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장난감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박상민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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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부족은 기본이고 비인간적인 초과근무에 대학병원 내 모든 직종의 이나 다름없는 신세라 공공연히 최하층 계급으로 불리는 인턴. 장래 정형외과 의사를 꿈꾸는 명성대학병원 인턴 강석호는 오로지 레지던트 합격을 위해 오늘도 지옥 같은 인턴 생활을 견디는 중입니다. 하지만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한 두 환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이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것은 물론 인턴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곤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두 환자의 죽음이 자신의 실수 탓이 아니란 걸 입증할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강석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사에 나서지만 그 과정에서 괴물과도 같은 대학병원의 민낯과 마주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를 무척 좋아합니다. 도조대학병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메디컬 스토리의 미덕과 미스터리의 강점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첫 편인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이후 한 편도 빠지지 않고 읽어왔습니다.

위험한 장난감에 눈길이 갔던 건 무엇보다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라는 홍보 카피 때문인데, 가이도 다케루의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했고, 또 그 작품들에 맞먹겠다는 자신감이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대학병원이라는 무대까지 닮은꼴이라 더 기대감이 들었는데, 드라마나 소설로 많이 봐온 일본 대학병원에 비해 정작 그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한국 대학병원의 속살을 들여다볼 기회가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인생 자체가 개고생인 인턴 강석호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두 환자의 죽음의 책임을 지고 그동안 쌓아온 것들과 다가올 미래를 통째로 내놓게 됐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한 명의 환자에 관한 한 자신의 책임이 아님을 확신한 강석호는 순진하게도 인간의 양심을 믿어보지만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미안하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냉정한 대답만 듣고 맙니다. 징계위원회까지 24시간도 채 안 남은 상태에서 강석호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두 환자의 죽음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분투합니다. 사망자가 발생한 병실의 환자들을 탐문하고, 몰래 시신 안치실에 잠입하고, 사망자들의 기록을 열람했던 의료진 명단을 입수하는 등 물러설 곳 없는 각오로 조사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엉뚱한 희생양을 찾는 탐정 놀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복잡한 의학용어들이 난무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교수, 레지던트, 간호사, 사무직 등 인턴을 으로 아는 대학병원 내의 인간관계도 흥미롭습니다. 자칫 의사로서의 인생을 종치게 될지도 모를 강석호의 진실 찾기는 피를 말리는 시간제한 설정 속에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 미스터리가 힘을 잃은 건 무척 아쉬웠습니다. 범인의 동기는 억지에 가까울 정도로 설득력이 없었는데, 앞서 그럴 만한 정황이나 밑밥이 뿌려진 적이 없다보니 그 사람들이 그런 관계였어?”라는 허망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범인 입장에서 살인으로 인해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점도 의아한 대목입니다. 범행수법들 역시 설정을 위한 설정’, 즉 새롭고 기발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오히려 사실감을 놓쳤다는 생각인데, 그중 한 가지 방법은 허술하고 들통 날 여지가 너무 많아서 범인의 수준을 훅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가이도 다케루의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에서 가장 매력적인 대목은 대학병원 내의 치열하고 잔인한 권력구도입니다. 미스터리의 힘을 몇 배는 더 강렬하게 만드는 불쏘시개 역할 역시 그 권력구도입니다. ‘위험한 장난감은 분명 그 권력구도를 밑바탕에 깔아두고 있지만 정작 이야기의 몸통에선 그 부분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즉 최하층 계급이자 모두의 밥인 강석호의 수난사와 고군분투기가 대부분이라 뒤늦게 권력구도를 강조한 클라이맥스와 엔딩이 힘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에필로그와 작가의 말을 보면 강석호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것 같은데, 후속작에서는 밑바탕과 몸통의 조화가 좀더 잘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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