 지명과 풍경묘사를

엘비스 콜 시리즈에서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해리와 엘비스가 같은 동네에 산 건 아닌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L.A. 레퀴엠1999년에 발표된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인데,

같은 해 해리 보슈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인 앤젤스 플라이트가 발표됐으니,

어쩌면 둘은 정말 이웃사촌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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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피 스크리치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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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2016년에 출간된 크리피의 후속편입니다.

당시 서평을 찾아보니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작품이란 구절이 있는데,

크리피(creepy)라는 단어의 뜻 - ‘털이 곤두설 만큼 오싹한, 섬뜩할 정도로 기이한’ -처럼

오싹하고 기이한 사건을 다뤘던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그 덕분에 후속편이 나온 것 같습니다.

 

제목에 쓰인 스크리치(screech)는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제목은 오싹하고 기이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란 뜻이 됩니다.

이 소리는 작품 속에서 여자화장실에서 살인이 벌어질 때마다 들리는 것으로 설정됐는데,

끔찍한 연쇄살인에 어딘가 괴기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기게 만드는 기분 나쁜 소리입니다.

 

● ● ●

 

교외에 자리한 류호쿠 대학 캠퍼스에서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여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잔인하게 살해되더니, 교수와 교직원들까지 희생당하기에 이릅니다.

크리피의 주인공이면서 범죄심리학자로서 경찰을 도운 바 있는 다카쿠라는

부임한지 얼마 안 된 류호쿠 대학에서 벌어진 참극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한편,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사무직원 시마모토는

연쇄살인사건 때문에 기자와 경찰들을 상대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사건 덕분에 인연을 맺게 된 학생부 여직원 야나세 유이에게 깊은 연정을 품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연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뚤어지기 시작하고,

미궁에 빠진 교내 연쇄살인사건이 내뿜는 악의는 시마모토에게 서서히 전염되기 시작합니다.

 

● ● ●

 

크리피 스크리치는 크게 두 개의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하나는 대학 내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이고,

또 하나는 화자인 시마모토가 일그러진 사랑에 빠지면서 점차 괴물이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전작의 주인공인 다카쿠라는 두 이야기에 전부 관여하긴 하지만 조연 정도에 머뭅니다.

 

사실, 연쇄살인사건은 괴물로 변해가는 시마모토를 위한 화려한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마모토는 30대 중반의 주임이지만, 불우한 환경 탓에 대학진학을 포기한 핸디캡이 있고,

뚱뚱하고 작은 신체 때문에 결혼은커녕 변변한 애인조차 없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루저입니다.

그에게 연쇄살인사건은 과중한 업무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가슴 두근거리는 연애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상대는 타 부서에 근무하는 10살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 야나세 유이인데,

평소라면 말 한마디 붙여보지도 못했겠지만,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공통화제 덕분에 잦은 만남을 갖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들떴던 시마모토의 흥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배신, 증오, 복수 등 온갖 악의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2개의 사건(살인과 사랑)을 한꺼번에 겪게 된 결과

말 재주도 없고 볼품마저 없는 남자 시마모토가 내재돼있던 악의를 폭발시킨다는 뜻입니다.

 

교묘하게 병치된 두 개의 서사는 나름 긴장감 있게 잘 흘러갑니다.

화장실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은 잔혹함과 선정성이 적절히 배합됐고,

괴물이 되는 루저이야기 역시 차근차근 무게감을 갖춰갑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크리피 스크리치는 전작인 크리피의 명성에 편승했을 뿐,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엔 전혀 크리피하지 않은 평범함만 남긴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시마모토의 이야기의 가장 큰 맹점은 인간의 감정을 너무 단순하게 그렸다는 점입니다.

홀로 착각에 빠졌던 인물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과정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대단히 섬세하고 공감되게끔 그려져야 하는데,

시마모토의 변화는 어쩐지 작가가 설계한대로 움직이는 허상처럼 느껴집니다.

시마모토를 뒤흔들었던 야나세 유이라는 여자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시마모토라는 괴물을 만들기 위해 작위적인 행동만 골라서 저지르는 듯한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괴물이 된 시마모토의 진실을 다카쿠라 교수가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은

조금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오래 전 수사반장에서나 쓰였을 법한 단서를 통해 진실을 밝혔다는 점도,

그것이 마치 대단한 발견인양 반응하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설픈 범인에 어설픈 명탐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마모토 이야기의 배경이 됐던 여자화장실 연쇄살인사건 역시 아쉽게 마무리됐는데,

범인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게 허술하게 설정됐고,

경찰이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사건 초기에 체포할 수 있었던 상황임이 드러납니다.

범행과정에서 들린 오싹하고 기이한 짐승의 소리의 실체는 허탈함까지 느끼게 했고,

범행동기 역시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에카와 유타카는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부터 시작하여 세 번째 만난 셈인데,

이상하게도 갈수록 평점 별이 하나씩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사건 자체보다 사람의 심리나 괴이한 분위기에 더 주력하는 작가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심리도 분위기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후속작을 계속 기대해야 될지 여러 가지로 의문을 남긴 크리피 스크리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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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 스토리콜렉터 55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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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뉴저지 주 뉴브런즈윅에 사는 지극히 평범한 60대 중반의 할머니가

멕시코와 터키에서의 임무를 환상적으로 마친 후 이제 위험천만한 불가리아로 세 번째 모험을 떠난다.

작고 오동통한 체구, 복슬복슬한 흰 머리, 엉뚱 발랄한 모습은 그대로지만

더 풍성해진 모험과 스릴 넘치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게다가 두근두근 썸 타는 이야기까지 양념처럼 곁들어 있다.”

 

출판사 책 소개글에 나온 깜찍한 할머니 스파이 에밀리 폴리팩스에 관한 설명입니다.

할머니 스파이라는 설정도 특이하지만, 활약하는 무대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외국이고,

맡은 미션 역시 정보 획득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할리우드 액션물 수준입니다.

뭐랄까, 홍콩배우 성룡의 액션영화를 본 느낌이랄까요?

사건은 험악하고 악당도 무시무시한데 정작 주인공은 코믹하고 유쾌 발랄 캐릭터라

폭력이 난무하는 영상을 보면서도 내내 웃게 되는 그런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여덟 개의 여권1971년에 출간된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데,

앞선 1~2편을 못 읽어서 폴리팩스 부인이 어떻게 CIA의 스파이가 됐는지는 잘 모르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 할머니라면 충분히 가능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CIA 담당자의 묘사대로 딴 길로 잘 새고, 충동적으로 움직이고,

자신의 직관을 믿는폴리팩스 부인의 또 다른 캐릭터는 오지라퍼인데,

원래 불가리아 지하조직에 8개의 여권을 전달하기로 돼있던 그녀는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청년들과의 만남에 공연히끼어든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미션을 스스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불가리아에 도착하자마자 습격을 받고, 이유도 모른 채 비밀경찰의 추격을 받더니

한밤중에 납치되어 살해될 위기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본인의 오지랖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걸 한참 뒤에나 알게 된 폴리팩스 부인은

움츠려들기는커녕 오히려 씩씩하게 자기 앞에 툭 떨어진 미션을 처리하겠다고 나섭니다.

불가리아의 지하조직과 스파이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말이죠.

 

부인은 정말 친절하고, 다정하고, 온화한 분처럼 보이는데, 좋은 분은 아닌 것 같네요.”

어머나, 이건 내가 프로 스파이에게 들은 말 중 제일 좋은 칭찬이네. 고맙구먼.”

아이고, 하느님 맙소사.”

 

프로들까지 깜짝 놀라게 만든 폴리팩스 부인의 활약은 기어이 교도소 습격에 이르게 되고,

할머니+여대생으로 이뤄진 아마추어와 30여년 전 독일군과 싸웠던 한물 간 늙은 전사들과

유일하게 현직인 프로 스파이가 뒤섞인 폴리팩스 외인구단 팀

위기일발의 상황을 뚫고 불가능해 보였던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해냅니다.

물론 이 상황을 뒤늦게 전해들은 CIA가 뒷목을 붙잡고 경악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폴리팩스 부인은 결과적으로 불가리아 정치권을 뒤흔든 엄청난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할 말을 잃은 CIA에게 폴리팩스 부인은 태연스레 경과보고를 하며 요구사항을 전달하는데,

이 대목은 정말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통쾌하게 읽혔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말랑말랑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파이물을 좋아하진 않아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명품인 미스 마플 시리즈도 한 편도 안 봤지만,

(실제로 미스 마플이 말랑말랑한 캐릭터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막상 폴리팩스 부인을 통해 특유의 유머와 깨알 같은 재미를 맛보고 나니

앞서 출간된 시리즈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발동하게 됐습니다.

 

피와 살이 튀고, 치열한 두뇌전이 벌어지는 블록버스터 스파이물이 당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끔 특별한 간식처럼 폴리팩스 부인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혹시 저처럼 편견을 가졌던 독자라면 별 부담 없이 반나절이면 완독할 수 있는 작품이니

한번쯤은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를 읽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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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7-06-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편 진짜 재밌습니다~ 꼭 보세요 ㅎㅎ

하나비 2017-06-16 14:53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CIA에 어떻게 입문했는지 궁금했는데, 찾아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안개 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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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은 일반적인 스릴러 범주에 우겨넣기에는 그 색깔이 너무 독특합니다.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괴물의 이야기를 다룬 속삭이는 자도 그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후속작 이름 없는 자도 마찬가지였는데,

스탠드얼론이라 할 수 있는 안개 속 소녀는 비교적 대중적인 코드로 이뤄진 작품임에도

역시나 그만의 독특한 정신세계(?)가 진하게 투영된 탓에

일반적인 스릴러라 부르기 곤란한, 그래서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기 쉬운 작품이 돼버렸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전작들에 비해 심플합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마을 아베쇼에서 10대 소녀 애나 루 실종사건이 벌어집니다.

언론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아는 스타 형사 포겔이 아베쇼에 도착하고,

그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금세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함으로써 전국을 들썩이게 만듭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로리스 마티니는 평범한 학교 교사였지만,

포겔의 집요한 공세와 언론의 마녀사냥 식 보도에 광분한 대중들에 의해

순식간에 잔혹한 괴물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화려한 쇼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 포겔은 당당히 아베쇼를 떠나려 했지만,

그에게 날아든 한 통의 전화는 그가 공들여 완성했던 쇼를 산산이 부숴놓습니다.

 

전작들에 등장했던 캐릭터들과 달리 안개 속 소녀의 주요인물들은 비교적 단선적입니다.

언론을 통해 사건과 수사를 쇼로 만들곤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만끽하는 포겔,

포겔이 던져준 미끼를 이용하여 대중을 선동하고 돈을 버는 언론 매체들,

진실 따윈 관심도 없이 오로지 분위기에 휩쓸려 광분하는 마을사람들,

그리고, 평범한 교사에서 사악한 괴물로 전락하는 무고한 용의자 등

도나토 카리시가 창조한 캐릭터라고 보기엔 너무 대중적이고 쉬워 보이는 인물들입니다.

 

이야기 역시 복잡다단했던 전작들과 비교하면 거의 예상된 경로로만 흘러가서,

왠지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뭐랄까, 탐욕투성이 형사와 광기에 사로잡힌 미디어와 대중을 고발하는 돌직구 같은 고발극?

괴물잡기에만 몰두한 사법제도로 인해 철저히 망가진 소시민의 비극을 그린 사회물?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나토 카리시라면 분명 그 이면에 뭔가 감춰둔 것이 분명하기에,

기대와 의심(?) 속에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하지만, 눈썰미 빠른 독자라면 대략의 엔딩을 예상할 수 있고,

관심은 과연 작가가 어떤 방법으로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장식할 것인가?’에 몰리게 됩니다.

아마 이 지점에서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게 될 것 같은데,

막판 반전을 매력적이라고 여긴 독자들은 역시 도나토 카리시!’라며 찬사를 보낼 것이고,

그 대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억지라고 받아들인 독자들은 허탈감을 느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가까운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반전 자체가 너무나 완벽하게 설계됐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작가가 뿌려놓은 소소한 단서들이 일궈낸 제대로 된 반전은 독자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안개 속 소녀의 반전은 반전 자체를 위한 끼워 맞추기 식 변명이란 생각이 듭니다.

도나토 카리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4페이지를 통해 또 한 번의 반전을 제공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마저도 사족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엔딩과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앞서 전개된 이야기들마저 무너졌다고 할까요?

 

중앙에서 파견된 일개 형사에 불과하면서도 언론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수사를 이끄는 포겔의 캐릭터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습니다.

증거도, 단서도 없이 단지 정황만으로 마녀사냥 하듯 용의자를 특정하고 몰락시키는 장면은

오히려 그를 소시오패스처럼 보이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다고는 해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속삭이는 자이름 없는 자의 경우 쉽게 납득되지 않는 모호함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100%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정신세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라

전부 이해하거나 공감하진 못해도 그 나름의 독특함과 매력을 지녔다고 평가했었는데,

안개 속 소녀는 잘 읽히는 맛깔난 문장 외에는

도나토 카리시만의 힘이 잘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매번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다음에 또 읽어야 하나?’를 고민하곤 했는데,

안개 속 소녀는 그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래도 나중에 신작이 나오면 결국엔 고민 끝에 또 읽게 될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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