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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장난
시미즈 가루마 지음, 최주연 옮김 / 모모 / 2024년 6월
평점 :
‘금지된 장난’은 주문을 통해 망자를 소생시키는 의식을 다룬 공포물입니다. 신체 일부를 땅에 묻은 뒤 “엘로힘 엣사임”이라는 주문을 진심으로 외우면 망자가 온전한 몸을 되찾아 소생하는 것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여러 번 차용된 설정이긴 하지만, 작가 시미즈 가루마는 단지 ‘공포’에만 방점을 찍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다채로운 심리와 거듭되는 반전을 잘 활용함으로써 스토리의 힘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포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주인공 이하라 나오토가 저지른 ‘금지된 장난’은 어린 아들 하루토에게 ‘주문을 통한 소생 의식’을 알려준 일입니다. 잘린 도마뱀 꼬리를 땅에 묻고 주문을 외우면 도마뱀이 되살아난다는 아빠 나루토의 장난기 섞인 거짓말을 믿은 아들 하루토는 진심을 다해 주문을 외우며 도마뱀의 소생을 기원합니다. 장난이 지나쳤음을 깨달은 나오토는 또 한 번의 거짓말로 하루토를 속여 소생 의식을 겨우 중단시켰지만,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은 건 아내 미유키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은 이후입니다. 하루토가 사고 현장에서 몰래 갖고 온 엄마의 잘린 손가락을 땅에 묻고 소생 의식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미유키의 잘린 손가락이 묻힌 봉분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음을 감지한 나오토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망자의 소생 의식, 영능력자, 빙의 등 여러 가지 초자연적 현상이 등장하고, 인간이 아닌 존재가 여러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등 전형적인 호러물의 구도를 갖추고 있지만, ‘금지된 장난’은 드라마틱한 설정을 통해 무척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불륜과 의심, 질투와 집착, 그리고 거기에서 자라난 지독한 복수심이 그것인데, 그래선지 단지 공포심을 일으키는 데만 방점을 찍는 순수 호러물보다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 서늘함을 즐길 수 있습니다.
불륜과 질투와 복수는 과거 나오토의 직장후배였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살아가고 있는 히로코를 중심으로 벌어집니다. 5년 전, 나오토와 마음으로 불륜을 저지르던 히로코는 어느 날 갑자기 주변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끔직한 괴현상 때문에 직장을 잃고 정신병원에 수용됐고, 퇴원 후에는 그 모든 괴현상들이 나오토의 아내 미유키의 저주 때문이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현재, 미유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오토의 집을 방문한 히로코는 아들 하루토의 망자 소생 의식에 미유키의 혼이 호응하고 있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곤 그대로 얼어붙습니다. 미유키의 혼이 여전히 자신을 저주하고 있으며, 만일 그녀가 소생한다면 5년 전처럼 단지 끔찍한 괴현상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아들이 벌이는 망자의 소생 의식에 충격을 받은 나오토가 독자의 공포심을 대변하며 수세적이고 나약한 입장을 맡았다면, 히로코는 괴현상에 시달렸던 5년 전의 연약한 모습과 달리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태도로 초자연적인 존재와 맞서는 인물입니다. 소생 의식의 주인공인 미유키는 마땅히 처단돼야 할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거꾸로 연민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며, 엄마의 소생을 간절히 바라는 하루토 역시 순수함과 비통함을 발산하며 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앞서 “드라마틱한 설정을 통해 무척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라고 언급한 건 바로 이런 특별하고 개성 넘치는 인물들 때문입니다. 피와 체액과 살점이 난무하는데다 막판의 반전에 이르기까지 내내 서늘함을 유지하는 호러물이지만 애틋하고 안쓰러운 감정들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금지된 장난’은 시리즈로 이어져 세 편 정도 더 출간됐다고 합니다. 막판 반전과 함께 독자에게 던져진 흥미로운 떡밥 때문에 후속작이 무척 궁금해졌는데, 이 작품이 호응을 얻어 한국 독자들도 후속작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