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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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격으로 도쿄 시내에서 두 건의 매춘부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39살 미혼인 는 두 사건의 피해자와 밀접한 관계입니다. 한 명은 어릴 적부터 괴물 같은 미모로 주위를 압도했던 친동생 유리코이고, 또 한 명은 명문 Q중고교 동창생인 가즈에입니다. 재판이 열리는 법원에서 Q중고교 동창들과 마주친 는 피해자들이 남긴 일기를 전달받곤 20년도 넘은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립니다. 그리고 자신과 두 피해자를 비롯한 네 명의 여성이 어떻게 괴물로 진화됐는지를 찬찬히 독자에게 들려줍니다.

 

이 작품은 1997년에 벌어진 도쿄전력 여사원 매춘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집필됐다고 합니다. 명문대를 졸업한 대기업 간부가 밤이면 거리에서 몸을 팔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당시 꽤 충격적인 뉴스였다고 하는데, 기리노 나쓰오는 한 여성의 극단적인 변신을 야기한 동기와 과정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을 픽션으로 그리기 위해 10대 시절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직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 마음속에 괴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제 의도가 어느 정도는 전해진 셈입니다.”라고 밝힙니다.

 

이 작품에는 네 명의 괴물이 등장합니다. 15살에 숙부와 첫 관계를 가진 유리코는 축복인지 저주일지 모를 괴물 같은 미모와 타고난 님포마니아(색정광, 비정상적 성욕항진증)로 인해 평생 수많은 남자에게 몸을 팔아왔고, 그녀의 친언니인 동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못 생긴 추녀라는 낙인을 오로지 악의라는 방패로 막아내며 평생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고슴도치처럼 살아왔습니다. 또 물려받은 것도 타고난 것도 부족했던 가즈에는 노력으로 그 모든 걸 극복했지만 대기업 입사 후 또 다른 차별과 멸시와 마주친 뒤 자신만의 해방구를 찾기 위해 매춘부가 됐고, 전도유망한 모범생이었던 미쓰루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타인을 파멸시키는 운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괴물이 된 사연은 스스로의 선택과 판단에 의한 것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악연에 의해 발아되고 증식된 것들입니다. 괴물 같은 미모의 동생 유리코가 없었다면 는 악의로 똘똘 뭉친 괴물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기업 간부와 매춘부라는 이중생활을 영위했던 가즈에는 사립명문 Q중고교에서의 끔찍한 학창생활이 아니었다면 평범하지만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 됐을 인물입니다. , 1등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던 모범생 미쓰루와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타고난 미모를 지녔던 유리코가 자신들의 현실과 재능에 만족했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적인 상황을 맞이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기승전결과는 거리가 먼 나열식 서사를 통해 이들의 악연과 괴물로의 진화과정을 지나칠 정도로 세세하고 꼼꼼하게 그려냅니다. 순수하지만 동시에 사악했던 10대 시절부터 마흔을 코앞에 둔 시기에 맞이한 각자의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네 명의 일생을 지켜본 독자들에겐 그저 씁쓸함만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괴물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들고 싶었다는 기리노 나쓰오의 의도는 완벽하게 성공한 셈인데, 개인적으론 과도한 분량과 작위적인 캐릭터 때문에 좀처럼 이입하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특히 네 명의 주인공은 물론 단역에 가까운 조연들까지 극단적으로 일그러지고 비틀린 인물들을 지켜보는 일이 꽤 힘들었는데, 어쩌면 그런 이유로 그로테스크라는 제목이 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다 보니 외모로 평가받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차별의 희생양이 되거나, 때론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머리 좋은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출판사 소개글처럼 현대 여성이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걸작이라든가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내면의 괴물적인 본능이나 충동을 깊은 공감대 형성을 통해 치유하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설정 탓에 혐오감 이상의 공감은 어렵겠다는 생각인데, 어쩌면 제가 여성에 대해 너무 모르는 편협한 남자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네 명의 괴물이 현대 여성을 상징한다거나 여성들의 본능과 충동에 대한 치유를 제공한다는 건 이 작품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홍보성 멘트라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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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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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에서 30대 여성 오기현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실족사나 자살로 보였지만 성()이 다른 언니 윤의현은 담당형사 백규민에게 화원을 운영하는 동생의 의붓아버지가 의심스럽다는 암시를 준다. 백규민은 실제로 화원에서 여러 가지 수상한 정황을 찾아낸다. 한편, 자신이 출강하는 대학에서 교수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자 윤의현은 전력을 다해 피해학생을 도우려 애쓴다. 그리고 나름의 방식으로 성추행 교수에 대한 응징을 꾀한다.

수사가 답보 상태인 가운데 또 다른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백규민은 무관해 보이던 사건들이 실은 서로 연결돼있음을 직감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죄와 벌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릴 듯한 이 작품은 탐욕에 찌든 인간의 추악한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그에 대처하는 주인공들의 고통스런 여정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폭력, 갈취, 갑질, 성폭력, 은폐, 살인 등 온갖 끔찍한 행위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부와 권력과 힘 앞에서 그저 무기력할 뿐인 희생자들은 물리적인 고통은 물론 정신마저 참혹하게 파괴당하면서도 좀처럼 세상을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크게 보면 두 개의 사건 오기현의 죽음, 대학 내 성폭력 사건 이 병행되는데,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이 두 사건의 유일한 공통점은 시간강사 윤의현이라는 인물뿐입니다. 그녀는 동생의 죽음의 진실을 찾기 위해 백규민 형사를 돕는 한편, 성폭력의 트라우마에 벌벌 떠는 제자를 감싸주며 가해자의 추악한 민낯을 폭로하려 동분서주하기도 합니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백규민은 슈퍼맨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라 수사 과정이 조금은 답답해 보이긴 하지만 그만큼 인간적이고 사실감을 갖춘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굳건한 믿음과 집요한 의심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데, 특히 한 번 사람을 믿으면 계속 신뢰하는 그의 인성 덕분에 사건 관련자인 윤의현에게 다소 감정적으로 이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이입은 백규민의 수사를 혼선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미스터리 픽션이다 보니 결국 어떤 식으로든 악()은 응징될 거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폭력에 휘말려 인생의 일부든 전부든 망가지고 만 희생자들을 지켜보는 일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가해자들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심이 그에 비례할 수밖에 없었던 건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감정적인 이입이 어느 선 이상을 넘지 못한 것도 사실인데, 개인적으론 작가가 사건들을 지나치게 객관적으로 혹은 최대한 담담하게 그리려 한 탓이란 생각입니다. 이 아쉬움은 결국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극복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특별한 여운이나 인상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분량에 비해 인물과 사건이 많고 이야기 전개도 빨라서 어느 대목을 소개하든 크고 작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보니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긴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졌고 캐릭터와 구성과 문장 모두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야박한 평점을 준 이유는 딱 한 가지, 막판 반전 코드 때문입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중반부쯤부터 혹시?”라는 예감을 가질 수 있는데, 개인적으론 제발 그것만은...”이란 바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코드가 진실을 여는 열쇠로 작동되자 앞서 읽은 이야기들이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맥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근거한 평이긴 하지만 얼마 전에도 이 코드가 활용된 한국 스릴러를 읽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어서 그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안정감 있는 필력과 문장 덕분에 이선영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지만 출간된 작품들을 살펴보니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소재들이라 당장 찾아 읽게 될 것 같진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녀의 미스터리나 스릴러 작품이 출간된다면 반드시 읽을 한국 장르물목록 상단에 올려놓을 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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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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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래 경제 공황과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져온 베네수엘라. 공포정치와 폭력적 독재는 물론 살인률 세계 1위를 기록한 흉흉한 정국 속에서 30대 여성 아델라이다 팔콘이 감내해야 했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그린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친 아델라이다는 정부의 비호 아래 암거래를 일삼는 보안관일당에게 아파트를 빼앗기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이웃집 여자 아우로라 페랄타가 사망한 걸 발견한 아델라이다는 그녀 앞으로 발급된 스페인 여권을 통해 신분을 훔쳐 지옥과도 같은 베네수엘라를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스페인 여자의 딸은 주인공 아델라이다가 아니라 그녀가 신분을 훔치려는 이웃의 죽은 여자 아우로라 페랄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연히 아델라이다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제목 자체가 주는 함의와 아이러니가 무척 인상 깊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그저 낯설기만 한 이웃, 그래서 이름보다 더 친숙한 스페인 여자의 딸이란 호칭, 그리고 그녀의 신분을 훔치는 것만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티켓이란 설정은 벼랑 끝에 선 아델라이다가 얻은 마지막 희망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지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여자의 딸이 된 아델라이다가 스릴 넘치는 액션을 펼치거나 기민한 첩보물의 주인공이 되어 베네수엘라를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도 아닙니다. 물론 공포정치가 휘두른 폭력의 민낯과 끔찍한 살상의 기록이 간간이 묘사되곤 하지만 그보다는 아수라장을 헤쳐 나온 평범한 30대 여성의 지독한 생존기에 더 가깝습니다. , 어린 시절의 아델라이다가 보낸, 가난하지만 평화로웠던 베네수엘라에서의 일상이 지금의 현실과 대비되듯 번갈아 한 챕터씩 배치되어 현재의 그녀의 처지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줍니다.

 

어머니를 땅에 묻으면서 언제 무장폭도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전전긍긍하거나 시신의 뼈까지 탈취하는 무리들이 어머니의 묘를 파헤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 또 난데없는 습격자들에게 하루아침에 집을 빼앗기는가 하면 밤마다 이어지는 약탈과 방화에 불을 끈 채 숨죽여야 하는 상황, 그리고 스페인 여자의 딸로 변신 과정과 탈출 과정에서의 위기일발 등 한 달여에 걸친 아델라이다의 지옥은 어느 장면 할 것 없이 생생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무엇보다도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일념 아래 이웃 여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장면은 섬뜩하면서도 애처롭고 안쓰럽게 그려져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번역가 역시 이 장면을 압권으로 꼽았는데, 이 작품이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오랫동안 회자될 명장면이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다소 낯선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다 정치적, 역사적 사료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별로 없어서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거리감 있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몰라도 전혀 지장이 없을뿐더러, 현실의 요소가 그대로 반영되었더라면 오히려 소설 읽기에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각주나 부연설명이 부족한 탓에 앞뒤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 몇 번씩 되읽어도 그 의미나 문맥이 잘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문장들이 간혹 있었는데, 대부분 원작자의 글쓰기 성향으로 보였지만 때론 이해 가능한 의역이 필요해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소개글만 봤을 땐 탈출 스릴러또는 정치적 성향이 짙은 고발성 스토리를 기대했던 게 사실인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다소 밋밋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독자에 따라 휴머니즘과 리얼리티의 매력을 만끽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때론 주장이나 이념보다 생존이 탄탄하고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의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사도 전개방식도 주인공의 캐릭터도 전혀 다르지만 읽는 동안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시대의 어둠과 그에 의해 자행된 무고한 죽음이라는 공통점 때문일 텐데,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팩션의 힘과 매력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낯선 이국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베네수엘라 여인 아델라이다가 스페인 여자의 딸이 되어 어둠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야기에서 깊은 인상과 여운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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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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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적인 안과의로 유명한 주커 박사의 실체는 잔혹한 연쇄 강간살인마. 그에게 납치당한 뒤 끔찍한 수술과 강간을 당한 피해자들은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기 때문. 하지만 증거도 증인도 없어 그를 구속할 여지가 없던 경찰은 눈알수집가사건에서 활약한 맹인 영매 알리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알리나는 환영 속에서 주커 박사의 다음 희생자를 본다’.

한편 아들 율리안을 살리기 위해 눈알수집가의 요구대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쐈던 초르바흐는 기적적으로 되살아나지만 자신 때문에 아들이 죽었을 거란 사실에 깊은 절망에 빠진다. 오로지 복수심만으로 살아가게 된 초르바흐는 주커 박사와 눈알수집가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믿으며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병원을 탈출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이 작품은 전작인 눈알수집가를 읽지 않으면 좀처럼 이입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상하권으로 분권된 한 편의 작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건 눈알수집가의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하긴 했지만) 거의 그대로 인용해야만 했습니다. 또 이어질 서평 역시 대체로 인상비평 수준에만 머물게 될 것 같은데, ‘눈알수집가를 읽은 독자라면 무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참고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사이코스릴러로 분류되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들은 롤러코스터 같은 긴장감 끝에 쾌감을 만끽하게 만드는 일반적인 스릴러와는 달리 무척 불편하고 무겁고 때론 불쾌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알사냥꾼은 앞서 읽은 네 편의 작품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특기(?)가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주인공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몸과 마음이 모두 거의 폐인에 가까운 상태로 등장합니다.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쏘고, 그 후유증으로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는가 하면, 범인에게 납치된 뒤 끔찍한 수술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겨우 위기를 벗어났나 싶으면 칼로 난도질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몸만 괴로운 게 아니라 정신 역시 수없이 바닥을 치며 황폐해지고 마는데, 거기에다 전대미문의 연쇄 강간살인마인 눈알사냥꾼과 희대의 일가족 살해범 눈알수집가가 양쪽에서 협공을 해대고 있으니 그야말로 독자마저 제정신으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맙니다.

 

감사의 말을 통해 작가 자신이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니 좀 이상한 분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고백한 점이나, 작품 속에서 주인공 초르바흐의 입을 통해 실망시켜서 미안하다. 나는 할리우드 시나리오를 쓰고 싶지 않다.”, “()은 그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다.”라고 거듭 자신의 지향점을 강조하긴 했지만, ‘눈알사냥꾼에서 펼쳐진 이야기들은 작가의 변()이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독하고 파괴적이고 악마적인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서사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힘이자 마력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지나치게 오버한 나머지 오히려 거부감만 느끼게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악은 공포보다는 비현실적인 인상만 남겼고, 악의 동기는 억지로 갖다 붙인 느낌이었으며, 수차례 거듭되는 반전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란 느낌이 더 강할 정도로 작위적이었습니다. 눈알사냥꾼눈알수집가의 협업(?)은 조금도 긴장감을 발휘하지 못했고, 막판에 드러난 진실 혹은 진범의 정체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는데, 진범의 입을 통해 장황하게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안쓰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앞뒤 정황을 끼워 맞추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어떻게 하면 악을 좀더 세고 독하게 그려볼까, 하는 작가의 노력만 보였을 뿐 스릴러 서사 자체는 뒤죽박죽이 돼버렸다고 할까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은 매번 다음에 이 작가의 작품을 또 읽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남겨주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자꾸만 기웃거리게 되는 게 사실인데, 한국에 소개된 그의 작품 가운데 아직 못 읽은 작품이 더 많은 편이라 어쨌거나 조만간 또다시 불편하고 무거운 그의 사이코스릴러를 읽게 될 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몽실북클럽에서 올해 8월까지 그의 작품을 스토킹하는 중이라 부득이 읽어야 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만...)

악이 지독하고 세게 그려지는 건 충분히 매력적인 설정이지만 다음에 읽을 작품에선 그 설정을 뒷받침하는 스릴러 서사의 힘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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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냥 - 상
텐도 아라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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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은 가족사냥1995년 판(한국에선 2003년 문학동네 출간)입니다. 이후 2004(시대의 변화가 반영된) 전면 개정판이 나왔고, 한국에 소개된 건 2012년 북스피어를 통해서입니다. 엔딩을 포함 꽤 큰 수정이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 서평은 1995년 판을 읽고 쓴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번역가의 작품인 덴도 아라타의 고독의 노랫소리의 번역 후기에 가족은 인간의 안식처지만, 모든 욕망과 억압의 씨앗이 뿌려지는 곳이기도 하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문구는 지금까지 읽은 대부분의 덴도 아라타의 작품들 기저에 자리 잡은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섬뜩한 느낌의 제목을 가진 가족사냥은 더없이 친밀하지만 동시에 더없이 서로에게 잔인해질 수 있는 가족의 민낯을 꽤 잔혹한 방식으로 그리고 있어서 욕망과 억압의 씨앗이 뿌려지는 곳을 너머 지옥도 그 자체를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일가족이 참혹하게 살해된 현장에서 등교거부 중이던 아들이 남긴 유서가 발견됩니다. 경찰은 아들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짓지만 형사 마미하라는 외부인에 의한 타살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한편, 이 사건의 최초 목격자인 고교 미술교사 스도 슌스케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제자 요시자와 아이가 자신을 강간범으로 무고한 탓에 곤란한 지경에 빠집니다. 더구나 자신이 가정방문했던 또 다른 등교거부 중인 제자 일가족이 앞선 사건과 유사한 형태로 몰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자책감에 휩싸이고 맙니다.

 

상하권 합친 분량이 810페이지인데다 적잖은 수의 인물과 사건이 복잡하게 설정돼서 좀처럼 줄거리 정리가 어려운 작품입니다. 크게 보면 마미하라 형사가 일가족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좀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자신이 연루된 두 건의 일가족 몰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자책감에 빠진 스도 슌스케의 이야기,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운 가족으로 인해 정신의 붕괴를 겪는 여고생 요시자와 아이의 혼란, 그리고 가족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공기관의 심리상담사와 개인상담사의 충돌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으로 인한 오랜 트라우마 혹은 현재진행형인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사 마미하라는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아버지를 혐오했지만 그 자신이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가부장이 된 끝에 모범생이던 아들을 자살로 내몬 것은 물론 아내의 정신줄마저 끊어놓았고, 미술교사 슌스케는 가족을 꾸리는 일에 공포를 느낀 나머지 임신한 연인에게 결별을 선언합니다. , 여고생 요시자와는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가족에 대한 혐오와 광기에 사로잡혀 자해를 일삼곤 합니다.

주인공들 외에 크고 작은 조연들 대부분도 가족에게서 상처를 받았거나 가족을 학대하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어서 안 그래도 돌덩이를 끌어안은 심정으로 읽어야 되는 덴도 아라타의 작품 가운데 가장 힘들고 불편했던 책읽기가 돼버린 작품입니다.

 

덴도 아라타는 이 작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무서워할까? 도망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공포가 아닐까? 그것은 바로 가족.”이라는 점에 착안했다고 합니다. 상식이자 진리와도 같은 사랑이 넘치는 따스한 보금자리로서의 가족은 애초 존재한 적도 없는 환상이거나 권력과 미디어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허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동학대, 가정폭력, 존비속살인 같은 끔직한 사건이 터지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자 극소수의 일탈행위처럼 포장하려 애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덴도 아라타는 (주제를 위해 다소 작위적으로 설정된 듯 보이긴 하지만) 가족의 문제가 더는 이례적이지도, 극소수의 일탈행위도 아니라는 점을 이 작품 속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거듭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잔혹하고 엽기적인 묘사까지 동원된 살인과 폭력 장면은 다소 거북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덴도 아라타의 가족이라는 허상에 대한 반기를 위해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메인 주인공인 형사 마미하라의 입장입니다. 그는 유능한 본청 형사였지만 아들의 자살과 아내의 정신병으로 인해 관할서로 좌천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일가족 몰살이 외부인에 의한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유일한 형사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건 그의 외부인 범행설이 물증이나 단서에 근거했다기보다는 그의 아집의 결과라는 점입니다. 여전히 아들의 죽음이 자기 때문도 아니고 자살도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미하라는 자식이 부모를 죽일 리 없다.”는 아집에 빠져 외부인 범행설을 주장한다는 뜻입니다.

그 자신이 아들에게 저지른 행위들, 즉 과도한 기대, 인색한 칭찬, 무관심과 무언의 압박, ‘남자다움에 대한 강요 등 자신의 뜻대로 아들의 인격을 조종하려 했던 행위들에 대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족이라면 그런 일을 벌일 수 없다.”는 궤변에 사로잡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는 아이러니한 설정 하나만으로도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가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는 개인의 문제 혹은 그 집 사정으로 치부할 수 없는 가족의 문제를 사회적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는 생각인데,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주제를 전달하곤 있지만 툭하면 결혼식 장면을 해피엔딩으로 삼는 한국 드라마의 맹목적인 공허함을 떠올려보면 이 정도 과격함은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필요악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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