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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매미 ㅣ 엔시 씨와 나 시리즈 2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2017년 5월에 출간된 ‘하늘을 나는 말’에 이은 ‘엔시 씨와 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시리즈 작품이 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출간되는 것은 무척 드문 경우인데,
덕분에 전작의 기억과 여운을 간직한 상태에서 후속작을 읽게 됐습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나’는 전작보다 한 살을 더 먹은 스무살 문학부 여대생입니다.
책을 좋아하고, 나이답지 않게 고문학과 전통예능에 조예가 깊은 씩씩한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 가운데 라쿠고(落語)라는 이야기 예술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부채나 수건 같은 소도구와 함께 목소리, 추임새, 몸짓만으로
해학과 풍자가 섞인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연기하는 예술입니다.
그 라쿠고의 대가 중 특히 슌오테 엔시 씨를 좋아하는 ‘나’는
1년 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각별한(?) 사이가 되었고,
특히 일상에서 벌어진 기이하거나 미스터리한 일에 대해 숨김없이 상의하곤 했습니다.
‘밤의 매미’는 스무살이 된 ‘나’의 주변에서 벌어진 소소한 미스터리들을
여전히 친절하고 비범한 ‘라쿠고의 명인’ 엔시 씨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각각 100페이지 안팎의 세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출판사 소개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서점 서가의 책이 거꾸로 꽂혀 있는 이유와 그 범인을 밝히는 ‘으스름달밤’,
체스의 말과 달걀과 거울이 차례로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깜찍한 소동을 그린 ‘6월의 신부’,
남녀의 엇갈린 인연과 그 사정을 파헤치는 ‘밤의 매미’ 등입니다.
‘밤의 매미’는 1990년에 출간됐고, 4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면서
‘살인 없는 일상 미스터리’가 미스터리로서 공식적으로 인증 받게 만든 작품입니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을 ‘일상 미스터리의 고전’이라 부르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출간되는 일상 미스터리는 ‘살인’만 없을 뿐 꽤나 센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다
제법 치밀한 미스터리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기타무라 가오루의 ‘밤의 매미’나 전작인 ‘하늘을 나는 말’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순수 일상 미스터리와 ‘나’의 성장기가 믹스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전통예능인인 엔시 씨의 추리는
앞뒤가 착착 들어맞는 완벽한 논리보다는 감성이라든가 예술적 재능에 기반을 둔,
그러니까 심오한(?) 비약 또는 예술적 상상력에 의해 완성되고 있어서,
미스터리 자체를 기대한 요즘 독자들에게는 제법 싱겁게 읽힐 여지가 많은 작품입니다.
물론 엔시 씨의 추리는 객관적인 단서에서 출발합니다.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누구도 쉽게 간파하지 못한 포인트를 짚어내고,
그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추론합니다.
그것은 때론 악의일 때도 있고, 선의일 때도 있고, 양쪽의 경계선에 선 것일 때도 있습니다.
때론 따끔하게 악의를 꾸짖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에서 ‘나’와 엔시 씨는
“인간을 긍정하는 결말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번역자 정경진님의 후기)
‘나’ 역시 엔시 씨와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대하는 방법,
또,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교훈으로 삼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갑니다.
어쩌면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은 미스터리보다는 성장소설로 접근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미덕을 좀더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나는 말’의 서평 말미에 후속작 ‘밤의 매미’에 대한 저만의 기대를 남겼었는데,
“사건 같은 사건도 있으면 좋겠고, 신비한 엔시 씨도 좀 현실적이면 좋겠고,
반전이든 감동이든 나름의 비장의 무기도 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욕심입니다.”
하지만 기타무라 가오루의 일상 미스터리는 말 그대로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러니까 오히려 사건성이 희박한 진짜 일상의 해프닝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탐정 역할에 굳이 이야기 예술인 라쿠고의 명인 엔시 씨를 설정한 것도,
사건을 물어오는 ‘나’를 이제 갓 성인이 된 여대생으로 설정한 것도
분명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을 것입니다.
‘밤의 매미’는 그런 의도를 (전작보다도 더) 명확하게 보여준 작품이었고,
저의 욕심이 작가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엔시 씨와 나 시리즈’는 모두 6편이 출간됐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나머지 시리즈를 모두 출간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작을 읽고도 그랬듯이) 계속 이어서 읽을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성장과 ‘엔시 씨의 매력’은 구미가 당기지만,
과연 작가가 사건다운 사건을 설정해줄지,
그래서 무척이나 통속적인 저의 욕심을 충족시켜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