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피 스크리치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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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2016년에 출간된 크리피의 후속편입니다.

당시 서평을 찾아보니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작품이란 구절이 있는데,

크리피(creepy)라는 단어의 뜻 - ‘털이 곤두설 만큼 오싹한, 섬뜩할 정도로 기이한’ -처럼

오싹하고 기이한 사건을 다뤘던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그 덕분에 후속편이 나온 것 같습니다.

 

제목에 쓰인 스크리치(screech)는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제목은 오싹하고 기이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란 뜻이 됩니다.

이 소리는 작품 속에서 여자화장실에서 살인이 벌어질 때마다 들리는 것으로 설정됐는데,

끔찍한 연쇄살인에 어딘가 괴기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기게 만드는 기분 나쁜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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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에 자리한 류호쿠 대학 캠퍼스에서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여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잔인하게 살해되더니, 교수와 교직원들까지 희생당하기에 이릅니다.

크리피의 주인공이면서 범죄심리학자로서 경찰을 도운 바 있는 다카쿠라는

부임한지 얼마 안 된 류호쿠 대학에서 벌어진 참극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한편,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사무직원 시마모토는

연쇄살인사건 때문에 기자와 경찰들을 상대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사건 덕분에 인연을 맺게 된 학생부 여직원 야나세 유이에게 깊은 연정을 품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연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뚤어지기 시작하고,

미궁에 빠진 교내 연쇄살인사건이 내뿜는 악의는 시마모토에게 서서히 전염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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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피 스크리치는 크게 두 개의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하나는 대학 내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이고,

또 하나는 화자인 시마모토가 일그러진 사랑에 빠지면서 점차 괴물이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전작의 주인공인 다카쿠라는 두 이야기에 전부 관여하긴 하지만 조연 정도에 머뭅니다.

 

사실, 연쇄살인사건은 괴물로 변해가는 시마모토를 위한 화려한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마모토는 30대 중반의 주임이지만, 불우한 환경 탓에 대학진학을 포기한 핸디캡이 있고,

뚱뚱하고 작은 신체 때문에 결혼은커녕 변변한 애인조차 없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루저입니다.

그에게 연쇄살인사건은 과중한 업무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가슴 두근거리는 연애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상대는 타 부서에 근무하는 10살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 야나세 유이인데,

평소라면 말 한마디 붙여보지도 못했겠지만,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공통화제 덕분에 잦은 만남을 갖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들떴던 시마모토의 흥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배신, 증오, 복수 등 온갖 악의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2개의 사건(살인과 사랑)을 한꺼번에 겪게 된 결과

말 재주도 없고 볼품마저 없는 남자 시마모토가 내재돼있던 악의를 폭발시킨다는 뜻입니다.

 

교묘하게 병치된 두 개의 서사는 나름 긴장감 있게 잘 흘러갑니다.

화장실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은 잔혹함과 선정성이 적절히 배합됐고,

괴물이 되는 루저이야기 역시 차근차근 무게감을 갖춰갑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크리피 스크리치는 전작인 크리피의 명성에 편승했을 뿐,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엔 전혀 크리피하지 않은 평범함만 남긴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시마모토의 이야기의 가장 큰 맹점은 인간의 감정을 너무 단순하게 그렸다는 점입니다.

홀로 착각에 빠졌던 인물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과정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대단히 섬세하고 공감되게끔 그려져야 하는데,

시마모토의 변화는 어쩐지 작가가 설계한대로 움직이는 허상처럼 느껴집니다.

시마모토를 뒤흔들었던 야나세 유이라는 여자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시마모토라는 괴물을 만들기 위해 작위적인 행동만 골라서 저지르는 듯한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괴물이 된 시마모토의 진실을 다카쿠라 교수가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은

조금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오래 전 수사반장에서나 쓰였을 법한 단서를 통해 진실을 밝혔다는 점도,

그것이 마치 대단한 발견인양 반응하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설픈 범인에 어설픈 명탐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마모토 이야기의 배경이 됐던 여자화장실 연쇄살인사건 역시 아쉽게 마무리됐는데,

범인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게 허술하게 설정됐고,

경찰이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사건 초기에 체포할 수 있었던 상황임이 드러납니다.

범행과정에서 들린 오싹하고 기이한 짐승의 소리의 실체는 허탈함까지 느끼게 했고,

범행동기 역시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에카와 유타카는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부터 시작하여 세 번째 만난 셈인데,

이상하게도 갈수록 평점 별이 하나씩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사건 자체보다 사람의 심리나 괴이한 분위기에 더 주력하는 작가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심리도 분위기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후속작을 계속 기대해야 될지 여러 가지로 의문을 남긴 크리피 스크리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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