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죽으러 갑니다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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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악의에 이어 세 번째 만난 정해연의 작품입니다.

간략히 요약하면 인터넷 자살카페에서 만난 4명의 남녀와 함께 동반자살을 결심한 주인공이

쾌락살인마와 마주하게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주인공이 살아남는 이야기를 넘어 여러 겹의 악의를 심어놓았고,

그 덕분에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마지막 장까지 무겁고 탁한 감정들을 쉴 새 없이 뿜어냅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통스런 사연을 지닌 채 동반자살을 위해 모여든 5명의 남녀,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음험한 분위기의 산장,

죽기 전 5일 동안 마음껏 즐겨보자는 자살카페 운영자의 이상한 제안,

그리고 하나둘씩 기이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는 멤버들...

 

일반적인 경우라면 주인공이 살인마를 찾아내고 무사히 탈출하는데서 이야기가 끝나겠지만,

작가는 거기에 덧붙여 살인마를 능가하는 탐욕의 화신을 설정함으로써

궁지에 몰릴 때마다 가까스로 살아남는 주인공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악몽을 투척합니다.

목차를 보면 전반부에 죽다’, 후반부에 살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전반부가 동반자살을 위해 찾아간 산장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인극을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는 동반자살을 빙자한 살인극배후의 진실을 뒤늦게 깨달은 주인공이

진심으로 살고 싶어 벌이는 마지막 싸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도만 봐도 깔끔한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건 쉽게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작가의 전작 제목처럼 악의의 민낯을 고스란히 까발린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주인공도, 주인공을 죽이려는 악당들도 온통 악의로 가득 찬 인물들이고,

그래서 독자는 누구의 승리를 응원해야 하고, 누구의 몰락을 기대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당연히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개운함보다는 묵직한 악의의 향기만 느끼게 됩니다.

물론, 어설프고 작위적인 해피엔딩보다는 훨씬 더 이 작품에 어울리는 엔딩이지만 말입니다.

 

예전에 쓴 정해연 작품에 대한 서평을 찾아보니

풋풋하지만 새롭고 독특했던 더블’, 안정적이지만 상투적인 악의’.”라는 문구가 있네요.

이 작품에서도 가끔 의문이 드는 대목도 있었고, 클리셰처럼 느껴진 대목도 있었지만,

(지극히 주관적이고 주제 넘는 평이지만) 전작들에 비해 눈에 띄게 진일보한 필력이 반가웠고,

다음 작품을 낙관적인 마음으로 기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게 사실입니다.

성급하지만, 정해연의 신작 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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