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청년, 호러 안전가옥 FIC-PICK 3
이시우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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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나 미쓰다 신조의 극강의 호러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영상 호러물은 거의 못 보는 편인데, 비주얼에 대한 두려움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활자로 된 호러물은 초자연적인 소재든 현실에 기반을 둔 소재든 가리지 않고 찾아 읽는 편입니다. 이시우를 비롯하여 여섯 명의 작가가 힘을 모은 도시, 청년, 호러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무서움 자체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를 다룬 것 같아서 더 관심이 간 작품입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거나 모르는 척 외면하는 세상의 아래쪽이야기를 서울의 지하관로 정비 일을 했던 한 비정규직 청년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이시우의 아래쪽’, 꿈에 그리던 복층집에서의 독립을 손에 넣었지만 얼마 못가 집이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25살 사회초년생의 이야기를 다룬 김동식의 복층 집’,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낡은 고시원에 들어간 공시생이 사람 몸 크기의 얼룩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자꾸만 물건들이 사라지는 기이한 경험을 거듭하던 끝에 끝내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를 다룬 허정의 분실’, 정당방위로 살인을 저질렀다며 경찰서에 자진출두한 한 여성의 끔찍한 이야기를 그린 전건우의 ‘Not Alone’, 유흥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최악의 월세방을 벗어나려 하지만 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이 없는 집주인과 흉흉한 동네 분위기 때문에 분노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조예은의 보증금 돌려받기’,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액정화면을 들이받고 참혹한 죽음에 이르는 기이한 현상을 그린 남유하의 화면 공포증이 수록돼있습니다.

 

제목대로 수록작 모두 도시에 사는 청년들이 겪는 공포심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개입된 경우도 두어 편 있고, 문명사회의 종언을 예고하는 듯한 근미래 스타일의 호러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말미에 실린 프로듀서의 말대로 동떨어져 있는 공포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공포, 그래서 도시를 사는 우리가 깊이 공감할 만한 공포소설의 경향이 훨씬 더 두드러집니다. 특히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청년들이 공포심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흔히 말하는 호러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맛보게 되는데, 개인적으론 요즘 언론에서 자주 보도하는 영끌했다가 패닉에 빠진 MZ세대기사가 종종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들의 패닉은 초자연적 호러를 능가할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인, 즉 세상의 끝이 코앞에 닥친 듯한 공포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대부분이 비정규직, 공시생, 사회초년생이고, 그들의 주거지는 열악한 원룸이거나 낡아빠진 고시원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소 편향된 설정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주인공들보다 처지가 조금 나을지는 몰라도 집과 직장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공포의 무게는 이 시대의 도시 청년들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기댈 곳 없고, 의지할 대상 없이 오로지 혼자서만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담아내려 했다.”는 전건우의 후기에 무척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여름밤을 서늘하게 만들어줄 짜릿한 호러를 기대한 독자에겐 (한두 편을 제외하곤)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에 이입하다 보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호러와는 차별되는, 무척이나 실감 나는 공포, 또 피부에 들러붙는 듯한 공포를 맛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또래 독자들에겐 더할 수 없는 동지애를, 기성세대들에겐 청년들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만드는 특별한 호러물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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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테일 안전가옥 FIC-PICK 2
서미애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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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의 전래동화와 고전소설을 모티브로 삼은 다섯 편의 장르물이 수록된 모던 테일은 그동안 많이 봐온 잔혹동화, 즉 우리가 모르는 동화의 뒷이야기 혹은 그 동화를 이리저리 엽기적으로 비틀어 만들어낸 2차 창작물, 아니면 사람들에 의해 순하게 가공되기 전엔 실은 끔찍하고 잔혹했던 오리지널 판본을 독자 앞에 내놓았던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그 모티브 자체를 현대사회의 문제와 결합시킨 독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모티브로 삼은 서미애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법 제도의 허술함 속에서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가정폭력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삼은 민지형의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한 반발심에서 기획됐다는 작가의 고백대로 역 신데렐라 판타지’, 즉 상류계급의 여성에게 간택되기를 욕망하는 추잡한 남성들을 가차없이 공격합니다.

숙영낭자전에서 출발한 전혜진의 수경-나선 미궁 속의 여자들은 몽환적인 판타지 서사가 눈길을 끈 작품인데, 원작 자체가 막장드라마에 가까운 숙영낭자전을 현대에 부활시켜 독특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다른 원작들에 비해 다소 낯선 프랑스 동화 당나귀 가죽을 원전으로 한 박서련의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는 옷의 의미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이자 장년 남성들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힌 작품입니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도 잠깐 언급되는데 당나귀 가죽못잖게 작가의 의도를 잘 드러낸 원전이란 생각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모티브로 2039년의 정치 해프닝을 그린 심너울의 나의 퍼리 대통령님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누구나 정치를 이야기할 때 편협해질 수밖에 없고, 인지적 편향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작품입니다.

 

전래동화 혹은 고전소설을 현대사회의 문제와 접목시킨 점에서 예전의 잔혹동화들과는 확실히 결이 다른 작품집입니다. 가정폭력, 신데렐라 판타지, 젠더 이슈, 연쇄살인 등 첨예하거나 비극적인 주제들이 전래동화와 고전소설의 원형과 믹스되면서 좀더 극적이고 현실감 있게 묘사됐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론 서사 자체가 다소 단순하긴 해도 딱 떨어지는 장르물의 미덕을 갖춘 서미애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와 민지형의 신데렐라 프로젝트가 편하고 재미있게 읽혔고, 박서련의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는 연쇄살인 스릴러를 예술적으로(?) 그려낸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어떤 형태가 됐든 동화를 차용한 장르물은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모던 테일은 그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것 자체가 돋보였고, 혹시라도 시즌 2’가 출간된다면 꼭 찾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다만,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어떤 작품은 너무 단조롭거나 쉬웠고, 어떤 작품은 너무 애매모호해서 원전과의 연관성조차 떠올리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만일 시즌 2’가 기획된다면 원전의 미덕과 미스터리&스릴러 서사에 충실한, 말하자면 과정과 결과가 좀더 선명한 이야기들이 수록되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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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 미스터리 - 어른들을 위한 엽기적이고 잔혹한 전래 미스터리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홍정기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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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을 담은 동화들이 실은 그 이면에 잔혹하고 엽기적인 진짜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는 건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발상입니다. 기류 마사오의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시리즈나 아오야기 아이토의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같은 잔혹동화에 끌렸던 건 바로 그런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처음으로 우리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어른들을 위한 엽기적이고 잔혹한 전래 미스터리를 그려낸 홍정기의 전래 미스터리역시 같은 이유 때문에 찾아 읽게 된 작품입니다.

 

콩쥐와 팥쥐’, ‘선녀와 나무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여우 누이’, 그리고 혹부리 영감등 대표적인 전래동화를 기반으로 말 그대로 피와 살이 난무하는 끔찍한 이야기 다섯 편이 수록돼있습니다. 동화 자체에 충실한 경우도 있지만 다른 동화와 슬쩍 믹스된 경우도 있고, 동화에서 출발했지만 거의 새로운 이야기나 다름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콩쥐와 팥쥐를 원전으로 한 콩쥐 살인사건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대신 콩쥐의 잘린 발목이 등장하는 후더닛 미스터리입니다. 콩쥐의 발목을 자른 범인을 찾기 위해 원님 앞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대결이 흥미진진합니다.

나무꾼의 대위기는 우리가 잘 아는 선녀와 나무꾼에다 금도끼 은도끼가 믹스된 작품인데, 불륜(?), 살인, 원죄(冤罪) 등 동화와는 거리가 먼 코드들이 잘 버무려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게 읽은 살인귀 VS 식인귀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원전이지만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텔레파시가 통하는 남매, 가족까지 잡아먹는 식인귀, 타고난 살인마가 등장하는 엽기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우 누이를 원전으로 한 연쇄 도살마는 집 전체가 밀실인 상태에서 벌어지는 흉흉한 살육극을 그립니다. 짐승과 사람을 무차별로, 그것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살해하는 범인의 정체와 동기가 마지막에 밝혀집니다.

스위치는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과 연관 있긴 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혹부리 영감의 거짓말에 격분한 도깨비와 파란 눈을 가진 백정의 아들이 이끌어갑니다. 도깨비와 거래를 한 이후 70년 가까이 사이코로 살아온 백정의 아들이 1인칭 화자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예상보다 독한 엽기성과 잔혹함이 눈길을 끌었고, 원전에 매몰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상상력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다만, 살짝 가볍게 느껴진 서사와 (분량 때문에 불가피해 보인) 쉽거나 허술하거나 갑작스러운 미스터리가 아쉬움으로 남은 것도 사실입니다. 스릴러의 미덕이 잘 살아있는 살인귀 VS 식인귀가 가장 흥미롭게 읽힌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나무꾼의 대위기는 미스터리 자체보다 설정의 재미가 압권이어서 읽는 동안 몇 번이고 저절로 웃음이 터진 작품인데,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입니다.

 

전래동화라는 원전의 특성 상 10명의 작가가 달려들면 10개의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에서도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좀더 창작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화 속 인물이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실존인물처럼 여겨지는 주인공들이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의 틀을 넘어 잔혹하고 엽기적인 이야기 속에서 다양하게 변신하는 모습은 매번 색다른 매력을 전해줄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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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변의 창 - 피의 노래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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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신은 현대와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가족의 비극과 시대의 문제를 정교한 미스터리로 풀어낸 3의 남자’(2017)로 처음 알게 됐는데,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갖춘 작품이라 후속작 소식을 기다렸지만 두 권의 앤솔로지 외엔 신작이 나오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았던 작가입니다. 5년 만에 나온 새 작품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물이라 다소 의외였지만, “실존인물 추남 남학을 소재로 한 충격적인 성형살인사건이라는 카피와 함께 피해자들의 얼굴을 잔혹하게 난도질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고 해서 나름 기대감을 갖게 됐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남학은 난쟁이의 몸, 사자의 코, 늙은 양의 수염, 미친개의 눈, 닭발 같은 손을 지닌남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아름답고 영롱했으며, 여자 목소리까지 잘 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 남학이란 인물의 추한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에 착안하여 우정과 광기, 그리고 잔혹한 복수극의 주인공을 창조해냈습니다.

 

근친상간의 결과로 태어난 아기의 외모는 인간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습니다. 그저 괴물아이라 불리며 노파와 사냥꾼에게 이용당하다가 동굴에 버려진 아이는 11살 때 세상의 빛을 얻습니다. 또래인 양반 이수가 손을 내밀었고, 자신의 집에 살게 하며 황선이란 이름까지 지어주곤 사람에겐 귀천이 없으며, 우린 벗이다.”란 말과 함께 세상을 가르쳐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이수는 한양으로 떠났고, 이후 황선은 또다시 괴물의 처지로 돌아가고 맙니다. 우여곡절 끝에 외모를 바꾸고 이름까지 남학으로 바꾼 황선은 한양에 도착해 이수를 만나지만 그는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은 물론 황선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날부터 남학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이용하여 이수의 모든 것을 파멸시키기로 결심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3의 남자때문에 생긴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30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을 읽는 동안 여러 번 한숨이 나올 정도로 실망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 자체부터 질릴 만큼 봐온 퓨전 역사물의 플롯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문장은 소설다운 깊이나 진중함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시나리오의 지문마냥 불면 휙 날아갈 듯 한없이 가벼웠습니다. , 경어와 평어가 한 문장에 뒤섞이거나 줄 바꿈이 제대로 안 이뤄지기도 하고, 한참 전 날아간 비둘기가 갑자기 되돌아와 눈앞에서 피를 토하기도 하고, 능동태 자리에 수동태가 들어오는 등 여기저기서 디테일의 문제가 목격됐는데, 수두룩한 오타를 비롯한 무성의한 편집까지 가세한 탓에 실은 중간에 포기할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다른 건 이해한다 쳐도 두 주인공의 캐릭터목표3의 남자에서 맛봤던 박성신의 필력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핵심인 남학의 복수 자체가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수의 모든 걸 빼앗고 파멸시키겠다는 남학의 심정이 공감을 얻으려면 그만큼 이수에게 얻은 상처가 깊고 커야 되는데 실제론 별 일 아니듯 대수롭지 않게 그려질 뿐입니다. 뒤늦게 남학을 갖고 놀았던어린 시절 이수의 본심이 설명되긴 하지만 그 설명이 초반에 나왔더라도 남학의 복수심을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입니다.

또 하나는 과하게 설정된 남학의 초능력입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물론 목소리만으로 타인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데다 아주 먼 곳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사냥꾼과 노승에게 배운 해체술과 의학지식 덕분에 뛰어난 외과의사의 능력까지 갖췄습니다. 판타지라고 해도 좀처럼 이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했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수를 향한 남학의 복수극이 뜬금없이 반역도당과 연결되는 설정인데, 안 그래도 설득력이 전혀 없던 그의 복수심이 반역으로까지 확장되는 대목은 결국 반역 외엔 달리 해법이 없는 퓨전사극의 폐해를 그대로 모방한 듯 보였습니다. 그나마 반역 시퀀스가 재미있었다면 몰라도, 막판 관군과 반역군의 대결 장면은 좀 심하게 말하면 거의 메모 수준이었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에 실망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봐도 살변의 창은 주인공의 성격과 목표, 사건의 전개, 클라이맥스와 엔딩, 문장력과 편집 모두 부족함이 많아 보인 작품입니다. 부디 다음 작품에서는 3의 남자에서 만끽했던 박성신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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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2월 29일
송경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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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일에 태어나 4년마다 생일을 맞이하는 수현. 20대 초반 전역한 그를 기다린 건 엄청난 빚과 간경화로 투병 중인 어머니뿐입니다. 불법 콜택시, 일명 콜때기로 호구지책을 마련하지만 수현은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죽지 않을 이유도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갑니다. 생일인 229, 도박사이트를 통해 자신과 생일이 같은 현채를 알게 된 수현은 그녀와 함께 충동적으로 현금 수송차량을 탈취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뺑소니를 당한 경찰에게서 빼앗은 총을 갖고 있던 현채가 엉겁결에 은행원을 쏴 죽이고 맙니다. 급한 나머지 현금을 나눠가진 뒤 4년 후 자신들의 생일인 229일에 다시 만나기로 한 두 사람. 하지만 이후 229일은 수현에게 4년마다 되풀이되는 끔찍한 지옥도를 펼쳐 보입니다.

 

살아갈 이유조차 없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돈이 필요한 수현과 평범하고 모자람 없어 보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큰돈이 필요하다는 현채. 더구나 우연히 손에 넣은 총까지 지닌 두 사람이 아무 계획도 없이 충동적으로 현금 수송차량을 탈취하다가 은행원을 죽이는 대목까지만 해도 영원한 고전 보니&클라이드’(한국 개봉 제목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비슷한 전개를 예상했던 게 사실입니다. 현금 탈취 4년 후 자신들의 생일날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두 번째 한탕을 저지르며 희대의 2인조로 진화하는 액션 스릴러의 향기가 물씬 풍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 차례의 4년이 흐르는 동안 수현과 현채는 초반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극적인 반전과 함께 피비린내와 긴장감이 작열하는 치명적인 관계가 되고 맙니다.

 

사실 여섯 번째 229은 서평을 쓰기가 참 난감한 작품입니다. 229일이 돌아올 때마다 점점 더 짙고 불온한 악의에 휩싸이는 수현과 현채의 비밀을 설명하지 않곤 초반 이후의 줄거리를 소개할 방법이 없는데, 대략 1/3쯤 공개되긴 하지만 제가 볼 땐 가장 강력한 스포일러라 함부로 언급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 주인공이 어떤 종류의 갈등을 벌이는지, 각자 어느 방향으로 달려가는지, 궁극의 목표는 무엇인지조차 소개할 수 없으니 인상비평 수준의 다소 모호한 서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드보일드는 특성상 누아르와 결합하기 쉽지만, 언제나 누아르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범죄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 이야기의 주체일 때 건조함과 비극성이 극대화되기도 한다.”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수현과 현채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실은 과거도 미래도 온통 감당하기 힘든 비극으로 채워진 심연 같은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피할 수 없는 파국이 예정된 두 사람의 행보는 최대한 절제된, 그래서 오히려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하드보일드 스타일대로 묘사되는데, 특히 어딘가 공감 능력이 결여된 듯한 수현의 캐릭터와 차분한 미소와 낮은 목소리 속에 섬뜩한 냉기를 품고 있는 현채의 캐릭터는 작가가 구사하는 건조한 문장들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수현과 현채의 잔혹한 이야기는 다섯 번의 229, 그러니까 16년에 걸쳐 느리지만 위험하게 끓어오르다가 극적으로 폭발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맞이하는 여섯 번째 229일은 독자에게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그 누구도 편들어 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선사합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하드보일드 스타일 엔딩이라고 할까요?

 

이 작품은 송경혁의 첫 장편이라고 합니다. 고즈넉이엔티의 케이스릴러 시리즈를 통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신인작가들을 여럿 만났는데, 송경혁 역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대단한 유망주라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하드보일드 혹은 누아르 스타일을 고수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좀더 그쪽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강점을 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매력적일 여섯 번째 229이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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