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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2 - 다시 만난 친구 ㅣ 아르테 오리지널 7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평점 :
나가노 현의 소도시 마쓰모토에 위치한 혼조병원의 소화기 내과 5년차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는 여러 가지 이유로 괴짜로 불립니다. 근대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광팬으로서 그의 소설을 줄줄 외우고 다니는 것은 물론 말투까지 고풍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뛰어난 의술과 함께 오직 환자의 미소만 생각하는 선한 능력자이기도 하지만, 입이 험하고 차림새도 영 허술한데다 자신을 근면성실의 전형이라 자화자찬하는 등 어딘가 4차원 같은 인상이 짙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환자를 끌어들이는 구리하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외래든 응급실이든 그가 나타나는 곳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환자가 몰려들어서 동료의사와 간호사들로부터 장난기 섞인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신의 카르테 1’의 서평에 쓴 구리하라에 대한 소개글입니다.)
인간미 넘치는 괴짜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가 펼쳐 보이는 감동적인 메디컬 휴먼 드라마,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구리하라가 겪는 시련이자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종종 (의사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망각되고 마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상대하는 것도 의사의 일”이라는, 현실에선 좀처럼 볼 수 없을 것 같은 이상적이고도 감동적인 주장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두 가지 시련이자 교훈이 실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5년 전 구리하라와 함께 의대를 졸업한 후 도쿄의 대학병원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던 신도 다쓰야가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구리하라가 근무하는 혼조병원에 부임합니다. ‘의학부의 양심’이라 불릴 정도로 모범생에 엘리트였으며 자신의 장기(將棋) 친구였던 다쓰야의 부임에 열악한 지역병원에서 고군분투하던 구리하라는 그저 반가울 뿐이지만, 얼마 후 그의 불성실한 태도가 병원에 회자되자 믿기지 않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귀향한 진짜 이유를 알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다쓰야를 통해 새삼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구리하라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의사로서의 지난 5년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혼조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일하는 간호사와 스태프들조차 간혹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밤샘 당직을 마치고도 종일 외래환자를 봐야 되고, 퇴근 후든 휴일이든 호출을 받으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선지 구리하라는 자신을 포함한 혼조병원의 의사들을 “수면 부족과 저혈당을 거느린 채 자신의 생명을 깎아내고, 발치에 무성히 널려 있는 부조리와 답답함을 차내며 병원이라는 이름의 도깨비 섬에서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열악한 지역의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물론 구리하라는 그런 와중에도 스스로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잊은 채 의료 활동에 매진해 왔습니다. 밤낮없이 과로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의사라면 감당해야 할 당연한 일로 여겼고, 며칠씩 집에 못 들어가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겨온 것입니다. 하지만 다쓰야의 귀향은 구리하라에게 큰 충격을 안깁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사람’답게 살 권리 사이에서 구리하라의 고뇌는 커져갈 뿐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상대하는 것도 의사의 일”이라는 구리하라의 주장은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다쓰야의 주장과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치료 가능한 환자에게 매진하는 것만으로도 과로와 격무에 시달릴 판인데 치료 불가능한 환자까지 전력을 다해 돌본다면 사람답게 살 권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모두 손에 쥘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하나를 반드시 버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확신한 구리하라는 의사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열심히 살겠다는, 실은 초인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을 취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눈물을 쉴 새 없이 이끌어낼 정도로 감동적이고 이상적인 의술을 펼쳐 보입니다.
심각한 의료대란을 겪고 있는 요즘엔 구리하라나 다쓰야 같은 의사의 존재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구리하라처럼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상대하는 것도 의사의 일”이라고 여기며 의료 현장에서 혼신의 힘을 쏟는 진짜 의사들의 노고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많이 봐온 전형적인 메디컬 드라마와는 약간 결이 다른 주제를 다룸으로써 ‘신의 카르테 2’는 의사에 대해, 의술에 대해,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주제는 묵직하지만 혼조병원 안팎의 여러 인물들의 감동적이고 따뜻하면서도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들 덕분에 독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물론 중환자가 많은 병원이 무대이다 보니 수시로 안타깝고 애절한 죽음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 대목에선 누구나 눈물샘이 폭발하듯 터지는 경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구리하라가 그런 죽음을 거듭 겪으며 진짜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다음 작품인 ‘신의 카르테 3’는 ‘시간의 풍경’이라는 다소 오묘한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새 인물이 또 등장하는 것 같은데, 1편에 비해 한 뼘 훌쩍 성장한 구리하라가 3편에서는 또 어떤 경험들을 통해 지독하고도 따뜻한 성장통을 겪게 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