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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3
신원섭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평점 :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 옷을 벗은 뒤 밑바닥 삶을 살고 있는 이진수,
엄청난 부를 향유하고 있지만 인간의 탐욕이란 끝이 없음을 온몸으로 입증하는 도미애,
스스로 삶을 망쳐놓고도 그 모든 것을 언니 탓으로 돌리며 증오심을 키우는 도미옥,
타고난 게으름과 사회부적응으로 히키코모리나 다름없는 황폐한 삶을 사는 장근덕,
줏대도 의지도 없는데다 스스로를 무시당해도 싼 나약한 인간이라 여기는 오동구,
오동구보다 나은 것 하나 없으면서도 늘 그를 하찮게 내려 보며 만족감을 느꼈던 최준.
이 여섯 명의 인물들이 ‘짐승’이라는 교집합 안에 들어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탐욕’입니다.
그 탐욕이 갈구하는 바는 인물에 따라 순정이나 사랑이기도 하고 돈이나 복수이기도 합니다.
탐욕의 농도도 제각각이어서 색을 칠해놓으면 마치 프리즘을 투과한 빛처럼 보일 듯 합니다.
하지만 갈구하는 바나 탐욕의 농도는 서로 달라도
그들의 선택과 행동은 하나같이 짐승의 그것과 닮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살인을 저지르자 그 시체를 감춰주기 위해 밤길을 달려가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집에서 의문의 사체가 발견되자 앞뒤 생각도 없이 무작정 토막부터 내는 사람이 있고,
나의 불행은 남의 탓이고, 남의 행복은 내가 짓밟힌 덕분이라는 근거 없는 증오심에 출발하여
끝내 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고 말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습니다.
또, 우연찮게 말려든 사건 속에서 자신의 잇속을 위해 비열한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짜놓은 촘촘한 그물에 걸린 비루한 인간들을 보며 악마의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진실을 찾는 인물이 등장하니 당연히 미스터리로 분류되는 작품이지만
‘짐승’은 불행한 과거, 비루한 현실, 막장 같은 미래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게으름, 나약함, 탐욕, 오만, 증오, 시기라는 일그러진 인격까지 겸비(?)했을 때
어떤 파멸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극에 더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문득 소네 케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생각났는데,
이야기나 캐릭터는 전혀 다르지만 어쨌든 비슷한 여운을 느낀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짐승’이 끝까지 혀를 차게 만들었다면, ‘지푸라기~’는 안쓰러움을 남겼다고 할까요?
‘짐승’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신원섭은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 5’에 수록된 ‘라면 먹고 갈래요?’로 처음 만났는데,
고백하자면 그 단편이 그리 인상이 깊진 못했던 탓에 큰 기대를 안 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짐승’은 정교한 이야기 구조와 탄탄한 캐릭터 설계 덕분에
한 번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게 하는 페이지터너의 힘을 지닌 작품이었습니다.
문장 역시 쉽고 간결하면서도 메모해놓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부분들이 꽤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왜 진작 장편을 쓰지 않았을까, 의문이 저절로 들기도 했습니다.
또 한 명의 좋은 한국 작가를 발견했다는 반가움과 함께
머지않아 신원섭의 후속작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