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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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가 창조한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가 활약하는 네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시간적으로는 점성술 살인사건을 해결한 1979년부터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는 시기가 배경입니다. 나름 인정받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론 점성술 살인사건밖에 만나보지 못한 시마다 소지입니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용와정 살인사건등 중고서점을 통해 구입한 작품들은 많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읽지 못한 상태에서 우연히 최신간인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부터 읽게 됐습니다. 아직까지 이만한 혹평을 쓴 적이 없어서 여러 가지로 유감스럽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감이 컸기에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느낀 그대로를 써볼까 합니다.

 

숫자 자물쇠

1979년 크리스마스 무렵, 무례하고 버릇없는 미타라이 기요시가 사건 해결 과정에서 친구를 감동시켰다는 이야기. 정작 사건은 평범했고, 결과는 감동을 줄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그런데, 제목으로 쓰인 숫자 자물쇠는 사건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였는데, 그에 대한 미타라이의 허접한추리를 보면서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던... 혹시 무슨 말장난이라도 숨어있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바보 취급당했다는 느낌을 받은 독자는 비단 만은 아닐 듯... 첫 작품부터 맥이 풀리는 바람에 계속 읽어야 하나, 잠시 고민...

 

질주하는 사자

파티장에 함께 있던 사람이 갑작스런 정전 직후 방을 뛰쳐나갔고, 잠시 후 고가선로에서 열차와 충돌한 사체로 발견.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미타라이가 보란 듯이 해결하는 이야기. 하지만, 그가 범인을 지목하며 설명한 범행 수법은 숫자 자물쇠처럼 억지 혹은 끼워 맞추기였던... 말하자면 결과를 정해놓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미타라이는 증거나 개연성에 대한 설명 없이 단지 추측만으로 복잡다단한 범죄과정을 코앞에서 지켜본 것처럼 설명.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어김없이 등장하는 미타라이의 설명 불가능한 초능력’. 미스터리라기보다는 한 편의 해학적인 콩트 같은... 그 덕분에 앞서 두 편에 비해 배신감은 덜 들었지만, 여전히 분노의 게이지는 내려가지 않는... 이제 한 편 남았음.

 

그리스 개

그나마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사실감이 조금준수하긴 했지만, 여전히 결과를 정해놓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형식은 전작들과 동일. 훨씬 더 쉬운 방법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었던 범인들이 미타라이의 천재성을 입증해주기 위해일부러 몇 배는 더 힘든 범행 수법을 고안해낸 것 같아 오히려 동정심(?)이 들었던...

 

시마다 소지가 이 작품을 통해 대단한 미스터리나 뒤통수치는 반전을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 제목처럼, 독자들이 무례하고 버릇없는 미타라이 기요시와 친해질 수 있게끔 그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더불어 세계 정상급의 뮤지션을 압도할 정도의 기타 연주력 등 미타라이의 개인기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들을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도 눈에 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탐정의 사건 해결인 만큼 미스터리의 덕목은 갖춘 상태에서 작가의 의도를 담아냈어야 합니다. 물론, 단편이 갖는 스케일이나 깊이에 있어서의 한계도 충분히 고려했지만, 네 편의 수록작은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품질자체에 하자가 있다고밖에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은 지도 꽤 오래 전 일이라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미타라이 기요시가 특이하고 버릇없긴 해도 사소한 단서 하나도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한 캐릭터였다는 점, 과장됐긴 해도 그 박학다식함이 작위적으로 여겨지진 않았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었는데, 오히려 그의 인사를 읽고 나니, 그 추억들이 전부 안 좋은 쪽으로 변질돼버린 것 같습니다.

언젠가 시마다 소지의 작품들을 쌓아놓고 한편씩 음미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물론 그의 명성이 결코 헛되이 쌓이진 않았을 테니 이런 독후감을 느낄 일은 없겠지만) 왠지 맥 빠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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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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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는 스스로 미쳤거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서른 즈음의 여자입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기억 곳곳이 뭉텅뭉텅 사라져버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벌어진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반복된 끝에 가정은 파괴됐고 직장에서도 쫓겨납니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일은 아무 기억도 없는 상태에서 주위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점, 그리고 아무리 봐도 자신이 죽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결국 도망자 신세를 택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면서 소피는 파리 경찰의 추격을 받기에 이릅니다. 비참한 도망자 생활을 청산하기 위한 소피의 마지막 선택은 신분 세탁을 위한 결혼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신분증과 이름으로 만난 그 남자와의 결혼은 소피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맙니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가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크게 네 개의 챕터 - 소피 프란츠 프란츠와 소피 소피와 프란츠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서평 쓰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첫 번째 챕터 외에는 내용 소개가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살펴보면 첫 번째 챕터 외에는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아직 안 읽은 독자라면 가능하면 내용을 언급한 서평은 피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같은 작가의 작품 알렉스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 때문에 한동안 읽기를 주저했던 작품입니다. ‘알렉스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루한 초반부와 기분이 상할 만큼 엉망인 번역 때문에 결국 중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 역시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알렉스의 안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소피가 도망자 신세가 되기까지의 설명은 그녀의 정신 상태처럼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할 뿐이었고, 가끔 힌트처럼 묘사되는 그녀의 과거사는 전혀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유발하지 못했습니다. 도망자가 되어 비참한 삶을 꾸려가는 대목 역시 작위적이거나 억지스러워 보여서 도무지 문장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겨우겨우 두 번째 챕터로 진입한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페이지는 거의 3배속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그대로 마지막 장까지 단번에 달릴 수 있었습니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했던 것들이 선명하게 밝혀지고, 문장과 단어는 더 이상 어렵거나 현학적이지 않았습니다. , 끊임없이 닥쳐오는 위기들과 차츰 정체를 드러내는 추악한 진실들이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앞서 미적미적 갈 길을 헤매던 캐릭터들도 비로소 자기 역할에 충실해지면서 이 작품의 미덕을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물론 마지막까지 아쉬운 점들도 있었습니다. 뒤로 갈수록 점점 재미있어지는데 그와 동시에 현실감은 조금씩 사라져버렸습니다. 극적인 설정도 좋지만 이건 좀 과하네.”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고,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어쩔 수 없다 해도 전지전능에 가까운 캐릭터는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범한 진리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첫 번째 챕터에서 소피의 상황과 내면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파고든 덕분에 사건 위주의 스릴러라기보다 깊이 있는 심리스릴러에 더 가까운 작품이 됐지만, 반대로 사건이 중심이 된 이야기였다면, 한참 부족한 리얼리티 때문에 아마 호평을 듣기는 어려웠을 거란 생각입니다.

 

어쨌든... 초반의 지루함과 모호함만 잘 견뎌낸다면 마지막까지는 순탄한 책 읽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떻게든 첫 번째 챕터를 인내심을 갖고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문득, “‘알렉스도 이런 스타일이었나? 조금만 더 참아볼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번역 때문에라도 개정판이 나오지 않는 한은 다시 찾아 읽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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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연애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8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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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들어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바람에 444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이 그리 두껍게 여겨지진 않지만, 한 남자의 40여년의 인생을 담은 내용만큼은 거의 대하급 무게감을 갖고 있습니다. ‘완전연애라는, 어딘가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집착의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과 함께 9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이라는 타이틀 역시 그 무게감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크게 세 개의 시기로 나뉜 주인공 혼조 기와무의 삶이 그려지는데 매 시기마다 그가 직간접적으로 엮이는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2차 대전 패전 직후, 기와무와 그의 첫사랑 도모네가 얽히는 살인사건, 20여년이 흐른 뒤 기와무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목격하는 밀실 살인 사건, 다시 20여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그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당하는 살인사건이 그것입니다.

이 세 건의 살인사건은 모두 완전연애라는 미묘한 형태의 감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랑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과 평생 잊히지 않는 하룻밤 사랑에 대한 회한이 무려 40여 년 동안 여러 사람의 삶을 지배하면서 운명과도 같은 살인사건들을 일으킵니다.

 

도중에 모든 걸 파악한 독자에겐 완전연애의 실체가 다소 싱겁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딴 데 한 눈 팔고 있던 독자에겐 꽤 충격적인 반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제야 왜 이 작품의 제목이 완전연애인지 새삼 되새겨보게 될 것입니다.

 

혼조 기와무와 그의 첫사랑 도모네 외에는 인물들을 소개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캐릭터 설명 자체가 소소하게나마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읽어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던데, 대형 스포일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 챕터 이상은 허무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덕분에 내용 소개는 없는 너무 밋밋하고 알맹이 없는 서평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내용이나 캐릭터가 궁금하신 분들은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40여년의 세월을 담기엔 다소 부족해 보인 분량인데, 이야기가 채 숙성되기도 전에 개연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비약하거나 독자가 몰입하기도 전에 주요 인물들이 등퇴장을 반복한 건 분명 분량의 문제란 생각입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막판 반전이 앞서 펼쳐진 대하급 이야기를 무색하게 만든 느낌을 받게 되는데, 굳이 이만큼의 큰 구도가 필요했는지, 그 많은 인물들이 필요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박한 점수를 주고 싶진 않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지루하다고 평했던 초반부 유년기의 기와무의 이야기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물론 패전국 국민으로서 기와무가 겪어야 했던 비참함은 도무지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그 오랜 시간동안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 복잡다단한 감정들에 대한 묘사 역시 녹록치 않은 필력 속에 잘 녹아있다는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 작가가 궁극적으로 그리려 했던 연애와 미스터리의 조합은 완벽하진 않아도 충실하고 꼼꼼했던 설계 덕분에 나름 공감을 얻었다고 할까요? 제대로 된 설계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 많은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이 엉망으로 꼬인 연애와 미스터리의 그물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만 덧붙이면, 띠지의 자극적인(?) 홍보 문구 도발적인 살인예고, 완벽한 밀실 살인,

기이한 알리바이 증명, 그리고 마지막에 명탐정이 등장한다에 솔깃하거나 연연한다면 오히려 이 작품의 진가를 음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극적 요소에 대한 기대 때문에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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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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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이벤트를 통해 가제본 상태로 먼저 읽은 ‘64’입니다. 693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작심하고 하루 만에 마지막 장까지 달렸습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읽는 내내 서사의 두께에 눌려 온몸이 긴장 상태를 풀지 못한 덕에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전신에서 삐걱거리는 비명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전력을 다한 폭주 수준으로 읽은 셈입니다.

이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어떻게 요약해야 하나, 무척 고민이 됩니다. 몇 가지의 굵직한 서사가 여러 겹으로 중첩된 채 진행되는데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방에 스포일러가 될 이야기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전에는 D현경 형사부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경무부 홍보담당관인 미카미는 벌떼처럼 달려드는 언론사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앙숙지간인 형사부와 경무부의 총성 없는 전쟁에서 어느 편도 들 수 없는 애매한 처지 탓에 양쪽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러던 중 14년 전인 1989(쇼와 64)에 발생한 여아 유괴살해사건, 일명 ‘64’ 사건의 해결을 독려하기 위해 경찰청장의 D현경 시찰이 결정되자 미카미는 홍보담당관으로서 그 준비를 맡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카미는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 뿐 아니라 당시 수사와 관련된 비밀까지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14년 전 ‘64’ 사건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진정한 경찰로 거듭나는 미카미의 활약 속에 이야기는 마지막 장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핵심적인 내용만 골랐는데도 여러 줄의 줄거리가 나올 정도로 ‘64’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4년 동안 미궁에 빠져있던 여아 유괴살해사건 수사 외에도, 결코 동료가 될 수 없는 경찰과 언론의 꼬일대로 꼬인 관계, (출신 성분에 따른) 경찰 내부의 심각한 갈등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무엇보다 형사부 대 경무부의 격한 갈등을 ‘64’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됐는데, 덕분에 진정한 경찰미카미의 진짜 적은 어쩌면 내부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미스터리 소재로는 비교적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 여아 유괴살해사건을 축으로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서사를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속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녹여 넣은 작가의 필력에 여러 번 놀라게 됩니다. 특히 사건 자체는 물론 거기에 연루된 다양한 개인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따라간 점도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물론 가끔 동어반복적인 챕터들도 있고 과하다 싶을 만큼 감정을 깊게 묘사한 부분도 있어서 지루해지거나, 느슨해지거나, 맥이 빠질 때도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읽는 내내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는 건 ‘64’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2013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 ‘일본 서점대상’ 2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작품으로 아마 올해 연말 각종 일본 미스터리 베스트 5안에 꼽힐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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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커 스타일 - 카가미 키미히코에게 어울리는 살인
사토 유야 지음, 주진언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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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미 가() 7남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카가미 키미히코에게 어울리는 살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사토 유야가 고교 졸업 후에 쓴 데뷔작으로 일본에서 메피스토 상을 수상했습니다. 우선은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에 쓴 파격적인 데뷔작이라는 점 때문에, 48(1996~2013)의 메피스토 상 수상작 중 불과 6편만이 한국에 출간된 걸 감안할 때 분명 기대할 만한 뭔가가 있으니 시리즈 전체가 출간됐을 거란 막연한 믿음 때문에 꽤 오래 전부터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던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 또는 오타쿠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납치, 감금, 근친상간등 폭력적, 선정적인 단어들이 난무하는 출판사 소개글 탓에 그저 관심만 가졌을 뿐 실제로 읽을 마음까진 먹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시리즈 전체를 중고로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덕분에 여전히 장르도, 스타일도 감이 안 잡힐 만큼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드디어 시리즈 첫 편의 첫 페이지를 열게 됐습니다.

 

중반부까지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한 챕터씩 교차로 전개됩니다. 키미히코의 여동생이지만 그와 그 이상의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카가미 사나가 짐승 같은 세 명의 중년남자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비디오를 본 키미히코는 그들의 딸 또는 손녀에게 복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곤 그들을 한 명씩 납치하여 폐허가 된 병원 건물에 감금합니다.

한편, 77명의 10대 소녀를 죽인 나이프 잭 사건이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는 가운데 키미히코의 친구이자 신비한 초능력을 지닌 아스미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아스미의 초능력은 나이프 잭이 소녀를 죽일 때마다 그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인데 말하자면 소녀를 죽이는 순간을 나이프 잭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둘의 맞대결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시시각각 다가옵니다.

키미히코의 납치극과 아스미 대 나이프 잭의 대결이 교차로 전개되다가 마지막 100여 페이지를 남기고 관련 인물들 모두가 한 공간에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이 꼬였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적잖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만큼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그 하나하나가 스포일러에 가까워서 이 이상 소개하기는 곤란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서평 쓰기도 난감해졌는데, 그래서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먼저 살펴봤더니 작가가 생각나는 대로 펜을 놀린 거다!”부터 최고다! 역대급 스토리다!”에 이르기까지 예상대로 거의 극과 극이라 할 만한 평가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혹시 나만 내용을 제대로 이해 못한 건가? 다시 읽어야 되나?”, 라는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은 더는 안 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고백하자면, 모든 인물들이 모인 상태에서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는 마지막 100여 페이지는 일일이 메모를 하면서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꼬여있습니다. 줄거리에 꼬였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합니다.”라고 썼지만, 실은, 풀리는 듯 하다가 다시 꼬이고, 또 꼬이고, 또 꼬이는, 그런 상태가 반복됩니다. 결국 뭐가 진실이고, 뭐가 사실인지조차 확실치 않은 모호한 상태로 마지막 장을 덮게 됩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자의 혼선을 노린 건지, 쓰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로 책읽기를 마치는 건 결코 유쾌한 기분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완주한 건 사토 유야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문장들이 가진 정체불명의 흡입력 때문이었습니다. 뜬금없이 툭툭 끊어지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건 애교 수준이고, 피 튀기는 상황에서도 위화감 가득한 농담과 웃음을 끌어들이는 럭비공 같은 문장들은 처음엔 어이없다가도 점점 신선하거나 재치 있게 느껴진 끝에 오히려 익숙해지기까지 합니다. , 지극히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에 잘 어울리는 자극적인 문장들 역시 짜증을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눈길을 잡아끄는 마력을 지녔는데, 그래선지 당장 읽고 있는 페이지에선 화가 나는데도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져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매번 생각으로만 그치고 만 게 사실입니다. 어쩌면 최악의 서평과 평점 대신 별 세 개를 준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만 해도 아무리 데뷔작이라지만 용서가 안 돼!”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서평을 쓰다 보니 저도 모르게 후속작을 읽어볼까?”, 라는 이상한 욕심이 발동합니다. 아무래도 데뷔작보다는 좀 친절해지지 않았을까, 라는 근거 없는 낙관과 함께 말입니다. , ‘카가미 가() 7남매 시리즈라는 타이틀답게 후속작인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은 키미히코의 누나인 료코가, ‘수몰 피아노는 키미히코의 형 소지가 주인공이란 점도 약간의 기대감을 주는 게 사실입니다. 실컷 당하고도 또 궁금해지는, 또 당할 게 분명한데도 어찌 할 수 없는 호기심이라고 할까요? 다만, 연이어 읽기엔 정신적 부담이 큰 게 분명하니 충분한 공백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 공백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지금으로선 전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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