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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냥 - 상
텐도 아라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가 읽은 ‘가족사냥’은 1995년 판(한국에선 2003년 문학동네 출간)입니다. 이후 2004년 (시대의 변화가 반영된) 전면 개정판이 나왔고, 한국에 소개된 건 2012년 북스피어를 통해서입니다. 엔딩을 포함 꽤 큰 수정이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 서평은 1995년 판을 읽고 쓴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번역가의 작품인 덴도 아라타의 ‘고독의 노랫소리’의 번역 후기에 “가족은 인간의 안식처지만, 모든 욕망과 억압의 씨앗이 뿌려지는 곳이기도 하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문구는 지금까지 읽은 대부분의 덴도 아라타의 작품들 기저에 자리 잡은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섬뜩한 느낌의 제목을 가진 ‘가족사냥’은 더없이 친밀하지만 동시에 더없이 서로에게 잔인해질 수 있는 가족의 민낯을 꽤 잔혹한 방식으로 그리고 있어서 ‘욕망과 억압의 씨앗이 뿌려지는 곳’을 너머 지옥도 그 자체를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일가족이 참혹하게 살해된 현장에서 등교거부 중이던 아들이 남긴 유서가 발견됩니다. 경찰은 아들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짓지만 형사 마미하라는 외부인에 의한 타살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한편, 이 사건의 최초 목격자인 고교 미술교사 스도 슌스케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제자 요시자와 아이가 자신을 강간범으로 무고한 탓에 곤란한 지경에 빠집니다. 더구나 자신이 가정방문했던 또 다른 등교거부 중인 제자 일가족이 앞선 사건과 유사한 형태로 몰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자책감에 휩싸이고 맙니다.
상하권 합친 분량이 810페이지인데다 적잖은 수의 인물과 사건이 복잡하게 설정돼서 좀처럼 줄거리 정리가 어려운 작품입니다. 크게 보면 마미하라 형사가 일가족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좀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자신이 연루된 두 건의 일가족 몰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자책감에 빠진 스도 슌스케의 이야기,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운 ‘가족’으로 인해 정신의 붕괴를 겪는 여고생 요시자와 아이의 혼란, 그리고 가족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공기관의 심리상담사와 개인상담사의 충돌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으로 인한 오랜 트라우마 혹은 현재진행형인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사 마미하라는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아버지를 혐오했지만 그 자신이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가부장이 된 끝에 모범생이던 아들을 자살로 내몬 것은 물론 아내의 정신줄마저 끊어놓았고, 미술교사 슌스케는 가족을 꾸리는 일에 공포를 느낀 나머지 임신한 연인에게 결별을 선언합니다. 또, 여고생 요시자와는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가족에 대한 혐오와 광기에 사로잡혀 자해를 일삼곤 합니다.
주인공들 외에 크고 작은 조연들 대부분도 가족에게서 상처를 받았거나 가족을 학대하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어서 안 그래도 돌덩이를 끌어안은 심정으로 읽어야 되는 덴도 아라타의 작품 가운데 가장 힘들고 불편했던 책읽기가 돼버린 작품입니다.
덴도 아라타는 이 작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무서워할까? 도망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공포가 아닐까? 그것은 바로 가족.”이라는 점에 착안했다고 합니다. 상식이자 진리와도 같은 ‘사랑이 넘치는 따스한 보금자리’로서의 가족은 애초 존재한 적도 없는 환상이거나 권력과 미디어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허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동학대, 가정폭력, 존비속살인 같은 끔직한 사건이 터지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자 극소수의 일탈행위처럼 포장하려 애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덴도 아라타는 (주제를 위해 다소 작위적으로 설정된 듯 보이긴 하지만) 가족의 문제가 더는 이례적이지도, 극소수의 일탈행위도 아니라는 점을 이 작품 속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거듭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잔혹하고 엽기적인 묘사까지 동원된 살인과 폭력 장면은 다소 거북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덴도 아라타의 ‘가족이라는 허상에 대한 반기’를 위해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메인 주인공인 형사 마미하라의 입장입니다. 그는 유능한 본청 형사였지만 아들의 자살과 아내의 정신병으로 인해 관할서로 좌천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일가족 몰살이 외부인에 의한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유일한 형사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건 그의 ‘외부인 범행설’이 물증이나 단서에 근거했다기보다는 그의 아집의 결과라는 점입니다. 여전히 아들의 죽음이 자기 때문도 아니고 자살도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미하라는 “자식이 부모를 죽일 리 없다.”는 아집에 빠져 ‘외부인 범행설’을 주장한다는 뜻입니다.
그 자신이 아들에게 저지른 행위들, 즉 과도한 기대, 인색한 칭찬, 무관심과 무언의 압박, ‘남자다움’에 대한 강요 등 자신의 뜻대로 아들의 인격을 조종하려 했던 행위들에 대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족이라면 그런 일을 벌일 수 없다.”는 궤변에 사로잡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는 아이러니한 설정 하나만으로도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가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는 개인의 문제 혹은 ‘그 집 사정’으로 치부할 수 없는 가족의 문제를 사회적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는 생각인데,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주제를 전달하곤 있지만 툭하면 결혼식 장면을 해피엔딩으로 삼는 한국 드라마의 맹목적인 공허함을 떠올려보면 이 정도 과격함은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필요악’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